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조용수
-경제와 기술 발전하면서 외상 환자 숫자 줄어. 상하수도 정비가 전염병을 줄인 것처럼
-수술없이 치료 받는 외상환자 늘고, 수술실보다 중환자실 케어가 주업무인 경우 늘어
-외상외과 의사, 중증외상 외에 맹장염·복막염 등 즉각수술 필요한 질환들로 영역 확장
의학의 역사는 전쟁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서구권에서 외상센터가 유행한 것도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다. 조금 결이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2건의 총상 환자 사건이 외상센터 설립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전쟁의 시대를 지나자 외상분야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서구의 외상센터는 70년대를 넘어가며 문제점을 드러냈다. 외상 환자 숫자 자체가 줄었고, 외상을 전공으로 하는 의사 수도 줄었다.
수요도 줄고 공급도 줄었는데 자리만 남은 셈.
일단 경제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외상 환자 숫자가 줄어들었다. 상하수도 정비가 전염병을 줄인 것처럼, 안전벨트 안전모와 같은 효과적인 예방 정책의 수립은 외상 환자의 발생 자체를 줄였다.
외상 환자가 수술없이 치료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외상 치료 기술에도 변화가 있었다. 인터벤션과 같은 비수술적 치료가 자리잡았다. 이제 많은 외상 환자가 수술없이 치료 받고 있으며, 그에 따라 수술실보다 중환자실 케어가 주업무가 되는 경우가 늘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예방 정책으로 환자 발생이 줄었다. 1차 타격. 중증외상 환자는 손상 자체가 심각하여 수술조차 시도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2차 타격. 그렇지 않은 환자들도 수술없이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3차 타격.
외상외과의사는 1주일에 평균 80시간을 근무했지만, 중증환자는 1년에 고작 50명도 되지 않았다. 수술 케이스가 1주일에 1건 가량밖에 없었다. 외과의의 수술 숙련도가 문제로 떠오른 배경이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더구나 하나 더 고민할 게, 외상 분야 인기가 갈수록 떨어졌다는 점이다. 사고는 24시간 발생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야간 당직이 필요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외과를 전공하는 의사들은 응급 수술이나 당직을 기피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에서 Acute Care Surgery(ACS)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외상뿐 아니라 급성을 요하는 모든 외과 질환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외상외과 의사는 중증 외상뿐 아니라, 맹장염, 복막염 등 즉각 수술이 필요한 질환들로 영역 확장을 꾀했다.
외상외과 의사의 수술 건수가 늘어나면서, 수술 숙련도 유지가 용이해졌다. 수술이 늘자 의과의로서 직업적 만족감도 높아졌다.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외상이 아닌 다른 분야 외과의사들은 응급실 진료 부담이 줄어들었다. 응급실 기반의 즉각 수술은 ACS, 외래 기반의 정규 수술은 기존 외과로 역할이 분담되었다.
외상외과의 업무영역 증가는 인원 충원으로 이어졌고 그만큼 나눠야 하는 당직 개수가 줄어들었다. 외상 외과와 기존 외과 양측 모두의 번아웃을 막는 효과도 가져왔다.
ACS가 반드시 기존의 시스템보다 낫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기존의 외상센터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다만, 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생길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필요했다는 얘기일 뿐이다. 실제 서구에서 이미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경험이 있으니 우리가 참고할 자료는 충분했다.
우리는 많은 고민 끝에 Exclusive trauma center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외상센터 모델이다. 아직은 양적인 볼륨 팽창에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ACS 모델은 시기 상조라고 생각했다. 일본 등지에서 실제로 외상센터가 원활히 운영중인 점도 참고되었다. 이 시스템이 외상 치료의 궁극적 이상이라는 꿈도 작용했다.
하지만 우리는 외상센터 설립과 동시에 서구권 외상센터가 겪었던 문제에 그대로 직면하게 되었다. 낙후된 외상 분야에 비해 경제, 사회적 수준이 훨씬 높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독특한 의료제도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외상센터 이해하기 리스트>
외상센터 이해하기 # 프롤로그
외상센터 이해하기 (1)
외상센터 이해하기 (3)
외상센터 이해하기 (4)
외상센터 이해하기 (5)
외상센터 이해하기 (6)
외상센터 이해하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