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록 4장 18절
상제께서 전주 불가지(佛可止) 김 성국(金成國)의 집에 가 계실 때의 어느 날 김 덕찬을 불러 그에게 말씀하셨는데 그는 그 말씀을 귓가로 들었도다. 이것을 알아차리시고 상제께서 덕찬에게 “이제 용소리 김 의관(金議官)의 집에 가서 자고 오너라”고 이르시니 그는 명을 좇아 용소리로 떠나느니라. 그가 김 의관의 집 근처에서 취한으로부터 심한 곤욕을 당하고 불가지로 돌아오니라. 상제께서 문 바깥에 나와서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왜 자지 않고 되돌아오느냐”고 물으시니라. 덕찬이 공연히 보내어 봉변만 당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도다. 상제께서 덕찬과 함께 방안에 들어오셔서 술을 권하며 가라사대 “사람과 사귈 때 마음을 통할 것이어늘 어찌 마음을 속이느냐” 하시니 그는 상제를 두려워하니라. 그 후부터 덕찬은 지극히 작은 일에도 언행을 삼갔도다. 상제께서 두 달 동안 용소리 시목정(龍巢里柿木亭)에 계시면서 이곳저곳의 종도들의 집에 다니셨도다.
교운 1장 24절 정미년 화창한 봄이 되었도다. 상제의 성예가 사방에 펼쳐지니 그 성예를 학동(鶴洞) 마을에 사는 문 치도(文致道)가 듣고 전주 이서면 불가지(全州伊西面佛可止) 김 성국(金成國)의 집에 계시는 상제를 배알하고자 찾아가는 길에 이성동(伊成洞)의 송 대유(宋大有)와 동행하려고 그를 찾았도다. 마침 대유는 손님을 맞아 있기에 종제와 함께 동행하기를 바라는도다. 대유는 종제가 폐병으로 위기에 놓였음을 알리고 상제께 구해주실 것을 간청하여 주기를 치도에게 부탁하니라. 그리고 대유는 동생에게 돈 두 냥을 주효에 쓰라고 내어주면서 이 돈을 이자 없이 갚으라고 일렀도다. 동생은 형에게 한 냥이면 족하다고 하면서 한 냥을 돌려주고 치도를 따라 상제께 배알하였도다. 그곳에서 동생은 사유를 일일이 고한즉 상제께서 “인색한 자가 어찌 병을 고치리오” 하시니라. 치도와 병자는 상제의 통찰하심에 경복하여 병자는 스스로 송구스러워 귀가하니라. 치도가 병자로부터 받은 한 냥으로 주효를 장만하여 성국으로 하여금 상제께 올리게 하니라. 그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어찌 된 음식이냐”고 물으시기에 성국이 치도의 공양임을 아뢰니라.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돈이 오늘 저녁에 많이 늘어날 것이었는데 부질없는 짓이라” 하시니 치도가 놀라며 상제의 깊으시고 신성하시고 고명하심에 당황하여 물러가기를 여쭈니 “오늘 저녁부터 병자는 보리밥을 먹이라”고 하시므로 이 사실을 병자에게 전하니 그날 저녁부터 보리밥을 먹기 시작하여 병에 차도를 보고 후에 폐병의 괴로움으로부터 재생되었도다. 이 일로써 상제의 성예는 더욱더 마을에서 마을로 퍼졌느니라.
권지 1장 26절 한겨울에 상제께서 불가지 김 성국의 집에 계셨도다. 김 덕찬과 김 성국은 꿩이 많이 날아와서 밭에 앉기에 그물을 치고 꿩잡이를 하였는데 이것을 상제께서 보시고 “너희들은 잡는 공부를 하라. 나는 살릴 공부를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이상하게도 그 많은 꿩이 한 마리도 그물에 걸리지 아니하니라.
권지 2장 6절 상제께서 불가지로부터 전주로 향하여 가시는 도중에 동남쪽부터 큰 비가 몰려오기에 길 복판에 흙을 파서 침을 뱉고 흙을 덮으시는도다. 비가 그 자리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더니 한 갈래는 동쪽으로 또 한 갈래는 서쪽으로 향하여 몰려가는도다.
예시 54절 이 헛도수를 말씀하신 후 어느 날 상제께서 이 치복과 여러 종도에게
“불가지(佛可止)는 불이 가히 그칠 곳이라는 말이오. 그곳에서 가활 만인(可活萬人)이라고 일러왔으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을 건지리라”
고 말씀하시고 교자를 타고 그곳으로 가시는 길에
金屋瓊房視逆旅 石門苔壁儉爲師
絲桐蕉尾誰能解 竹管絃心自不離
匏落曉星霜可履 土墻春柳日相隨
革援瓮畢有何益 木耜耕牛宜養頣
라고 외우셨도다.
예시 56절 상제께서 이해 여름에 김 덕찬을 데리고 불가지(佛可止)에서 신령(神嶺)을 넘다가 고사리를 캐던 노구를 만났도다. 상제께서 그 여인에게 중이 양식을 비노라고 청하시니 그 여인이 없다고 하더니 재차 청하시니 두 되 중에서 한 홉을 허락하니라. 상제께서 양식을 받아 들고서 덕찬에게 “중은 걸식하나니 이 땅이 불가지라 이름하는 것이 옳도다”고 이르셨도다.
예시 57절 불가지에 류 찬명ㆍ김 송환ㆍ김 덕찬ㆍ김 낙범ㆍ이 치화가 모여왔도다. 이들에게 상제께서 말씀하시니라.
“일본인이 백호 기운을 띠고 왔으니 숙호 충비(宿虎衝鼻)하면 해(害)를 받으리라. 그들을 사사로운 일로는 너무 비위를 거스르지 말라. 범이 새끼친 곳은 그 부근 마을까지 돌보아준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피란하는 길이로다. 청룡이 동하면 백호는 곧 물러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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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구절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홈피 의 전경에서 '불가지' 로 검색해서 나온 구절들 전부다. 얼핏 보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인쇄본하고 다른 부분이 있다. 다른 부분은 예시 56절의 ' 불가지(佛可止)' 이다. 붉은 색깔로 굵게 표시했다.
(1) 인쇄본과 다른 부분
(인쇄본)
56. 상제께서 이해 여름에 김덕찬을 데리고 불가지(佛何止)애서 신령(神嶺)을 넘어가다 고사리를 캐던 노구를 만났도다. 상제께서 그 여인에게 중이 양식을 비노라고 청하시니 그 여인이 없다고 하더니 재차 청하시니 두 되 중에서 한 홉을 허락하니라. 상제께서 양식을 받아들고서 덕찬에게 “중은 걸식하나니 이 땅이 불가지라 이름하는 것이 옳도다”고 이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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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인쇄본은 1982년 7월 21일 발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부분은 붉은 글씨로 표시했다.
불가지(佛可止) 와 불가지(佛何止) 는 한자 1개의 글자를 다르게 썼을 뿐인데 뜻이 정반대이다. 하나는 "불의 기운이 가히 그칠 곳이다(성사의 해석)" 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불의 기운이 어찌 그치겠느냐?"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웃긴 것도 있다.
(2) 더 웃긴 것
61. 상제께서 이해 여름에 김덕찬을 데리고 불가지(不可止)에서 신령(神嶺)을 넘다가 고사리를 캐던 노구를 만났도다。 상제께서 그 여인에게 중이 양식을 비노라고 청하시니 그 여인이 없다고 하더니 재차 청하시니 두 되 중에서 한 홉을 허락하니라。 상제께서 양식을 받아들고서 덕찬에게 「중은 걸식하나니 이 땅이 불가지라 이름 하는 것이 옳도다。」고 이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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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상도에서 발간한 책자인 <대순전경> 에서 가져왔다. 다른 부분은 붉은 글씨로 표시했다.
웃기지 않은가?
(난 한참이나 웃었다.....)
(참고)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TMN43-wb5WI&t=3s
PLAY
(참고)
본문글에서 <신령(神嶺)> 은 증산도 경전에는 <싸리재> 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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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두와 최수운을 장사지내 주심
(중략)
3 “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朝)에 장사지내고
4 최수운을 초혼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에 장사하노라.” 하시니라.
5 이어 성도들에게 24절을 읽히시며 “그 때도 이 때와 같아 천지에서 혼란한 시국을 바로잡으려고 당 태종(唐太宗)을 내고
6 다시 24절에 응하여 24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나니 너희들도 장차 그들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7 이 공사를 마치신 후에 덕찬을 데리고 싸리재를 넘어오시다가 고사리 캐는 노파가 지나가는 것을 보시고
8 “중이 동냥을 비노라.” 하시니 노파가 말하기를 “없습니다.” 하니라.
9 상제님께서 다시 청하시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쌀 두 되만 있나이다.” 하는지라
10 이에 말씀하시기를 “그 중에서 한 홉만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시니 노파가 허락하거늘
11 그 쌀을 받으시며 덕찬에게 이르시기를 “중은 본래 걸식하는 것이니 이 땅을 불가지(佛可止)라 함이 옳도다.”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399)
그렇군요~
푸하하하....
양고기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아요...
모 ~정치인이 하는 발언인데 그래도 뉴스는 보는군~모욕적인 언사이던데 양두구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