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죽집에 가면 깨죽 잣죽 흑임자죽 호박죽 야채죽 버섯죽 콩죽등 다양한 죽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또 포장도 되니 배달시켜 먹을수도 있다.
옛날 어머니는 가을이 되면 들판에 수수를 베어다 통통한 알을 털어서 디딜방아에 빻아서 조랭이 떡국같이 동글동글 만들어 완두콩 강낭콩 작두콩을 까서 함께 넣고 죽을 끓였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온통 뻘건 죽이 그래도 부드럽고 쫀득쫀득 하였다. 콩이 씹히는 맛이 마치 떡을 먹는듯한 느낌이 참 맛있었다. 또 식은 밥에 김치넣고 수제비나 국수도 조금 넣고서 밥식이라면서 끓여 먹기도 하고 콩가루를 넣고 끓인 콩죽도 맛있었다. 그런데 이런죽은 좀처럼 먹기 힘든 죽이었다. 대게 보리쌀을 빻아서 미끄럽고 맛없는 보리죽을 자주 먹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자리는 창문옆이었다. 똑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6학년 선생님이다. 수업 마치고 나좀 보자 하신다. 수업이 끝나고 출석부와 교재용 노트를 끼고 나타난 선생님을 따라갔다. 말끔하게 정돈된 선생님 방은 궁전 같았고 사모님은 선녀 같았다. 사모님은 예쁜 꽃무늬가 있는 상에 쌀죽 두 그릇을 가지고 들어왔다. 점심도 굶은 나는 선생님이 술을 드셨는지도 모르고 하얗고 입맛 당기는 쌀죽에 숫가락을 들자마자 단숨에 다 먹었더니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하셨다.
귀자야 너의 반 친구왔다 하시며 딸을 부르신다. 나는 그때까지 그 아이가 선생님 딸인줄을 몰랐다. 귀자는 반에서 이병희라고 부르는 아이인데 사택에 있었으니 너무 일찍 입학을 시켜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애기같은 친구였다. 선생님은 “귀자 숙제 좀 도와줘라 저놈은 공부를 못해 큰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밤 선생님과 같이 6학년 성적표를 통지표에 옮겨쓰고 시험지도 일일이 채점하고 나서 귀자의 숙제를 도와주고 나도 같이 했다. 밤참으로 붉은 시루떡과 홍시, 코를 톡 쏘는 달콤하면서도 싸리한 사이다도 먹었다. 그 후로 나는 자주 선생님의 일을 도우면서 많이 친해졌다. 맛있는 음식도 선생님과 함께 먹었고 귀자도 각별히 대해 주었다.
그 시절 시골에는 모두 가난했고 우리집도 쌀밥이라곤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침이면 동네에 연기나는 집이 반도 안 되었고 아침 겸 점심으로 한끼, 저녁까지 하루에 두끼 보리밥을 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집은 하루 세끼를 다 먹었으나 아침 점심은 보리밥과 감자, 저녁은 보리죽, 그래도 할아버지 상에는 항상 보리쌀이 약간 섞일 정도의 밥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입이 짧아서 디딜 방아에 찧은 보리밥이 몹시도 먹기 싫었다. 넘기려면 목이 찔리는듯 해서 배가 고파도 굶는날이 많았다. 도시락을 싸주면 안가지고 가고 차라리 굶고 물로 배를 채우고 운동장에서 놀았다. 들어갈 종 치면 그냥 들어가 공부하고 속쓰린 시간을 수없이 넘기다 보니 한창 자라는 시기에 영양실조로 남들처럼 자라지 못해 항상 맨 앞에 섰다. 교장 선생님은 종씨라고 남달리 대해 주셨고 선생님댁에서 먹을때는 횡제하는 날이였다. 이런 나에게 손을내민 선생님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6학년으로 오르면서 늘 눈길이 머무는 이응호 선생님 댁은 비어 있었다. 나는 너무도 섭섭해서 선생님의 주소를 알려고 노력했다.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선생님이 안동 칠곡 국민학교로 전근 됬다는 사실을 알고 편지를 했더니 얼마후 사진과 함께 답장이 왔다. 나는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였다. 반 친구들 한테 자랑하며 마치 어떤 행운이라도 얻은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과 나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는데 졸업하고 언제부턴가 연락이 끊겼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선생님 얼굴을 그리며 추억 한줄기 가슴에 묻고 살았다.
한번도 담임 한 적은 없지만 부모님처럼 정이들고 고마움을 느낀 선생님, 지금 생각하면 혼자 짝사랑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선생님은 나를 선택해서 당신 딸 공부를 도와주도록 하심 보다도 소말리아 아이들처럼 초췌하고 피골이 상접한 나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내민 사랑의 손길이였으리라, 학질에 걸려서 격일제로 찾아오는 오한과 두통에 속수무책 당하고 양지쪽만 찾던 나는 쌀죽 한 그릇에 눈물 나도록 감동하고 달콤하면서 알싸한 사이다 한잔에 눈이 번개라도 치듯이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나를 보고 얼마나 가여웠을까 생각해본다.
몇 년전 선생님 생각이 나서 스승의 날 교육청에 스승찾기 신청을 했다. 의성군 도옥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전화를 드렸더니 생생히 기억하는 선생님은 “그래 결혼은 했겠지? 좋은부군 만나서 행복하겠지? 몇 남매나 두었는가? 귀자는 안동서 삼성전자 대리점 하고있네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 연락하고 지내게나 우리 내외도 아직 건강 하다네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네” 선생님 그때 쌀죽 참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합니다. 이사람 뭐 그런것 가지고, 오히려 내가 고맙지 명색이 내딸 가정교사였는데 연필 한 자루 사주지 못했으니, 언제 한번 오게나 내 그런 죽 열그릇이라도 끓여주지, 선생님과 나는 오랜시간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북받히는 감정을 누르려고 애썼다. 40년을 훌쩍 넘긴세월,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만나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함은 어쩔수 없는일, 내 인생 앨범에 문신처럼 새겨진 가슴찡한 추억, 쌀죽 한그릇이 아릿한 관심과 사랑 담아 내 평생 다시 먹어볼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첫댓글 감동입니다.흑흑 저두 비슷한 샘이 계셨어요 이길자 선생님 사택에서 저혼자 늘 맛있는걸 얻어먹곤 했더랫어요 담임은 아니였지만 늘 생각나게 하는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저의 담임샘 받아쓰기 못한다고 저혼자만 집에 안보내 주셨어요 어찌나 밉던지 ㅎㅎ 그 선생님이 바로 쪼오기 선배님네 시아버님이실껄요 ㅎㅎ 선배님 글을 읽으면서 콧등이 시큰하니 눈물을 찔끔 거리면서 읽어요 오늘도 훌쩍훌쩍 ㅎㅎ 감사히 읽엇습니다 ^^
마음을 움직이는 선생님 정말 좋은 분이셨지,언제나 주기만 하는 선생님은 아무나 할수 없는 직업이지
선영후배 ,,ㅎㅎㅎㅎㅎㅎㅎ
지금 이 시기가 보릿고개 때였는데...ㅠ.ㅠ 미끄럽고 맛없는 보리죽, 밥식 김치죽 몸서리 나네~ㅎㅎㅎ 차라리 굶고 물로 배를 채우고... 한창 자라는 시기에 영양실조로 남들처럼 자라지 못해... 학질에 걸려서 격일제로 찾아오는 오한과 두통에 속수무책 당하고 양지쪽만 찾던 나는 쌀죽 한그릇에 눈물나도록 감동하고 달콤하면서 알싸한 사이다 한잔... 다시 한번 더 읽을려니 눈앞이 침침해 지네! 알싸한 사이다는 삼성 사이다 일세~ㅎㅎㅎ 동년배의 글이라 나를 투영해 보는것 같네...
삼성사이다가 있었나요? 칠성이겠죠 ㅎㅎ
별이 3개가 그려진 삼성사이다가 있었는데, 소풍갈때나 먹어보네~ㅎㅎㅎ
삼성 사이다 였나요?그때 처음으로 먹었던 사이다 참 맛이 야릇했지요, 선배님 그때 성적 좋던데요,최영희 박용희 보고 또 봤던 통지표
나도 채점을 도와 드린적이 자주 있었네만, 전혀 기억이... 대단하신 기억력일세~
글썽이며 읽고 갑니다. 선배님 글 한편 올라오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별것도 아닌글로 눈이 번쩍 뜨인다니 우습구만
선배님글 너무 감동입니다 ,, 그시절에 기억이 다시 떠올라 ,, 잠시 ,,, 선배님 감사합니다
고맙고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