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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 뭔 눈이 이렇게 많이 와.”
“왜 하필 우리가 청소하는 날에 이러냐고.”
서울의 한 고교.
혁재와 시원이 하늘에서 펑펑 잘도 내려오는 눈을 욕하며(그래봤자 잘 내리던 눈이 뚝 그치겠냐만은.)
열심히 학교 주변을 쓸고 있다.
“아씨 눈오면 청소 하지 말라고 해야 되는 거 아냐?”
혁재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말한다.
“그니까~ 야, 니 팬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되냐? 나 힘들어 죽겠어어~”
일반인인 주제에 팬클럽까지 달고 있는 학교 최고의 킹카 혁재.
그런 혁재에게 시원이 살살 애교까지 치며 말했다.
“미쳤냐? 내가 왜 걔들한테 이걸 시켜.”
시원은 평소부터,
팬클럽 따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주위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혁재가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혁재는 어릴 때부터 ‘여자’에 원체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 고등학교 까지 여자를 줄줄 몰고 다녔던 혁재는 그동안 한번도 여자를 사귄 적이 없었고, 시원이 여자친구가 생긴 걸 자랑하면 한심하다는 눈길로 혀를 끌끌 차던 혁재였다.
뭐 시원도 인기가 없다거나 얼굴이 못생겼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시원보다 쪼금 더 잘나고, 쪼금 더 잘생긴 혁재 덕분에 시원의 존재가 감쳐진 것뿐이지..
그 때문에 시원은 혁재를 무지 원망했지만, 그래도 10년지기 친구를 미워할 수만 은 없지 않은가. 그냥
뭐, 붙어있을 밖에..(사실, 시원도 혁재 덕본것 많았다. 혁재 팬중에 시원과 눈이 맞아 사귄 여자도 여럿 되니까...)
“가뜩이나 달라붙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걸으라고?”
“야, 그럼 내가 말하면 되잖아~ 내가 걔네한테 혁재가 도와달래- 말하면 되잖아~”
시원이 말했다.
“됐거든? 그냥 입 다물고 청소나 하자.”
혁재가 말하자 시원은 인상을 팍 구기며 신경질 적으로 학교건물 앞 길을 쓸기 시작했다.
시원은 그런 혁재를 째려보며, 지 인기 많다고 자랑하는 거야 모야, 하며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을 듣고, 혁재가 뭐라뭐라 시원에게 소리치자 입을 빼쭉 내밀더니 입 다물고 허리를 굽히는 시원이다.
"야, 최시원.”
한참을 열심히 쓸던 혁재가 갑자기 시원을 부른다.
“왜.”
“쟤 좀 봐.”
혁재는 시원의 옷소매까지 잡아끌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혁재가 가리킨 곳은 운동장.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멀리서 봐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무슨 혼자 영화라도 찍는 줄 아는지 , 아니면 UFO를 기다리며 같은 외계인에게 신호를 보내는 중이기라도 하는지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쭉 펴고 있는 게 시원의 눈에는 정신병자로 보였다.
“푸하하, 쟤 누구야.
우리 교복 아닌 거 보니까, 울 학교 애는 아닌 거 같은데. 쟤 미친 거 아냐?”
“우와-”
혁재가 자신과 같이 저 외계인을 비웃을 줄 알았던 시원이 의외의 반응을 보인 혁재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너, 지금... 우와-라 그랬냐?”
“어.”
시원의 물음에 대답하는 혁재의 눈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정체모를 외계인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야, 이혁재, 너 미쳤냐?”
“뭐가.”
시원이 말을 걸면 대답은 꼬박꼬박 하는데, 어째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들고 있던 빗자루를 팽개치더니 운동장 중앙으로 냅다 뛰어가는 게 아닌가.
“이,이혁재! 너 미쳤어?”
시원이 몇 번이고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혁재. 결국 시원도 혁재를 잡기위해 혁재를 향해 뛰어갔다.
“헉-헉- 야, 이혁재, 너 뭐야.”
운동 잘하는 혁재를 겨우 따라잡은 시원이 혁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하지만 혁재는 이미 시원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 외계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뛰어오며 슬쩍 보니 머리가 길고 살짝 파마를 한게, 여자인 줄 알았는데, 점점 가까워지며 보니 남자다.
하얀 스웨터에 흰 바지는 헐렁헐렁한게 바람이 솔솔 들어올 것 같은데,
춥지도 않은지, 장갑도 안 낀 손으로 눈까지 만지고 있다.
근데 무슨 남자애가 저리 예쁘게 생겼는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가슴이 두근-하는 게 시원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쟤 누구야, 남자애가 뭐 저리 이뻐,
얼굴도 허옇고, 옷도 허옇고,
눈사람 외계인...’
순간 왜 그 단어가 생각이 났는지는, 시원도 모를 일이였다.
시원이 혁재 어깨에 계속 손을 얹은 체로 그 ‘눈사람외계인’을 보며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드디어 그 외계인 앞에 도착했다.
외계인은 혁재와 시원이 그 앞에 서 있을 때에야 그 둘을 눈치 채고 고개를 갸웃-하며 동그란 눈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이름이 뭐에요?”
한참을, 그 정체모를 ‘눈사람외계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혁재가 그 외계인에게 묻는다.
시원이 저 자식 미쳤구나-하고 생각한다.
“이동해....”
한참을 갸웃 갸웃거리던 그 외계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야리야리하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목소리도 야리야리하다.
“나이는...?”
“열여덟.”
혁재, 시원과 동갑이다.
혁재는 무슨 생각인지,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더니 또다시 가만히 서서, 뚫어지게 그 이동해라는 이름의 외계인을 쳐다본다.
그렇게 십분-
“야, 이혁재.. 야! 너 왜이래!”
그저 외계인과 혁재를 번갈아보던 시원이 참다못해 혁재에게 소리친다.
“야, 청소 안 할거야? 빨리 하고 집에 가야될 거 아냐!”
시원이 빽빽 소리쳐대자 혁재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그러더니 그 외계인의 손을 덥석-잡고,
“내이름은 이혁재야! 너랑 동갑!”
하더니 자기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그 외계인 손에 쥐어준다. 그러더니 또 아까 청소를 하던 곳으로 뛰어간다.
시원은 아씨- 하며 그 외계인을 힐끗 보고 혁재 뒤를 쫓아간다.
“야~! 이혁재! 이 새끼, 너 왜 자꾸 뛰어다니냐구~! 니 운동 잘하는거 자랑하냐? ”
하며 소리치는 것을 잊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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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았어.”
“뭐?”
학교에 도착한 혁재, 책상에 가방을 털석 내려놓으며, 멍하니 중얼거린다.
“어제 걔 말이야.”
시원은 어이가 없다. 이자식이 여자를 안사귀어 보더니 드디어 돌았구나,
“그치? 너도 그랬지?”
계속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혁재가 갑자기 몸을 틀며 옆에 있던 시원에게 묻는다.
“너, 진짜 미쳤냐? 뭐, 천사? 천사는 개뿔. 내 눈엔 외계인으로만 보이더구만.”
시원이 말한다. 하지만 혁재는 그런 시원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 깡그리 무시한 채,
“오늘도 올까?”
하며 중얼거린다.
시원은 어휴- 하며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혁재의 이마에 살짝 손을 대보고,
“열은 없는데”
하고 말한다.
그 후로도 하루 종일, 혁재는 멍했다.
평소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성적도 좋아서 선생님들에게까지도 이쁨을 받던 혁재였는데,
오늘은 애가 멍하니 수업에 집중도 못하고, 심지어 잠까지 자니(혁재 사전에 ‘수업시간에 잠’이라는 말은 없었다.)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오늘 혁재 아프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어떤 혁재의 팬은 감기약이니 소화제니 약국에서 이것저것 사와가지고 쑥스러운듯 몸을 베베 꼬더니
혁재 책상에 올려놓고 갔다.
하루종일 지켜보던 시원은
“어이구, 이혁재 저러고 있으니, 온 학교가 다 들썩이네.“
하며 못마땅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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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혁재. 너 괜찮냐?”
학교가 끝났다. 교실 문을 나오며 시원이 혁재에게 묻는다. 주위에서 아프다 아프다 하니 정말 아파보인다.
“나, 괜찮은데,
야 빨리 내려가자.”
혁재. 학교 끝나니까 신이 났다. 아무래도 어제 그 ‘눈사람외계인’ 때문인 거 같다.
시원은 계단을 두칸, 세칸 뛰어내려가는 혁재의 뒤통수를 보며,
“쟤가 정녕 미쳤구나.. 저거 남자에 푹 빠져있는거, 쟤 팬들이 어떻게 할지.. ”
하고 생각하다가
아마 그 남자는 하루아침에 학교 뒷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될거라는 것으로 결론짓고,
혁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야 이렇게 추운데 나와 있겠냐?”
시원이 말했다.
“응. 저기 있잖아.”
혁재가 말한다.
정말 있었다.
‘눈사람외계인’.
혁재가 또 냅다 달린다.
“아, 이새꺄, 그만 뛰어!”
하면서 시원도 달린다.
그 ‘눈사람외계인’ 앞에 섰다.
오늘은 청바지에, 위에는 뜨개질 한 것 같은 무슨 하얀 색의 희한한걸 두르고 있다.
어제 혁재가 준 장갑도 끼고 있다.
“헉- 헉- 왔구나.”
혁재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시원이 놀란다.
‘저자식이 저렇게 웃을 때도 있었어?’
하고 생각하며.
‘눈사람외계인’도 반가운듯 웃는다.
"안나올까봐 걱정했는데.."
혁재가 말했다.
'눈사람외계인',
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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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철이랑랄라 입니다.
뒤늦게, 팬픽 발견하고 처음으로 올리는 건데,
그래서 많이 허접하거든요~
그래도 너그러이 봐 주시고,
못써도 욕하지 말아주세요.ㅠ
제가 처음 써보는 거라서,
이거 대략 양이 얼마나 되는 건지 잘 모르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꽤 긴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동성팬픽'에 올리기는 너무 짧고,
그래서 고민하다가 두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이쁘게 읽어주시고~
제발코멘을~~~ㅠㅠ
첫댓글 선코네요 너무 재밌어요 ㅋ
우아,. 진짜 고맙습니다. 아 읽어주신것도 감사한뎅,,,
재밋어요 ~~~~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와 소재가 참 독특 하네요! 완전 재밌습니다 ㅎㅎ 눈사람 외계인 동해♥ 꿈에서 한번 쫌 봤음 싶어요 제가 젤 좋아하는 은해커플 크크크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