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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란 무엇인가?
*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증산도 道典 4:7)
위의 상제님의 말씀에서 최풍헌(선도의 도인)과 진묵대사(불도의 고승) 송구봉(유도의 선비)의 도통자들에 관한 비교를 보면 선불유에는 법술의 큰 차이가 있다. 신선은 익히 알다시피 불로불사하며, 바람과 비를 부르며, 둔갑과 숨기를 뜻대로 하고,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선인(仙人)들이다. 우리들이 우스게 소리로 말하는 신선세계(仙境)라 함은 이런 유토피아의 경지를 말한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가(仙家)의 도술이 산(算)가지 하나로 백만 대군을 물리치나니~ " (증산도 道典 4:45)
선술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조화권을 사용할 수 있는 법술이다. 신선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현실세계에서는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하늘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 태모님 말씀처럼 도통했다고 해서 멋대로 할 수 있는건 없고 도리어 머리만 아프다는 하소연처럼, 선술도 개인적인 편의로만 간혹 사용할 수 있을뿐 대부분의 기술은 제한된다. 물론 이런 경지도 역사적으로 직접 본 적은 매우 드물었고, 설령 보았다고 해도 전설같은 이야기로 치부될 뿐이었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신선이란 말은 전설로만 내려왔고 본 사람은 없었으나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7:89)
[도전] 속 고송암의 예에서 보듯 원래부터 도통자는 인간세상에 사사로이 끼어들 수 없다. 만일 도통자가 간섭하게 되면 천하는 더욱 혼란해지고 천지법도는 엉망이 된다. 고로 왠만한 법력을 가진 도통자가 아니면 도술을 함부로 써서도 안되고 하물며 인사에 개입하면 즉시 불벼락이 떨어지게 된다.
원래 인사(人事)는 인사로 해결해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노력해서 풀어야하는 것이 바른 처방법이다. 이것이 어긋나면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 예를들어 쌓이고 쌓여온 원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인류에게 후천개벽이라는 엄청난 대멸종의 댓가가 치뤄지 듯이..
아무튼 도술의 조화권은 나중이고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칼은 요리할 때 필수품이다. 하지만 쓰는 자의 마음에 따라 사람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칼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철부지 아이에게 총을 줄수 없듯이 마음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 도술의 권한을 줄 수 없다.
* 하루는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일은 다 신선(神仙)이 하는 일이니 우리 도는 선도(仙道)니라.” 하시고
“너희들은 앞으로 신선을 직접 볼 것이요, 잘 닦으면 너희가 모두 신선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신선이 되어야 너희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199)
선불유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일반적으로 수도법은 성(性)과 명(命)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늘과 땅으로부터 물려받은 공통의 DNA가 있다. 몇 안되는 공통 원소로만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당신과 나는 전혀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남이 아니라는 거다.
성이란 본래의 나인 천성을 깨우치는 정신수련이고 명은 죽지 않는 몸을 얻는 신체수련을 말한다. 최상의 도법은 ‘성명쌍수(性命雙修)’라 하여 정신과 육체를 불멸의 경지로 만드는 걸 말한다. 이 길을 성취한 사람들이 신선이다. 선의 경지가 높은 이유가 바로 성명쌍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본래 너희들이며 나는 본래 나니라. 그러므로 본래의 이치를 깨달은 자를 성인이라 하느니라. (증산도 道典 2:132)
선도는 명(命)으로 시작하여 최종적으로는 성(性)을 깨달아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것이다. 불도는 성(性)을 위주로 하며 죽어 극락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유도는 예(禮)를 바탕으로 닦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 세우길 바라는 것이다. 선이나 불을 성취하였고 더하여 절세의 공덕을 쌓은 사람은 제군(帝君)의 반열에 오른다. 불도의 석가모니, 선도의 여동빈 같은 분이다. 석가모니는 도전에 나오듯 대제군의 반열에 계시고 서방칠성이다. 여동빈은 부우제군(孚祐帝君)으로 후천 중생들을 갱소년 시키는 임무를 맡고 계시다.
선도는 ‘장생술’과 ‘조화술’을 바탕으로 수명을 닦는 도법이다. 불도는 108번뇌를 끊어 궁극의 ‘버림’ 또는 ‘비움’ 바탕으로 성을 닦는다. 유도는 천지의 질서를 범절로 이화하기 위해 자신을 다스리는 ‘신독(愼獨)’과 ‘극기(克己)’를 바탕으로 예를 닦는다. 거꾸로 말하자면 인간으로써 최상의 경지인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먼저 닦아야 하고, 마음을 닦는 것은 정심과 수신제가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말이리라.
유도의 수도법을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유도의 도법은 음양오행과 주역을 이치를 깨닫는 이통(理通)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 외에 심법을 닦는 법도 있다. 솔직히 유도의 수도법은 따로 존재하여 전수되는 게 아니다. 다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가의 정통 선비들만이 홀로 수련하던 심법이 있다. 이 심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고요한 방에서 홀로 정좌를 하여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중(中)을 잡는 것’이다.
이걸 닦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주역이나 유교경전의 좋은 구절을 수 만 번 반복하며 저절로 깨닫게 되는 법,
매일 자신을 세 번 성찰하여 회개하는 방법인 일일삼성(一日三省),
육체의 게으름과 이기적인 욕망을 이겨내고 예를 지키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외물(外物)과 유혹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맹자의 부동심(不動心),
홀로 있을 때 도리어 방종을 삼가는 신독(愼獨),
한 곳에 정신을 오롯이 모아 치우침이 없는 중도를 잡는 정일집중(精一執中),
고요히 앉아 마음과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인 적연부동(寂然不動) 등이다.
이런 수련의 단계가 더욱 올라가게 되면 어느 날 활연관통(豁然貫通)하게 된다. 이것이 곧 유가의 도통이다. 아쉬운 것은 유가의 도통은 이치를 관통 하지만 조화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도의 지향점은 인간 세상에 덕치(德治)가 이루어져, 차별 없는 모두가 평등한 이른바 대동(大同)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차별이 없는 바른 정치란 편파적이지 않는 즉 중도(中道)가 바탕이 되어야만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전편에서도 말했듯이 유도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 누가 뭐라 해도 ‘중(中)’에 있다. 먼저 그 자신이 중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바른 정치를 펼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이루기 위해 유가의 선비 개개인은 자사(子思)가 쓴 [중용]의 최고 경지인 ‘희노애락미발’의 경지에 들어가야 하고, 나아가서 [서전서문]에서 성군의 도인 ‘건중건극(建中建極)’의 치세를 이룰 수 있다.
유불선이 전하는 심법
*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애기부처를 조성하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삭발하고 중이 되라. 불지양생(佛之養生)이니 불(佛)로써 깨치라.” 하시고 “너는 좌불(坐佛)이 되어 집을 지켜라. 나는 선불(仙佛)이 되어 왕래를 임의로 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186)
무협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무도(武道)를 익히는 주인공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무술과 기공 수련을 통해 용맹정진하고 많은 겨룸을 통해 나날이 발전하게 된다. 그러다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중 결정적인 어느 순간에 깨달음을 얻어 최고의 고수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 깨달음은 바로 동작의 반복과 단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공의 창시자가 전해준 심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유불선에도 지향하는 심법이 있다. 선의 심법은 ‘허무(虛無: 없음)’이고, 불은 ‘적멸(寂滅=空: 텅빔)’이며, 유는 ‘중용(中庸: 치우치지 않음)’이다. 우주탄생을 예를 들어 이 말을 쉽게 이해해 보자. 우주의 태초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있었다. 이 경계가 허무의 심법이다. 이후 한 점에서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형성된다. 하지만 우주는 끊임 없는 인연에 따라 탄생과 멸망을 반복한다. 존재하는 것은 사라지고 사라진 것은 다시 태어난다. 즉 색(色)과 공(空)이 일체라는 깨달음의 심법 경계가 적멸이다. 또한 우주 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차별 없이 천지의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중용의 심법 경계이다. 이것이 유불선의 심법의 바탕이다.
* 이제 불지형체(佛之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유지범절(儒之凡節)의 삼도(三道)를 통일하느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 (증산도 道典 4:8)
삼도(三道)의 법술 특성상 선(仙)은 무위자연을 추구하여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며, 불(佛)은 깨달음과 중생구제 사이에 존재하며, 유(儒)는 예로써 인간세상을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기에 벼슬길을 추구한다. 즉 신선은 속세와 너무 멀고, 불법은 속세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며, 선비는 덕치(德治)를 이룩해야 하기에 세상 속에 존재한다.
후천세상은 이런 삼도의 법술이 하나로 통일된 세계이다. 상제님께서는 선천 유불선과 기독교의 기운을 모두 뽑아 선에 붙여 놓으셨다. 앞으로 선경세계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선경의 문으로 들어 가고자 한다면 선천과 후천을 이어주는 개벽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를 건너가는 방법은 바로 마음에 있다. 먼저 마음을 부처님 같이 닦아야 선경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태모님께서 종종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후천을 가려면 먼저 나를 버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239)
* 마음 닦는 공부이니 심통(心通) 공부 어서 하라. 불(佛)은 선(仙)의 밑자리니라. (증산도 道典 11:250)
* 마음 심 자 닦고 보면 불로불사 아닐런가.(증산도 道典 11:309:10)
위 성구에서 보듯 상제님께서는 마음을 닦는 불도를 바탕으로 수도하라고 하셨다. 태모님께서도 여러번 에 걸쳐 같은 말씀을 하신다. 도생은 마음닦는 공부 즉 불도의 '비움 공부'로 먼저 시작해야 한다. 아니 시작과 끝이 모두 마음 공부이다. 짐승이 미끼에 집착하여 잡히 듯이, 사람도 활활 타오르는 욕망에 눈이 멀어 덫에 걸려 죽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는 공부를 시작으로 마음을 닦으라는 것이다. 태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 버리라는 망형망재(忘形忘在)"도 같은 뜻이다.
여동빈 신선 이야기
기왕에 신선의 도에 대하여 논할거라면 선도 최고 유명인인 여동빈 신선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자.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난 여동빈은 3세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5세에 모든 경전과 백가서를 빠짐없이 읽었다. 이런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이나 진사 시험에 떨어진다.
이때가 당나라 말기의 혼란한 시대였다. 결국 62세에 비로소 진사에 급제하여 시골의 현령으로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여동빈은 이미 세속의 욕망이 덧없음을 알고 초탈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유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객잔에서 종리권(정양진인)을 만나게 된다. 종리권은 후대에 당팔선(唐八仙)의 우두머리로 불리우는 유명한 신선이다. 이 분에게 선도의 요체를 전수 받는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 동빈이 사람들 중에서 인연 있는 자를 가려 장생술(長生術)을 전하려고 빗 장수로 변장하여 거리에서 외치기를~" (증산도 道典 7:84)
여동빈은 수도 67세에 금단대도(金丹大道)를 성취하게 된다. 그의 스승인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승천하여 함께 일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여동빈은 의외로 이런 말을 한다. "반드시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떳떳히 천상계에 오를 것입니다"라고.. 스승은 이를 순순히 허락하였다. 여동빈은 불사의 금단대법을 성취하였지만 성을 깨우치진 못하였다. 불자들이 비웃는 소위 '죽지 않는 귀신', 즉 깨달음이 없이 오래만 사는 귀신같은 자라는 비아냥을 듣을 판이었다. 그러던 중 여동빈이 우연히 방문한 여산 황룡사에서 황룡선사에게 "경을 천만 겁 읽으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가르침을 듣고 활연관통하게 된다.
이후 여동빈은 상제님으로부터 천명을 받아 천하를 돌며 선연(仙緣)이 있는 자들을 찾아 나선다. 거지로 때론 여자로 변신하여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심법을 시험한다. 그 중 인연 닿아 도를 전해받는 사람들은 계급과 하등의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마음만 볼 뿐이었다. 그래서 여동빈의 제자 중에는 기생, 승려, 노비, 효자, 관리 등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중국 선도의 여러 분파들의 시조들은 대부분 여동빈에게 도를 전수 받았고 개창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두 개의 선파가 있는데, 하나는 환인-환웅-단군으로 부터 내려온 민족의 고유 선파이고, 또 하나는 중국에서 들어온 선파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선파가 곧 종리권 여동빈의 맥이다.
어쨋든 일반적으로 신선의 대명사는 여동빈 신선이다. 상제님께서도 이러한 공덕을 인정하셔서 후천선경 건설에 여동빈의 조화를 쓰신 것이다.
옥황상제(玉皇上帝)와 당팔선도(唐八仙圖).
오른쪽 맨끝의 수염이 잘 생긴 분이 여동빈 신선이다.
여동빈 신선은 항상 칼을 차고 다니는데 이유가 있다.
하루는 천 년 묵은 이무기가 많은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그 놈을 칼로 만들어 같은 사마를 응징하는데 사용한 것이다.
여동빈 신선은 천둔검법의 달인으로 중생 구제 못지 않게
사마(邪魔)를 물리치는 일종의 경찰의 도를 함께 수행하였다.
필자는 증산도 도생이라 중국의 도관을 관심있게 둘러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도관에는 항상 여동빈이 중심에 있었다. 여동빈의 스승인 정양진인 종리권과 그 스승인 동화제군의 상이 좌우에 있고 이 분들을 삼조사(三祖師)로 부른다. 도교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장 많은 사당을 가지고 있는 3대 인물이 있다. 사당이 많다는 것은 인기가 있기에 추앙받는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기도의 효과를 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이 세 분은 불교의 관음보살과 관운장 그리고 여동빈이다. 우리의 섣부른 예상과 달리 석가모니와 공자의 사당 보다 훨씬 더 많다.
그 이유는 바로 '유구필응(有求必應)'에 있다. '간절하게 구하면 반드시 응감한다'는 말이다. 이 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의 민담과 전설에 수도 없이 전해진다. 관음보살은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신이고, 관운장은 불의한 자들을 응징하는 정의의 신이며, 여동빈은 도를 구하는 구도자들에게는 빛과 같은 신이다. 아무튼 굉장히 부지런하고 일관된 분들이시니까 존경받고 숭상되는게 아니겠는가?
* 태모님께서 여동빈을 부르시고 잠시 후에 “하늘을 보라.” 하시므로 모두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선관의 모양을 이루고 서 있거늘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보이느냐?” 하시매 모두 “뵈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태모님께서 선관 모양의 구름을 향하여 명하시기를 “세계 창생들로 하여금 모두 갱소년 되게 하라.” 하시니 그 구름이 머리를 숙여 명(命)을 받드는 형상을 하며 동쪽 하늘로 물러가더라. (증산도 道典 11:298)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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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좋은말씀을 많이보고 잘배우고나갑니다 감사합니다 넘 잘배우셨어요,
고맙습니다. 다음편도 재밌을 겁니다^^
유익한 글, 무척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