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새의 노래
들판이 자꾸 낡은 옷을
벗기 시작하는데,
나무들이 자꾸 그 부끄러운 곳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는데,
내 그대 위해 예비한 건
동산 위에 밤마다 솟는
저 임자 없는 달님 뿐이다.
새로 바른 문풍지에 새어나오는
저 아슴한 불빛 한 초롱 뿐이다.
누군가의 어깨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누군가의 발자국이 어둠 속에서 돌아오는데,
이 가을 다 가도록
그대 위해 예비한 건
가늘은 바람 하나에도 살아 소근대는
대숲의 저 작은 노래 뿐이다.
아침마다 산에 올라
혼자 듣다 돌아오는
키 큰 소나무
머리칼 젖은 솔바람 소리 뿐이다
가시나무새의 약속
내내 구름만 보며
새소리만 들으며
물소리에 풀벌레 울음소리에
옷깃이 젖었습니다.
그대 눈 속을 지키다 내가 먼저 글썽
두 눈에 눈물 고였습니다.
나는 그대 마음 알지 못해
망설이다 바람이 되고
그대 내 마음 짐작 못해
산골짝 숨어 흐르는 물소리 되다.
어느덧 눈을 들면
面前에 임자 없이 익어버린
감나무 산감나무
가지 휘도록 바알간 서릿감!
산의 허리에 감긴
가느다란 아침 실안개여
그대 비단 살허리띠여
가을비 속에 비를 맞으며
사내들은 묵묵부답
고개숙여 기다렸다니,
서른살 내외의 우리 나이보담은 더 많이 살았지만
그들의 어깨는 건장했나니,
우리 이담에 죽어
산에 와 나무되어 살아요, 네?
그대 나를 보며 하던 말,
땅 속으로 바위 틈서리로
마주 잡는 손, 손,
우리의 악수는 견고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