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미켈란젤로의 광장에서
w. 달려라 됴백카
上
이 편지가 내게 도착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네가 떠난지는 벌써 3년. 아직도 후회되는 그 깊은 밤이 돌아오면 네가 나를 그리며 다녔을 그 어딘가를 내가 너를 그리며 걷고있다. 너의 일기장 가득 수북히 담긴 그 어딘가 아름다운 곳들을 안고 나는 너를 찾아 1년째 떠돌고 있다. 일기장이 이제 채 5장도 남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널 향한 이 여정의 끝이 5장도 채 남지 않았다. 이탈리아. 마지막 5장의 너는 이탈리아에 있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알아듣지 못할 프랑스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너도 이 이질적인 느낌을 좋아했던걸까. 아무것도 알아들을수 없는곳에서, 오직 한사람만을 바라보고 여행을 한다... 그리 기분이 나쁜일은 아니였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파리의 모습이 꿈만 같았다. 종인아, 여기 참 좋다. 나는 푸스스 웃었다. 아름다웠다. 햇살이 비춰 눈이 부신 풍경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여기 네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시끄러운 프랑스어 소리에 점차 머리가 아파왔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볼륨을 올렸다. 귀가 얼얼하게 노래는 내 귀를 때렸다. 귀가 얼얼한 만큼 마음이 얼얼해왔다. 넌 이제 떠나지만, 너의 뒤에 서있을거야.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게... 종인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귀와 마음에 이어 눈까지 아파왔다. 너의 뒤에서... 너의 뒤에서... 하긴, 뒤에서 바라만 보는것도 한계가 있겠지. 지쳤을거야. 하하. 자조적인 웃음에 눈가에 고인 눈물이 흘렀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슬프냐, 종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걸 조금만 더 많이 확신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나약한 겁쟁이가 아니였더라면, 지금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사랑한단 말을 속삭였을까? 네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그 먼길을 떠나진 않았겠지? 아마도, 아마도 그랬을거다. 멍청한 나만 아니였어도 김종인과 도경수는, 김종인과 나는 지금쯤 무척 행복했을거다. 내가 자초한일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저 네가 나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끝이 바란 까만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네가 많이 읽어서일까, 내가 많이 읽어서일까. 볼펜으로 쓴 까만 글씨조차 바래서 한참을 들여다 봐야만 간신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5장을 빼곡히 메운 이탈리아, 피렌체. 빨간 지붕의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전경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옹기종기 줄을 맞춰 들어선 집들, 그것을 온전히 바라볼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광장. 이 아름다운 나라 이탈리아에서 너는 나를 그렸겠지. 우리가 이탈리아의 거리를 손 꼭 잡고 걸어다니는 상상을 했었겠지. 우리 둘만의 여행을 꿈꿨겠지. 미안해, 이제야 내가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내가 참 바보였다. 김종인은 날 떠나지 않을거란 착각이였는지 모른다. 이기적이게 나를 위해 모든걸 다 바치던 김종인을 옆에 두고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내마음을 부정한걸지도 모른다. 겁이 났으니까. 이세상의 시선이 두려웠던 어린애였으니까. 변명을 늘어놔도 어찌되었든 돌아오는건 후회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어잡고 잠을 청했다. 이제 내일이면, 내일의 해가 뜨면 조금은 네가 내게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미켈란젤로의 광장. 그곳에는 또 어떤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꿈을 꿨다. 불편한 기차에서 든 쪽잠의 꿈속에 종인이 나왔다. 아무 표정없이 시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너의 눈빛에, 열발자국 떨어진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 늦었어. 허공에 흐트러지듯 종인이 말했다. 늦었다고. 날 원망하는 그 눈빛에 멀어지는 종인을 잡지도 못하고 울어버렸다. 미안해. 미안해. 울부짖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종인을 향해 미안해다는 말 뿐이였다. 끔찍하리만치 조용한 꿈속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게 더 슬퍼서 엉엉 울었다.
잠에서 깨어났다. 축축한 얼굴을 닦아냈다. 그래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귓가에 맴도는 노랫소리에 눈물이 그치기는 커녕 더욱 쏟아져 내렸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지난 3년동안도 네가 이렇게 그리웠던 적은 없었다. 오늘따라 참을수 없는 그리움이 몰려왔다. 괴로워. 외로워. 소리없는 울부짖음이 창밖에 스쳐지나가는 가로등에 비췄다.
*
3년전 너를 처음 만난건 대학교 OT 때였다. 같은 학과였던 너와 나는 그때부터 서로를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로를 친구라는 이름하에 옆에 두려고 욕심냈는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아름다웠는데, 말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걸 깨버린 널 원망하지만, 정작 잘못한건 나란걸 알고있기에 입을 다문다. 네가 내게 고백을 하던 날. 술에 취해 날 불러내서 사랑한다고 속삭인 날.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널 밀어낸 날. 그리고 조금씩 내가 널 피하기 시작한 날들. 힘에 겨워 네가 나를 떠난다던 날. 6개월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걸까. 사랑했고, 밀어냈고, 지금 다시 찾으러 가고. 미련하다, 도경수.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만 하는 꼴이다.
회상은 길지 않았다. 너와 내가 함께한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으니까. 무슨 추억이랄것도 없이 슝 지나가버렸으니까. 어쩌면 덜아플 수 있겠지만,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다. 보고싶을때 꺼내 볼 수가 없다. 그리울때 찾아갈 함께했던 공간도 없다. 함께 듣던 노래도 없고, 함께 하던 취미도 없다. 그냥 김종인이란 사람만 남아서 그게 너무 힘들다. 네가 이런 날보면 비웃을까. 힘든건 난데 꼴깝떤다고 한대 치지는 않을까. 차라리 그래줬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근 세시간을 달린 기차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멈춰섰다. 또 다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가야한다. 기차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았다. 점심시간를 훌쩍 넘긴 시간이지만 식욕이 땡기지 않았다. 카페모카를 하나 사들고 기차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오모를 찾았다. 웅장하고 거대한 성당. 침을 꿀꺽 삼키고 성당에 발을 내딛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동성애를 하는 이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괜시리 긴장이 되었다. 예배당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길을 끌었다. 가방을 뒤적여 사진뭉치를 꺼내보았다. '밀라노 두오모의 스테인드 글라스' 라고 적힌 내가 보고있는 것과 같은 유리창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역시 어디서 많이 봤다했다.
한참을 번갈아 사진과 스테인드 글라스를 번갈아보았다. 너도 이곳을 찾았었구나. 이곳에서 너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눈을 감았다. 막상 기도를 하려니까 영 어색한게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흠흠, 하나님. 처음뵙겠습니다. 도경수라고 합니다. 여기에 김종인도 왔었죠? 저희 아마도 서로 사랑해요. 하나님이 죄인인 저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면 부디 그 아이에게 한마디만 전해주세요.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늦었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전해주세요. 제가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아니 만날수도 없을지 몰라요. 저는 천국에 갈수 없거든요. 어쨋든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묻고싶은게 있어요. 그건 그때 물어볼게요. 하나님, 이곳은 참 아름다워요. 그렇네요. 이만 갈게요. 기차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거든요. 아멘.
두오모를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돌아가고, 기차역으로 돌아와 또다시 기차를 타고 밀라노의 풍경을 보며 피렌체로 향했다. 하나님, 저희가 사랑하게 된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건가요? 그럼 우리는 왜 사랑하고 있나요? 차마 묻지못한 질문을 머리속에 되내였다. 어디서든 축복받지 못하는 사랑. 문뜩 종인이 불쌍해졌다. 그 아픈사랑을 메고 너는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니? 부디 그랬기를 바라. 내가 해주지 못한 위로를, 이 아름다운 유럽에서 보듬어 줬기를 바라. 그리고, 날 다시 만나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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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써보는 단편이에요!! 과외하다가 과외선생님이 들려준 얘기에 꽂혀서 이렇게 끄적이네요ㅎㅎ
단편이라 금방 끝나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이해를 돕기 위해 피렌체 사진과 밀라노 두오모 사진 올릴게요!!
피렌체 전경
밀라노 두오모
두오모의 스테인드 글라스
첫댓글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ㅎㅎ
와... 색다른 느낌이에요 완전 좋아요 ㅎㅎ
감사합니다ㅋㅋ
미완성 그 아름다운 선율 작가님의 다른작품찾아보다 읽었는데 좋네여~구독하겠슴돠ㅋㅋ
감사함돠 ㅋㅋ 그러세용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