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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 용부(龍府)의 비밀호위대(秘密護衛隊) - 03
- 내 딸을 건드리면 죽는다.
하소란에게 있어서 사공운과 함께 용설아를 호위했던 시간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대단함을 새롭게
인식해 가는 중이었다. 이는 하소란 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당시
살아남았던 청룡당의 당원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그
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해가는 중이었고, 당시에 그가 아니었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용설아를 봉성까지 호위해 갈 수 없었으리란 결
론에 도달하곤 했다.
청룡당의 생존자들은 후에 봉성의 근처까지 숨어들어 사공운의 활
약을 끝까지 확인했었기에 더더욱 그에 대한 존경심과 경의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에 사공운과 함께 했던 호위무사들은 그가 백발음마에게 죽었
다는 봉성의 발표를 지금도 완전히 믿지 않고 있었다.
지금 갑자기 사공운이 생각난 것은 그녀의 직감 때문이었다. 무엇
인가 스멀거리는 불안함은 그녀에게 사공운의 존재를 재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하소란이 사공운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가벼운 한숨을 쉬
자 용취아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보면서 물었다.
“호위장님은 왜 한숨을 쉬세요?”
“갑자기 어떤 분이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만약 요즘 같이 어수선
한 시기에 그 분이 있었다면 소공녀님의 안전은 걱정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아랑이 하소란을 돌아보며 물었다.
정면으로 본 아랑은 참으로 특이한 여자였다. 언뜻 보면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보면 그녀의 분위기 자체는
삼십대의 나이로도 보였다. 특히 가끔 보이는 그녀의 노숙함은 능
히 사십대의 그것을 능가하기도 했다. 실제 그녀의 나이가 이십구
세라는 것을 감안하여도 대단한 일이었다.
용취아나 그녀의 유모는 가끔 아랑의 나이가 최소 서른다섯은 넘
었을 거라 생각하곤 하였다.
“그 분이 누구시기에?”
“지금 우리는 그 분의 제사에 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영환님이 아
니라면 그 누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겠습니까?”
하소란의 말에 용취아는 가슴을 적셔오는 은은한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였다. 듣기로는 자신의 딸이 있었
는지 조차 모른 채, 봉성의 음모에 당하셨다고 들었다. 언제 들어도
가슴 한쪽을 채워오는 그리움과 아릿함이 그녀를 몸서리치게 한다.
용취아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누군가에게 저 정도로 믿음을 준 아버지의 인품이 자랑스러웠고,
그 지녔던 능력이 믿음직했다.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다. 살아 계
시다면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셨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 온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 털어버리고, 어느 집 아이들처럼 그렇게
응석을 부리며 한 명의 소녀로 자라고 싶었다.
용부의 여러 가지 이해관계는 이제 십오 세의 그녀에게 너무 큰
짐이었고, 그녀의 위치는 그 짐을 떨어 버릴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짐은 아니었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부모와 가정을
빼앗고, 행복을 빼앗았다. 대신 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굴레였다.
용취아는 자신의 주변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음모와 술수를 확실하
게 알 진 못했지만, 많은 부분을 스스로 깨우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가 그 이해관계로 인해 변을 당했다는 사실도 어느 정
도 느끼고 있었다.
부모의 미묘한 관계도 의문이 많았지만,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말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의 존재는 용취아에게 큰 힘이라 할 수 있었
다. 비록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을 적마다 새롭게 힘이
나곤 하였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힘을 얻으면 아버지를 죽인 봉성
에 복수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과 겹치는 어머니의 모습.
초상화로 대한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초상화라도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가슴속에 담아 놓
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모습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
었다.
어린 나이에 스치듯이 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고는 전혀 생각
지 못하고 있는 용취아였다.
‘아버지, 나에게 힘을 주세요.’
용취아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란 이름을 천천히 불러 보았다. 그리
고 그럴 적마다 가슴을 차오는 것은 감동이었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었다.
용취아의 눈에 물기가 반짝였다.
무엇을 느꼈음인가 아랑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물기
를 가려 주었다.
취아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마차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랑이 분위기를 바꾸어 볼모양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영환님은 현재 영웅으로 살아 나셨으니, 죽었어도 그 혼은 살
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랑의 말에 취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끝내 창쪽으로 눈길을 돌렸
다. 아랑은 취아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거두며 애틋한 표정
으로 그녀를 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하소란은 갑자기 어색해지고 무거운 마차안의 분위기에 당황했다.
자신이 사영환에 대해서 이야기한 후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왜?
라는 의문을 지니면서 용취아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이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려고 무엇인가 다른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추었다.
“크아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말을 탄 호위대의 수장인 광견
살검 오구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적의 기습이다. 모두 대열을 정비하고 마차를 지켜라!”
하소란은 침착한 표정으로 용취아를 보면서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무래도 기습이 있는 모양입니다. 나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하소란은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사라졌다.
밖으로 나온 하소란은 마차 위로 올라갔다. 이미 마차 위에는 여
자 호위무사 두 명과 남자 내택 호위무사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마차를 몰던 호위무사 옆에는 어느새 금검시랑(金劒侍郞)
육사헌이 나타나 있었다.
금검시랑은 역시 호위장으로 신분 상승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
늘 용취아의 호위에 동원된 무사들은 현재 청룡당 당주인 사자검
운자개와 부 당주인 수호검(守護劍) 안적, 새로 호위장이 된 광견살
검 오구, 금검시랑 육사헌, 은형비검(銀形飛劒) 하소란(河小蘭) 등
호위대 정예는 전부 총 출동한 셈이었다.
하소란이 마차위에 올라 둘러보니, 사방에서 기습해 오는 무리들
은 하얀 복면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실력이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하소란의 안색이 굳어졌다.
금검시랑 육사헌은 섭소봉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들이 사용하는 검법으로 보아, 신강의 패자라는 사검비문(死劍
秘門)의 백팔엽살수(百八獵殺手)들이 분명 한 것 같소.”
말하는 육사헌의 안색은 무거웠다.
하소란 역시 안색이 굳어졌다. 어차피 예상된 위험이었고, 이 정
도의 위험은 감수 할 수 있었지만, 신강의 패자인 사검비문의 백
팔엽살수들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처음 호위제에 용취아를 보내며 공정은 여러 가지 수의 경우를 생
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우선 용부의 쌍
각은 절대 용취아를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봉성에 존재한다는 용설아의 아들, 담완을 견제하려면 용취아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그랬다.
용취아는 용설아처럼 담가와 태중 혼인을 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
에 용부의 쌍각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대등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담가에 있는 용설아의
아들을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공정과 이대호법은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
로서 용부의 쌍각은 자연스럽게 봉성의 이공자를 죽이려 들것이며
서로 용취아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즉 용취아가 있다는 자체만으
로 용설아의 가짜 아들을 차도 살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셈이었
다. 반대로 봉성은 어떻게 하던 용취아를 죽이려 들것이고, 용취
아가 죽는 순간 미리 용부의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봉성의 고수들
은 재빠르게 용부로 들어와 단 한번에 용부를 장악하려 들 것이다.
물론 용취아의 죽음을 조사한다는 명목하에 가장 혐의가 짙은 곳
으로 용부의 쌍각을 지목하고 나서면 된다.
그렇게 되면 쌍각은 자연히 함부로 활동할 수 없게 되고, 그 와중
에 용부의 그 누구도 이들을 말릴 수 없게 된다.
특히 명분상 용설아의 아들은 용부의 다음 대 부주고, 아직 나이
가 어리기 때문에 그의 친인척 중 가장 무공이 고강한 담사우가
대신 섭정을 하겠다고 한다면 아무도 말릴 수 없게 된다.
그 다음 진행은 언제나 뻔한 이야기였다.
용부의 쓸 만한 인재는 전부 누명을 쓰고 죽을 것이며, 쌍각의 토
대 역시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결국 용부는 곧 담부로
변하게 될 터였다.
그런 상황을 용부의 쌍각도 어느 정도 예상 하고 있을 것이며, 그
런 관계로 그들 역시 비밀리에 고수를 파견해서 용취아를 지키려 할
것이다. 즉 봉성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용취아가 다치는 것
을 바라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 공정의 판단이었다.
공정은 그것을 믿고 용취아를 밖으로 내 보냈으며, 그 안에 포함
한 가장 큰 흉중은, 이 기회에 용부의 쌍각과 봉성을 서로 상잔하게
하여 그들의 세력을 약화 시키려는 이중의 음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의 세력이 한꺼번에 약화 되었을
때, 용부의 진정한 후계자인 용진이 돌아와 용부를 장악하면 된다.
즉 용진의 힘을 덜어 주고, 그가 조금 더 안전하게 용부로 돌아올
토대를 마련해 주려 한 것이다.
한데 봉성의 행보는 생각보다 빨랐고, 예상하지 못한 세력으로 선
제공격을 가해 왔다. 물론 산동성을 벗어나면서 언제든지 기습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었기에 당황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선두
가 신강의 패자인 사검비문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선 중원에서 신강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더라도 결코 작은 거리가
아니었고, 그들의 전력 중 가장 핵심인 백팔엽살수들을 투입한 것
역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사검비문이 자신들의 전력을 전부 동원했다면, 필승의 자신이 있
다는 말이었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오늘일이 실패할 경우 그들이 가져야 하는 부담과 위험은 너
무 컸다.
문파의 생사존망이 거기에 달렸다고 봐야 할 일인데, 과감하게 나
섰다면 백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었다. 또한 반대급부로
그들이 사활을 걸 만한 대가가 있었을 것이며, 백팔엽살수가 선봉
을 섰다는 것은 세외 팔왕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 명 중 하나인 명
왕(明王), 사검비자(死劍秘者) 우차운이 왔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의 심복으로 알려져 있는 사문칠로(死門七老) 역시 이 자리에
왔다는 말이었다.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하던 용부의 호위대가 유리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하소란은 품안을 더듬어 자신의 비검 몇 자루를 꺼내어 들었다.
광견살검 오구를 비롯한 호위대는 대형을 유지한 채 백팔엽살수들
을 의연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호위무사들과 엽살수들이 서로 엉켜 생사를 건 칼부림을 할 때,
오구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자신의 검을 혀로 문질렀다.
살인을 하기 전 그의 독특한 버릇이었다.
엽살수 중 두 명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와 오구의 좌우 가슴을
노리고 검을 찔러 왔다.
오구의 눈이 번들거렸다. 만약 미친개의 눈을 본 적이 있는 자가
있어서 오구의 눈을 보았다면, 두 눈에서 뿜어지는 광기가 비슷한데
놀랐으리라.
그저 평범한 모습의 오구였지만, 일단 살기를 띠면 달라진다.
미친개, 오구의 몸에서 뿜어진 기세는 광기였다. 그리고 그의 광
기는 살기로 변해 고스란히 그의 검을 타고 횡으로 그어졌다.
오구의 검은 검 날에 거치도의 그것처럼 쇠 이빨이 톱니처럼 돋아
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이 기형검을 다른 사람들은 견아광검(犬
牙狂劒)이라고 불렀다.
보기에도 섬짓한 견아살검은 마치 미친개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울어 대면서 광견살(狂犬殺)의 검식으로 흘러 나갔다.
“크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엽살수는 몸이 찢어진 채 하늘
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하였다. 비록 두 명의 살수는 죽었지만 오
구는 만족 할 수 없다는 듯,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아래
로 찔러 넣었다. 교묘하게 오구의 말을 공격해오던 또 한명의 살
수가 심장이 쪼개져 즉사해 버렸다. 동시에 하늘로 튀어 오른 오
구의 몸이 뒤집어졌고, 그의 등을 두 개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교
차하며 지나갔다.
오구는 뒤집힌 몸을 그대로 회전하며 광견검법의 제일초식인 충견
아(忠犬牙)를 펼쳤다.
충견의 이빨.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두 명의 엽살수가 몸이 걸레처럼 찢
어져 죽고 말았다.
오구의 무공은 십년 전의 그것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
져 있었고, 그 손속은 더욱 거칠고 잔인해져 있었다.
마치 개에게 물린 것처럼 찢어진 몸으로 바닥에 고꾸라진 다섯의
엽살수는 처참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구는 사공운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십년 전 오구에게 있어서 사공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이도 자신보다 많지 않은 청년이 펼치는 무공의 깊이는 그의 상
상을 초월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공운의 무공은 놀라
움을 넘어 경의감을 지니게 만들었다. 그것은 오구에게 큰 자극이었다.
그 이후 십년, 오구는 자신의 모든 힘을 무공 연마에 쏟았다. 특히
결혼은 그에게 더욱 안정적으로 무공을 수련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오구의 무공은 청룡당에서도 당주와 두 명의 부방주
를 제외하면 가장 강했다. 실제 오구의 무공은 결코 두 명의 부
방주보다 약하지 않았다.
일단 피를 본 오구의 살심은 더욱 무섭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크아악”하는 고함과 우구의 검이 무지개처럼 선을 그리고 사방으
로 뿜어졌다.
오구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 완전히 기선을 제압하고 호
위무사들에게 힘을 넣어주려면 엽살수들을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작정을 한 그의 검은 광견풍(狂犬風)의 초식으로 엽살수들을
휩쓸고 있었으며, 힘을 얻은 호위무사들 역시 강하게 엽살수들을
몰아갔다.
약 삼십 여명의 엽살수들과 다섯 명의 호위무사들이 죽었을 때였
다.
“삐익”하는 소리와 함께 엽살수들은 마치 썰물처럼 사라졌다. 그
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나온 것은 일곱 명의 노인들이었다. 노
인들은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세 대의 마차 앞 쪽에
홀연히 나타났다.
나타난 노인들은 사라진 백팔명의 엽살수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작은 수였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기세의 진은 엽살수들의 그것과
비교되지 않았다.
오구는 나타난 노인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사문칠로 일 것이다.
일곱 명 중, 백발이 성성하고 겨울에 헐벗은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른 노인이 오구를 보면서 말했다.
“과연 광견살검 오구답다. 예상보다 강하군.”
노인의 표정은 오구의 예상치 못한 강한 무공에 놀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노인을 보면서 오구가 코웃음을 쳤다.
“늙은이, 그런 말로 나를 현혹하려 하지 말고 다른 쥐새끼들도 나
오라고 해라.”
오구의 말에 노인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어떻게 알았냐는 눈
빛으로 오구를 보자, 오구는 별거 아니란 투로 말했다.
“너 따위 늙은 오랑캐 일곱이서 무슨 용기로 용부를 칠 배짱이 있
겠는가?”
노인의 안색이 모욕감으로 붉게 물들었으나 곧 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잘 아는 구나 오구, 당연히 나는 그럴 배짱이 없다. 하지만 우리
왕야께서는 능히 그럴 배짱이 있으시다.”
그 말을 듣고 오구는 다시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늙으니,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아무리 우가 오랑캐가 명왕
이란 거창한 별호를 지녔다고 해도 어찌 용부와 견주겠는가? 또
누가 왔는지 이제 다 나오라고 해라.”
오구의 매몰찬 말에 칠로의 수좌인 고구검(呱勾劍) 차우룬의 안색
이 매섭게 변했다.
“흐흐! 눈치가 빠르구나 오구.”
차우룬 대신 누군가가 말을 받으며, 약 십여 명의 인물들이 나타
났다.
오구는 나타난 인물들을 둘러보았다. 특히 그들 중에서도 팔자수
염을 기르고 허리에 검을 찬 장년인을 유심히 보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타났지만, 이들 중 자신의 말에
대답한 인물도 이 사람이었고, 특히 그의 존재감은 아주 특별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이 은연 중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서 있다는 것 이
외에 마치 공간을 꽉 채울 것 같은 위엄과 기세는 그가 이들의 우
두머리임을 단적으로 증거 해 주고 있었다.
사십대로 보이는 이 남자는, 등 뒤에 붉은색의 피풍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눈은 둥글고 중키의 키에, 유난히 손과 발이 길었다.
특히 푸른색의 눈동자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었다.
“명왕.”
오구의 말에 장년인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지, 내가 바로 사검비자라 불리는 우차운이지.”
오구의 안색이 변했다. 우차운이라면 자신의 실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고수였다. 보이기에 사십대로 보여도 실제론 이미 칠
십이 넘은 노 고수였다.
원래 우차운은 중원인 아버지와 색목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어려서 푸른 눈으로 인해 괴물이라고 놀림을 받으며
자란 그는 성격이 잔인하고 폭급했다.
특히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중원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그를 흑
도의 고수로 자랄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나이 삼십이 넘어 어느
정도 무공이 경지에 이르자 삼년간 중원을 돌아다닌 끝에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찾아 잔인하게 죽이고, 중원을 떠나 신강
에 자신의 터를 잡았다. 그리고 삼년 만에 그는 신강의 신이 될
수 있었다. 그 기간은 우연의 일치처럼 무공을 배운 후 자신의 아
버지를 찾아다닌 증오의 시간과 일치했다.
비록 상대가 명왕이란 것을 알았지만, 오구는 전혀 기죽은 티를
내지 않았다.
“선배, 신강에서 이 먼 곳까지 뭐 하러 오셨소? 거기도 먹을 것
많고 터도 넓어서 명왕 한명 보신하기는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오.”
오구의 조금 비꼬는 말에도 명왕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오구 제법 용기가 있구나, 하지만 말 한마디에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지금 너하고 다투고 싶지 않으니 너의 수
장을 나오라고 해라! 감히 너 따위가 나를 상대하겠다는 망상은
아니겠지?”
명왕의 살기어린 말에도 오구는 기가 죽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몇
번의 생사를 넘은 사내였고, 무엇보다도 그의 배짱은 이 정도에
자신의 기를 꺾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오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나야 감히 명왕의 상대가 되겠소?”
오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대의 마차 중 맨 앞에 있는 마차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약간 마르고 큰 키의 사내는 사십이 넘은 듯도 보이고 그렇지 않
은 듯도 보였는데, 그의 허리에는 날카로운 금강도가 걸려 있었으며,
독사처럼 찢어진 눈은 나타난 사내가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과시하고 있었다.
사내를 보던 칠로의 표정이 굳어졌다.
명왕 역시 나타난 사내를 약간의 긴장과 흥분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으며, 나중에 명왕과 함께 나타난 인물들 중 한 명이 사내를
주시하면서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강쾌도 풍백.”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었
지만, 막상 그의 이름을 듣자 새로운 존재감으로 그들을 압박해오는
풍백의 이름은 능히 그들을 긴장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첫댓글 즐독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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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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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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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