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2년 12월 7일) 새벽 중동의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 16강전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경기가 있었다. 바로 스페인과 모로코,모로코 대 스페인간의 경기이다. 스페인은 이번 월드컵에서 유력한 우승후보이다. 역대 월드컵 역사상 스페인은 항상 우승후보였다. 그들이 가진 닉네임이 바로 무적함대이다. 스페인의 해군력 그리고 그들의 이른바 대항해시절 , 무자비한 정복시절 다시말해 식민지에 광분한 그런 시절 붙여진 이름 아니든가. 그런 막강한 스페인이 아프리카의 모로코에게 밟혔다. 밟혔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요즘 시쳇말로 발렸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기는 0대 0. 승부차기끝에 모로코가 3대 0 승을 거뒀다. 경기후 모로코 수도 라바트 중심가에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까지 동참해 온 나라가 축제속에 빠져들었다. 스페인인들은 불편하고 기분이 나쁠 지 모르지만 그들속에 숨겨진 흑역사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몇년전 스페인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나무들의 행렬. 신이 내린 나무라는 그 올리브나무속에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 수많은 올리브 나무 열매를 어떻게 수확하는냐는 필자의 질문에 가이드는 대부분 모로코인들이 한다고 답했다. 지도상 이웃나라 그가운데 바다로 구분된 나라가운데 가장 거리가 가까운 나라가 바로 모로코와 스페인이다. 그 정점에 지브롤터가 위치한다. 그야말로 이웃나라이다. 그래서 먹고 살만한 스페인이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못 사는 모로코에서 인력을 공급받는다. 그 땡볕에 모로코인 특히 모로코 여인들은 하루종일 올리브 열매를 딴다. 그리고 번 돈으로 키운 아이들이 자라서 바로 스페인 국가대표를 그것도 세계가 가장 인정하는 대표적인 대회인 월드컵에서 꺾었으니 오죽 했겠는가.
모로코와 스페인의 흑역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반도국가의 슬픔을 스페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겪었다. 기원전부터 그리스 로마를 비롯해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다. 특히 8세기때 위세가 등등한 아랍군이 북 모로코를 정복하고 스페인 해협 그러니까 지브롤터를 거쳐 에스빠니아를 정복했다. 그로부터 거의 8백년동안 에스빠니아는 아랍의 식민지로 살았다. 지금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도 바로 아랍족이 세운 건물 아닌가. 수많은 아랍족의 건물들이 지금 스페인 도처에 위치해 있다. 한반도가 36년동안 일제 강점기에 신음했는데 8백년 가까이 이민족의 식민지로 살았던 에스빠니아는 오죽 했을까.
하지만 에스빠니아인들은 국토회복운동 즉 레콩키스타로 합심단결해 아랍족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낸다. 쫒겨난 이슬람족들이 최후에 숨어들어간 곳이 바로 모로코이다. 그이후 모로코인들이 스페인으로 받은 핍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8백년 한을 모로코인들에게 풀었으니까 말이다.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스페인은 1492년 콜롬부스로 부터 국운이 트이면서 세계 최강자가 된다. 남미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삼았다. 세계 최강국 스페인은 그때부터 무적함대 스페인,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스페인이 되었다. 옆 나라가 최강국이 되면 바로 옆나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바로 모로코이다. 스페인의 종이자 노예이자 하인으로 수많은 날, 5백년 이상을 보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올리브 열매따는데 동원되는 모로코 여인들이다.
월드컵은 한풀이 장소인가. 그토록 눌려왔던 나라가 상대나라를 꺾었으니 그 환희는 오죽했을까. 아마도 한국이 해방후 일본을 월드컵에서 꺾은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아직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과 일본이 붙어본 적이 없다. 모로코 국왕이 직접 차를 타고 수도 중심부 인파속에 합류해 함성을 지른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번 월드컵에 또 다른 아프리카의 흑역사가 존재한다. 바로 튀니지와 프랑스와의 경기이다. 물론 프랑스는 16강이 확정된 상태로 출전했고 튀니지는 반드시 그리고 다른 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결과에 따라 16강이 결정되는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비록 프랑스가 일부 주전을 쉬게 했지만 그래도 세계 최강이라는 프랑스가 튀니지 그리고 자신들이 1881년부터 지배해온 그런 식민지에게 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튀니지가 1대 0으로 승리했다. 피식민지국이 멋지게 식민지국을 응징한 것이다. 숱하게 핍박받은 튀니지 그리고 겨우 독립됐지만 독재시스템에 허덕인 튀니지. 지난 2010년 아랍과 중동국가에 민주화운동인 재스민혁명의 불을 붙인 바로 그 튀니지가 결국 프랑스에게 한 방을 먹인 것이다. 멋지게 복수극을 펼친 것이다.
그렇다. 비록 월드컵이 돈의 잔치, 축구의 강대국들의 놀이터라는 핀잔을 받지만 그래도 이런 장면이 나오니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로코와 스페인...튀니지와 프랑스의 경기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르헨티나, 독일과 일본, 카메룬과 브라질과의 경기와 같을 수가 없다. 약팀들이 강팀을 물리친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피파의 순위가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 경기속에 숨어 있는 흑역사를 알기전에 어찌 그 깊은 아픔의 의미와 세계사의 흑역사와의 연관관계를 이해하겠는가. 모로코의 국왕이 채신머리 없게 일반 군중들과 함께 환호성을 친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의미와도 통하는 것 아니겠는가. 세계사속에 흐르는 그 흑역사가 아직도 전세계를 휘감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우면서도 인과응보적인 귀결로 느껴진다.
2022년 12월 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