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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사 스페인 인들은 금, 은, 구 리를 찾기 위해 산지로 이동했다. 1892년 스페인 당국은 바기오의 신원한 기후, 풍족한 상수 공급, 식용작 물재배, 야생 환경을 발견하여 바기오를 생기가 넘치는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말 전용 도로를 설치했다. 1896년 필리핀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는데 이 때 호시탐탐 태평양지역에서 세력확장을 노리던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1898년 미국은 필리핀 전역을 점령하게 되었고 당시 총독 윌리엄 하워드 타프트와 수뇌부는 해발고도 1500미터의 서늘한 고산지대에 바기오 건설을 제안하게 된다. 워싱턴 DC의 설계사 다니엘 번함(Daniel Burnham)을 데려와 이 도시의 여타지역을 설계하게 했는데 그것들 중 하나가 지금도 이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인 번함 공원이다. 오늘날 바기오는 필리핀의 여름수도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휴양도시가 되었다. 1899년 이발로의 지방관인 마테오 카리뇨가 라 트리니다드에 위치한 스페인 기관을 습격했다. 차후에 에밀 리오 아귀날도는 카리뇨를 바기오의 지도자로 지명하였으며 바기오 주둔 군의 지도자로 선출했다. 결국 미 국 군인들이 바기오의 필리피노 군인들을 몰아내고 최초 지방 시민정부를 벵궷에 창설했다. 바기오에는 미국 지배 초기에 당시 20여가구가 살고 있었다. 1903년 미국인들에 의해 구성되어있는 필리핀 위원회가 바기오 를 필리핀의 여름 수도로 이용하였다. 위원회는 L. 케논에게 바기오로의 통행로를 건설하는 사업을 맡겼 다. 당시 건설되었던 도로는 케논의 이름을 따서 호명되었다. 다니엘 번함은 바기오시의 도시게획을 구상, 그의 계획에 따라 현재의 바기오시가 건설되었다. 1909년, 바기오는 조그만 선교사 마을이었으며 기업체들 에 의해 채굴작업이 실시되던 도시였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바기오는 그간의 발전을 뒤로한 채 폐허가 되고 말았으나 전후, 바기오의 재건축이 정부의 지원과 바기오 시민의 힘으로 빠르게 실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