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을 행(行)하면
안온(安穩)하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법(法)을 가짐에 의(依)해서
대난(大難)이 출래(出來)하면
이 법(法)은 사법(邪法)일 것이라고 알고 비방(誹謗)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질것이니, 이것도 딱한 일이로다.
또한 이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불서(佛誓)를 배반(背反)하는 데다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원적(怨敵)이 되어
대아비지옥(大阿鼻地獄)은 의심(疑心)할 바 없도다.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했으나,
감연(敢然)히 말을 했노라,
다카하시입도전답서(高橋入道殿答書)
어서 1460쪽
젊은날의 일기
1950년 12월 5일 (화) 흐림 –22세-
「대저 불법을 믿는 사람을 부처와 경(經)의 이(二)를 명확히 해야 하느니라」(〈법화대강초〉)
아침 일찍, M씨와 N씨가 방으로 찾아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출근이 늦지 않도록 서둘러 버스 정류장까지 달려갔다.
고투여, 고투여.
그대는, 그 속에서 진실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대는, 그 속에서 강철 같은 의지를 키우는 것이다.
그대는, 그 속에서 진실한 눈물을 알 수 있다.
그대여, 그 속에서 인간혁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1시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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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2월 5일 (금) 쾌청 –24세-
1952년의 섣달에 들어섰다. 이 1년, 얼마나 많은 추억의 1년이었던가.
10시 귀가. 천공에 호호히 빛나는 차가운 달은 잠시 격전의 와중에 있다는 것을 잠시 잊게 한다. 격류의 마음도 정지시켜 준다.
이 휴식이 얼마나 내일을 위한,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될 것인가. ―
색심불이(色心不二)의 불법. 이 원리가 올해만큼 내 몸에, 내 마음에, 내 생명에 통절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 오히려 쓸쓸하고 슬프다고 할 만큼 통감했던 한 해였다.
도다 선생님의 건강이 매우 안 좋으시다. 나의 건강 또한 마찬가지. ― 원통하다.
도다 선생님, 몸을 소중히. 내 숙명에도 본존님의 조람이 있어라.
대사명에 서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신 ․ 헤이케 이야기》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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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 5일 (수) 쾌청 –28세-
2시부터 아내와 함께 ‘소일(蘇日) 교섭 비준 결의’를 들으러 국회로 갔다.
약 2시간 동안. 미래, 광포의 무대를 생각하면서.
나카노에서 《절복교전》 강의.
컨디션이 비교적 좋다. 끝나고 많은 이들의 상담에 응했다.
「어찌 명(冥)의 조람(照覽)이 부끄럽지 않을 손가, 지옥(地獄)의 고(苦)를 두려워하고 또 삼갈지어다」(〈지묘법화문답초〉 어서 446쪽)
《다이코키(太閤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소설)》 ― 완독, 두 번째인가.
소설을 쓸 때 참고하리라 생각하면서.
12시 넘도록 아내와 이야기했다. 아름답게 빛나는, 조용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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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2월 5일 (목) 비 –29세-
미열 때문에 어둡고 우울한 날이었다.
하루 종일 내 자신과 투쟁하고 광포와 투쟁한다.
원고가 밀려 곤혹스럽다.
대학자이신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위대함을 절실히 느낀다.
무력한 내 자신이 슬퍼진다. 인간혁명이 있을 뿐인가.
밤, 남자부 반장회 참석. 홋가이도의 오비히로를 개척한 요다 벤조(依田勉三)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대장부가 / 마음 정한 / 북해 바다
바람아 불 테면 불어라 / 파도야 칠 테면 쳐라
우리의 숙명을 말해주고 있다.
끝나고 여자부 간부회에 참석. “여성은 인생의 행· 불행이 40대에 승부가 난다.”고 지도했다.
11시 조금 전에 귀가. 2시까지 원고 집필. 인내심 없는 내 자신이 한탄스럽다.
교학과 웅변은 가장 큰 무기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