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부 29
네흘류도프는 모스크바로 돌아오자마자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 원로원이 원판결을 시인했으므로 시베리아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는 소식을 마슬로바에게 전해주려고 감옥 부속병원으로 달려갔다.
변호사가 작성해준 황제에게 보내는 청원서에 마슬로바의 서명을 받으려고 지금 감옥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그는 그 청원서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이상하게도 그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다. 시베리아로 가서 유형수나 징역수들과 함께 생활할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마슬로바가 무죄 석방될 경우의 생활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는 미국 작가 소로의 말을 상기했다.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던 시기에 소로는, 노예제도가 합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나라에서 성실한 시민이 몸을 둘 유일한 장소는 감옥뿐이라고 말했다. 네흘류도프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에 이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성실한 인간이 몸을 둘 유일한 장소는 감옥이다!'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마차가 감옥으로 다가가서 구내로 접어들자 이 느낌을 피부로 체험했다.
병원 수위는 그가 네흘류도프임을 알자 마슬로바는 이미 병원에 있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어디로 갔소?"
"다시 감옥으로 송환되었어요."
"왜 송환되었을까요?" 네흘류도프는 물었다.
"원래가 그런 족속 아닙니까, 각하"하고 수위는 멸시하는 듯한 엷은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병원 조수하고 붙어먹어서 원장이 쫓아보낸 거죠."
네흘류도프는 마슬로바와 그녀의 정신 상태가 자신에게 이토록 밀접해져 있을 줄은 정말이지 생각도 못 했었다. 이 소식은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커다란 불행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참으로 괴로웠다. 이 소식을 듣고 처음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정신 상태가 차츰 다라져간다고 적이 기꺼워하던 자신이 제 논에도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의 희생을 받아들이고싶지 않다던 그 말도, 비난도, 눈물도 모두 되도록 멋있게 그를 이용해먹자는 타락해버린 여자의 온갖 솜씨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보니, 마지막 면회 때 이미 지금 드러난 교정할 수 없는 타락의 증세가 보인 것 같기도 햇다. 거의 본능적으로 모자를 쓰고 병원을 나설 때 이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자, 이제부턴 어떻게 한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한테 매여 있는 걸까? 그녀의 이러한 행동으로 나는 이제 그녀에게서 풀려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순간, 만약 자기가 해방된 기분으로 그녀를 버린다면 자기 바람처럼 그녀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벌하는 것뿐임을 깨달았다. 그는 두려워졌다.
'말도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결심을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내 결심을 굳게 해줄 따름이다. 그녀는 그녀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면 된다. 병원 조수와 그런 짓을 한다 해도 상관없다......내가 할 일은 양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타일렀다. '내 양심은 내가 저지른 죄를 보상하기 위해 자유를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형식상으로나마 결혼을 하고 어디로 유배되든 그녀를 따라가겠다는 내 결의는 언제까지라도 변해서는 안 된다.' 그는 고집스럽게 자신에게 말하고 병원을 나와 단호한 발걸음으로 감옥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으로 다가간 그는 마슬로바를 면회하러 왔다고 소장에게 전하도록 당직 간수에게 부탁했다. 네흘류도프를 잘 아는 당직 간수는 특별히 호의를 베푸는 뜻에서 감옥 안의 중대 소식을 알려주었다. 예전 소장은 해임되고 그 후임으로 다른 엄격한 소장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굉장히 엄격해져서 곤란합니다." 간수는 말했다. "마침 소장이 자리에 계시니까 곧 전하긴 하겠습니다만."
간수의 말대로 소장은 감옥 안에 있었으므로 이내 네흘류도프한테로 나왔다. 신임 소장은 광대 뼈가 툭 불거지고 키가 큰 건장한 체구의 사내였는데, 동작이 너무 느려서 음울한 인상을 풍겼다.
"면회는 정한 날에 면회실에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네흘류도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황제 폐하께 올릴 청원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왔습니다."
"저한테 맡기십시오."
"내가 직접 그 여죄수를 만나야 할 용무가 있어서요. 전에는 언제든 허가를 받곤 했습니다만."
"그건 이전 얘기죠." 네흘류도프에게 힐끗 시선을 던지며 소장은 말했다.
"현 지사가 발행한 허가증도 있습니다." 지갑을 꺼내면서 네흘류도프는 강경하게 말했다.
"보여주십시오." 소장은 여전히 상대방의 눈은 보지도 않고 말하더니, 둘째손가락에 반지를 낀 꺼칠꺼칠한 흰 손으로 네흘류도프가 내민 서류를 받아 들고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럼 사무실로 들어오십시오"하고 그는 말했다.
이번에는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다. 소장은 자기가 직접 면회에 입회할 작정인 듯 탁자 앞에 앉아서 거기 놓인 서류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네흘류도프가 정치범 보고두호프스카야를 면회할 수 없겠느냐고 묻자, 소장은 간단히 그럴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정치범과의 면회는 허가하지 않기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서류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체했다.
보고두호프스카야한테 전할 편지를 호주머니에 가지고 온 네흘류도프는 죄를 저지르려다가 실패하여 탄로 난 사람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슬로바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소장은 얼굴을 쳐들고, 그러나 마슬로바나 네흘류도프는 외면한 채 말했다.
"자, 그럼 어서 만나보십시오!" 그러고는 또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슬로바는 전과 마찬가지로 흰 재킷에 스커트를 입고 머릿수건을 쓰고 있었다. 네흘류도프에게 다가와서 그의 시큰둥하고 차가운 얼굴을 보자,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눈을 내리깔고는 한 손으로 재킷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네흘류도프에게는 그녀의 당황해하는 꼴이 병원 수위의 말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네흘류도프는 전번과 같은 태도로 그녀를 대하려 했으나 악수를 청하려 해도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그토록 혐오의 감정을 일으켰다.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왔소." 그는 손을 내밀지 않고 그녀의 얼굴도 똑바로 보지 않으며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원로원에서 기각되었소."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는 숨 가쁜 듯한 이상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 같으면 네흘류도프는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럴 줄 알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만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추길 따름이었다.
소장이 일어나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네흘류도프는 지금 마슬로바에게 심한 혐오를 느꼈으나, 그래도 역시 원로원의 기각에 대해 유감을 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절망해선 안 돼요." 그는 말했다. "황제께 청원서를 내면 잘될 테니까. 나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고....."
"전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눈물에 젖은 약간 사팔뜨기 눈으로 호소하듯 그를 쳐다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그럼 뭐요?"
"병원에 들르셨다니까 거기서 분명 저에 대한 소문을 들으셨을 텐데요...."
"그래서 어쨌단 말이오? 그런 일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오." 미간을 찌푸리며 네흘류도프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병원 얘기를 꺼내자, 가까스로 가라앉으려던 모욕받은 긍지로 인한 냉혹한 감정이 다시금 새로운 힘으로 그의 마음속에서 머리를 들었다. '나는 어엿한 귀족이다. 어떤 상류사회 아가씨라도 나와의 결혼을 행복으로 알 것이다. 그러한 내가 이런 여자의 남편이 되어주겠다고 하는데 이 여자는 그사이를 못 참아 병원 조수 따위와 정을 통하지 않았는가'하고 그는 증오에 찬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면서 생각했다.
"자, 여기 청원서에 서명하시오." 그는 호주머니에서 커다란 봉투를 꺼내 탁자에 놓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스카프 끝으로 눈물을 닦고 탁자 앞으로 다가서며, 어디다 어떻게 쓰면 되느냐고 물었다.
그가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한다고 가르쳐주자, 그녀는 왼손으로 오른손 소매를 매만지면서 탁자 앞에 앉았다. 그는 마슬로바의 등 뒤에 선 채, 흐느낌을 참지 못해 이따금 떨리는 그녀의 등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선과 악의 두 감정이 싸우고 있었다. 모욕당한 자신의 긍지와,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후자가 승리를 거두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것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깨닫고 지금 그녀를 책망하고 있는 자신의 죄나 추행을 생각해낸 것이 먼저였는지 분명치 않았으나, 어쨌든 그는 갑자기 자신의 죄가 깊음을 깨닫는 동시에 그녀를 가엾다고 느꼈다.
그녀는 청원서에 서명을 하고 잉크가 묻은 손가락을 스커트에 문지르고 나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건, 또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건 내 결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요." 네흘류도프는 말했다.
그녀를 용서한다는 생각이 그녀에 대한 연민과 상냥스러운 감정을 한증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어졌다.
"나는 말한 대로 실행하겠소. 당신이 어디로 추방되든 함께 따라가겠소."
"쓸데없는 일이에요." 그녀는 얼른 가로막았으나 그 얼굴은 온통 환하게 밝아진 것 같았다.
"여행중에 무엇이 필요할지 잘 생각해두시오."
"특별히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소장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네흘류도프는 주의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녀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요한 기쁨과 마음의 평안과 만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마슬로바의 어떤 행동도 그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바꿀 수 없다는 의식이 네흘류도프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완전히 새로운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게 했다. 조수와 정을 통하건 말건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자유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건 결코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신을 위해서니까.
그러나 마슬로바가 병원에서 쫓겨난 원인이 되고, 또 네흘류도프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어버린 조수와의 사건이란 이러했다. 마슬로바가 여조수의 심부름으로 달여 먹을 약을 가지러 복도 끝에 있는 약국으로 갔을 때, 공교롭게도 거기에는 벌써 오래전부터 그녀의 뒤를 추근추근 쫓아다니던 여드름투성이 키 큰 조수 우스티노프가 혼자 있었다. 마슬로바가 끌어안으려고 덤벼드는 사내의 손을 뿌리치고 힘껏 떼밀자, 사내는 약 선반에 부딪히고 선반에서 유리병 두 개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때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병원장은 기물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고, 그 순간 새빨갛게 상기되어 뛰쳐나오는 마슬로바를 보고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봐, 여기 와서까지 망측한 짓을 하면 내쫓고 말겠어. 대체 왜 야단이야?" 원장은 조수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안경 너머로 엄하게 노려보았다.
조수는 쓴웃음을 흘리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원장은 얘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얼굴을 들어 이번엔 안경알을 통해서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병실로 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날로 소장에게 마슬로바 대신 좀 더 품행이 얌전한 여자를 간호조수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마슬로바와 병원 조수의 관계란 요컨대 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필이면 사내와 정을 통했다는 누명으로 병원에서 내쫓긴 것이 마슬로바는 특히 원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잖아도 벌써부터 싫증이 날 대로 난 남자들과의 육체관계는 네흘류도프를 만난 뒤로 더욱더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환경으로 판단하여 모든 사내가, 심지어는 그따위 여드름투성이 조수조차도 그녀를 능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냉정하게 거절을 당하면 도리어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고, 그녀 스스로 제 몸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느끼게 했다. 오늘도 그녀는 네흘류도프를 만나는 대로 부당한 누명에 대한 변명을 해보려고 했다. 언제든 그의 귀에도 들어갈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명을 시작하려다가, 그래 봐야 그가 믿지도 않을 테고 자기변명이 도리어 그의 의혹을 확증해주는 데 지나지 않을 것 같아서, 눈물이 목구멍으로 솟구침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마슬로바는 두 번째 면회 때 네흘류도프에게 자기 입으로 분명히 말했듯, 자신은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으며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벌써 오래전부터 또다시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바라는 것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실행해가고 있었다. 술도 담배도 끊었고, 교태 부리는 짓도 그만두었고, 간호 조수로 병원에도 들어갔다. 결혼하려 드는 희생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그가 말을 꺼낼 때마다 그토록 깨끗이 거절해온 것도 자기가 일단 입 밖에 낸 자랑스러운 말을 되뇌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의 결혼이 그를 불행하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희생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었으나, 네흘류도프가 자기를 경멸하여 여전히 옛날 그대로의 여자로 여기고 자기 마음속에 생긴 변화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괴로웠다. 지금 네흘류도프는 그녀가 병원에서 무슨 망측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일이 그녀에게는 징역형 최종 판결이 내렸다는 소식보다 더 괴로웠다.
부활 2부 30
마슬로바가 첫 번째 이송대에 끼여 보내질지도 몰랐으므로 네흘류도프는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시간이 있다 해도 도저히 다 처리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이라는 것이 이전과는 사뭇 성질이 달랐다. 이전에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짜내야 했고, 일의 흥미도 오직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 한 개인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흥미가 자기 자신에게 기울어져 있었는데도 그 당시는 무슨 일이건 모두 지루했다. 그런데 이젠 모든 일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 관한 일뿐인데도 전부 다 흥미로울뿐만 아니라 매력적이며, 더욱이 그런 일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의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은 모두 언제나 짜증이 나고 화를 돋을 뿐이었는데 타인을 위해서 하는 현재의 일은 대개 즐거운 기분을 자아냈다.
이때 네흘류도프가 전념하는 일은 세 종류로 나뉘었다. 그는 늘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는 습관대로 그렇게 분류하고, 그 분류에 따라서 가방 세 개에다 각각 서류를 나누어 정리했다.
첫 번째는 마슬로바와 그 구출에 관한 일이었다. 이젠 황제 앞으로 제출한 탄원서를 지지받기 위한 준비와, 시베리아로 떠날 채비를 하면 된다.
두 번째 일은 영지 정리였다. 파노보에서는 지대를 농민들의 공동 비용으로 충당한다는 조건으로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이 협정을 확고히 하려면 계약서와 유언장을 작성해 서명을 해두어야 했다. 쿠즈민스코예에서는 역시 그가 정한 대로 자신이 지대를 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 기한을 정해야 했고, 또 그 돈에서 얼마나 생활비에 충당하고 얼마나 농민들을 위해 남겨줄지 정해야만 했다. 시베리아로 가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이미 수입을 반으로 줄이기는 했으나 나머지 수입까지 완전히 포기할 만한 결심은 서 있지 않았다.
세 번째는 점점 늘어가는 죄수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처음 한동안 도움을 청해오는 죄수들과 접촉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들의 운명을 가볍게 해주려고 애써서 청원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부탁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나 많아져서 그들 하나하나를 도와줄 수가 없음을 깨닫고, 부득이 네 번째 일을 다시 만들게 되었다. 최근에는 다른 무엇보다 이 일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네 번째는 이른바 형사재판이라고 하는 이 놀라운 제도가 대체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어디서 출현했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곳 수감자들과 친숙해진 감옥이라는 것도, 또 그에게는 참으로 기이한 이 형법에 희생된 몇백 몇천의 사람들이 무참히 고생하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감옥에서 사할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감금 시설로 치더라도 모두가 형사재판의 결과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죄수들과의 개인적인 교류, 변호사와 감옥 사제와 소장에게서 들은 이야기, 죄수들의 수기 따위를 통해 네흘류도프는 보통 범죄자라고 불리는 죄수들이 다섯 부류로 나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첫 번째 부류는 방화범 혐의를 받은 저 메니쇼프처럼, 또는 마슬로바처럼 순전히 오판에 희생된 전혀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이 부류의 죄수는 그다지 많지 않아서 감옥 사제의 관측으로는 7퍼센트 정도라고 했지만, 그들의 처지는 특히 네흘류도프의 관심을 끌었다.
두 번째 부류를 이루는 것은 격노라든가, 질토의 발작이라든가, 주정이라든가 하는 특수 사오항에서 저지른 행위 때문에 재판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사람들도 만약에 그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십중팔구는 그런 범죄를 저지를 것임에 틀림없었다. 네흘류도프가 보는 바로는 이 부류가 전체 죄수의 거의 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세 번째 부류는 자신들 생각에 따르면 매우 당연한, 오히려 좋다고도 믿어지는 행위를 했는데도 그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법률을 쓴 인간이 범죄로 판단해 처벌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이 부류에는 밀주를 팔거나 들여온 사람, 대지주의 숲이나 국유림에서 풀을 베고 장작을 마련한 사람들이 속했다. 도둑질로 생활을 이어가던 산사람이나 교회 재물을 노략질한, 신앙이 없는 사람들 따위도 이 부류에 속했다.
네 번째 부류를 형성하는 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사회의 평균 수준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 무리에 끼어든 사람들이었다. 분리파 교도가 그렇고, 독립을 외치며 폭동을 일으킨 폴란드인이나 체르케스인도 그렇고, 반정부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은 사회주의자며 파업 참가자들인 정치범도 그렇다. 사회의 가장 훌륭한 계층에 속하는 그들의 수효는 네흘류도프가 보기에 상당수에 달했다.
끝으로 다서 번째 부류는 사회에 대한 그들의 죄보다도 차라리 그들에 대한 사회의 죄가 훨신 크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로 형성되었다. 돗자리를 훔쳤다는 젊은이를 비롯해 네흘류도프가 감옥 안팎에서 만난 다른 몇백 명이 그러했듯이, 모든 것에서 버림받아 끊임없는 박해와 유혹에 머리가 마비된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생활환경이 범죄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데까지 조직적으로 그들을 몰아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네흘류도프의 관찰에 따르면, 요즈음 그들 가운데서 그가 사귄 몇 사람, 도둑이며 살인자 대부분이 거의 이 부류에 속했다. 새로운 학파가 범죄자 유형으로 부르며,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야말로 형법이나 형벌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보는 타락하고 부패해버린 사람들도, 좀 더 가까이 사귀어본 결과 이 부류에 넣게 되었다. 이러한 이른바 타락한 범죄적이며 변태적인 사람들도, 네흘류도프의 의견으로는 앞서 말한 사회에 대한 그들의 죄보다 그들에 대한 사회의 죄 쪽이 훨씬 큰 사람들과 다를 바 없으나, 그들 자신에 대해서 사회가 현재 직접 죄가 있다는 것은 아니고 전 시대, 즉 그들의 부모나 조상들에게 이미 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그를 놀라게 한 사람은 오호탄이라는 상습 절도범이었다. 매춘부의 사생아로 술집에서 자란 그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순경보다 품성이 훌륭한 인간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도둑패에 끼어 들었는데, 반면에 비범한 유머 재능을 타고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쏠리도록 했다. 그는 네흘류도프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조차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재판관이나 감옥에 대해서, 모든 법칙과 형법뿐만 아니라 신의 계율에 대해서까지 익살을 부리지 않고는 못 배겼다. 또 한사람은 표도로프라는 잘생긴 사내로서 일단의 도둑을 거느리고 어느 늙은 관리를 살해한 뒤 금품을 강탈한 죄수였다. 그는 그야말로 부당하게 집을 빼앗긴 농부의 아들로서 그 후 군대에 징집되었고, 거기서도 장교의 정부와 놀아나 치도곤을 당했다. 그는 정열적이고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무엇이 어떻게 되든 삶을 향락하고 보자는 인간이었다. 또 그는 지금껏 무슨 이유에서든 향락을 스스로 억제하려는 인간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으며, 인생에 향락 말고 다른 목적이 존재한다는 말 따위는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네흘류도프는 그들 두 사람 다 풍부한 소질을 타고났으면서도 , 내버려둔 식물이 제멋대로 자라기도 하고 비뚤어지기도 하듯이 제멋대로 자라 비뚤어진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또 그 우둔함과 잔인성 때문에 반발심을 불러일으키는 한 부랑자와 한 여자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서 이탈리아 학파들이 말하는 범죄자 유형을 찾아낼 수는 없고 다만 개인적인 불쾌한 인상을 주는 인간을 보았을 뿐인데, 그런 종류의 인간이라면 연미복을 입거나 레이스로 장식한 호화로운 옷을 입은 사람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과 똑같은 다른 사람들은 자유의 몸으로 세상을 활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을 재판하기까지 하는가. 바로 이것이 네흘류도프가 몰두해 있는 네 번째 일이었다.
처음 한동안 네흘류도프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 찾아내리라 기대하고 이 문제에 관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롬브로소(이탈리아의 범죄인류학 창시자), 가로팔로(이탈리아의 범죄학자), 페리(이탈리아의 범죄학자), 리스트(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평론가), 모즐리(영국의 심리학자), 타르드(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등의 저작을 사서 그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더욱더 환멸을 느낄 뿐이었다. 학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즉 저술을 하고 논쟁을 하고 교수를 하기 위해서 학문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근한 인생 문제를 해결하려고 학문에 임하는 인간이 으레 맛보는 것을 그도 역시 경험했다. 과학은 형법에 관한 매우 복잡하고 곤란한 여러 가지 문제에 수많은 해답을 주고는 있지만, 그가 해답을 구하려는 질문만은 아무 답도 주지 않았다. 그가 묻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었다. 다 같은 인간이면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또 무슨 권리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감금하고, 못살게 굴고, 유형을 보내고, 매질을 하고, 죽이는 것일까? 그러나 그에게 준 해답은 여러 가지 이론뿐이었다. 즉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두개골이나 다른 측량으로써 그 인간이 범죄형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는가? 범죄에서 유전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도덕이란 대체 무엇인가? 광기란 무엇인가? 타락이란 무엇인가? 기질이란 무엇인가? 기후, 음식, 무지, 모방, 최면술, 정욕 따위는 범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도대체 사회란 무엇인가? 사회의 의무란 무엇인가?.....등등에 관한 이론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네흘류도프에게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 소년에게 질문하여 얻은 대답을 상기시켰다. 네흘류도프는 그 소년에게 맞춤법을 배웠느냐고 물어보았다. '배웠어요'하고 소년은 대답했다. '그럼 다리라고 써봐라.' '다리라니, 무슨 다리요? 개 다리요?' 교활한 얼굴로 소년은 대꾸했다. 네흘류도프가 자신의 단 하나의 기본적인 물음에 대해 학술 서적에서 찾아낸 해답도 바로 그와 똑같은 반문 형식의 대답이었다.
학술 서적들에는 현명하고 학문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무슨 권리가 있기에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벌주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에 대한 해답은 없었다. 그런 해답이 없을뿐더러 모든 이론이 형벌을 설명하고 변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형벌의 필요성을 자명한 이치로 보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많은 책을 읽었는데, 일하는 틈틈이 읽어 해답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피상적인 연구 탓으로 돌리고, 오래지 않아 해답을 찾아내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최근에 이르러 자기 앞에 제시되기 시작한 해답의 진실성까지도 아직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