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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다붕이
FAM . 유치이모
리 턴 《너에게로 가다》
27.
몇 일 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일 주일은 안 나갔으려나……?
벌써 달력은 10이라는 큼지막한 숫자로 도배되어 있었고
난 초점 없이 방 안에서 몸만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문자와 전화 통화가 50통은 넘게 와 있었다.
서우찬, 진해람. 이렇게 두 사람한테.
몇 일간 내내 울었다.
몇인 간 내내 울기만 하는 내가 걱정 되었는지 구여사는 내 방에서 날 가만히 안아 주기도 했다.
오늘도 변함 없이 침대에 웅크려서 울었다.
띠리리링.
핸드폰이 울렸다. 조심이 고개를 들어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진해람의 문자였다.
그간 먹은 것도 없어서 핸드폰 하나를 바라보려고 몸을 움직이는 것 마저 힘에 겨웠다.
‘너네 집 앞이야, 지금 나와.’
해람이의 짤막한 문자였다. 집 앞.
문자나 전화를 한 적은 많았지만 집 앞까지 온 적은 처음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가로등에 기대어 담배를 하나 피우고 있는 진해람이 보였다.
오른 손에는 담배를, 왼 손에는 핸드폰을.
진해람의 모습에 난 또다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 그리고 내가 죽인 사람.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금 당장이라도 문을 벅차고 달려가 그 따스한 품에 안기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전 같으면, 모든 사실을 알기 전이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기면서
따스한 목소리와 미소를 마음껏 누릴 테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알고 난 뒤라서 그럴 수가 없었다.
뒤늦게 양심 있는 척 하는 나의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해람이에게 문자가 온 뒤 10분이 흘렀다.
진해람은 여전히 가로등에 기대어 있었고 왼 손에는 여전히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자신의 귓가에 가져다 댔다.
몇 초 뒤,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해람이의 전화였다.
핸드폰을 들었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손이 떨려오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진해람의 목소리를.
일주일 밖에 안 되었는데 진해람의, 해람이의 모든 것이 그리웠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으면서도 그 품이 그리웠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핸드폰 액정을 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신향희, 나와.”
“……”
“갑자기 학교 왜 안 와, 전화는 왜 안 받고 문자 답은 왜 안 해.”
해람아, 윤아 일. 이윤권 동생 일을 네가 알게 된다면 넌 날 미워할까?
“제발 나 와. 무슨 걱정이 있는 거면 만나서 얘기라도 해주든가. 갑자기 이게 뭐야.”
네가 날 미워하면……난 살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도 이렇게 널 마주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아픈데.
“계속 안 나올래, 내가 들어가? 내가 쳐들어 갈까?”
“……나갈게, 해람아.”
난 상처받기 싫어, 해람아.
그래서……모든 걸 내 손으로 끝내려 해.
이제 더 이상……네 옆에 설 수 없어. 난 죄를 너무 많이 졌어.
사랑할 자격도 이제 없는 거야. 더 이상은.
머리는 떡이 졌고 눈 아래엔 다크써클이 진하게 내려왔다.
게다가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조금은 예쁜 모습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그마한 정이라도 떼어나야 하니까.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안 되어 집 앞으로 나갔다.
해람이는 날 보았는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리고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가로등 아래엔 해람이가 피운 걸로 보이는 담배가 여러 개 널브러져 있었다.
“어디 아팠던 거야?”
“감기 몸살.”
“말하지 그랬어.”
넌 너무 따뜻해.
차가우면서도 내게는 따뜻했어. 그래서 난 널 더욱 더 괴롭힌 걸지도 몰라.
박대헌, 그 사람 일 때문에 괴롭힌 것이지만
늘 아무 반응 없이 내게 순종적으로 행동하는 네 모습에 더 괴롭혔어.
“할 말이 있어, 진해람.”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게 뭔 줄 알아?
널 살리기 위해 다시 이 곳으로 온 거.
그래서 모든 사실과 지난 날의 일들을 다시 되새기게 된 거.
그래도 그 모든 후회를
너와 짧은 순간 사랑을 나누었단 것으로 인해 다 덮을 수 있게 되었어.
나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너에 대해서는 바보가 되었나 봐.
“뭔데, 말해 봐.”
“진해람. 우리 뒤에서 호박씨 까는 짓, 그만 하자.”
“……뭐?”
“서우찬이랑 강나리, 둘이 사귀는 거 아니래. 그러니까 너도 괜한 질투심으로 나 붙잡고 있지 말라고.”
널 좋아하지만…….
난 네 옆에 서 있을 자격이 없어.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태이든.
너무너무 이기적인 나도 진실에 관해서는 한 없이 무너져 내려.
차라리……차라리 말이야,
진실을 모르는 강나리의 곁에 네가 서 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난 지금 널 놓으려 해.
“어차피 너도 나한테 그렇게 많은 감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닐 꺼 아냐, 너 강나리 많이 좋아하잖아.”
“……신향희.”
“강나리도 너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둘이 잘해 봐.”
전혀 아프지 않아.
어차피 이대로 네가 뒤돌아서 강나리에게 간다면,
강나리는 나니까. 그러니까 나랑 너랑 사귀는 거잖아.
강나리랑 진해람이랑 사랑하는 거니까 난 하나도 안 아파. 절대.
“……붙잡으랬잖아, 신향희.”
“……”
“나 다시 비참해지지 않게, 붙잡으랬잖아. 그래서 나 못 움직이게 붙잡으랬는데!!! 왜 네가 놔!! 네가 왜 날 먼저 놓는 거냐고.”
“너 강나리 아직 좋아하잖아, 근데 강나리도 너 좋대. 그런 된 거 아냐? 오히려 내가 붙잡는 게 나쁜 거야, 진해람.”
“……걱정이 됐어. 갑자기 내 눈앞에 안 보이니까…….연락도 안 되고 소식도 없고 걱정은 되고. 사라질까 봐 두려웠어.”
내가 강나리의 모습으로 있든, 신향희의 모습으로 있든
넌 왜 늘 약해지는 걸까, 내 앞에서는.
왜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울 것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거야.
지금 제일 울고 싶은 건 난데.
“붙잡아 줘, 신향희.”
널 살리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와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도 나고
후회한 것도 나야.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알고 죽을 거 같은 사람도 나란 말이야.
근데 왜 넌 늘 네가 아픈 척 해?
늘 그랬어.
첫사랑을 잃어서 나도 아팠어! 그래서 너한테 화풀이 했어.
근데 사실 그거 네 짓이잖아!!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그 때는……너 때문이었잖아.
근데 왜 네가 아픈 척을 하는 건데…….
“진해람, 그만 가 봐. 너랑 대화하기 싫어.”
그래도 결국 가장 나쁜 사람은 나였기에
망설이지 않고 뒤를 돌았다.
그 아이에게도, 그리고 내 마음에게서도……….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움직여 대문 앞까지 갔다.
“넌……나 좋아하잖아. 근데 왜 놓아, 날.”
“해람아, 난 있잖아 너처럼 남의 더러운 과거를 다 알면서도 그 사람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짓, 못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더러운 과거를 가졌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옆에 서 있는 짓은 더 못해.”
이제 더 이상 신향희는 진해람 앞에서만큼은 이기적인 여자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몰라도 네 앞에서는 아니니까.
널 너무나도 사랑하니까.
“차라리 모든 사실을 아는 나 보다는 네 사랑의 크기만을 확인한, 아직은 이기적인 그 아이의 옆이 너에겐 더 나을 거야.”
모든 걸 내 손으로 직접 놓으려는 나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