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운 삶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
강영우 박사님은 열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1학년 때인 열다섯 살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실명 때문에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고아가 된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는 장애인 재활원으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그는 수년간 방황하며
자살 시도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당시엔 맹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습니다.
맹인이 버스를 타려고 하면
차장이 밀어내기 일쑤였고,
가게에서는 재수가 없다며 오후에 오라 했고,
식당에서는 구석 자리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가진 열 가지를 감사하자”는 말씀을 듣고
힘을 얻었으며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맹인학교
중등부 1학년 때 영문과 여대생을 만났는데,
그녀는 자원봉사자로 1년, 누나로 6년,
약혼녀로 3년 그리고 아내로 34년을
사랑과 헌신으로 그의 그림자처럼 살았습니다.
고난과 역경, 편견 속에서도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전공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시각장애인과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인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까지 지냈습니다.
1972년 신혼부부로 미국 땅에 도착할 때
태중에 있던 장남은 하버드대에서 안과의사의
꿈을 이루어 듀크대학병원에 근무 중이며,
작은아들은 법학박사, 변호사로,
대통령 특별보관으로 성공하여 미국 사람도
부러워하는 명문가를 만들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췌장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가 임했을 때
의사선생님이 수술로 2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구차하게
목숨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담담하게 이런 내용의
마지막 작별 편지를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저는 신앙인입니다.
죽음 이후의 다음 세상을 믿는 사람이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어머니가 레이건에게 해줬다는 말입니다.
“오늘 너에게 생긴 나쁜 일이
내일의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게
사람에게는 가장 나쁜 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다음에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육신으로 볼 때
죽음은 공포요 좌절이요 절망이지만,
다음 세상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것은 저에게 절망만은 아니기에
생명연장하는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력을 잃은 것은 저에게 축복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장애라는 것을 지옥으로 생각하면 그대로 된 답니다.
그러나 그걸 축복으로 여기면 놀라운 일이 생기죠.
무엇보다 만남의 축복이 옵니다.
여러분들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끝을 맺은 편지가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딱 일주일 뒤
신문에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시한부 삶 강영우 박사
“가진 것 다 주고 떠나렵니다,
국제로타리 재단에 25만 달러 기부”
그는 그 동안의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무려 25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억 9000만원)의
장학기금을 만들어서 기부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피츠버그 대학교의
공공정치학 법학 포럼에 2만 5천 달러,
한국의 연세대학교에 4억원을 기부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2012년 2월 23일 향년 68세로
소천하셨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베풀고 가셨습니다.
그가 남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애는 불편함일 수는 있어도 불완전함은 아니다.
자신을 지배하는 생각의 장애, 마음의 장애,
영의 장애를 뛰어 넘어라.
희망에는 장애가 없다.
차별이 아닌 특별함으로 보라.
나의 장애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희망은 이뤄진다.”
강영우 박사는 한 평생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며 사랑을 전했고,
시작보다 끝이 더 아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글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