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지 못한 성당 순례

[이 지따]

   봄이 오면, 봄을 느끼고 기뻐하고 보라.

누군가 한 말이다. 봄이 되니 괜히 이 노친네도 싱숭생숭 해지는 마음이다.

어디든 봄이 느껴지는 곳으로 나가고 싶고 꽃구경 다니고 싶다.

그러나 내 상황도 그렇고 또 이 봄에 새로 시작한 일들이 있어 시간 내기가 자유롭지 못하다. 이 봄에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았다. 비록 할 수는 없어도 생각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치지 못한 성당 순례가 떠오른다. 열 곳 정도 더 다니면 부산교구에 속한 성당은 다 다니는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여러 해 전, 2012년도 여름에 친구와 성당 순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 교구에 속한 성당을 한군데씩 찾아다니고 그 동네도 구경하는 하루 여행을 해보기로 하였다. 성당은 구역제라서 찾아다니면 겹치지 않고 두루 지역 곳곳을 쉽게 다닐 수 있다. 낯선 성당에 가서 성전도 구경하고 오전 미사를 보며 신부님도 여러분 만나보게 된다. 그리고 성당 인근의 구경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며 점심도 사먹고 하루를 보내기로 하였다. 성당 순례에 보태어 내가 사는 지역의 명소를 찾아보는 여행이 된다.

부산 교구에 속한 성당은 120여 곳이 된다. 부산시에 80여개가 있고 울산, 김해, 밀양, 양산까지 합쳐 외지에 40여 곳이 있다. 우선 시내에 있는 성당부터 돌기로 하였다. 수요일에는 성당에 거의 오전 미사가 있어 매주 수요일에 나섰다.

그때는 한가했고 심심하기도 해서 큰 기대 없이 시작하였다.

그런데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란 말이 자연스레 떠오를 만치 기쁨과 환희를 얻었다. 성당 모습도 나름의 특색으로 다 달랐고 미사 전례도 신부님 따라 분위기가 달랐다. 매주 한 번씩 찾아나서는 성당 순례에서 그날그날 느끼는 감동은 경건하고 신선하고 은혜로움이 확 밀려와서 가슴 저릴 때도 많았다. 성당에 가서 열심히 그 성당만의 특별함을 찾아 눈에 담아두려 했고, 미사 때도 신부님 모습부터 말씀까지 가슴에 담아두려 마음을 다했다. 가는 성당마다 새롭고 신부님의 말씀도 다르며 느낌도 달랐다.

성당을 찾아다니며 많은 곳을 나들이 하였다.

다대포 성당에 갔다가는 새로 솔숲을 조성한 다대포 해변을 돌고 횟집에서 물회를 먹었고, 몰운대 성당에서는 앞에 있는 아미산 전망대에 올라 따듯한 차를 마시며 낙동강 강어귀 둑과 그 너머 풍경을 감상하였다. 이기대 성당 가서는 넓은 이기대 공원을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하단 성당에 갔다가는 옛날에 가보았던 에덴공원에 가서 가물가물한 기억들을 소환하며 둘러보기도 하였다. 작고 예쁜 명지 성당에서는 젊고 잘생긴 신부님의 모습과 멋진 강연말씀에 반해 종일 가슴이 기분 좋게 설레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성당 바로 옆에 있는 부산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호산나 교회]와 그 주변 공원을 돌아보고 을숙도에 갔다. 화사한 햇빛에 은빛으로 물결치는 갈대밭과 [에코 새 기념관]을 구경 하였다. 하구언 다리를 걸어서 건너 하단에서 지하철을 탔었다. 어디서든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되도록 많이 걸어 다녔다.

부산 시내의 성당을 다 돌고는 밀양의 성당을 찾았다.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까운 거리이니 아예 식당 칸에서 커피를 마시며 낙동강의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기분을 내었다. 기차 타고 밀양, 삼랑진, 물금에 있는 성당들 다녔다. 밀양성당에 가서는 그 아래 새로 개관한 박물관을 보고 영남루에서 봄꽃을 만끽하며 강가를 거닐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골 작은 물금성당은 유독 성화가 많이 온 벽에 걸려있었고 제대 뒤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 특별했다. 억대가 넘는 악기인데 어느 신자분이 기증했다고 했었다.

김해와 울산은 시외버스로 가고 양산은 전철로 가기도 하였다.

울산에도 성당이 많이 있다. 울산에 성당을 다니면서도 여러 곳을 찾았다. 태화강, 십리 대숲 길, 대왕암 공원, 방어진 등. 김해와 양산, 삼랑진 어느 도시에서나 주변의 가볼 만한 곳을 찾았다. 그 덕분에 부산 근교의 명소를 많이 가보았고, 어디에 어떤 곳이 있는지 지리도 많이 알게 되었다.

하루를 기쁘게 신나게 다녔더니 일주일이 빠르게 보내졌다. 어느 성당을 어떻게 갔다가 어디를 돌아보고 올까 궁리하는 시간도 흥겨웠고, 바쁘지 않게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타고 다니며 차창 밖으로 풍경 바라보는 여유를 느끼며 즐거웠다. 하루만은 일상을 벗어나서 하느님을 찾는 착한 순례자가 되고, 내가 사는 지역의 아름다움을 찾는 행복한 여행자가 되었다. 하지만 뒤에 돌아보니 큰 틀에서의 기억은 성당 모습도 비슷하고 미사전례도 비슷하고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느꼈던 감동도 시간이 지나며 비슷하게 기억되었다. 오히려 성당을 돌며 즐거운 여행자로 인근 곳곳을 다닌 그 추억이 더 많이 또렷하게 기억되니 어째 주객이 전도된 것 같기도 하다.

신나게 울산지역을 돌다가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하는 바람에 중단했다. 노인들 대중교통 이용하며 나다니지 말라고 방송이 요란했다. 울산과 김해 쪽에 십여 군데 성당을 남겨놓고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여직 쉬고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 몇 년이 훌쩍 지나갔다. 한 번 중단하니 다시 시작하기 처음 시작하기보다 더 어렵다. 올겨울쯤 노인 일자리 일도 끝나면 마음먹고 꼭 끝내보고 싶다. 다시 하루의 여행을 즐기는 순례자가 되고 싶고, 부산 교구에 속한 성당을 다 돌아보았다는 마침표를 찍으며 무언가 내 인생에서 하나를 끝냈다는 뿌듯함도 간직하고 싶다.

[숙현]

늘 맘 속 숙제 처럼
남아 있는
성당순례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지따]

감사합니다.
올 겨울에는 꼭 마저 해서 끝내고 싶은데 , 일단은 바래봅니다.
날씨가 변덕스럽네요. 건강 잘 챙기시기를......

[유리안나]

성당 순례 하시는 참 멋지신 지따형님!
아직 남은 순례를 잘 마치시고, 그 뿌듯함의
글을 보고 싶습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이 지따]

제가 나다니는 걸 무지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 좀 바쁘네요. 겨울에 좀 시간이 나려나 희망을 가져봅니다.
3월부터 글쓰기 동아리 나가고 있어 주제 주어지는 대로 부지런히 써보려합니다.
자주 글 올릴게요. 잘 지내세요.

[지향]

저도 결혼하면서 전국 수도원 순례를 함께 하자고 했지만
겨우 몇군데 다니고는 이제껏 지키지 못했습니다.
고국에 다시 나가 살게 되면 성당순례도 하고
방방곡곡 여행도 다닐 꿈도 꾸면서 요즘은 그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늘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렌조]

영국에 살 때 성당을 매주 다른 성당으로 순례를 했었지요.
아쉬운건 런던 시내 음악예배 성당 순례를 끝내 못한겁니다.
고풍스럽고 웅장하지만 교우가 적어서
작은 방에서 옹기 종기 오십여명이 미사를 하던
런던 코니 성당이 젤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