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로 함께 죽은 두
영가 부부로 새 인연 |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결혼’이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비로소 한 쌍이 되는 혼인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례가 아닌가 싶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혼사가 지금은 5분내에 주례가 끝나고, 30분 안에 식사가 해결되는 초스피드식 예식장 문화로 바뀌는 통에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그저 '행복’하기만을 비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는 영혼 세계에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요절한 영혼들은 간곡히 '결혼'을 원한다. 이는 인간으로 태어난
'까르마'(karma)로 인해 비록 육신은 없지만 영가인 상태에서도 제 짝을 찾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나
할까. ?
최근의 일이다. 작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건장한
청년이 나를 찾아와 85년에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죽은
친구가 꿈에 나타나 "영혼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청해왔다며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리더십과 의협심이 강해 친구들로부터 신의가 두터웠다는 K군의 사인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K는 늦은
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전복된 차량을 발견하고는 차를 세워 승객을 구하려고 했다는군요. 무사히 조수석에 앉아 있던 승객은 구해냈는데
운전석에 있던 여자분을 구하려다 차가 폭파하는 바람에….”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친구가 마음에 둔 여자분이라도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그 날 친구가 차가 폭파하는 바람에 미처 구하지 못하고 함께 죽은 여자분과
결혼을 하고 싶어합니다.”라고 답해 왔다.
그 말을 듣고는 곰곰이 두 사람의 궁합을 따져보았다.
마침, 그 청년이 여자 분의 오빠되는 분을 함께 모시고
와 얘기는 순조로웠다. 맞춰보니 궁합도 좋았다. 아주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영혼 결혼식.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씩 뜻하지 않게 영혼 결혼식의 주례를 맡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계에서는 단 한번도 주례를 서지 않았음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영혼 결혼식에 나타난 K군은 친구의 말대로 듬직하고
남자다운 영가였다. 남을 도우려다 그만 자신이 죽고 만
비운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때 구해내지 못했던 여자분과의 죽음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계에서 맺어져야할 인연이었나봅니다. 그
사고로 인해 함께 죽음으로써 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법사님,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저도 장가 한번 가보는군요!”
털털하게 웃는 신랑 영가는 수줍은듯 신부 영가를 살포시 안았다. 그리고는 "혹시 '밤 배’라는 곡을 들을
수 있을까요? 신부에게 그 노래를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간청해왔다.
두 영가는 노래를 듣는 동안 둘만의 시간을 달라고 청해왔다. 나는 웃으며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영혼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하객분들 또한 기꺼이 둘만의 시간을 허락했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영단 앞에 앉아있던
친구를 향해 말했다."정말 고맙다. 젊은날 큰뜻을 함께
펴자고 그렇게 맹세해놓고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 너 덕분에 장가도 가게 되었으니 이제 한이 없구나.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으마.”
너무나 기뻐하며 영계로 돌아가는 신혼부부 영가를 보고 마음이 포근해져왔다. 과연 둘은 어디로 신혼여행을
떠났을지.
5월, 그 어떤 커플보다도 아름다웠던 두 영가. 비록
불의의 사고로 함께 죽어 영계에서 부부가 되었지만 이
또한 사랑으로 승화시킨다면 아름다운 인연이 아니겠는가. 영가들의 사랑 또한 사람 못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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