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하러 갔더니 줴다 빵하고 쥬스, 희멀건 햄하고 쏘시지 얇게 썬 것이 전부다. 그래도 커피는 주네. 현민이는 왜 계란 요리가 없냐고 또 투덜투덜이다. 자기는 호텔에서 아침 식사로 계란은 꼭 먹어야 한대나 어쩐대나.그래도 지가 좋아하는 햄이 있으니 빵하고 같이 잘도 먹는다. 안젤라는 빵만 몇점. 커피가 맛이 없단다. 그럴 수 밖에. 이태리 커피가 워낙 맛있으니.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하고 9시 30분경 출발.
고속도로를 올리니 안젤라가 몬테카를로에 안 들를거냐고 묻는다. 그레이스 켈리가 왕비로 살았던 곳을 가보고 싶은 모양이다. 무지 복잡을거라고 핑계를 대고는 (실제 느낌도 그랬다) 몬테카를로를 지나 해안 국경도시인 멘톤 (Menton. 프랑스어로 발음이 망통인가?)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산레모까지 해안을 따라 국도로 가 볼려는 심산으로.
차를 몰고 해변으로 나가니 너무 깨끗하고 예쁘다. 잘 가꾼 해변 정원. 깨끗한 마을. 예쁜 요트들. 밝은 오월의 햇살. 한 눈에 오는 느낌이, 나중에 돈 많으면 늙어서 살아보고 싶은 그런 해변도시다. 해변을 거닐다 그 주변에 있는 마을로 들어서도 예쁜 카페들, 식당들, 기념품 가게들, 그리고 전통 시장. 현민이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모자를 하나 샀다.안젤라는? 아! 또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다 국도를 따라 이태리 국경으로 넘어서 산 레모까지 줄곧 갔다. 생각보다 해변 국도는 마을을 지나갈 때 신호등도 많고 도로도 비좁다.멘톤에서 산 레모까지 30Km정도인데 거의 한시간 이상이 걸렸다.
산레모에서 작년에 만난 그 착한 아주머니가 있는 식당을 찾아가니 한산하다. 여기는 확실히 비시즌이다. 작년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서 보니 그 주인 아주머니는 안 보이고 주인 아저씨만 있다. 영어를 조금 하길래 물어보니 자기 여동생인데 조금 있으면 나올거란다. 파스타, 피자 시키고 앉아 있으니 그 아주머니가 왔다. 아저씨가 바로 얘기를 하는데 눈치가 우리 얘기를 하는 모양이다. 반가워서 인사하니 갸우뚱하더니만 애가 하나 더 있지 않았냐고 묻는다. 걔는 학교에서 프랑스 갔다고 하니 이제서야 아! 그러냐고 한다. 아마 긴가민가했던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착한 이태리 아줌마와 인사를 하고 또 길을 떠난다. 또 보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속도로를 올려 계속 산을 따라 200km정도 간다. 이 길은 빨리 달릴 수가 없다.계속되는 다리(산과 산사이의 계곡을 걸쳐 만든 다리)와 터널을 두 시간 정도 달려서 친꿰 떼레에 가기 위해 레반토로 빠지기로 했다. 레반토(Levanto)는 친꿰 떼레의 북쪽에 있는 조그마한 해안도시다.남쪽 끝에 있는 라 스페지아 (La Spezia)로 가서 거기서 배를 타거나 기차를 타는 방법도 있으나 지도를 보니 라 스페지아는 도시가 큰 것 같아 조용해보이는 레반토를 선택했다. 여행자 안내소를 찾으니 지도와 숙박업소 및 기타 편의시설 안내물을 준다. 원래 가지고 간 이태리 관광 안내서를 보고, 추천하는 친꿰떼레안에 있는 호텔에 전화를 하니 다들 빈 방이 없고 방이 있는 한 곳은 너무 비싸다. (하루에 150 유로였나?).
레반토에서 묵기로 마음을 정하고 위치나 편의 시설이 괜찮은 것 같은 곳을 몇 군데 전화하니 방이 없단다. 아~ 친꿰떼레가 유네스코 유산에 등록되었다더니 이렇게도 유명해졌구나. 게다가 비까지 내린다. 차가 드문 곳에 가서 한두군데 더 전화했을까? 다행히 위치도 좋은 곳에 있는 한 호텔에 세사람이 잘 수 있는 빈방이 있단다. 하룻밤 숙박료도 아침식사 포함 100유로란다. 바로 가서 체크인하겠다고 하니 이름만 묻고는 홀드하고 있겠단다. 차를 몰고 출발하니 현민이가 대뜸 묻는다. “아빠! 별이 몇개예요?” ‘민감하기는’ “세개란다” “그럼 어제보다는 좋겠네요!” “그럴걸”’플리즈’
지척이다. 프런트에 가서 물으니 전화한 그 아주머니가 있다. 주차할 곳을 일러주길래 주차를 하고 짐을 꺼내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니 예상보다 호텔이 괜찮다. 안젤라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이 정도면 이태리에서는 별 4개정도는 안돼요?” ‘글쎄, 이 사람들한테 별이 몇개인가가 중요할까? 그냥 숙박업해서 돈만 벌면 되는 게 이태리 사람들 아닌가?’
비가 부슬부슬 오는 데 차를 몰고 레반토역에 가니 칭꿰떼레로 가는 기차가 한 시간에 두 번 정도씩 있다. 돌아오는 막차 시간을 확인해보니 우리한테 있는 시간이 6시간정도. 마을과 마을을 대부분 기차로 다녀야 하니 시간이 빡빡하다. 왕복 티켓을 끊고 기차에 오르니 터널을 한 번 지날 때마다 마을이 하나씩 나타난다. 기차 오른쪽은 절벽이고 그 밑에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도 대부분이 암초밖에 없다. 가장 남쪽에 있는 리오 마죠레 (Rio Maggiore)까지 계속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려서 보니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이 들어섰을까? 절벽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집들. 그렇다. 매달려 있다. 절벽 끝과 집의 외벽이 거의 일직선인 곳도 있으니 그런 표현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의문이 든다. 이태리같이 날씨가 좋아서 기본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나라에서 누가 무슨 일로 여기서 살면서 이런 마을을 꾸미게 되었을까. 죄수들의 유배지나 종교 박해를 피해온 사람들 외에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좁디 좁은 절벽 짜투리 땅에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었으니 집도 좁고 골목도 좁다. 지금와서 구경하는 사람이야 예쁘고 신기하지만 정작 이런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고 고통스럽고 지루하고 힘들었을까.
그렇게 마을들을 구경하고 중간의 한 마을에서 식사를 하고 (해물 파스타가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관광지답지 않게 양도 푸짐했고) 기차를 타고 돌아와 호텔로 오니 벌써 열시를 또 훌쩍넘기고 있다. 유럽 여행은 다른 곳과 달리 밤 늦은 시간에 어디를 다닐만한 데가 별로 없다. 큰 도시가 아니면 가게가 일찍 문을 닫기도 하지만 설령 문을 연 카페나 식당이 있어도 하루에 기본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하다 보면 저녁 식사후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기가 일쑤다. 게다가 오늘은 비까지 와서 한기까지 느꼈으니…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아침식사하고 (아침 식사도 어제보다는 훨씬 낫다. 계란이 있었었나? 현민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또 길을 나선다. 오늘은 피사, 피렌체를 둘러 밀라노까지 돌라가려면 최소 450Km는 강행군을 해야 한다.
어제는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화창하다. 올리브나무와 소나무 숲을 따라 국도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올라 한 삼십분가니 아펜니노산맥은 저 멀리 왼쪽으로 가고 평원지대가 나타난다. 거기를 십여분 더 내려가니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가 나온다.
피사로 가는 길 주변에는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태리는 이맘때 쯤이면 몇 달동안이나 온 들판이 붉은 양귀비 꽃으로 물들어 있다.) 양귀비 꽃에 오래된 단색 건물들. 붉은 벽돌색 지붕에 노란 벽, 회색 담. 또는 회색 지붕. 거기에 흐드러지게 핀 양귀비 꽃. 가끔씩 느끼는 거지만 이럴 때는 내가 중국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태리에서 웬 중국 하겠지만 사실 이태리와 중국은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걸 주제로 한 번 정리해 봐야겠다.
각설하고 여차저차하여 겨우 차를 대고 진짜 중국 인민이 사는 거리 비슷한 곳을 지도를 찾아 가서 성문 비슷한 곳을 들어서니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세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눈이 확 뜨인다.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과 피사의 두오모 (Duomo. 영어로는 Dome이 되겠지) 그리고 납골당 (뼈를 안치한 속이니 납골당이 맞겠지!!). 주변에 가꿔진 장 정리된 푸른 잔디밭.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분명히 팻말들이 있는데도 다들 들어가서 앉아 있고 일광욕 즐기고 사진찍고 난리다. 각 건물마다 들어가려면 따로 티켓을 사야 한단다. 비용은? 윽! 만만치 않다. 보통 한 사람에 5유로에서 많게는 10유로까지. 5유로면 피자가 한 판인데!! 쩝! 특히 피사의 사탑은 무너질 것이 우려되어 일정 인원밖에 들어 갈 수 없단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안에 있는 사람이 한 사람 나오면 그때서야 줄 서 있던 한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거다. 나? 당연히 그런 짓 안 하지.먹는 거라면 몰라도.
죽 둘러보고, 남들처럼 피사 사탑을 손에 얹은 것처럼 사진도 찍고는 서둘러 피사를 빠져나왔다. 피렌체 들렀다 오늘 밀라노 올라갈려면 서둘러야 한다. 피렌체까지는 100km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미리 네비에 저장한 맛있는 식당을 찾으니 길이 자꾸 헛돈다. 네비가 가라는 길로 가니 공사중이라서 완전히 막혀있다. 아! 씁쓸하다. 포기해야지 뭐.
중앙역 지하에 겨우 차를 대고 지하 상가를 빠져 나오니 인산인해다.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조상들 덕으로 먹고 산다는 말이 조금도 허풍이 아니다. 지도를 죽 훓어보니 오늘의 루트가 잡힌다. 피렌체 두오모인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다비드상이 있는 (가짜다. 진짜는 딴 데 있다.)시뇨리아 광장과 팔라초 베키오, 우피치 미술관을 보고 아르노강을 따라 가다가 폰테 베키오(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를 건너 피티 궁전을 보고 돌아오면 된다.
길은 이태리의 오래된 도시답게 대부분 돌로 깔려 있다. 좁은 골목. 워낙 햇살이 좋으니 괜찮지 다른 나라 같았으면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살지도 못했을 거다. 조금 걸으니 산타 마리아 대성당이 있는 광장이 나온다. 근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길가에는 온통 가죽제품을 파는 리어카 행상들이다. 토스카나 지방이 가죽 제품으로 유명하던가? 그리고 사람과 차도 못 다닐 정도로 이렇게 행상을 하는 걸 시정부가 허락한 건가? 또 다시 떠오르는 화두. 이태리와 중국!
어쨋든 두오모와 그 옆에 있는 탑은 피렌체를 대표하는 건축물답게 너무도 아름답다. 회색과 갈색이 적절히 섞인 대리석 (물론 주기적으로 닦아내야 한다.), 웅장한 규모, 거대한 돔형 지붕. 이 지붕 만들 때 일화가 하나 있지 아마. 브루데넬리라고 했던가?
우피치 미술관을 가는 길에 단테의 옛 집이 있다. 좁은 골목안에 있는 데 여기도 돈을 받는단다. 아! 이럴수가… . 그냥 우피치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근데 웬일. 미술관 앞을 가니 줄이 장난이 아니다. 한 쪽은 오늘 관람하는 줄이고 한 쪽은 내일 표를 예매하는 줄인데 둘 다 족히 수백명씩은 기다리는 것 같다. 즉시 결정. 포기!!
다시 길을 잡아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한다. 여긴 주변이 전부 조각품이다. 음! 이렇게 밖에도 볼 게 많은데 뭐하러 돈 주고 안에 들어가서 봐.바쁘게 사진을 몇 장 찍고 기억을 살려 본다. 여기가 사보나롤라가 처형된 곳이지 아마도. 마키아벨리가 15년간 매일 이 곳을 출근했고. 혼자서 500년전으로 돌아가 본다.
아르노강은 조용하다. 처음보았던 프라하에서의 몰다브강만큼이나 조용하다. 근데 물 색깔은 별로다. 사실 이태리는 (대부분의 유럽이 그렇지만) 지반에 석회질이 많아 물이 부옇다. 그래도 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고 카약을 연습하는 몇 대의 배가 한가롭게 오월의 오후 햇살을 가르고 있다. 폰테 베키오는 무슨 남대문 시장같다. 다리위가 전부 보석상이다. 베네치아의 레알토 다리에서도 느꼈지만 이 곳도 다리 위에 상가가 있는 게 이색적이다. 마키아벨리가 매일 이 다리를 건너 출근했다지. 그리고 그 때는 보석상이 아니라 푸줏간들이 있었다지. 강위의 다리라면 보석상보다는 푸줏간이 더 어울리는것 같다.
다리를 건너 비아 구이차르디니(구이차르디니 거리)를 조금 걸어 가니 왼쪽에 넓은 경사와 함께 피티 궁전이 보인다. 여기는 가 보고 싶었던 곳이다. 매표소에 가서 미술관표를 끊어 미술관을 들어가니 무슨 미로에 온 것 같다. 무슨 그림이 그리도 많던지. 걸음빠르고 미술품도 그냥 휙휙 지나가면서 보는 내가 거의 두 시간을 봤으니, 어휴. 안젤라는 다 보고 나오더니 한 숨을 쉰다. 너무 볼 게 많다면서, 근데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더 못 보겠다면서. 근데도 시간이 있으면 나중에 더 보고 싶단다. ‘그럴려면 피렌체에만 일주일은 있어야 할 걸’. 현민이는 다리 아픈 걸 핑계로 아이스크림을 사 달란다. 허긴 나도 힘든 데 그 나이에 그 지겨운 걸 두 시간이나 따라 다녔으니 너도 힘 들겠지. 이태리 아이스크림은 너무 맛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들은 젤라또는 이태리 말이고 그 뜻은 아이스크림이다. 본 젤라또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란 뜻이다.
다시 길을 돌려 시내쪽으로 가서 식당을 찾는데 마땅한 데가 없다. 비싸기만 하고. 이럴 때 우리 가족은 쉽게 선택을 한다. 중국 식당. 일단 말이 통하고… 음식 주문도 가능하고… 크게 비싸지도 않고… 여행하면서 수시로 느낀다. 중국어가 된다는 게 참 편할 때가 있다는 걸.
차 찾아서 막히는 피렌체 시내를 겨우 빠져 나와 A1을 올려 아펜니노 산맥을 넘는다. 밀라노까지는 약 350Km. 피곤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추억을 만든다.새로운 경험도. 그리고 내가 우리 애들에게 이런 경험을 어린 나이에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감사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민이는 엄마에게 몇 번이나 묻는다. “엄마, 나 이제 몇개 나라 가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