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구즈 칸의 이야기는 몇 가지 사서에서 시대를 따라가면서 기록되었다. 그 사서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쓰인 사서는 1310년대 초에 모골이 서방 이란과 시리아, 아제르바이잔에 걸쳐 건설했던 일 칸국의 가잔 칸(Ghazan Khan)의 명에 따라 그의 페르시아인 재상 라시드 웃딘이 1310년대에 쓴 <집사>이고, 그 다음 15세기에 티무르 제국의 한 칸이던 울룩 벡이 쓴 <사국사>도 이 오구즈 칸의 이야기를 다시금 되풀이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그보다 좀 더 나중 17세기에 히바 칸 아불가지가 자신이 쓴 <투르크의 계보(Shecerei Terakime)>속에서 오구즈 칸 이야기를 다시 실었다.
아불가지 칸은 또 우리 말로는 <투르크의 계보(Tu'rku'n Soy Agac)>라고 번역되기 때문에 앞의 책과 같은 제목으로 번역되지만 원어로는 구별되는 두 사서를 썼다. 이 두 번째의 <투르크의 계보(Tu'rku'n Soy Agac)>를 잠시 <투르크의 계보 2>라고 불러보자. 그는 이 사서에서도 투르크의 계보 이야기를 하면서 오구즈 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이 몇 권의 사서들에 적힌 그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아담(Adam)의 시대에서 여러 대를 거쳐서 라멕(Lamek)의 아들 노아(Nuh)의 시대에 하늘(Tanri)의 명으로 홍수가 넘쳐 모든 사람들이 죽고 오직 노아의 3아들과 그 색시들만이 남았다. 그들은 주디(Cudi) 산에서 방주에서 내렸다. 노아는 큰 아들 함(Ham)을 힌두(Hint)로, 삼(Sam)을 이란(Iran)으로, 야페스(Yafes)를 북극(kuzey kutbu)로 보냈다. 노아는 그들에게 “아담 아들들 가운데 너희들 셋 밖에 남지 않았다. 너희 셋은 세 유르트(나라)에서 살도록 하라. 가문이 불게 되면 그 땅을 나라로 하여 살도록 하라.” 고 했다.
야페스에 관해 어떤 이들은 선지자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아니라고 한다. 야페스는 아버지의 명으로 주디 산에서 이딜(Itil, 볼가, Volga)와 야익(Yayik, 우랄 Ural) 강에 가까운 곳에 가서 250년을 살고 죽었다. 그에게는 8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 가문들이 불어났다. 아들들의 이름은 투르크(Tu'rk), 하자르(Hazar), 사클랍(Saklab), 루스(Rus), 밍(Ming), 친(Cin), 키마리(Kimari), 타리흐(Tarih)이다. 야페스가 죽을 때 큰 아들 투르크(Turk)를 옆에 두고 다른 아들들에게 “투르크가 너희들 자신의 파디샤(padishah, 王)가 되어 그의 말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투르크에게 야페스오글루(Yafesoglu)라는 이름을 주었다. ... 투르크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투툭, 하칼, 바르사차르와 엠락이다. 투르크가 죽자 파디샤자리는 큰 아들 투툭에게 주었다.... 그는 아젬(Acem: 이란)인들의 최초의 왕인 키유마르스(Kivmars)와 동시대 사람이다.... 사냥을 하다가 (소금)땅에 떨어진 고기를 먹어보니 맛이 좋아, 소금을 쓰게 되는 방법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들 일체한(Ilcehan)이 그의 자리에 올랐다. ... 일체한이 죽자, 그 자리에 아들 딥바쿠이 한(Dibbakuy Han)이 올랐다. ‘딥’의 뜻은 왕의 자리, ‘바쿠이’는 백성과 나라의 수령이라는 말이다. ... 그 뒤 구육 한(Kouyouk Han)이 권좌에 앉았다.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린 뒤 왕관을 알린자 한(Alinca Han)에게 주었다. 알린자 한도 많은 해들을 통치한 뒤 마침내는 사람들이 가야 할 곳으로 갔다. 노아에서 알린자 한에 이르기까지 모든 야페스 후손들은 올바른 종교(din)을 믿었다....
알린자 한의 두 아들이 있었다. 쌍둥이로 났다. 큰 아들의 이름은 타타르(Tatar), 작은 아들은 모골(Mogol)이다. .... 타타르 한(칸)은 많은 해들을 통치한 뒤 죽었다. 그 자리에 가문의 7명의 사람들이 뒤를 이어 왕좌에 앉았다. 타타르 한 뒤에 부카 한(Buka Han)이 자리에 올라 긴 시간을 통치했다. 그 뒤 아들 옐렌제(Yelence), 옐렌제 한 뒤에는 아들 아들르 한(Adli Han)이 이었다. ....[*이 뒤로 타타르 칸의 8세대 칸의 이야기가 세빈치 한(Sevinchi Han)까지 나오나 이는 줄임]
한편 [*앞서 말한 타타르 칸의 쌍둥이 형제인 모골 가계의 시조] 모골 한(칸)은 오랜 해들을 파디샤로 통치했다. 4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은 카라한(Karahan), 둘째는 우즈한(Uzhan), 셋째는 쿠즈한(Kuzhan), 넷째는 쿠르한(Kourhan)이다. 그가 죽자 자리를 카라한에게 남겼다. 카라한은 아버지 뒤에 모든 나라의 파디샤가 되었다. 오늘날 이름은 울룩 닥(Ulug-dag)과 쿠축 닥(Ku'chu'k-dag)인 아르 닥(Ar Dag)과 카르 닥(Kar Dag)에서 여름을 지냈다. 겨울이 오면 카라쿰(Karakum)에서 시르 강(Sir Suyu) 가에서 겨울을 났다.
카라한 시대에 모든 모골인들은 카피르(Kafir, 이교도, 불신자)가 되었다.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진실한 탕그리(Tanri, 하늘, 하느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뒤로 알린자 칸의 아들 타타르 칸과 모골 칸 형제, 그 중 모골 칸의 아들 카라한의 아들 오구즈 칸의 행적 이야기가 자세히 이어지는데 이는 줄임] 이 계보는 각각의 인물에 관한 짧은 이야기와 함께 모골 칸의 아들 카라 한(칸)의 아들 오구즈 칸, ... 균 한(칸), 아이 한(칸), 일디즈 한(칸), 멩클리 한(칸), 뎅기즈 한(칸), 일 한(칸)의 모골 칸 9세대로 이어진다.
일 한(칸)(Il Han) 다음으로는 라시드 웃딘이 쓴 <집사>가 말하는 “투르크와 모굴” 사이의 대전쟁이 일어난다. 이는 달리 울룩 벡이 쓴 <사국사>가 말하는 “타타르와 모굴” 간의 대전쟁이다. 그 이야기의 구체적 내용은 여기서 줄인다. 단지 간단히 말하자면, 모골 종족의 일 한(일 칸)의 시대에 타타르 종족의 수윤지(세빈치 칸)이 키르그즈(키르기즈) 칸과 모의하여 모골 종족에 대한 대전쟁을 걸어온다. 일 한의 모골종족은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처음에 승승장구한 이 전쟁은 마침내 모골 종족의 참패로 끝나고 모든 병사가 전사했다. 그 참혹한 전쟁에서 전멸당한 모골 종족 가운데서 오직 일 한의 아들 키얀과 그의 종형제(종조카) 노쿠즈 두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적군의 포위를 뚫고 어스름을 틈타 그들의 갓 혼인한 각각의 두 아내와 몇 명의 시종들을 데리고 사서들이 전하는 전설적인 모골-투르크 종족의 고향 에르게네 콘(*<집사>와 <사국사>의 아르카나 콘)이라는 지방으로 피신해 들어가 살았다.
많은 세월이 흘러 그 두 사람의 후손이 점차 불어나 그들은 각각 키야트 종족(씨)과 다를라킨 종족(씨)이 되고 그 결과 그 장소가 좁아졌다. 그러자, 그들은 마침내 그 에르게네 콘에서 빠져나오기로 하고 철광석으로 둘러싸인 그 에르게네 콘 계곡을 70마리의 소들을 잡아 거대한 풀무를 만들고 석탄을 태워 그 철광석으로 된 계곡을 녹이고 탈출한다. 예전에 바로 거기로 들어간 “키얀”과 니쿠즈 두 사람 가운데 “키얀”의 후손인 “키야트 종족(씨)”으로부터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이 태어나 그의 선조 가문이 된다.
바로 그 “키야트 종족”의 시조가 된 “키얀”의 증조부인 “팅기즈 칸=뎅기즈 한”의 19대손이 오늘날 “몽골인”으로 알려진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구즈 칸의 후손 계보는 칭기스 칸에게까지 이어지는 데, 그 “오구즈 칸”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