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그냥교회 출첵합니다.
전능하신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루라는 좋은 날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주시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의 찬양을 올립니다.
6월 28일 ~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1962년 6월 28일은
이준구가 미 워싱턴에 태권도장을 개관 했다고 합니다.
태권~ 이준구
미국에서 ‘그랜드 마스터 리’로 통하는 이준구(1931~)에 대한 미국 내 이미지는
크게 세 가지다.
신비한 동양무술을 하는 근육질의 스포츠맨,
어린이를 대상으로 도덕교육을 펼치는 자원봉사자,
그리고 미국 정치계에 친구가 많은 아시아인이다.
이준구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1946년 서울로 올라와 동성중학에 다니며
서울 견지동 청도관에서 태권도에 입문했다.
당시에는 ‘태권도’라는 말이 없었고 가라테의 한자인 ‘당수’ 혹은 ‘공수도’로 불렸다.
태권도 동작 역시 가라테와 흡사했다.
태권도라는 명칭은 1955년 육군 소장 최홍희가 만든 후 널리 보급되었다.
그가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1957년 11월 21일이었다.
이후 텍사스주립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는 한편
1958년 4월 대학 내에 ‘코리아 가라테’라는 이름으로 태권도 클럽을 열었다.
당시 미국에는 태권도라는 말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다행히 처음부터 170명의 회원이 몰려온 덕에 학비는 해결되었다.
텍사스에 있으면서도 항상 워싱턴 진출을 꿈꾸던
이준구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62년 5월이었다.
워싱턴에 있는 국방부 직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러 갔다가
대학 마지막 한 학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워싱턴에 눌러앉은 것이다.
이준구는 1962년 6월 28일 워싱턴에 ‘준 리 태권도’ 도장을 열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광고를 냈더니 120명이 몰려왔다.
그는 태권도를 배우면 체력 단련은 물론 예의도 바르고 공부도 잘하고
가족과도 화목하게 지내게 된다고 홍보했다.
실제로 이준구의 태권도 도장에서는
청소년들이 검은 띠를 따려면 우등생이어야 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며 인성교육이 되어 있어야 하는 등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했다.
이러한 교육적인 요소들은 미국 사회의 학부모들에게 인상적으로 비쳤다.
이준구는 1967년 워싱턴의 TV에 태권도 광고도 시작했다.
1969년부터 1980년까지는 당시 워싱턴에 있는 5개의 TV채널에
하루도 빠짐없이 한군데씩 돌아가며 광고를 했다.
아이들이 “Nobody Bothers Me!(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어!)”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끝나는 광고는 큰 히트를 쳤다.
이후 워싱턴에서 ‘준 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후 이준구는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행사 때 ‘세기의 무술인’에,
2000년 3월 2일에는 미 법무부 이민국이 선정한 ‘가장 성공한 이민 200명’에 선정되었다.
이준구는 레이건 대통령 때는 교육고문,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는 체육고문을 역임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 때는 백악관 직속 아시아·태평양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6월 28일은 워싱턴 시장에 의해 ‘준 리의 날’로 선포되었는데,
6월 28일은 41년 전 이준구가 워싱턴에 처음 태권도장을 연 날이다.
👋 👍 💪
더위에 건강 관리 잘 하시고...
내일
즐거운 토요 성경공부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께서 충만한 은혜 내려주시길 ~
그냥교회와
성도님들의 강건과 풍성을 ~
기도합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감사하며 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 감사합니다.^^
감사와 기쁨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강건과 풍성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