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존주의 정리 >
시문학은 철학의 영역이자 예술이다.
철학은 문예사조와도 직결되며 시를 이해하고 창작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 19세기 합리주의적 관념론이나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 및 문예상의 사조.
*실존주의란 인간 존재와 인간적 현실의 의미를 그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시 파악하고자 하는 사상운동이며,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넓은 의미에서든 후설의 의미에서든 현상학을 방법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인간에게서 중요한 것은 실존이지 이성이라든가 인간성과 같은 보편적 본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실존주의의 사상사적 의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면, 실존주의를 현상학 운동 속에 자리매김하여 이것을 실존적 현상학의 조류로서 고쳐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실존이라는 말은 인간의 현실존재, 진실존재를 의미한다. 확실히 본질 역시 존재이지만, 이것은 가능적 존재, 추상적 존재이다.
본질이란 가능존재이며 현실존재와 구별된다. 본질은 초시간적 존재인 데 반해 현실존재는 시간적 존재이다.
본질과 존재, 가능적 존재와 현실적 존재는 '이어서 있는 자'인 신에게서 일치한다. 그렇다면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본질과 실존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이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물어 밝힌 것이 키르케고르이다.
키르케고르는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의 적극철학에서 차용한 실존 개념을 인간 존재에 한정하여 사용한다. 즉 인간 존재에게 있어서는 그 본질이 전적으로 미확정인바, 현실존재만이 주어져 있다.
인간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이고 신과 인간 사이에는 절대적인 단절이 놓여 있어 신이 어떠한 본질을 인간에게 주었는지는 인간 이성에게는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만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저 현실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것은 각 사람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 이 세계에 유기되어 있는 인간, 자기의 존재의미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창조해내도록 운명지어져 있는 인간, 자기의 신체에 의해 이 세계에 내던져져 있으면서 타자와의 교통 속에서 자기의 있어야만 할 인생을 지향하여 기투해가는 인간, 이러한 실존주의의 인간상은 이미 키르케고르와 니체가 제시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특히 키르케고르의 영향 하에 현상학을 방법으로 하는 현존재 분석의 저서 『존재와 시간』을 발표하며, 이것이 실존철학의 고전으로서 취급되게 되었다.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실존적 자유, 자기의 신체, 타자의 존재와 같은 문제 영역은 실존적 현상학에 의해 비로소 본격적으로 열어젖혀졌던 것이다.
-하코이시 마사유키(箱石匡行)
*실존주의와 생태주의의 공생, 정태화의 시
/송용구 (시인. 문학평론가)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을 ‘지금 이곳’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이해하였다. ‘내던져진’ 현실의 공간에서 ‘한계’의 장벽에 부딪쳐 고통의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현존재現存在’가 곧 인간임을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본래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왔지만 문명세계 한복판으로 ‘내던져진’ 시인 정태화. 그곳에서 자연성自然性을 잃어버린 채, 자연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것이 그가 겪는 한계의 고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인간의 ‘실존’을 어디에서 찾았는가? 한계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으로 자신의 존재 전부를 ‘내던지는’ 행위에서 진정한 ‘살아있음(實存)’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한계 저 너머에 있는 ‘고향’ 같은 근원의 세계로 귀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다운 인간의 ‘실존’임을 하이데거는 말하지 않았는가?
문명의 반反자연적 철벽을 넘어 어머니의 모태를 닮은 근원적 본향의 세계로 귀향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으로 자신의 온 생각과 온 생명을 ‘내던지는’ 시인의 ‘실존’이 정태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서 생생히 느껴진다. 서로 분리되어 있었던 시인과 자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연상시키듯 시인은 자신의 근원인 자연으로 돌아간다.
*김춘수의 시적 자아를 보면 일단 우주적인 물음(실존적인 개인이 묻는 물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를 실존주의 시인이라 말하기도 하지요.
한국 문학의 시부분에서 실존주의를 논할 때 김춘수가 빠지지 않고요.
*19세기 합리주의적 관념론이나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 및 문예상의 사조.
내용
본질 탐구의 철학, 즉 합리주의 철학을 반대하고, 개개의 단독자인 현실적 인간 즉 현실의 자각적 존재로서 실존(existence, existenz)의 구조를 인식·해명하려고 하는 철학사상
실존주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신이나 본질이 선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본래적 자기를 자기 스스로 계속 만들어 갈 수밖에 없음이 실존주의의 제1원리다. 즉, 허무와 자유 속에서의 자기 부정과 자기 초월의 반복을 통해서 자각적인 주체성이 창조된다. 주체적 결단에 의한 새로운 자기 존재의 선택과 비약은 자유를 근거로 한 자기 기투(企投)다.
여기서 실존은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규제되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이며, 고뇌·죄책(罪責)·죽음 등의 한계상황(Grenzsituation)에 직면한다.
실존주의는 실존을 현존재(마르셀은 “수육적(受肉的) 존재”라고 함.)로써 그 주체성·자유·초월·결단·상황·성실 등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려고 한다
2차 대전 직후 실존주의 사상운동을 전개한 사르트르는 『르 탕 모데르느(Les Temps Modernes)』(1945)의 창간사에서, 현대인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만을 고집하여 현실적 조건 바깥으로 추상화하려고 하는 분석정신과, 개인을 계급·국가 등 전체에 종속시켜 그 전체관을 절대화하려고 하는 총합정신의 양극간에 걸려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의 불안은 그 양극의 어느 쪽에도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이율배반적 분열에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무한 가능성을 지닌 중심이라고 본다.
인간의 실존을 이와 같이 강조하는 실존주의 사상운동이 전개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본주의제도이건 사회주의제도이건 간에 근대의 기계문명과 메카니즘적 조직 속에서 인간이 개성을 잃고 평균화·기계화·집단화되어, 20세기 후반에 와서 인간의 교환 가능성과 인간의 타유화(他有化), 즉 소외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드러난 점,
둘째는 1차·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진보라는 일체의 낙관론이 황폐화된 점이다.
전후의 실존주의 문학은 리얼리즘·모더니즘·휴머니즘 등과 얽혀 복잡성을 띠고 있다.
첫째, 실존주의의 인간관계 단위는 개체(개인)인 단독자이며, 리얼리즘의 그것은 개체를 초월하는 어떤 객관적인 법칙의 힘이나, 전후의 실존주의는 객관적 묘사(현실과 존재 사이의 억압 양상)와 현실참여로 리얼리즘의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둘째, 실존주의의 허무주의와 모더니즘의 회의주의, 실존주의의 출발점인 실존과 모더니즘의 자아, 그리고 저항과 부정 등에서 전후의 실존주의는 모더니즘과도 밀착되어 있다(특히 시에서).
셋째, 전후의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의 휴머니즘을 수용하면서 전쟁 및 허무의 체험과 극복을 위한 휴머니즘과 앙가주망(engagement)의 방향을 취한다. 현실참여론은 역사의식, 비판과 고발, 민중의식 등과 어울려 1960년대의 리얼리즘론으로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