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방식의 접근은 잘못 되었다는 거죠. 제가 당신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제발 좀 버려 달라는, 그니까 제 말을. 그 요지를 다시 확인하자면 음, 그래요. 정상인이라는 혹은 조금은 뭔가 있는 사람인 듯하게 나를 보는 정말이지. 그 시선을 조금 바꿔달라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솔직히 그래요, 말하지 않은 사실을 알아 차리기는 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도 당신들이 바보는 아니잖아요. 제 생각에 당신들은 천재 인 것 같은데. 그러니 당신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바로 내가 당신들을 보는 시선이라고요. 환상을 좀 버리세요. 이건 오해하지 말고, 조금의 명령문 따위의 것은 아니고 조언이라 할까 좀 더 나와 당신들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말이라는 겁니다. 당신이여, 솔직히 말해서요 나는 내 모습을 볼 때 소름이 끼치거든요. 그 소름은 표현 해보자면, 꼭 한 마리의 짐승을 보는 듯한 그런 착각인 하지만 전혀 착각인 것 같지 않은 그런 부분이에요. 잠시 거울을 드려다 보면 이 흉측한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거울이 좀 더러워서 인지, 아주 재밌는 원숭이가 나를 쳐다보는 그런 느낌이에요. 자존감 따위는 도피 속 망상에서 만 찾을 수 있는 나만의 고지식한 마약 같은 것이죠. 하지만 내 손에는 마약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존감 같은 건 나한테 없는 요소라는 겁니다. 자존감 대신 미친 상상속의 망상만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뭐 나중에 성공한다거나, 반드시 이긴다 거나, 허망한 세월도 놀라운 의미가 있다거나 그런 망상이지요. 그런 곳에서 오는 아주 한순간에 왔다 가는 그러니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바람과 같은, 그래요 아주 태풍의 바람과 같은 만족감은 오호, 자존감으로 부를 수는 없죠, 난 바보이지만 그 정도는 고백할 수 있어요. 저는 항상 대부분의 글을 고백으로 시작해요. 그리고는 아무런 의미 없는 본론으로 들어가 있어 보이는 글을 소중히 적어내죠. 그 중간의 표현이나 그런 건 훌륭하다며 스스로를 칭찬하지만 정말 잘 보면 우울해지는 부분이 아주 많다는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우울해지자 하면 결론을 보면 돼요. 거기에는 정말 가식적인 말들과 표현들과 나름대로의 의미 있게 마무리를 지으려는 발악들이 보이거든요. 제 글은 그런 점에서 아주 멋들어지거든요. 조금 회심의 의미와 주제를 글에 담으려 한다면 그 멋진 부분은 인생과 닮아 있어요, 아 근데 좀 잘못된 표현이긴 하죠 글이 전체적으로 닮아 있다거나 이런 높은 수준 말고 그 결론 부분. 그러니까 뭐 마무리를 지을 때 있어 보이려 하는, 그러면서 정말 추악의 낭떠러지로 달려가 몸을 던지는 멍청한 판단 가운데. 말하면 그 수단에 모든 부분에, 그 판단의 모든 요소에 가식과 기만으로 떡 칠을 하는 그런 부분이 좀 닮았다는 그런 설명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제 글을 그 본론 부분이 제일 의미가 있으면서도 솔직한 것 이거든요. 제일 유용하다는 거죠 글 전체와 나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딱,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나를 보는 그 시선을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접근하려 한다면 서론을 읽어 준다면 감사할 거예요. 아, 물론 쓸데 없는 본론과 가식 덩어리 결론도 저를 평가하는데 좋은 요소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본론이 쓸데 없다는 것과 그 결론이 가식 덩어리라는 점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는 사실이 있어서. 이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실례를 범했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천재이니까 이정도는 쉽게 꽤 뚫어 볼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말을 이어 나가자면 이 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제 제일 나는 솔직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이 서론을 그만 적어야 할 겁니다, 글 길이를 잘 생각해서 조율 해야 하니까 멍청한 본론과 절망적인 결론에 쓰일 페이지를 아껴야 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짓거리를 못하는 부류라 이런 미천한 저에게 허락된 조금의 유용한 서론을 이어 나갈 힘이 태생적으로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서론을 다 쓰면 이제 다 넘겨야 마땅한 본론과 말하기도 귀찮은 결론을 적을 거고 그 내용과 의미와 제 글을 바라보는 저의 심정은 더욱 우울해 져 갈 겁니다. 마치 그것은, 좀 있어 보이게 포장한다면. 몸을 던지기 위해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사람이죠, 더욱 힘들어지는 상황속에 자갈과 모래와 가끔 있는 거지 같은 물 웅덩이에 발이 빠져 곧 쓸모 없어질 바지에 진흙이 묻고 그걸로 정말 의미 없지만 인간인 이상 빠질 수 밖에 없는 우울감에 빠져가는. 그런 과정, 그 끝에 다 달아서는 뛰어 내리는 것도 귀찮은 그런 멍청한 자신을 보며 또 절망이라는 이름에 도피처의 숨어 결정을 피하다가. 갑자기 불어온 힘 쎈 악마의 숨결에 몸이 넘어져 데굴데굴. 살짝은 본인의 힘을 보태 가며 산 아래로 떨어지는 거죠. 이 글을 포함한 제 모든 글 끝에 선 저는 항상 그 기분을 느낍니다. 그래도 이 여러 불필요한 버러지의 고백 가운데 필요한 것을, 그러니까 나를 보는 올바른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다면야 기꺼이 저는 다시 그런 감정을 느끼겠습니다. 당신들은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좀 바라봐 주시 길. 그리고 당신은 우리의 세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좀 생각해 주시 길.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러니까 좀 즐겁게 다시 몸을 던지겠습니다. 가식의 끝으로, 그리고 반드시 그 가식을 기억하십시요. 이 글을 이제부터 가식적입니다.
처음으로 저를 소개할 부분은, 음 글쎄요. 어디가 좋을까요. 일단 저의 하루를 소개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내가 당신을 또한 당신들을 인도할 차원으로도 만족일 듯싶습니다. 일단 저는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들을 비롯한 동원과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잠에서 일어나죠.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저는 인간이라는 점이고 또한 그 중에서 밑바닥이라는 것이죠. 누군가는 우연이 누군가는 자연이 그래요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답니다, 그렇게 해서 신이 내려 주었다 믿는 이 멍청한 머리를 저는 핑계로 나 자신을 죽일 정도로 위로하거나 이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망상을 할 때만 사용합니다. 그렇게 핑계를 대며 침대에 누어 마치 그대로 관의 뚜껑이 닫히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조용히 죽습니다. 다시 회고하여도, 그렇게 평생을 회고하여도 계속 똑 같은 풍경의 아침 햇살이 머리속에 그려질 따름이죠. 나는 계속 그렇게, 말하자면 평생토록 저는 죽은 체로 살았던 것이죠. 물론 압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저는 관에서 나와 기적처럼 걸어 다니기 시작하죠. 정말로 드문 그 어느 날에는 평가가 높을 만한 시간 효율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뭐 그러니 설명하면 운동을 한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하여 보기에 알차다 할 만한 그런 하루를 실제로는 죽은 자가 채워내는 것이지요. 정말 얼마나 비참해 지는지 모릅니다, 망상의 상상은 저를 높이는 척만 하지 않습니다 정물 무섭게 그 입 벌이고 있는 하수구 속의 악마같이. 죽이는 척을 죽이도록 많이 하는 이 머리는 악마에게서 온 것이죠. 내가 우울해 질 수 있는, 정말 죽을 수 있는 절망에 빠지게 하는 강한 강풍이 나의 단순한 전기자극의 뇌파에서 흘러 나옵니다. 이것이 그저 유물론적이라는 것에서 나는 다시 한번 절망하며, 진심으로 그러며 절망합니다. 하루의 24시간 중 40시간을 죽어 있으며. 그중 100시간을 나를 찌르고, 분해하며, 분쇄하고, 망치는 상상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런 시간들이 이미 죽은 나를 더욱 죽음으로 내모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모든 사실보다, 따지자면 내 눈앞에 놓인 위대한 사과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 100시간 속의 100만가지 망상들이 사실은 전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정말 죽을 만큼 말이죠. 물론 그렇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나를 살릴 뿐 아니라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더 좋게 말하자면 그래요, 나의 자존감을 높인다 거나, 목표성을 확실히 하고 뭐 그런 희망적인 것을 꿈 꾸게 하는 그런 망상이 있지요. 정말 꿈 꾸게 합니다, 절망적이게도 꿈 꾸게 하죠. 맞아요 꿈 꾸게 합니다. 꿈에 불과한 짓을 정말 꿈에 불과하다고 절망의 도장을, 맞아요 아주 쌔게 찍어 냅니다. 이런 생각은 24시간 정도에 한 100시간 정도 있겠네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주 강한 그런, 말하자면 어느 날 한 가족이 여행권에 담청 되어서 아주 재밌고 환상적이며, 진심으로 즐거움이 넘쳐나 현실의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그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 있다가, 단숨에 본인들의 원래의 집. 그 역겨운 냄새가 나는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기분입니다. 내려갈 수 밖에 없지만 내려갈 바에야 당장 모두 손을 잡고 그만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드는 기분입니다. 100만가지의 생각, 곧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사실들과 100만가지의 생각, 곧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하염없는 바람이 합쳐져 하루 24시간 중 200시간을 절망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에 마음껏 휩싸인 체 그렇게 살아 갔습니다.
관에서 일어난 죽은 버러지의 시체는 여러 나날을 보내며,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체 가끔 무엇을 먹고, 또한 가끔 배출할 뿐이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무엇보다 객관적인 나의 이 두 눈을 사용한 시선이 정말이지 참혹했습니다. 똑 같은 인간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해주지 마세요, 조심스럽지만 이건 좀 명령문의 형태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와 같은 인간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나의 생각의 형태는 아직 어렸을 때 본 트루먼쇼. 그 시트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 역겹지만 여린 마음을 마음대로 헤집어 놓지 말라는 겁니다. 왜 마음대로 인간은 다 똑같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산다는 결론을 내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당신들과 다릅니다, 그런 무슨 이상한 시선 뭐 예로 선민의식이나, 자의식과잉이나 이런 거추장하고 멍청한 것이 아니라 난 오로지 사실만을 말합니다. 나의 생각은 당신들과 다릅니다, 나를 이해한다는 조금은 공감 된다는 말하지 말아 주셨으면, 뭐 교만해 보이고 삐뚤어져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 놀라워요 천재들. 그 생각 그대로, 그것이 나입니다. 이렇게 멋대로 나가는 마음을 무언가 사회학적, 심리학적, 그런 유물론적이고 시스템적인 사상에 가두어 너 또한 그저 거대한 흐름의 일부라고 말하지 마십시요, 만약, 정말이지 그런 결정과 선언을 내 얼굴에 대고 정말 혐오스러운 침을 튀기며 말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나는 나, 이런 말을 왜 못한 다는 겁니까. 곧 이 말은 머리가 이상한, 그리고 놀랍도록 고지식한 선민의식에 둘러 쌓여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개인의 존중을 해주어라, 이 또한 하나의 의견이다. 뭐 이런 그들의 선민의식에 둘러 쌓여 있는 동정심으로 인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이해로 인해 나의 이 답답한 마음이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즉 나는 이런 이해들과 여러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과 평가와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여 난 당신들과 내가 똑 같은 인간이라는 대에 있어 확신이 없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조금의 우연으로 인한 이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 모든 구조가 다른 것이 아닐까 농담이 아닙니다, 유치한 질문과 쓸데 없는 고민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진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완전하며 불안정한 정신에 가져다 대고 개인의 차이와 생각의 결단을, 그 가치를 둔 요소를 인정하자는 건 너무 나를 고평가하는 것입니다. 아니 잘 말해 보면 잘못 평가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몰상식한 망나니들은 이런 한 생각조차, 정말 역겨운 융통성의 가식 덩어리 가면을 쓰고서는 꼴보기 싫은 미소를 지으며 “그것이 당신의 신이라면 받아드리겠습니다.” 이 딴 말을 지껄일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큰 소리로 외칠 겁니다. 아마도 그 내용은, 아니 확실하게 그 내용은 당신들이 그냥 틀렸다는 겁니다. 뭐 젠장할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를 존중하고 당신도 그러니까 나도 너도 그중 하나이고 이런 망할 생각부터가 틀렸다는 거라고요. 이것조차 그저 하나의 의견으로 놔둔다면 난 미쳐버릴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말이 안 통하고 그저 기계보다 더 기계 같게 어찌 보면 밥시간이면 그저 사료 그릇에 고개를 쳐 박는 돼지들 같이 항상 같은 레퍼토리로 똑 같은 말만 내뱉는 그 추태를 나는 제정신으로는 보고 인정할 수가 없을 거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내가 맞다는 말도 아닙니다, 나는 정말 순수하게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단 가지의 결론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 만이 유일하게 인간적인 신념과 삶의 요소로 중심의 둘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역사학자들이 또한 고고학자들이 그저 기록할 뿐인 그 기록물들처럼 나도 그저 기록할 뿐이라는 겁니다. 허무입니다, 허무. 그냥 다 틀렸다고요, 제 말을 그러니까 나도 당신도 대충 여러 신들 속의 모든 신이 젠장할 오물이라고요. 이런 조금은 유치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까, 어쩌면 정말이지 단순하게 누군가 입력해 놓은 것처럼 모두가 해대는 이 질문에 대한답은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저 망해가는 순간에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을 지. 만약 이런 행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존경을 할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존경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자유롭고도 행복하게 그렇게, 정말이지 모든 것을 외면한 체할 수 있는 그 담대함에 조금은 부정적인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나의 하루는 쾌락주의적이며, 단순하고, 간단하며 그렇고, 그렇습니다. 나에게 환경문제와 평화문제와 모든 철학적인 문제와 삶의 문제와 조금 더 나은 것이라는 문제와 방금 언급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며, 무엇의 의미를 두며 살아가는 가에 관한 문제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죠. 정말 전혀, 지나가다 밟혀 죽는 개미 한 마리 만큼이나 관련도 관심도 의미도 유흥과 흥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10년 후에 세상이 망하던, 1년후에 망하던 당장 내일 망하고 5시간이나 1시간 이후에 망한다 하여도 그런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나랑 관련 없고 나도 관심 없습니다. 난 그저 1분 후의 쾌락과 재미로 인한 의미와 혹은 내가 마음에 드는 그 한가지 요소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망상가들이 말하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 그저 나는 그렇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단 하나의 의미도 없는 잠시의 흥락을 위해 나머지 모든 부수적인 요소를 희생시키며 멍청해지고 미련해지기를 택하는것, 그런 인생이 아주 우울하고 우울하며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정말 내가 환경과 평화와 철학과 모두의 삶과 나의 삶이 나아질 요소와 모든 이가 그리고 당신들이 볼 때에 조금이나마 더 가치있고 진정성과 유용성이 있는 행동을 한다고 하여도 나는 분명 어느 부분에서 모든 것을 놓치고, 그렇게 우울감에 빠지며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며 다시 이 자리로, 자기 비판과 끝 없는 고백과 함께 가는 나락의 구렁텅이로 돌아올 것입니다. 필멸자라는 그리고 망자라는 단어를 이런 이유에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멋져 보이는 말, 한 나이대의 호감, 한 순간의 유용성 따위의 시선에서가 아니라 이 단어는 나의 소개말로 아주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젠장할 망자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정말 의심해서 얻는 것은 하나 없고, 진리의 답과는 멀어져 가도. 아, 사실은 그 진리의 여부도 모른 체 어느 하나 확정을 내리지 못한 체 그저 모든 것의 물음표만을 붙이며 살아가다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얻지 못하고, 남기지 못한 체 가련히 죽고 마는. 이런 필멸자의 하루와 이것들이 이어져 이루는 하나의 끝없는 나락선, 그 마지막 마침표에 대해 생각해 볼 때면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어느 공허한 허공에 알몸으로 뛰어들어 숨을 천천히 아주 괴롭지만 평안하게 내쉬고 싶은 기분입니다.
아침 해가 뜨고 울리는 비둘기 소리, 그 울리는 짐승 곧 동물의 소리가 저를 참혹하게 합니다. 옆에는 형제라 부르는 이의 괴롭고 따분한 기지개 소리가 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더러운 방귀를 뀝니다. 재미로 넣는 글 귀가 아니에요, 난 진지합니다. 웃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상황들이 나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어쩌면 나의 당신들 중 하나일 당신이여, 곧 하늘의 계신 전지전능한 인격적 신이여.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대단한 결단을 하며 말하자면 좋게 말하여 고백하자면. 나와 당신은 사는 곳이 다르고, 말하는 장소가 다르며 이해하는 그 땅과 지반이 다릅니다. 무슨 방식으로 나를 설득 시키려 다가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허무라는 늪에 빠진 나를 어찌 구하려 하는 지 모르겠지만 다시 언급하자면 당신이 나를 보는 이런 방식은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 기도를 한다고 하여도 나는 여기에 당신은 저기에 있습니다. 저기가 어디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여기는 아닙니다. 그러니 나는 여기에서 저기 있는 당신을 안을 수 없으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며, 당신도 나에게 정확하고도 확실한 그 무언가를 전달 할 수 없습니다. 지반이며 기반이 다릅니다. 반면 나의 허무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모든 망할 것과 빌어먹을 것과 그것들로부터 나온 나의 모든 요소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어질 말로는 당신은 여기에 없습니다. 애초에 있어서도 안 되며 그렇습니다. 또 다른 당신들에게 말해봅니다. 나도 솔직히 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실 나는 나의 모든 것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신체와 정신과 내 주변의 필멸할 모든 것들에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정신체계가 너무할 정도로, 그러니 말하자면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난 어째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당신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이 허무와 절망과 우울을 조금이나마 그러니까, 아주 소수의 정도만이라도 아울러 헤아려 주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나는 모든 가치를 빼았겼다고 할까요, 아니면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고 할까요. 뭐가 되었든 나에게 남은 것이 없습니다. 조금의 연민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동정심이나, 연민이나, 이런 감정 팔이나 이런 걸 진심으로 혐오하지만 그래도 인간이여서 그러니까 짐승이어서 그런 걸 조금은 많이 원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지만 난 압니다. 어찌 당신들이, 그리고 저기 있는 당신이 나를 알겠습니까, 이해하며 음, 그러니까 뭐 위로나 이 따위의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모르기에, 이런 글을 쓴 것입니다. 잠시의 무의미한 고백 아닌 감정과 글과 감상과 작동적이지 않은 곧 기계적이지 않은 배출을 위하여 이런 글을 쓴 것입니다. 나도 나를 몰라 이런 글을 쓰는데, 어찌 타인에 대하여 그러니 당신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겠습니까, 모든 관계와 위치에 대한 환상도 다 똑같구나 하며 깨지기 마련이지만 다 똑같다 여기는 그 순간에 무한한 그 내면의 울림은 나는, 그 개인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해하는 척, 알아듣는 척, 감사하는 척 우리는 기만이라는 이름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여 그 어둡고 알 수 없는 부분을 연기로 메꾸는 데 어찌 타인에 대해서는, 그러니 당신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기만이야 말로 너무나 우울한 것이며, 허무하고 필멸자의 가장 추한 것이지만, 기만이야 말로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가장 놀라운 결정, 가장 이타적이고 이성적인 결정 사항인 것이. 이런 인간의 시스템이 싫습니다. 죽어야만 하며, 넘어져야만 하고, 즐길 수 없고, 고민해야 하며, 나아가야 하고, 실망해야 하고, 결단해야 하며, 절망해야 하고, 뭉쳐야만 하며, 이해해야만 하고, 인정해야 하고, 괴로워 해야 하며, 외로워야 하고, 걱정해야 하며, 숨겨야 하고, 분노해야 하며, 반박해야 하고, 비난 받아야 하고, 갈등해야 하며, 갈라서야 하고, 죽여야 하며, 복수해야 하고, 짜증내야 하며, 무한히 기만해야 하는 이런 인간상이 지옥이 아니라면 무엇이 지옥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