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말(Tamar)
1.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기 원했던 여인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마 1:3).
다말이라는 여자는 시부(媤父)인 유다의 씨를 받아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우리는 다말을 음란한 여자나 부도덕한 여자로 알았고 유다도 그 여자를 음란한 여자로 알아서 불에 태워 죽이려 했으나 나중에 “그가 나보다 옳다”. 의롭다고 말했다. 룻기 4장 12절에서 성읍 사람들이 룻을 축복할 때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축복했다.
다말은 유다 집에 아들을 낳아서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일에 소망을 두었다. 사탄은 그 길을 막았다. 엘도 죽고, 오난도 죽고, 셀라는 죽을까봐 유다가 다말에게 주기를 거절했다. 다말은 시아버지를 통한 길, 어려운 길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결심했다. 음행을 정당화 하려는 것은 아니나, 그런 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다말의 순결한 마음을 하나님은 받으신 것이다. 믿음의 세계는 자아가 죽은 상태라야 들어갈 수 있다. 왜 다말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올렸는지를 깨달아보라.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신약을 풀어주는 성경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신약에 짧게 기록된 것은 구약성경에서 다 풀어준다.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5장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한절은 구약의 출. 레. 민. 신 성경전체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애굽을 떠나(구원을 받아도) 육신에 속한 생각들이 우리 마음을 지배한 채, 광야길 같은 삶을 살면서, 옛 마음은 죽고 새 마음이 살아나 결국에는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가는 모습을 이야기 해 준다. 출.레.민.신 까지의 사실을 고후 5:17 한절이 설명해 주고 있다. 창 38장 1절=마태 1장3절. 창세기에는 유다가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끝나버리면 마태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마태복음에는 유다가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과 오난과 셀라 뒤에 베레스와 세라가 나온다. 유다가 결혼해서 낳은 맏아들이 엘이고, 둘째가 오난이고, 셋째가 셀라이다. 유다의 맏아들 엘이 맞이한 아내가 다말이다. 창 38장 7절에서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므로 다말과 결혼해서 살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훌륭한 유대인, 초라한 예수님
갈릴리 바다(갈릴리 호수, 디베랴 호수, 벳새다 바다. 게네사렛 호수)는 지름이 12km쯤 되는 호수인데, 엣날 사람들은 큰 호수를 바다라고 불렀다. 그 호수 한쪽에 벳새다가 있고, 여기서 호수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가버나움이 있고, 게네사렛이 있고, 디베랴가 있고, 건너편에는 거라사 등이 있는데, 디베랴 사람들은 그 호수를 디베랴 바다라 하고, 벳새다 사람들은 벳새다 바다라고 했다. 안식일에는 예루살렘 옛 성전벽(‘통곡의 벽‘)앞에서 유대인들이 기도하고 성경 찍으면서 사진을 못 찍게 했는데 사진 찍는 것도 노동이라고 했다. 경비원들은 무전기를 켜서 연락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린 엘과 오난
창세기 38장 7~8절에서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해서 죽였다는 것인데. 유대에서는 형이 결혼해서 아들 없이 죽으면 그 아내가 다른 데로 시집가는 게 아니라,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난 아들로, 형의 계보를 잇게 되어있다. 엘이 다말과 결혼해서 살다가 자식 없이 죽었기에. 둘째 오난이 형수에게 들어가서 형의 계보를 이어야 하는데, 오난은 형님의 이름보다 자기 이름을 내고 싶었고, 형님 집을 세우기 싫었기에 형수에게 아기를 못 갖게 하려고 땅에다 설정(泄精)한 탓으로 오난도 죽고 말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씨에서 태어나게 하시려고 경수가 끊어진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었고,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해서 에서와 야곱을 택했다. 유다는 결혼해서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고, 세 아들중 하나로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중대한 위치에 선 것이다. 자기 생각을 따라 육신의 정욕대로 떠내려갔다. 하나님이 엘에게 기대와 계획을 두었다면 마땅히 다말에게 “여보, 증조할아버지 이삭이 40살에 결혼해서 60살이 될 때까지 아기를 못 낳다가 기도해서 우리 할아버지 야곱과 에서를 낳으셨지. 그리고 야곱 할아버지가 열두 아들을 낳은 중에 우리 아버지 유다에게 약속을 주셨지. (창 49:10)” 그러니까 우리는 메시야를 낳는 가정이야“라는 생각으로 육신의 욕망을 버려야 했지만, 엘이 악한 일로 죽게 되었다. 엘이 죽자 오난과 다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으려 했으나, 씨를 형수에게 주지 않고 그냥 땅에 설정해 버림으로 사탄의 계획에 말려들었다. 다말이 정말 음란한 여자였다면 젊은 남자와 재혼했지 늙은 시아버지를 유혹했겠는가? 유다 집의 대를 이어서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일에 참예하려고 했던 것이다.
엘과 오난이 죽자 유다는 셀라와 다말의 동침시키기를 두려워했다. 셀라를 통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려고 유다에게 “저 여자와 동침만 하면 죽는다” 는 생각을 넣어 다말은 셀라에게 기대를 걸었으나 다말을 친정으로 내쫓았다. 11절에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죄사함은 롬 4:6~8에서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다윗과 고넬료의 거듭남. 사도바울. 구스 내시는 요일 1:7~9에서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고후 4:3~4에서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롬 3:10에서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 했다고 왜 하필 롬 3:10뿐인가? 성경 속의 의인이란 단어는 198번이나 있는데 “노아는 의인이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과 오난은 마귀가 주는 욕망을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서 떠났다.
2.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법칙
에스더 3:1~11에서 “그 후에 아하수에로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아하수에로왕 십 이년 정월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십이월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하만이 아하수에로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부쳐 왕의 부고에 드리리이다/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는 소견에 좋을대로 행하라 하더라”, 창 38:11~12에서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쫓겨난 다말
에스더도 아름답고 리브가도 아름답고, 유다의 아들 엘과 결혼한 다말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는 보통 집안이 아닌 곳에 시집가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가운데 쓰임받고 싶었다.
미리 넘겨볼 수 있었다면
성경을 읽으면서 다음에 일어날 이야기를 몇장만 넘겨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에스더 3장 이후에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위치에서 그 다음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유대인을 멸망시키기로 한 12월 13일에 은1만 달란트(45kg*1만=45만kg)로 만든 장대 위에 “하만이 목매어 달리겠구나” 할 것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다가 곧 왕이 된다고 안다면 다윗을 따르던 자들이 아말렉에 의해 사글락이 불타고 그의 가족들이 사로잡혀 갈 때라도 “다윗을 따르다가 다 죽겠다. 다윗을 죽이자”고 했는데 다음 책장에는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줄 알았다면 그리 안했을 것이다.
나는 안 돼
죄를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
성경의 법칙
눅 10장에서 여리고 강도 사실을 알고, 나사로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었음을 알았다면......
창 38:12에서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유다의 아내가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다말에게 다른 길을 여신 것이다. 다말은 인간적으로 모든 것이 포기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회를 주셨다. 엘과 오난과 셀라 대신에 유다에게서 직접 씨를 얻도록 했다. 자기 마음에 딱 맞는 구원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왕하 5장11절에서 나아만 장군은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라며 자기의 생각과 기준이었으나, 14절에서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자기의 생명까지 미련 없이 버릴 때 하나님의 길을 열어주셨다. 구원받은 것이다. 탕자도 자기의 방법이 완전히 무너진 후에야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브라함도 아들을 낳고자 하는 그들의 기대가 다 무너진 후에야 이삭을 얻었다. 이것이 성경의 법칙이다.
그저 비행기 표 값만 주십시오
의에 주리고 목 마르다
혼인 잔치집에서 인간이 준비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에야 예수님이 준비한 새포도주를 맛볼 수 있었다. 자기의 의가 무너질 때 그리스도의 의를 얻게 된다. 내 생각에 맞는 교회, 내 귀에 맞는 설교, 내 마음에 드는 일이라는 생각만으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하실 수 없다. 우리의 생각들이 무너질 때 구원의 길이 열린다.
자기에 대한 포기
“얼마 후“란 시간은 바로 절망의 시간이다. ”나는 결코 아이를 낳을 수 없구나” 하는 시간이다. 눅 15:16~19에서 둘째아들이 돼지우리에 내려간 후,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 자기 생각과 방법이 다 포기될 때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3. 이해할 수 없는 성령의 인도
창 38:6~14에서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항아리에 담길 술
옛날 중국에 공주님이 왕궁의 현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혜는 뛰어나지만 얼굴이 흉측해서 공주가 “선생님은 참 못 생겼는데 어디에서 그런 지혜가 나와요?“ 하니까, 빙그레 웃으면서 왕궁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도 있지만 토기그릇도 있어서 임금님이 마시는 술은 귀한 그릇에 담지 않고 토기그릇에 담는 다오”. 공주는 이후로는 귀한 술을 금그릇에 담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술맛이 변해버렸다 이것을 임금이 알고는 좋은 술일수록 토기나 질항아리에 담아야 보존이 된다고 가르쳤다. 지혜자는 “저의 얼굴이 잘 생겼으면, 저에게 있는 지혜도 변해서 궁중에 남아있을 수가 없었겠지요“라고 답했다.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옷으로 몸을 휩싸고 길가에서 기다렸다. 유다는 아내가 죽은 후 외로웠고 고향도 아닌 타지에서 양털 깎으러 가서 창녀를 보자 마음이 끌렸다. 유다는 가진 돈이 없으니 염소 새끼 한 마리면 안되겠는가? 하니까, 보증물로 지팡이와 도장과 끈을 받고서야 동침을 허락받아서 잠잔 것으로 인해서 다말은 임신했다. 다말은 유다의 씨를 얻는데 다시없는 기회를 얻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면
행 3장에서 성전 미문(예루살렘 동편문, 오늘날 ‘황금문’이다. 이문을 통해서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면 바로 감람산이다. 구약에서는 ‘왕의 문’(대상 9“18)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고쳤다. 치유의 능력 후에 옥에 갇힌 베드로, 성경의 두가지 양상은 복음 듣고 증거하는 자와 그 증거를 듣기 싫어하는 자가 있다. 다윗의 생각과 사울의 생각이 반대이고, 가인의 생각과 아벨의 생각이 반대이고, 에서의 생각과 야곱의 생각이 반대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어야 한ㄷ.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는 선교사가 정부에 등록된 교회와 선교회에 속한 외국선교사에게만 비자를 준다. 일년 중 추울 때는 15도, 가장 더울 때는 25도여서 살기에 좋다. 케냐인 교회에 소속되어 차량과 땅을 등록된 교회의 이름으로 사야한다. 그 교회 목사가 쫓아내면 재산을 그대로 두고 쫓겨난다. 케냐인 목사들은 화려하게 산다. 미제 최고급승용차와 미제 세탁기와 별장 같은 집에서 산다. 아프리카 목사들은 외국선교사들을 사람 대신 돈뭉치로 본다. 돈을 안주면 내쫓는다. 전시용 집회를 해서 그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한국에 보고하는 일이 중요하다.
4. 저주 위에 임하는 구원
창 38:12~20에서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면박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고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석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임산하여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 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육체 밖에서 보면
다말을 통해서 그 속에 숨겨진 구원의 비밀을 말해주고 있다. 다말이 자존심과 자기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창 38장(다말), 요 4장(사마리아 여자), 8장(간음한 여자)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돌로 때려죽이거나 불에 태워 죽여야 할 유혹의 여인이고 간음한 여인이다. 예수가 전하고, 바울이 전해도 대적하는 사람,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노아는 방주라는 구원의 길을 만들었다(창 6:14~16). 물에 빠졌다가 건짐을 받은 후의 새로운 삶을 기뻐하라.
구원의 약조물
다말은 시아버지의 씨를 얻어 아이를 가졌을 때 닥칠 일을 미리 생각하고 닥쳐올 죽음에 대비했다. 유다는 창녀와 잔 것이 창피하여 가까운 친구에게 염소새끼를 주며 에나임 길 곁으로 가서 그 약조물들을 찾아오게 했다. 유다 앞에 끌려온 다말이 불에 타 죽을 날이 왔으나 보증물을 본 순간 유다는 현기증이 나고, 26절에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했다. 다말의 의가 나타난 것이다. 그 의로 인해 심판이 떠나가 버렸다. ”셀라가 장성했으니 셀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갖게 해야 하는데....이건 다말의 잘못이 아니야, 내가 내 생각을 따랐어. 이 여자를 죽이지 마라”. 그렇게 심판은 물러갔다. 다말은 시아버지의 씨를 얻는데 만족하지 않고 멀리있는 심판을 마음에 앞당겨서 미리 가보았다.
5. 생명의 약조물
창 38:24~30에서 “석 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임산하여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 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가려진 영원한 세계
어제와 오늘은 우리 말인데, ‘어제’는 지나간 섭섭한 일들, 억울한 일들이고, ‘오늘’은 현실 살기에 바빠 내일 닥칠 문제를 대비하지 못한 것이고, 내일(來日)은 순수한 우리말 대신에 한자(漢字)일 뿐이다.
이제 꼰 새끼줄에 엽전 꿰기
옛날에 부자가 데리고 지내던 종들을 내보낼 때가 되어 내일이면 해방된다“고떠날 준비를 하는 중에 ”오늘 저녁에 마지막으로 할 일은 젓가락만큼 가늘고 여물고 길게 새끼줄을 꼬아주게!”. 종들은 마지막 날까지 일을 시킨다고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새끼를 대충 슬슬 굵게 꼬았으나 충성스런 종은 몇발이나 되는 새끼줄을 가늘게 열심히 꼬았다. 주인은 광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엽전뭉치를 내놓으며 “새끼줄에 꿰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충성스런 종은 많은 엽전으로 논밭을 사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 성경이야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감추어져 있다. 먼 옛날의 이야기를 책으로 지금 읽지만 말고 늘 그 자리에 함께 가 있어야 한다. 우리 마음을 성경 안으로 자꾸 끌어가야 한다.
소경과 눈을 뜬 사람
나면서 소경된 사람과 정상으로 태어났다가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반응이 다르다. 전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냥 “예”하고 대답만 하지만, 후자는 뒤에서 누가 부르면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듯 한다. 마음의 눈이 소경인 사람은 사건이 부딪힌 후에야 후회하지만, 마음의 눈을 뜬 사람은 부딪히기 전에 앞을 본다. 몽고사람은 평균 시력이 3.5란다. 눈 나쁜 사람이 케냐나 몽고에 가서 살면 눈이 아주 밝아진다. 소경은 문제를 만나도 자신에게 왜 닥치는지 모른다. 부딪혀도 무엇에 부딪혔는지 모른다.
생명의 약조물
마 1:1~3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Tamar)이라는 이름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위험이 따랐다. 용납되지 않는 일도 해야 했다.
그는 옳도다
석달쯤 지난 후 다말의 배는 “문은 문인데 걸어 다니는 문”은 소문(所聞)이다. 소문이 퍼져나가 유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창 28:26에서 “석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지팡이는 목자가 지니는데, 증거물들은 그리스도의 의와 약속을 의미한다. 다말은 자신의 것이 아닌 유다의 지팡이와 도장과 끈 곧 약속을 가지고 나갔다.
마 7:22~23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벤허에서 친구 멧살라(예루살렘의 호민관)의 미움으로 노예선에 끌려가던 중, 아리우스(집정관)를 구하고 그의 양아들이 되어 아리우스 가문의 인장 반지를 판에 찍어서 원수인 친구에게 내민다. 유다의 도장은 바로 유다의 약속을 가진 것이다. 약속의 말씀이 인쳐졌을 때 다말의 행위는 의롭다고 한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6.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
롬 8:31~37에서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말 장기를 잘 두는 사람
옛날 중국의 시골노인이 100리 떨어진 성에 들어갔다가 어느 성문 가까운 집에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두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팻말을 보고, 주인과 20냥이라는 큰돈을 걸고 장기시합을 했다가 돈 대신 타고 온 나귀를 주었다. 일주일 뒤에 시골노인이 또 찾아와서 주인과 다시 장기를 두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주인을 이겨서 맡겨둔 나귀를 도로 찾아가게 되었다. 주인장이 시골노인에게 묻기를 “노인장이 일주일전에는 장기를 잘못 두었는데, 어떻게 일주일 사이에 장기를 잘 두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아, 그 이야기를 안했던가요? 100리쯤 떨어진 시골에서 나귀를 타고 볼일을 보러 관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성문에서 나귀 출입을 금한다기에 나귀 맡길 집을 찾다가 ‘장기 잘 두는 집’이라는 팻말을 보고 장기에 지면 나귀를 맡길 수 있겠다 싶어서 져 준 것이오, 알겠소이까?”. 노인이 나귀를 타고 떠나가 버리자 속이 상한 주인은대문 밖의 팻말을 떼서 부숴버렸다. 정말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은 원하는 대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게 조정할 수가 있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을 조정할 순 없으나 주님에 의해서 조정될 수는 있는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다말은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깊은 믿음의 차원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 행음이 아니라 내가 옳다는 일에 싸웠다. 롬 8:31~33절에서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4:25절에서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다말은 그 집안의 아주 귀한 여자가 되어 두 아들(베레스,세라 )을 낳았고 예수의 족보를 이었다.
7.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내가 하는 것
마 1:1~16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편지에 어떤 사람이 굴뚝하나 그려놓고 옆에다 새 한 마리를 그려놓았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갈 새가 없어서 못 간다“는 뜻이란다. 디엘 무디가 ”큰 집회를 하면서 많은 돈을 씁니까? 혹시 부정한 돈을 끌어 쓰는 것은 아닙니까?“ 하고 충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내 창고에다 창고를 하나 더 지었다. 나는 내 창고에 있는 것을 삽으로 퍼서 밖으로 내던져 내 물질의 창고에 든 것을 복음 일에 쓴다. 내가 그렇게 한 삽 퍼내면 하나님이 더 큰 삽을 퍼 넣어 주시니. 내삽으로 퍼내도 퍼내도 부족함이 없이 채워진다“고 간증했다.
호리병에 갇힌 물고기
강바닥에 묻어둔 호리병은 아래쪽에 물고기가 들어가는 구멍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어렵다. 인간들의 생각도 그렇다. 자기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마 1:5절에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살몬은 여리고성을 정탐할 때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서 생명을 구했다. 하나님은 살몬 편을 미리 만들어 놓고 지켰다. 나중에 살몬이 라합과 결혼해서 예수님의 대를 이었다.
인도 뭄바이에서 동쪽으로 40시간 걸리는 벵골만 근처에서 힌두교도들이 자동차를 타고 가는 호주 선교사 일가족을 차에 탄 채로 불 질러 죽인 곳이다. 케냐 미고리의 인근 마을에 사자 세 마리가 나타나서 소를 잡아먹었다.
8. 생명을 가로막는 욕망
요 8:1~11에서 “”, 간음한 여자로, 다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세퍼드 훈련
세퍼드가 고기의 유혹을 받듯이 신앙세계에서도 많은 유혹을 받는다. 마귀가 천하만국과 영광 앞에 나타나 절하라. 총각들에게 예쁜 신부감 하나 주면 유혹된다. 세퍼드에게 주인이 주는 것 외에는 먹으면 안된다는 선이 확실하게 그어질 때 어떤 유혹도 이기게 된다. 스탈린이 러시아를 지배했을 때, 그는 독일이나 유럽의 적이 쳐들어올까봐, 독일군의 기차가 러시아로 쳐들어올까봐, 러시아 기차를 국제규격보다 10cm정도 폭을 좁게 만들었다. 그래서 유럽철도와 러시아 철도는 규격이 다르다. 유럽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로 들어갈 때 국경에 도착하면 기차가 공장에 들어가서 폭이 좁은 바퀴로 바꾸어야 한다.
약 1:5~8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러시아 시장의 조선음식 파는데서 고추 1개가 1달러씩이나 한다.
경지에 들어간 사람은
어떤 사람이 미국에 와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공부중인데, 어느 날 자기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보니 암이었다. 의사는 “당신은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해서 낙심하여 집에 가 누웠는데,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뻐하세요. 아버지가 우리 결혼을 승낙했어요.“. 아가씨의 아버지 반대가 해결 되었단다. 예전 같으면 즐거웠겠지만 이젠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잠시 후에 또 전화가 오기를 ”여보게, 기뻐하게. 이번에 자네 논문이 합격되어 박사가 되었네. “일 주일 후에 죽을 몸이니 교수님, 저는 이제 박사도 필요 없습니다”. 전화를 끊었는데 또 전화가 왔다. ”기뻐하세요. 당신이 입사시험에 합격되어 우리 회사 직원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세상적으로 기대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간음한 여자는 돌에 맞아 죽을 지경인데 좋은 약혼자, 좋은 드레스, 좋은 직장이 무슨 소용인가? 고도의 훈련 받은 세퍼드라야 집을 지킬 자격이 있다.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욕망을 놓으라. 소망 없던 간음한 여자와 다말은 마음을 비웠다. 사 55:6~7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단이 주는 유혹에서 머물지 않고 생각을 비우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
9.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창 37장에서는 17세의 요셉이 종으로 팔려감, 39장에서는 애굽 사람 보디발의 종살이. 그사이에 낀 38장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세계와 인간이 생각하는 세계의 차이가 강하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느뇨“
장로교 전도사는 목회권과 강도권과 세례권과 축도권이 없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한 과정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예수에게 기대를 두셨다. 창 38장 이야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인가를 기록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