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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4일 오늘의 역사
2023년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난민 탑승한 어선 뒤집혀‥6백여 명 사망·실종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가던 750명의 난민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어선이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전복됐다. 백여 명이 구조가 됐지만, 나머지는 숨지거나 실종된 상태이다.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엔진이 갑자기 멈추자 놀란 탑승객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갑자기 뒤집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어선에는 시리아와 이집트 출신 난민들이 주로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특히 어린이와 여성 대부분은 갑판 아래에 타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피해가 가장 컸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열림, 우리나라는 1승 2패로 예선 탈락
2013년 검찰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
2010년 일본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에서 분리된 캡슐이 7년 1개월만에 오스트
레일리아 남쪽 사막 지역에 착륙하였다.
2009년 한국, 제1회 동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우승
2009년 6월 14일, 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제1회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에서 우승을 차지, 초대우승국이 됐다.
전날 대만을 86대71로 꺾고 결승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은 14일 일본 나고야 인근 고마키 파크아레나에서 열린 홈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68대58로 승리, 4전 전승으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의 홈 텃세에 밀려 전반까지 32―34로 뒤졌다. 3쿼터를 53―49로 근소하게 앞선 한국은 4쿼터 초반 오세근(중앙대)의 골밑 슛과 양희종(상무)의 속공으로 주도권을 잡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김민수의 3점슛이 터진 종료 2분29초 전 64―55까지 차이를 벌리며 승부를 결정했다.
허재 대표팀 감독은 처음 대표팀 감독에 취임해 우승까지 일궈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우승과 함께 8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차지했다.
2007년 미국 북한에 BDA 동결자금 전달 완료
2005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5년 8개월의 해외도피생활 마치고 귀국
김 전 회장이 탑승한 아시아나항공 OZ734편은 오전 5시25분쯤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10여명의 검찰 수사관들은 김 전 회장이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내자 바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감색 정장 차림의 김 전 회장의 얼굴은 매우 수척했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사진촬영을 제대로 허용하지 않자 김 전 회장을 둘러싼 경찰과 취재진 사이에 거센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 전 회장은 쏟아지는 질문에 “제가 책임을 지기 위해 귀국했습니다,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만 짧게 말했다.
혼잡은 입국장 밖에서 절정을 이뤘다. 대우피해대책위원회, 사회당, 민주노동당 당원 등 200여명은 김 전 회장이 나타나자 일제히 “구속수사” “사면 불가” 등의 구호를 외치며 물병과 종이뭉치를 던졌다. 일부 시위대는 차 위로 뛰어들었으며, 시위대가 던진 돌에 의해 차량의 뒷유리가 파손되기까지 했다.
2005년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개막(평양)
2004년 남북함정, 국제상선 공용통신망 첫 무선교신
남북 해군 함정들이 14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가량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 5개 구역에서 국제 공용 주파수를 이용,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무선 교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사상 첫 시험교신은 ▲연평도 1구역(이하 남측)↔육도(이하 북측) ▲연평도 2구역↔등산곶 ▲대청도 3구역↔기린도 ▲대청도 4구역↔월래도 ▲백령도 서남 5구역↔장산곶 등 5개 구역에서 이뤄졌다.
1구역에서 오전 9시부터 15분간 첫 교신하고 15분간 쉰 뒤, 2·3·4·5구역에서도 국제상선 공통망(주주파수 156.8Mhz, 보조주파수 156.6Mhz)을 이용해 교신했다.
지난 99년 연평해전과 2002년 서해교전 때 서로 ‘몸으로’ 부딪치거나 포격전을 벌였던 양측의 함정들이 충돌방지를 위한 메시지를 교환한 것이다.
이날 시험교신에는 남측에선 10여척의 함정이 NLL 남쪽 6~10마일 해상에서, 북측에선 6, 7척의 함정들이 NLL 북쪽 10여마일 해상에서 각각 참여하거나 지원활동을 했다. 2·4·5구역에선 남북 함정들이 정지한 상태에서 무선교신만 한 반면, 1·3구역에선 양측 함정들이 움직이면서 무선 교신은 물론 교신이 어려운 상황에 대비한 깃발·발광(불빛) 신호도 교환하는 ‘기동 시험’도 했다.
2002년 한국-포르투갈 1대0 승, 사상 처음 월드컵 16강 진출
2002년 6월 14일. 한국이 월드컵 출전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D조 예선리그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1-0으로 이겼다.
한국은 2승1무(승점 7)를 기록하며 조 1위가 됐고, 포르투갈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폴란드에 진 미국(1승1무1패, 승점 4)이 한국에 이어 2위에 오르며 16강에 합류했다. 포르투갈(1승2패, 승점3)과 폴란드(1승2패, 승점3)는 탈락했다.
한국의 선취골은 후반 25분, 박지성은 상대 문전에서 센터링으로 날아 온 볼을 가슴으로 컨트롤 한 뒤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왼발 강슛을 터뜨렸고 볼은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뚫고 들어가며 네트를 갈랐다. 한국의 천금같은 골이었다.
특히 포르투갈은 전반 27분, 박지성에게 강한 태클을 건 주앙 핀투가 퇴장 당하면서 공격의 주도권을 걸 퇴장 당한 이후, 승기를 잡으며 파상적인 공격을 펼쳤다.
또 포르투갈은 후반 20분, 베토가 이영표에게 뒤에서 태클을 걸어, 한 경기에 두 장의 경고를 받아 퇴장 당했다.
또, 부상으로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던 이영표, 박지성도 선발로 나와 활발히 움직였다.
포르투갈은 최전방 원톱에 파울레타를 세우고 미국전에 펼쳤던 루이스 피구와 후이 코스타,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 공격형 미드필더 ‘삼각편대’ 전술로 한국을 상대했지만 한국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0년 남북한, 8.15 고향방문 등 5개항 합의-서명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14일 오후 김대통령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2차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을 채택, 서명했다. 김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답방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오는 8월 15일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친척의 방문단을 상호 교환하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공동선언에 담았다.
두 정상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해 빠른 시일안에 남북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3시부터 한 차례 휴식을 취해가며 오후 6시50분까지 마라톤 회담을 한 끝에 이같이 합의했으며 김대통령 주최의 만찬을 끝내고 밤 11시20분에 역사적인 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했다.
단독회담에는 남측에서 임동원 대통령 특별보좌관, 황원탁 외교안보수석, 이기호 경제수석이, 북측에선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이 각각 배석했다. 공동선언문은 1.남북통일 자주적으로 2.통일방안 공통성 인정 3.이산가족-장기수 해결 4.각분야 교류 활성화 5.당국간 대화 조속개최 등 5개항이었다
1994년 `문 리버`의 작곡자 헨리 맨시니 사망
맨시니는 50여년 간 무려 4회의 아카데미상과 20회의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세계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신화적 인물이다.
특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가 `문 리버`, 영화 `술과 장미의 나날들`의 주제 음악 등은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1924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출생한 그는 1946년 유명한 글렌 밀러 악단에 가담했고. 1952년부터는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사의 영화음악에 참여하면서 세련되고 감미로운 음악으로 독보적 명성을 쌓았다.
그는 이날 간암으로 배버리 힐스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1994년 박유광 한국고속철도공단 이사장과 피에르 빌저 프랑스 GEC알스톰그룹 회장, 21억160만달러의 경부고속철도 차량도입계약을 정식 체결
1993년 영화 촬영 중이던 헬기, 한강에 추락
영화를 촬영중이던 헬기가 한강에 추락해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993년 6월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1동 한강시민공원 세모유람선 선착장 부근 한강에서 영화촬영 중이던 선경그룹소속 S-76B 14인승 헬기가 추락했다. 탑승자 8명중 6명이 숨지고 2명은 구조됐으나 인기 TV탤런트 변영훈씨(30)가 중태였다.
이날 사고는 미도영화사가 제작중인 영화 ‘남자 위에 여자’의 첫 촬영을 하기 위해 제작팀과 KBS TV 연예가 중계팀이 헬기를 타고 영화촬영을 위해 세모선착장에서 2백m 남쪽 한강 상공위를 저공비행하며 선회하다 추락, 헬기가 뒤집어지면서 일어났다. 사고가 나자 선착장에 있던 사람들은 구조를 위해 계류 중이던 4대의 모터보트의 시동을 걸었으나 1대를 제외하곤 모두 작동이 되지 않아 구조가 지연됐다.
이번 헬기추락사고는 영화 출연진과 각 언론사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착륙 직전 프로펠러가 물결에 부딪치면서 일어난 어이없는 참사였다. 탤런트 변영훈씨는 결국
1993년 6월 28일 사망했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대폭발 사상 1천여 명 대피 100만 명
1989년 부시 미국 대통령, 전략방위구상 (SDI) 프로그램 지속 천명
1986년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 사망
그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외에도 영국계 할머니로부터 배운 영어를 6살 때부터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유럽에 가서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책을 읽었다. 너무 많은 책을 읽은 나머지 30대 후반부터 서서히 시력을 상실해 생의 후반부는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시인으로 출발한 그는 1935년 단편집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내놓으면서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의 단편 ‘픽션들’과 ‘알레프’는 유럽과 미국의 문학과 비평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픽션들’ 속에 삽입된 ‘바벨의 도서관’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소설의 죽음을 외치는 금세기 말의 문학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 대표적 작품들로 손꼽힌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이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보아 모든 것을 텍스트로 삼는 그의 소설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기호학, 후기구조주의 등의 근원적 요소를 품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84년 캐나다 트뤼도 수상 고별 연설
1982년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첫 공판
1982년 아르헨티나, 포클랜드전쟁에서 영국에 항복
1982년 6월 14일, 포클랜드를 점령하고 있던 아르헨티나군이 영국군의 우세한 군사력에 밀려 항복했다. 이로써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점령한 지 꼭 74일 만에 포클랜드 전쟁이 종결됐다.
전쟁결과 아르헨티나는 712명의 사망자와 1만1천명의 포로를 냈고 영국은 256명의 전사자를 냈다. 전쟁 전문가들은 영국군의 승인을 현대적인 무기보다 우수한 인적자원에서 찾았다.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를 전격 침공하자 영국의 대처수상은 즉각 100여척의 함선을 12,800km 떨어진 포클랜드 섬으로 파견했다. 4월 5일 영국을 출발한 영국군은 4월 26일, 포클랜드섬의 동남쪽 1,500km에 있는 남조지아섬을 탈환했고, 5월 15일에는 포클랜드의 작은 섬 페블섬을 점령했다. 영국군은 포클랜드의 요충지 포크스탠리를 점령하기 전 반대 방향의 산카를로스항을 첫 상륙지로 결정했다. 산카를로스항으로 영국군이 상륙할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불과 120여명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5월 21일 새벽 4시, 영국군은 함포사격을 개시하며 산카를로스항의 아르헨티나 군관측소와 대공 및 해안포대를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영국을 떠난 지 46일 만에 육지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5월 27일까지 교두보 확대를 완료한 영국군은 최종목표인 포트스탠리를 향해 돌진했다. 5월 28일 다윈 및 구스그린지역에서, 6월 12일과 13일 이틀동안 포트스탠리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은 마침내 이날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냈다.
1980년 국내 첫 태양광발전소 가동
1977년 정부 부가가치세 실시 발표
1977년 아르헨티나 북한과 단교
1977년 일본, 2백해리 수역발표
1969년 부안 무장공비 침투사건
전북 부안 하서면 주민이 해안가에서 고무보트와 배낭 2개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수색작전 끝에 간첩 3명 사살. 피해(경찰관 4명 부상)
1968년 195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시인 콰시모도 사망
1967년 부정선거규탄 학생데모, 서울시내 11개대학 임시휴교
1967년 미국 화성탐사선 마리너5호 발사
1966년 서울서 제1회 아스팍회의 개최-아시아,태평양각료이사회 창설
1965년 서울법대생 한일회담 반대 단식농성 결의, 각 대학으로 퍼짐
1963년 소련, 보스토크 5호 발사
1962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창립(위원장 강원용 목사)
1961년 부정축재처리법 공포
1954년 중국인민정부, 헌법초안을 채택 발표
1952년 세계최초 핵추진 잠수함 진수
1950년 한국 유네스코 가입
1949년 월남, 바오다이 정권수립
1946년 세계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에 성공한 베어드 사망
1946년 김규식.원세훈.여운형.허헌, 좌우합작회담 개시
1940년 독일군 파리 입성
1938년 별의 시선속도를 분광학적으로 측정한 미국의 천문학자 윌리암 캠벨 사망
1937년 스페인정부, 막스주의 통일사회당에 해산명령, 스페인 인민전선이 붕괴됨
1936년 러시아 소설가 막심 고리키 사망
페슈코프 청년이 러시아어로 ‘가장 큰 고통’ 을 뜻하는 ‘막심 고리키’ 라는 필명으로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 를 발표한 것은 1892년 9월 12일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세계 문학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인 고리키는 변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해 1905년 혁명과 관련해 이듬해 당국에 체포됐다가 추방되어 7년간 계속된 망명길에 올랐다. 미국을 거쳐 이탈리아의 카프리섬에 정착한 고리키는 그곳에서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어머니’ 를 완성해 러시아 사회 혁명에 영향을 미친다.
그 이후로 ‘유년시대’ ‘세상 속으로’ ‘대학시절’ 등의 작품을 남겼다. “고리키의 작품은 위대한 10월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 즉 러시아에서 혁명적 위기가 성숙해 가는 전과정을 포괄한다.” 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고리키의 소설들은 혁명을 앞둔 제정 러시아의 혼란과 지배계급의 부패상, 그 안에서 움트는 새로운 사회의 싹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1936년 6월 14일, 누군가에 의해 독살됐다는 의문을 남긴 채 고리키가 생을 마감했다.
1929년 바티칸.프로이센, 정교조약 조인
1928년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 출생
그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게바라는 의사의 길을 걷다가 수탈당하는 남미인들의 삶을 목격하고 게릴라 투쟁을 선택해 혁명가로 나서 쿠바혁명을 카스트로와 함께 성공시켰다. 혁명이 성공하자 그는 쿠바 국립은행 총재, 재무장관, 외교관을 역임했다.
특히 외교관으로 전 세계 각지를 순방하며 경제지원을 호소하는가 하면 쿠바가 나갈 방향을 끊없이 고민했다. 소련 중국 일본은 물론 이집트 인도네시아 유고 등 제3세계도 방문했다. 필요할 땐 유엔에서도 연설했다. 그는 좌익혁명가가 아니었다. 미국의 견제에 소련으로 기울어야 했던 카스트로의 결정만 아니었다면 그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가려했다. 유고의 티토에게서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에게서도 그는 쿠바가 택해야 할 길을 모색했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의 CIA에게는 공공연한 제거의 대상이었고, 소련의 KGB에게는 감시의 대상이었다.
아프리카 콩고에서의 혁명 지원활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다시 잠적, 남미 최빈국인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꿈꿨다. 1966년 11월 볼리비아에 밀입국한 그는 도착 즉시 혁명의 거점인 산중으로 들어가 게릴라 부대를 인솔했다. 어려서부터 앓아온 천식은 게릴라 생활에 치명적이었지만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무장투쟁에 나섰다. 그러던중 1967년 10월 전투중 총탄을 맞고 체포돼 사살됐다.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사르트르가 평가했듯이 그는 완벽한 인간상을 추구한 `영원한 혁명가`였다.
1928년 여성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 사망
1927년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상해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됨, 이 때 심한 고문으로 앉은뱅이 됨
1920년 막스 베버 사망
1919년 최초의 금속제 여객기 융커스 F-13(4-5인승), 첫 비행에 성공
1914년 오륜기 제정
처음으로 올림픽 오륜기가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에 의해서 언급된 것은 1913년 8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잡지인 《올림픽 리뷰 Olympic Revue》의 기사에서였다.
올림픽마크와 마찬가지로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1914년 6월 파리의 소르본(파리)대학에서 열린 IOC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첫선을 보였고, 이 자리에서 IOC의 공식기로 채택되었다.
그 이후에도 올림픽경기는 아니지만, 올림픽조직위원회를 대표하는 성격으로 1915년 3월 18일에 샌프란시스코의 만국박람회장에서 공식적으로 올림픽기가 게양되었다. 그러나 1916년 올림픽 때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되어 이 기를 게양할 수가 없었다.
출처: http://jwaumyeong.tistory.com/3682 [좌 가 운]
1909년 청나라-스웨덴, 북경통상조약조인
1907년 내각관제 공포(의정부 폐지)
1907년 노르웨이, 여성 참정권 부결
1900년 파리-리용간 최초로 국제자동차레이스(경주) 개막
1892(조선 고종 29) 초대 고대 총장 역사학자 현상윤 태어남
1889년 미국-영국-독일, 사모아섬에 관한 조약을 베를린서 체결
1868년 란트슈타이너 출생 - ABO식 혈액형분류법 개발로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1825년 미국 수도인 워싱텅 D.C.의 기초도면을 설계한 건축가 랑팡 사망
1811년 미국 소설가 스토우부인 출생
1811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저술한 미국의 작가·스토 출생
1777년 미국 국기 처음 제정
1777년 6월 14일, 미국이 독립 1년 만에 국기를 처음 제정했다. 13개주 대표가 모인 대륙회의에서였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된 13개의 줄무늬와 청색 바탕의 13개 별’이 국기 제정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별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국기마다 별의 위치가 달랐다. 요즘처럼 별을 엇갈리게 배열한 것도 있었고, 사진에서 보듯 둥글게 배열한 것도 있었다.
성조기(星條旗·Stars and Stripes)를 처음 도안한 사람은 벳시 로스라는 여인이란 설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프랜시스 홉킨슨이라는 설로 갈리지만 확실치는 않다.
이후 새로운 주(州)가 연방에 편입될 때마다 별과 줄무늬가 15개(1795년)·20개(1818년)로 점차 늘어나자 1818년 몬로 대통령이 “줄무늬는 13개로 고정하고, 별은 새로운 주(州)가 연방에 편입될 때마다 하나씩 추가한다”는 원칙을 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7번이나 변신을 거듭해온 국기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60년 7월 4일, 하와이가 50번째 주로 연방에 편입된 뒤부터였다.
성조기는 ‘Star Spangled Banner’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1814년 영국의 치열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볼티모어의 멕헨리 요새에 여전히 성조기가 휘날리는 것을 본 프랜시스 스콧 키가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에 영국 노래 ‘To Anacreon in Heaven(천상의 아나크레온에게)’의 멜로디를 붙인 게 미국 국가(國歌)의 출발이 됐다.
1775년 미국 육군 창설
1736년 프랑스 물리학자 샤를 오귀스탱 드 쿨롱 출생
1674(조선 현종 15) 북벌총수 이완 대장(1602-) 세상 떠남
756년 양귀비 자살
중국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양귀비가 756년 6월 14일 자살했다. 안록산의 난으로 수도 장안을 탈출, 피난길에 오른 현종이 수행하던 군사들의 압력을 못이기고 양귀비에 자살을 명했기 때문이다. 양귀비가 자결하자 군사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치며 피난길을 다시 재촉했다.
양귀비의 본명은 옥환으로 원래는 현종의 열여덟번째 아들인 이모의 아내였다. 이모는 현종과 죽은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니 양귀비는 바로 현종의 며느리인 것이다. 22세의 며느리를 궁에 들어와 살게 한 56세 현종의 총애는 실로 대단해 양귀비는 마치 자신이 황후가 된 것처럼 도도한 행동을 보였다. 현종이 그녀에게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자 `안록산의 난` 등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고, 그로 인해 당왕조는 크게 악화되었다.
양귀비는 현종이 그녀를 두번이나 폐출할 정도로 질투심이 유난히 강한 여자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유명한 중국 시와 희곡의 주제가 되어왔다. 고아였지만 고관의 딸로 입양된 그녀는 중국 역사상 절세의 미인으로 통하는 몇몇 풍만한 체구의 여인 가운데 하나였다. 궁에 들어간지 얼마 후 그녀의 두 자매도 현종의 비로 맞아들여졌고, 사촌오빠인 양국충은 재상이 되었다. 돌궐족 출신의 젊은 장군 안록산은 양귀비의 득세를 등에 업고 엄청난 권세를 누렸다. 그녀는 그를 양자로 맞아들였는데 실제로는 연인 사이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양귀비는 결국 그녀가 키운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는 바람에 자결에까지 이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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