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산천의 아름다움과 역사, 문화를 찾아서(경상도 택리지)

[신정일]

경상도 산천의 아름다움과 역사, 문화를 찾아서(경상도 택리지)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백두산에서부터 비롯된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지나 소백산으로 이어진다. 죽령과 문경새재를 지나 속리산에 이르고, 화령을 지나면 추풍령이다. 덕유산을 넘어 영취산을 지나면 지리산에 이르는데, 백두대간 동쪽에 펼쳐진 넓은 지역을 경상도라고 부른다. 땅이 넓고 아름다운 경상도는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와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강원도 아랫자락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충청도, 전라도와 경계가 맞닿았는데,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경상 도’ 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지리가 가장 아름다운 경상도는 강원도 남쪽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충청도, 전라도와 맞닿았다. 북쪽에는 태백산이 있다. “천하에 이름난 산은 삼한에 많고, 삼한의 명승지는 동남 지방이 가장 뛰어나며 동남 지방의 큰 산은 태백산이 으뜸이다”라고 최선이 《용수사기》에 기록한 태백산을 감여가(堪輿家, 풍수지리가)들은 하늘에 치솟은 수성(水星) 형국이라 한다.

태백산 왼쪽에서 나온 하나의 큰 지맥은 동해로 바짝 붙어 내려오다가 동래(東萊) 바닷가에서 그쳤고, 오른쪽에서 나온 하나의 큰 지맥은 소백(小白), 작성(鵲城), 주흘(主屹), 희양(曦陽), 청화(靑華), 속리(俗離), 황악(黃岳), 덕유(德裕), 지리(智異) 등의 산이 된 다음 남해에서 그쳤는데, 두 지맥 사이에 기름진 들판이 천리다.

황지(潢池)는 천연 못으로 태백산 상봉 밑에 있으며, 물이 산을 뚫고 흘러나온다. 북 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예안(禮安)에 이르고, 동쪽으로 굽이졌다가 다시 서쪽으로 흐르면서 안동(安東) 남쪽을 둘러 흐른다. 용궁(龍宮)과 함창(咸昌) 경계에 이르러 비로소 남쪽으로 굽이지며 낙동강이 된다. 낙동이란 상주의 동쪽이란 뜻이고, 강은 김해로 들어간다. 낙동강이 도전체의 한복판을 가로질러서 강 동쪽은 좌도(左道)라 하고, 서쪽은 우 도(右道)라 한다. 두 지맥은 김해에서 크게 합쳐지고, 70개 고을의 물이 하나의 수구로 빠져나가면서 큰 형국을 만들어놓았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 〈지리전고地理典故〉에 따르면 “경상도의 고을들은 조령鳥嶺과 죽령竹嶺 두 고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영남嶺南이라 부른다.”라고 하였고,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그 땅의 동남쪽에는 큰 바다가 있고, 서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하여 대구군(지금의 대구)이 도 중앙에 있다. 동서가 376리, 남북이 448리다”라고 하였다.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與地圖書》에 따르면 호구 수는 35만 9,840호이고, 인구는 153만 5,713명이다. 그중 남자는 67만 1,842명이며, 여자는 86만 3,871명이다. 당시의 인구도 여자가 월등히 많았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경상도 전역을 연결하는 역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영남대로의 주도로인 문경에서 동래에 이르기까지 역참마다 다달이 세 개 역에 역졸을 한 명씩 나누어 배치하여 돌아가면 서 번을 서게 하였다.

경상도 북쪽에 태백산이 있는데, 감여가들은 태백산을 “하늘에 치솟은 수성 (산봉우리 모양이 굽은 듯함) 형국”이라 하였고, 조선 현종 때의 문인 미수眉戒 허 목은 그의 문집 《미수기언眉戒記言》에서 “태백산은 신라의 북악으로 문수, 대박의 두 돈대와 우보, 우검, 마라읍, 백산을 모두 포함하는 큰 산”이라고 하였다. 또한 고려 때의 최선은 예안 용수사龍壽寺 〈기記〉에 “천하의 명산은 삼한에 많고, 삼한의 명승은 동남이 가장 뛰어나다. 동남의 거산은 태백의 우두머리가 된다”라 고 하였다.

백두대간이 금강, 설악, 두타, 청옥을 지난 다음 태백산에 이르고 신당산, 소백산으로 구부러지기 전에 부산 동래, 수영 바닷가에 이르는 하나의 큰 정맥을 펼 쳐놓았으니 그 정맥이 바로 낙동정맥洛東正脈이다.

낙동정맥은 백병산, 통고산, 백암산을 거쳐 청송의 비경이며 국립공원으로 지 정된 주왕산에 이른다. 《산경표山經表》에 주방산周方山이라고 기록된 주왕산을 지난 낙동정맥은 주사산, 사룡산을 지나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던 단석에 이른다. 단석 산에서 산기山氣를 충일한 낙동정맥은 가지산, 신불산, 취서산 일대의 웅장한 줄기를 지난 뒤 언양 휴게소에서 고속도로를 건넌다.

그 한 줄기는 삼랑진에서 낙동강을 만나고 나머지 낙동정맥은 그 산줄기를 따 라 부산의 금정산에 이른다. 백양산으로 낮게 이어진 낙동정맥이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서 벼랑이 되면서 바닷속으로 몸을 숨긴다.

태백산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이 소백산, 작성산, 주흘산, 희양산, 청 화산, 속리산, 황악산, 덕유산, 지리산이 된 다음에 남해에서 그 명을 다하고, 그 곳에서 시작되는 정맥이 낙남정맥洛南正脈이다. 두 지역 사이에는 기름진 들판이 천리에 걸쳐 펼쳐져 있다.

　《산경표》에서는 낙남정맥을 ‘낙남정간’이라고 부르는데, 정맥의 시작점은 정확 하게 지리산 영신봉이다. 해발 300~800미터의 높고 낮은 산들로 이어지는 낙남 정맥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이 되고, 영신봉에서 옥산에 이르는 구간의 남 쪽은 서쪽에 있는 섬진강으로 물을 보낸다. 그러나 낙남정맥이 방향을 동쪽으로 정한 이후로는 남쪽의 바닷가로 물이 흐른다. 마산의 무학산, 김해의 익산을 지난 후 낙동강 하구를 지키는 분산에서 끝나는 낙남정맥은 남부 해안지방과의 경계로 작용하고, 생활 문화와 특이한 기후를 형성하는 중요한 산줄기인 것이다.

경상좌도와 경상우도

경상도의 고을들은 조령과 죽령 두 고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영남이라 부른다. 조선 태종 7년(1407)에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경상도를 좌우로 나누어 낙동강 동쪽을 경상좌도, 그 서쪽을 경상우도라 하였다. 그 뒤 중종 14년(1519) 5월 에 경상도가 지방이 크고 사무가 번잡하므로 좌도와 우도에 각각 감사를 두었다 가, 11월에 폐해가 많다는 이유로 다시 하나로 환원하였다. 그러나 수사水使, 병사兵使등 군사상 직제는 좌우도로 나누었다. 그 후 다시 좌우도로 나누어 좌도감 영은 경주에, 우도감영은 성주 팔거에 두었다가, 중종 29년에 다시 합하여 하나의 도로 하면서 감영을 대구로 옮겼다.

경상좌도에는 울산, 양산, 연일, 동래, 청송, 예천, 풍기, 밀양, 칠곡, 경산, 청 도, 영양 등 37개의 군현이, 경상우도에는 성주, 선산, 합천, 함양, 의령, 남해, 거 창, 사천, 하동, 고성, 창원 등 28개의 군현이 속하였다. 그 뒤 고종 33년(1896)에 경상도를 남북의 두 개 도로 나누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잊히고 만 역사, 가야

《택리지》에 “상고 적에 지역이 백 리 되는 나라가 이 도 안에 매우 많았으나 신라가 건국하면서 통일하였다”라고 기록된 나라가 가야다. 가야는 서기 전후 무렵부터 562년까지 우리나라의 남단 경상남북도 서부 지역에 존재하던 국가들의 총칭이다. 또는 좁은 의미에서 보면 김해의 가야국이나 고령의 대가야국을 일컫는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경상남도 해안 지대에 철기 문화가 보급되면서 사회 통합이 진전되어 소국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발전 추세가 지속됨에 따라 소국 간의 통합이 한 단계 더 진행되어, 2~3세기에 변한지역은 김해의 가야국을 중심으로 변한소국연맹, 즉 전기 가야연맹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세력 범위는 낙동강 유역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다가 4세기 초 이후 국제 관계의 변화에 따라 가야연맹이 약화되기 시작하여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는 거의 몰락하고, 가야라는 이름은 더 이상 역사 주 체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4세기 후반에 들어 옛 가야 지역의 내부에서 재통합의 기운이 일어나고 지배 권력의 주체 및 중심 지역 이 옮겨져서, 고령의 대가야국을 중심으로 후기後期 가야연맹이 형성되었다. 다 시 역사에 나타난 가야는 백제, 신라와 대등하게 세력을 다투며 6세기 초 소백산 맥과 낙동강 사이에서 세력권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라인 사로국과 백제의 국력이 놀랄 만큼 커짐에 따라 530년대에 김해의 금관국을 비롯한 남부 지역이 신라에 병합되자 가야는 다시 약화되고, 결국 562년 고령 대가야가 신라 에게 병합됨으로써 후기 가야연맹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지》에서와는 다른 이름을 가진 나라가 여럿 나온다. 그중에 오늘날 경상북도 지방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나라는 다음과 같다.

경주시와 월성군에 있던 사로국, 월성군 안강읍에 있던 비지국(比只國), 대구시 또는 영일군 홍해에 있던 다벌국(多伐國), 영월군 기계면 또는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에 있던 초팔국(草八國), 영천군에 있던 골벌국(骨伐國), 경상군 압량면에 있던 압독국(押督國), 청도군 이서면에 있던 이서국(伊西國), 의성군에 있던 조문국(召文國), 금릉군 개령 면에 있던 감문국(甘文國), 상주군에 있던 사벌국(沙伐國) 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본래 대가야국이다. 신라의 진흥왕이 그것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으로 하였고,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는 국운을 천 년 동안 누렸다. 그 도읍지가 예로부터 ‘동방에서 아침 햇빛이 맨 먼저 닿는 땅’이라고 알려져 온 경주였다.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옛 사람들은 유람하기를 좋아해서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고 여겼으므로 산천답사를 이 세상의 제일가는 풍류로 여겼다. 그러나 아무리 유람에 이골이 난 옛 선인들이라도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절과 날씨, 그리고 소요되는 기간 등 여러 가지를 참작하고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떠났다. 조선시대 중기의 문인인 김창협(金昌協)이 지은 『동유기(東遊記)』에는 “나는 어릴 적부터 금강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번 유람하기가 소원이었다. 그러나 들은 바 절경은 늘 동경하면서도 마치나 하늘 위에 있는 별세계인 듯 사람마다 갈 수 있는 데가 아닌 것만 같았다. … 나를 좇아가는 사람은 김성률(金聲律), 이유굴(李有屈) 등 두 명이며, 행장으로 다른 것은 없고 다만 『당시선(唐詩選)』 몇 권과, 『와유록(臥遊錄)』 한 권이 있을 뿐이다”는 기록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준비물이 그리 많았던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산악인이자 여행가라고 하는 조선 후기의 정란(鄭瀾)이라는 사람의 글을 보자.

집을 나선 창해가 동반한 것은 청노새 한 마리, 어린 종 한명. 보따리 하나. 이불 한 채였다. 그 무렵 명산 열풍이 불어 금강산에 오르지 않는 건 식자층의 수치였다. 하지만 그들의 등산은 호사롭고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 친구를 불러 모으고, 때로는 기생과 악공까지 대동하며, 말을 타거나 오르기가 힘들면 중을 동원하여 남여(藍輿, 뚜껑 없는 가마)를 타고 산에 올랐다.

― 안대회, 『조선의 프로페셔널』

오늘날에는 어떠한 사람을 막론하고 자기의 두 발로 산을 올랐지만 옛 선비들이나 지체 높은 사람들은 산도 자기의 두 발로 오르지를 않고 말을 타거나 남여를 타고 올랐던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묘향산을 유람한 초정 박제가(朴齊家)의 『묘향산소기』를 보면 “초록 도포에 자주 빛 나귀, 허리에는 검이요, 안장에 책이다”는 내용이 있어 아주 간소한 차림으로 떠났음을 알 수 있는데 『청량산 기행』을 지은 박종(朴琮)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침에 떠날 때 행구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나의 두 다리가 있을 뿐이다. 작은 필연(筆硯)일랑 주머니에 넣고 지팡이 하나만 끌고 나서니 모든 시름을 벗은 듯 몸이 가뜬하였다. 그러나 박군은 나를 위하여 옷 몇 벌, 책 몇 권, 돈 몇 푼을 싸서 자그마한 봇짐을 만들어 몸소 지고 떠나니 그의 의기를 알만하다.

불과 백여 년 이 쪽 저쪽인 조선시대에도 일반인들은 여행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이유가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조선의 지배층(支配層)들은 농경에 종사해야할 백성들이 여행을 자주하면 작업시간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여행을 억제하였다. 둘째는 인구의 이동이 잦게 되면 백성들을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세 번째 백성들이 상업을 활성화하면 사행심(射倖心)을 키워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대부들일지라도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또 한편에서는 그렇게 유람을 즐기는 것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조선시대 중기의 학자 김일손(金馹孫)의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의 서두에 실린 글이다.

선비가 나서 한 지방의 테두리 밖을 떠나보지 못하고 마는 것도 운명이라고 할까? 천하를 두루 구경하여 자기 지식을 넓히기는 어려운 일이나 제 나라의 산천은 응당 다 탐방하여야 하련만 어디 세상 일이 그것인들 잘 용허가 되는가, 대개 뜻을 두고도 소원을 풀지 못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는 된다. … 두 해 동안이나 고향에서 병을 치료한다고 하면서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면서도 발자욱이 한 번도 두류산에 미쳐보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유감이 아니랴.

김일손과 비슷한 글을 남긴 사람이 방봉소方鳳韶라는 사람이었다.

“금화북산金華北山 세 동천洞天을

청춘부터 보고자 별렸더니

어언간 백발 되어

지금에야 보단 말가.“

옛사람들의 글처럼 그나마 계획을 세웠다가도 집안에 조그마한 일만 생기면 포기를 하거나 다음으로 미루게 되고 결국 “사람은 내일을 기다리다 묘지로 간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끝내 물 건너간 계획이 되고 만다.

시간만 허락하면 떠나고 떠날 일이다.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린세우스가 한 말이다. 그것은 괴테가 살던 시대, 그리고 오랜 옛날의 일이다.

부지런히 이 세상을 떠돌면서 세상의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을 답사하는 것이 한 번 밖에 못사는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세상의 좋은 책을 다 보고, 세상의 좋은 경치를 다 보고, 세상의 좋은 사람을 다 만나고,” 옛 사람이 세 가지 소원을 다 성취하고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해의 푸른 이상기]

보고 만나고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