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고>같이, 영화산업이 갖는 규모의 최대치를 가뿐히 능가하는 영화를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수(數)가 따라붙는다.
이를 테면, 제작비 63억원, 촬영 11개월, 후반작업 6개월, 촬영횟수 162회 등등.
이 같은 한국 영화산업에서 보기 드문 규모는(아직까지 이에 맞먹는 영화로는
같은 제작사인 싸이더스 우노의 <무사>밖에 없을 것이다)
<화산고>가 치밀하게 계산된 기획이거나 아니면 과도한 열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화산고>는 치밀하게 계산된 기획이라고 하기엔 번번이 발을 헛디디기 일쑤고,
과도한 열정이라고 보기엔 상상력의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분명 흥미로운 기획이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다분히 진부하다).
즉, 그것은 지금의 영화산업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 순도의 엔터테인먼트에도,
지나친 열정이 이끌리기 마련인 키치적 농담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학원과 무협의 결합, 현실 공간과 상상 공간의 접합. <화산고>의 초반 20분은
화산고라는 무대와 등장 인물들을 설명하는데 할애된다.
이를 위해 무협물 특유의 현란하면서도 지극히 상투적인 수사 어구들이 총동원된다.
'때는 화산 108년'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17년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교사화와,
이후 형성된 화산고의 두 축, 이른바 자유방임교육의 교장 장오자와
질서획일화교육의 교감 장학사를 소개하고,
이어 군웅할거하고 있는 교내 서클들과 각각의 고수를 열거한다.
그러나 화산고는 기본적으로 법도 질서도 없는 아나키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여기엔 무협물이면 으레 등장할법한 무림에서 통용되는 법도나,
강호의 의리, 수련과 대결을 거듭하는데 따르는 대의명분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는 교감부터 아래로는 하급 서클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화산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서(秘書) 사비망록을 얻어 화산 천하를 손에 쥘 그날을 꿈꾼다.
그런 이곳 화산에, 선천강기를 주체하지 못해 매번 말썽에 연루되어
퇴학을 거듭한 김경수(장혁)가 당도한다.
무협의 상투어는 만화적인 화법과 만나 화면을 누빈다.
성우의 내레이션은 동시에 자막으로 보여지고, 갖가지 와이퍼 효과를 이용해
컷이 넘어가고, 다수의 인물이 액션을 펼치는 데서는 분할 화면이 사용된다.
혹은 경수의 고달픈 학교생활을 회고하는 장면에서는 난데없이
'쎄서 슬픈 사나이 청춘잔혹사'라는 유치찬란한 자막과 함께
비내리는 흑백필름으로 찍은 경수의 청춘사가 재현된다.
아울러 70년대 한국영화에나 등장할법한 대사("남자가 할 짓이 아니다")
나 웨스턴의 음악도 아낌없이 재활용된다.
몇몇 폼생폼사역(이를테면 교내 일인자 송학림과 검도부 주장 빙옥 유채이)과
악당(학원5인방)을 제외하면 <화산고>의 연기법 역시 코미디의 그것을 따른다.
특히나 선천강기를 숨기고 참을 인 자를 세 번 되뇌며 속없는 척하는 경수를
연기한 장혁은 일찍이 TV드라마 「왕룽의 대지」에서 가능성을 드러낸 코믹한 마스크를 본격적으로 이미지에 새겨넣고자 애쓴다
(그것은 지금껏 그가 줄서 있었던 한국 남자배우의 이미지,
가까운 예로는 최민수와 정우성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비껴가도록 한다).
<달마야 놀자>의 김수로는 본명(장달춘)을 뒤에서 비웃는 아이들게
"나, 장량이야"를 기회가 되는 데로 반복하며 과장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이 영화라곤 처음 출연하는 배우들은 발성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아
대사를 씹어 가뜩이나 사운드 설계가 엉성한 영화에서 내용 전달을 방해한다.
<화산고>는 (산만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설정 하에 마치
'재활용하지 못할 게 무어냐'는 듯이 마음껏 서브컬처를 끄러 모을 듯한 태세를 취하지만,
결과는 과장되지 않고 진부한 결말인 학생과 선생의 대결로 이끌린다.
특히나 <화산고>가 그토록 자랑하는 와이어와 CG의 힘을 빈 액션에 돌입하면
영화는 참을 수 없는 지루함으로 곤두박질친다
(단 하나의 액션 컨셉으로 매 신을 지탱하려니 공력이 달릴 수밖에).
선천강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경수가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혀온 마방진(허준호)와
대결하는 15분에 달하는 액션 신에 이르면 갈등의 고조도 액션의 쾌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값비싸고 요란한 화학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결말로 이끌리는 것을 보며
관객은 사랑도 혐오도 품지 못한 채 '그래서 뭐 어쩌자고?'라는 시니컬한
물음이나 절로 되묻게 될 것이다.
그렇담 그들은 어찌 되었는가?
각 서클은 사비망록을 습득해 새로이 일인자가 된 경수를 스카우트 하느라 혈안이고,
지존의 자리답게 경수에게는 끊임없는 도전이 쇄도한다.
앙숙인 교장과 교감은 어찌 됐든 바둑을 함께 두며,
악랄한 학원5인방은 죽지 않고 이제껏 해온 대로 학생들을 괴롭히고 다닌다.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화산고>가 학원물로써 현실을 직시하는 듯 보이는 유일한 순간이다.
nkino 란 데서 펐습니다..
쩝..동감하는 부분입니다..
좀 더 발전하는 계기로 삼자!
아직 한국영화가 갈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소재의 신선함으로도 화산고는 나름대로 승리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중후반의 지리한 액션씬은 지루하기 짝이없었고
솔직히 다 보고 났을 때 극장의 사람들이..
이게 뭐야..하면서 그래서 어쨌다고..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돈 아깝다는 소리와 유치하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소재의 독특성만은 끝까지 칭찬해주고 싶네요..
연기자들 연기미숙은..-_- 별 수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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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후기†
<화산고> - 요란하지만 뜨뜻미지근한 화학반응
체리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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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2.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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