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리스도는?"
"그분은 성공한 무정부주의자입니다. 유일하죠.
그리고 사제들에 대해서 한말씀드리겠는데, 당신은 가난했던 적이 없어서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제가 가장 잘한 일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 저를 용서하겠다는 사람을 증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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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은 사격반의 일제사격 소리가 들린 후에야 광장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옆쪽 작은 골목에서 총살되었다.
머리는 해를 향하고 다리는 그늘 속에 늘어뜨린 채 시체들은 앞으로 쓰러져 있었다.
털이 보송보송한 새끼 고양이가 납작코 사내에게서 나온 피 웅덩이에 수염을 기울였다.
한 소년이 다가오더니 고양이를 쫓아버린 뒤 집게손가락에 피를 묻혀 벽에다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마누엘은 목이 죄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 손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파시즘을 타도하라'.
어린 농부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손을 씻으러 샘으로 갔다.
마누엘은 피살된 시체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나뒹구는 이각모를, 샘물에 몸을 기울인 농부를, 그리고 아직 물기가 남아 있 는 붉은 표어를 바라보았다.
“이 양쪽과 맞서서 새로운 스페인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생각했다. '양쪽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지.'
노란 벽 위로 태양빛이 타는 듯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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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중요한 거요. 나머진 부수적인 거고.
돈에 대해서 말 하자면, 당신이 옳소. 어쩌면 난 그들과 타협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들은 존경받고 싶어하는데 난 그들을 존경하고 싶지 않소.
왜냐하면 그들은 존경할 만하지 않거든.
나도 누군가를 존경하고 싶지만 그들은 아니지.
난 학자인 가르시아 씨를 존경 하고 싶소. 하지만 그들은 안 돼."
가르시아는 스페인의 훌륭한 민족학자였다.
그는 산라파엘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누엘은 시에라 지방의 이 지역 투사들이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미 확인한 바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소. 추억 하나를 말하리다.
당신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아직 농부였을 때 일인데, 내가 페르피냥에 가기 전에 후작이 우리집에 왔소.
그는 자기 하인들과 이야기하고 있었소. 우리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더군.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소. 내 그 대로 말하리다.
'이 사람들이 어떤지 좀 보게나. 이들은 자기 가 족보다 인류를 더 좋아한단 말이야!'
그는 멸시하고 있었소.
그 즉시 논쟁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난 그때도 곰곰이 생각했소.
내가 깨달은 건 이런 것이었소.
그러니까 사람들이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그건 또한 우리의 가족을 위한 것이기 도 하다. 한데 그들은 둘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거요.
내 말 알겠소? 그들은 선택을 한단 말이오."
한순간 그가 입을 다물었다.
"가르시아 씨가 나를 만나러 왔었소.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거든.
그분은 세상사에 늘 관심을 가졌던 분이오.
지금 군사정보 관련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묻는 거요.
평등은?
마누엘, 내 말 잘 들으시오. 당신들이 모르는 좋은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소.
왜냐하면 당신들은 둘 다 너무…
그러니까 이를테면 너무도 운이 좋았던 거요.
그분, 가르시아 같은 사람은 모욕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요.
그러니까 그것, 곧 모욕의 반대는 그가 말하는 평등이 아니라는 거요.
프랑스인들, 그들은 시청에다 바보 같은 문구를 새겨놓고 있지만 그래도 이것을 통해 무언가를 이 해한 셈이지.
왜냐하면 모욕의 반대는 형제애이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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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앵 씨, 나에게 문제는 단순합니다.
즉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민중의 행동이 - 혹은 혁명이 - 혹은 봉기라 해도 됩니다 - 승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승리를 가져다준 수단과는 반대되는 기술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감정과도 상반 되는 기술에 말입니다.
당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잘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난 당신이 비행대의 토대를 오로지 형제애에만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묵시록은 당장에 모든 것을 원합니다.
결단만으로는 얻는 게 거의 없고 - 있다 해도 서서히 그리고 힘겹게 얻어지지요.
위험한 것은 모든 인간이 자신 안에 묵시록에 대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투쟁에서 이 욕망은 얼마간의 짧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한 패배가 되어버린다는 거죠.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즉 미래가 없다는 것, 그것이 묵시록이라는 것의 본질 그 자체니까요.
묵시록이 미래가 있다고 주장할 때조차도 말입니다."
그는 파이프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슬프게 말했다.
"마니앵 씨, 우리의 겸손한 직무는 묵시록을 조직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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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려운 일이에요." 엘 네구스가 말을 이었다.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몇 초의 문제예요.
이틀 전에 한 프랑스인도 그런 식으로 화염방사기의 방향을 돌렸다더군요.
같은 상황이었겠죠…자신도 불에 타지 않았지만 상대를 죽이지도 않았대요.
그 프랑스인도 문제를 알았던 겁니다.
자기를 쳐다보는 누군가에게 화염방사기를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고 했어요.
감히 할 수가 없는 거죠…어쨌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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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가 셋이고, 사망자도 셋인데 사망자 가운데 하나가 마르첼리노였다.
전부 여섯 명이니 기관총사수 한 사람이 모자랐다.
제일 나중에 내려온 그는 하이메였다.
동지 하나가 그를 인도했는데, 앞으로 내민 그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포탄이 눈높이에서 터져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비행사들은 죽은 자들의 팔다리를 들어 술집으로 옮겼다.
화물 운송차는 조금 후에 올 것이다.
마르첼리노는 목에 총탄을 맞아 죽었기 때문에 피를 별로 흘리지 않았다.
아무도 감겨주지 않아 시선은 비극적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음산한 불빛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스크는 아름다웠다.
한 술집 여종업원이 그를 바라보았다.
"영혼이 보이기 시작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나야 한대요." 그녀가 말했다.
마니앵은 사람이 죽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죽음이 얼굴에 가져다주는 평정을 알고 있었다. 주름과 잔주름은 불안과 사유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생명은 씻겨갔지만 크게 뜬 두 눈과 가죽 비행모에 의해 아직도 의지가 붙들려 있는 이 얼굴을 바라보며 마니앵은 방금 들은, 그리고 스페인에서 그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자들의 마스크에서 그들의 진짜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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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라는 것은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생명처럼 살고 죽는 것이니 소총과 마찬 가지로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하는 걸세…
개인적인 용기는 부대의 용기를 위한 좋은 원료나 마찬가지지…
스무 명 가운데 진짜 겁쟁이는 한 명도 없어.
스무 명 가운데 두 명은 체질적으로 용감하지.
부대를 편성할 때는 첫번째로 겁쟁이를 제외하고 용감한 둘을 최상으로 활용하여 열일곱을 조직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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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어도 이상을 위해 싸운단 말이야, 이 오쟁이 진 놈들아!"
셰이드가 도착할 때 파시스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아마 금고를 위해 싸우는 모양이지, 이 창녀 자식들아!
우리의 이상이 제일 위대하다는 증거는 그게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거야!"
"모든 사람의 이상이라니, 웃기고 앉았네.
이상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장 훌륭해야 한다는 거야, 이 무식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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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전달해준다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예의 때문인가요?”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빈정댄다기 보다는 당황한 표정으로 장교 옆에서 걷고 있었다.
장교는 멕시코 모자의 그림자가 거대한 색종이 조각들을 던지는 듯한 포장도로를 바라보았다.
"관용 때문이오." 마침내 에르난데스가 등을 돌리면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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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말 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정당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이 정당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오.
우리는 국가도 교회도 군대도 만들고 싶지 않소.
인간을 만들고 싶은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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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정부주의자들을 미친놈 집단으로 취급하는 척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요!" 엘네구스가 말했다.
"스페인의 조합주의는 여러 해 전부터 진지한 일을 해오고 있소.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말이오. 우리는 당신네들처럼 1억 7천만 명이나 되지 않지.
하지만 어떤 사상의 가치가 사람 숫자로 평가된다면, 세상에는 채식주의자들이 모든 러시아인들 을 포함한 공산주의자들보다 더 많소.
총파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그것을 여러 해 동안 공격해왔소.
엥겔스를 다시 읽어 봐요, 가르침을 받을 테니.
총파업은 바쿠닌이오.
난 공산주의자들이 무정부주의자를 연기하는 공산주의 연극을 본적이 있소.
이들이 누구를 닮았는지 아시오?
부르주아들이 본 공산주의자들을 닮아 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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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담배를 나누어준 자와 면도날을 갖다준 익살꾼, 그리고 그들을 따라간 자들과 편지를 전해주게 한 에르난데스, 이들 모두는 자기 자신도 잘 깨닫지 못한 채 동일한 감정을 따랐소.
저기 위에 있는 적들에게 자신들이 그들을 경멸할 권리가 없음을 입증하고자 한 것이지.
지금 여기서 내가 하는 말은 농담 같지만 매우 중대한 것이오.
스페인 우파와 좌파는 모욕에 대한 취향과 혐오에 따라 갈라져 있소.
인민전선은 무엇보다도 모욕을 혐오하는 자들의 집결체요.
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어떤 마을에서 가난한 두 소시민을 잡아서 물어보면, 하나는 우리 편이고 다른 하나는 저쪽 편이었소.
우리 편에 있는 자는 진심을 원했고 다른 하나는 오만함을 원했지.
형제애에 대한 욕구 대 계급 질서에 대한 열망, 이것은 이 나라에서…
그리고 어쩌면 다른 몇몇 나라들에서 매우 심각한 대립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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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놀라운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도덕을 가지고는 정치를 할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도덕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당신 같으면 편지를 전달해주도록 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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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프롤레타리아나 금욕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왜 혁명이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나요?"
"왜냐하면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은 혁명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은 도서관을 짓거나 묘지를 만듭니다. 불행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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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현재 당신의 운명과 마 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사랑했던 것, 자기 삶의 목적이 되었던 것을 단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요, 에르난데스.
당신이 하는 승부는 처음부터 진 겁니다.
왜냐하면 매 순간 정치와 연결되는 군사적 지휘 속에서는 정치적으로 - 정치적 행동으로 - 살아가야 하는데, 당신의 승부는 정치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승부는 당신이 목격하는 것과 당신이 꿈꾸던 것의 비교입니다.
행동은 행동이라는 표현으로서만 사유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사유라는 것은 하나의 구체적인 사태와 다른 하나의 구체적인 사태, 하나의 가능한 일과 다른 하나의 가능한 일 사이의 비교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편이냐 아니면 프랑코냐 - 즉 하나의 조직이냐 아니면 다른 하나의 조직이냐 - 하는 것이지, 하나의 욕망이나 꿈 혹은 묵시록에 대항하는 하나의 조직이라는 구도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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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해서만 죽습니다."
"에르난데스, 설령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은 독약과 같습니다.
고야가 말했듯이 치유책이 없는 독약이지요.
이와 같은 승부에서는 누구나 처음부터 패배자입니다.
절망적인 승부죠.
도덕적인 완성과 고귀함은 혁명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들입니다.
당신의 경우, 둘 사이의 유일한 다리는유감스럽게도 당신의 희생이라는 관념입니다."
"베르길리우스의 말을 아실 겁니다.
그대와 함께도 안 되고 그대 없이도 안 되고…
이제 저는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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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 가운데 하나가 한 달도 더 전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당신네 감옥에서 탈출했소.
그가 설명하길, 인생에서 모든 것은 보상받을 수 있다고 했소.
그는 말을 하면서 이 두 개의 선을 그었는데 하나는 말하자면 불행을 나타냈고 다른 하나는 불행의 보상을 나타낸다는 것이었소.
하지만…죽음의 비극은 죽음이 삶을 운명으로 변모시킨다는 점에, 죽음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더군.
그리고- 무신론자한테도 - 바로 그러한 점에 죽음의 순간이 지닌 극도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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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르클레르와, 이제 흩어져 있는 동지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들이 오늘 아침에 죽었더라면 우리는 이들의 가장 좋은 모습만을 기억할 텐데, 마니앵은 생각했다.
그리고 내일 저들이 죽을지라도…
마르첼리노에 대한 추억이 눈앞에 있는 르클레르의 존재보다 훨씬 강렬했다.
마치 이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이들이 행하고 있는 것과 이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 모두 일시적인 광기에 불과하다는 듯, 조만간 비행모를 쓰고 비행복을 입은 굳건한 모습으로 죽음의 현실 속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는 듯 그는 이들 지원병들과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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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리 씨, 내 말 잘 들으세요.
난 여러 해 동안 화랑을 운영해왔습니다.
이 나라에 멕시코의 바로크, 조르주 드 라 투르, 현대 프랑스 화가들, 로페스의 조각, 원초주의 화
가들을 소개해왔죠
어떤 여자 고객이 도착해서는 엘 그레코, 피카소, 아라곤 원초주의 화가의 작품을 하나씩 쳐다보고는 '얼마죠?' 하고 물었어요.
일반적으로 그런 여자들은 호화로운 이스파노 차를 타고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욕심꾸러기 귀족이죠.
'실례지만 부인, 무엇 때문에 이 그림을 사시려고 합니까?' 하고 질문하면 거의 언제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그럼 난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다면 부인, 집으로 돌아가셔서 잘 생각 해보세요. 이유를 알게 되면 다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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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프랑스로 도망갈 뻔했지. 그런데 망설였네.
그러고는 동지애와 삶에 다시 붙들렸어.
포탄들 앞에서 이제 나는 심사숙고하여 얻은 생각을 믿지 않아.
심오한 진리도 믿지 않지. 아무것도 믿지 않아.
나는 두려움을 믿네.
진짜 두려움은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 게 하는 것이야.
자네가 도망친다 해도 난 할말이 없어.
지금 여기 머물고 있는 이상 결정이 난 셈이니 자넨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야.
감옥에서 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았고, 사내들이 동전 던지기로 자기 목숨을 점치는 소리를 들으며 일요일만 기다렸네. 일요일엔 총살이 없으니까.
난 죄수들의 뇌장덩어리와 머리카락이 그대로 붙어 있는 벽에다 대고 펠로타놀이를 하는 사내들을 보았네.
쉰 명이 넘는 사형수들이 감방에서 동전을 던져 점을 치는 소리도 들었어.
이런 말을 할 때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나는 잘 알고 있어. 됐네.
이보게, 다만 이런 거야. 그러니까 다른 것이 있다는 거지.
난 모로코에서 참전했었어. 그때만 해도 여전히, 이를테면 결투에 의존했어.
여기 최전선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네.
처음 열흘이 지나고 나면 몽유병자가 되는 거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게 되니까.
포병, 탱크, 비행기는 너무 기계적이야.
모든 것이 운명으로 변하네.
그리고 이제 이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확신하게 되지.
지금 이 순간 처해 있는 사태, 즉 전쟁으로부터만이 아니야.
마치 몇 시간 후면 효과가 나타날 독약을 먹은 사람과 같고, 맹세를 한 사람과 같지.
삶은 과거의 것이 되네.
바로 그때, 인생이 변하지.
갑작스럽게 다른 진실 안에 있게 되고, 미친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되는 거야.”
==
"지식인들은 언제나 정당이 곧 하나의 사상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라고 어느 정도 믿고 있지
요.
정당이란 하나의 사상보다는 하나의 행동하는 기질과 훨씬 더 닮아 있는데 말입니다!
심리적인 것에 국한해 말하자면, 정당은 어떤 공동의 행동을 위해서 별처럼 흩어져 있는, 때로는 모순적인 감정의 조직입니다.
여기서 이 감정들은 가난-모욕-묵시록-희망을 포함하고, 공산주의자들의 경우는 행동과 조직과 제작 등의 취향을 포함합니다.
한 인간의 심리를 그가 속한 정당의 표현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은, 내가 페루인을 연구하며 그들의 종교적 전설로부터 심리를 끌어내고자 했던 경우와 다를 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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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리, 이 점을 잘 생각해보시오.
모든 나라에서 - 모든 정당에서 - 지식인들은 반대파에 흥미를 느낍니다.
프로이트 대 아들러, 마르크스 대 소렐처럼 말이오.
다만 정치에서 반대파는 소외된 자들이오.
소외된 자들에 대해 지식인 계층은 매우 강한 흥미를 느끼지.
관대하기 때문이든 능란하기 때문이든 말이오.
어떤 정당에게 옳은 것이란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쟁취했다는 것이라는 점을 지식인들은 망각하고 있소."
"혁명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인간적 • 기술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자들은, 말하자면 혁명의 소재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혁명에 대한 경험이 있는 자들은 우나무노의 재능도 없고 심지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조차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들이 말하듯이 러시아에 스탈린의 초상화가 너무 많은 것은, 어찌됐든 크렘린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냉혹한 스탈린이 그렇게 하라고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오.
이곳 마드리드에서조차 배지를 가지고 미친 짓들을 하는 걸 보시오.
정부가 이런 일에 개의치 않는 게 틀림없지!
흥미로운 것은, 왜 초상화들 이 거기 있는지 설명하는 일일 거요.
사랑에 빠진 자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경험해야 하지, 사랑에 대한 앙케트 조사가 필요한 게 아니오.
한 사상가의 힘은 동의도 항의도 아닌 설명에 있소.
지식인은 왜, 그리고 어떻게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인지 설명해야 하오.
그런 다음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 항의를 해야지(더이상 그럴 필 요도 없지만).
스칼리, 분석은 커다란 힘이오.
난 심리가 없는 도덕은 믿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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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인간이 된다는 것은 훌륭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도에게 인간이 된다는 것은 훌륭한 기독교도가 되는 것이겠죠.
그런데 저는 이를 경계합니다.”
"사소한 문제가 아니군. 그건 문명의 문제요.
한때 현자 - 그래, 현자라고 합시다 - 는 다소간 명시적으로, 유럽에서 훌륭한 전형으로 간주되었소.
깨끗하거나 더러운 귀족계급이 정치를 통해 형성되는 세계에서 지식인들은 성직자 집단 같은 것이었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성직자 집단 말이오.
인간들에게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임무를 맡았던 자들은 이들 지식인이었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소.
미겔이었지 알폰소 13세가 아니며 - 심지어 미겔이었지 - 주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지.
그리고 이제 새로운 정치 지도자들은 정신의 지배를 주장하고 있소.
미겔 대 프랑코 그리고 어제의 우리 대 오늘의 우리, 토마스 만 대 히틀러, 지드 대 스탈린, 페레로대 무솔리니, 이건 사제들의 임명권 쟁탈전과 같은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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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님,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앰뷸런스의 종소리가 경보 사이렌처 럼 전속력으로 다가오더니 그들을 지나쳐 사라졌다.
가르시아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능한 한 폭넓은 경험을 의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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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그 자체의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질 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없소.
우리의 문제는 오로지 우리한테 달려 있지.
망명자 무리 뒤에 숨어서 도망친 러시아 작가의 수가 보다 적었더라면 작가와 소비에트의 관계는 아마 지금과 같지 않았을 거요.
미겔은 그가 증오했던 군주제의 스페인에서 최선을 다해 - 그러니까 가장 고귀하게 - 살았소.
그는 그보다 덜 나쁜 사회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았을 거요.
틀림없이 힘들 게 말이오.
그 어떤 국가도, 그 어떤 사회구조도 고귀한 성격이나 정신의 품성을 창조하지는 못하는 거요.
기껏해야 우리는 유리한 조건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오.
그리고 그것도 대단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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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농부들을 경제적으로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정치적으로 예속 시킬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무도 그 국가의 미래의 순수성을 확신할 수 없는바, 파시스트들이 하는 대로 놓아둘
수밖에 없겠지.
우리가 결정적인 요소, 즉 사실상의 저항으로 의견 일치를 본 이상, 이 저항은 하나의 행위요.
그것은 모든 행위, 모든 선택이 그렇듯 우리를 구속하지.
그것은 그 자체에 나름의 모든 숙명을 간직하고 있소.
어떤 경우들에서 이 선택은 비극적이며 지식인에게는, 특히 예술가에게는 거의 언제나 비극적이오.
그럼 어떻게 했어야 할까? 저항하지 않아야 했을까?
생각하는 인간에게 혁명은 비극이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삶 또한 비극이지.
그렇다고 자신의 비극을 없애기 위해 혁명에 의지한다면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그뿐이오.
당신도 아마 그를 알겠지만, 에르난데스 대위도 당신이 제기한 거의 모든 질문을 제기했던 적이 있소.
게다가 그는 그 때문에 죽었지.
전투 방법이라는 건 쉰 가지나 있는 게 아니오.
단 한 가지밖에 없지. 그건 승리자가 되는 것이오.
혁명도 전쟁도 자기만족에 있는 게 아니오!
어떤 작가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했지.
'나에게는 오래된 묘지처럼 송장들이 가득하다…’
스칼리, 넉 달 전부터 우리 모두한테는 송장들이 가득합니다.
모두가 윤리로부터 정치로 가는 길 위에 있지.
행동하는 모든 인간과 행동의 조건 사이에는 주먹다짐이 있소
(이기기 위해 필요한 행동 말이오!
우리가 보전하고 싶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 아니고).
이건 사실과…말하자면 재능의 문제이지, 토론의 주제는 아니오.”
==
"진정한 싸움은 자기 자신의 일부와 싸워야 할 때 시작되는 법이지…”
히메네스가 말했다.
“그때까지는 너무 쉬운 거야.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싸움을 통해서만 하나의 인간이 되는 걸세.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세계와 부딪쳐야 하는 것이네…”
==
"자네의 가슴은 간직해도 돼. 그건 별개니까.
하지만 자네는 자네 영혼을 잃어야하네.
자네는 이미 자네의 장발을 잃었네. 그리고 자네의 목소리도."
어휘는 히메네스의 어휘와 거의 같았다.
그러나 어조는 하인리히 특유의 엄격한 어조였고, 눈썹이 없는 그의 푸른 눈은 톨레도에서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당신한테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반말은 이제 일방적으로만 이루어졌 다.
하인리히는 서글픈 햇빛 속에서 소나 무들이 스쳐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든 승리에는 잃는 것이 있네." 그는 말했다. "전쟁터에서만 그런 건 아니지."
그가 손으로 마누엘의 팔을 세게 죄고는 너무도 강한 톤으로 말했기 때문에 마누엘은 그것이 쓰라림의 어조인지, 체험의 어조인지 아니면 결단의 어조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부터 자네는 가망 없는 인간에 대해 절대로 연민을 느껴서는 안 되네.”
==
갑자기 활짝 열린 하늘 아래, 푸홀은 조종석에서 뛰어내렸다.
귀가 먹어버린 것인가?
아니다.
요란한 추락 뒤에 온 산의 고요였다.
왜냐하면 까마귀 소리와 고함을 지르는 목소리들이 들렸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피가 얼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그의 구두 앞에 있는 눈에다 붉은 구멍을 만들었다.
시야를 가린 이 피를 닦을 것이라곤 그의 두 손밖에 없었다.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한 시커먼 금속성 덤불 같은 것이 그 피 사이로 희미하게 나타났다.
부서진 비행기들이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뒤얽힌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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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상자들은 앞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군중을 보았을 때, 그들은 미소를 짓고자 애썼다. 심지어 폭격수까지도.
가르데는 군중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살아 있었다.
성벽의 군중은 그의 뒤에 오는 두꺼운 관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턱까지 담요를 덮은, 헬멧 비행모 아래 붕대가 너무나 평평해서 그 안쪽에 코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 부상자는 농부들이 오랜 세월 전쟁에 대해 품고 있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아무도 그에게 싸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한순간 농부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무언가 해야 한다고 결심하고는 머뭇거렸다.
마침내 그들은 발델리나레스의 사람들처럼 조용히 주먹을 쳐들었다.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들것, 산에 사는 농부들 그리고 마지막 노새들은 저녁의 비가 그 형태를 갖추어가는 장대한 바위 풍경과 주먹을 쳐든 채 꼼짝 않고 서 있는 수백 명의 농부들 사이에서 전진했다.
여자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울고 있었다.
맹금들의 영원한 울음소리와 이 은밀한 오열 사이에서 행렬은 산의 기묘한 침묵을 피하려는 듯 나막신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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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이유들에 대해선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투쟁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이오.
전투라든가. 묵시록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전쟁이 인간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요.
매독도 결국 사랑에서 시작되지.
투쟁이란 거의 모든 인간이 스스로에게 연출하는 코미디에 속하는 거요.
대부분의 코미디가 우리를 삶 속으로 끌어들이듯이, 그것은 우리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거요.
이제 그 전쟁이 시작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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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뾰족하고 무거운 외투 두건을 쓰고 싸웠지만 오늘은 거리를 지나가다가 천장 없는 방에서 한 손가락으로 고집스럽게 연가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저 병사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때 마누엘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봄으로써 스스로를 깨닫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연히 행동에서 벗어나 밀려오는 과거와 마주할 때 자신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처럼, 그리고 이들 각각의 병사들처럼 피를 많이 흘린 스페인은 죽음의 순간 갑자기 자문하는 자와 같이 - 마침내 스스로를 깨닫고 있었다.
인간이 전쟁을 발견하는 것은 단 한 번뿐이지만, 삶은 몇 번이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 과거 속으로 구르듯 밀려가며 계속 이어지는 악장들은 지난 시절 무어족을 막아냈던 이 도시, 저 하늘 그리고 저 영원한 들판이 말을 할 수 있기라도 한 듯, 이야기를 건네왔다.
마누엘은 인간들의 피보다 더 엄숙하고 대지 위 그들의 존재보다 더 불안한 것 - 그들 운명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 - 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도랑을 흐르는 물소리와 포로들의 발소리에 뒤섞인 그 존재, 그의 심장의 고동소리처럼 깊고 영속적인 그 존재를 내면으로부터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