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음속 열차 하이퍼루프
`영구, 무한동력?`
정훈은 백발도인이 떠나면서 남겨준 이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행성 울프-1061c에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철(Fe)과 관련된 물질로, 전기를 만들 때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묻고는 힌트랍시고 알려준 한마디이다.
`철과 관련된 물질, 영구.. 영구자석? 그래 맞아 영구자석이 있네! 근데, 무한동력은 또 뭐야?`
영구자석은 알아낸 것 같은데, 무한동력과 영구자석이 바로 매치가 안 된다.
`무한동력. 무한대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동력원. 외부의 에너지 공급 없이 제 스스로 무한대로, 영구히 돌아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장치. 백발도사 선조님이 말한 영구, 무한동력이 맞네! 그런데 이건 중세의 팔방미인 미켈란젤로도 도전했다던 물레방아 동력장치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가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이미 실현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나와 있는데! 무한동력하고 영구자석하고 무슨 관계가 있지? 물레방아에 달았던 쇠구슬 대신 자석을 사용해 보라고? 글쎄…`
무한동력이라고 불리는 영구기관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 순환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1회 순환이 끝나면 초기 상태로 되돌아와야 한다.
셋째, 순환과정이 한 번 반복될 때마다 외부에 일정량의 일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부에서 어떤 에너지도 공급받지 않으면서, 외부에 에너지를 지속해서 계속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영구기관은 3종을 가상해 볼 수 있다.
1. 제1종 영구기관 : 한 번의 에너지 공급으로 영원히 움직이는 기관인데, 열역학 제1 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된다.
2. 제2종 영구기관 : 열에너지를 스스로 일로 전환하는 기관인데, 열역학 제2 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을 무시해야 가능하다.
3. 제3종 영구기관 : 마찰이나 손실 없이 무한한 운동을 하는 기관으로 앞의 1종과 2종의 영구기관과는 조금 성질이 다르다.
이것은 에너지를 생산하지는 않고 저장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제1, 2종과는 달리 이론적으로는 만들 수 있으며, 현실의 기술로도 이에 근접한 수준으로는 만들 수 있다.
`물레방아는 쇠구슬의 중력인 위치에너지를 이용해서 회전운동을 하는 장치인데, 영구자석을 가지고 중력과 자력을 함께 생각해보라는 뜻인가? 중-자력 발전? 자석을 적당히 배치해서 물레방아 아래에 있는 쇠구슬을 위로 올리는데 도와주면 혹시 연속해서 돌아간다는 건지도 모르겠구먼.`
한참을 생각하던 정훈이 핸드폰을 꺼내서 뉴젠 연구소장, 물리화학박사인 최근상이게 전화를 건다.
“아, 그래 최 박사! 혹시 말이야, 중력과 자력을 함께 사용한 발전기가 개발된 게 있나 해서.”
[뭐? 중력과 자력을 함께 사용한 발전기? 너 또, 무한동력 반짝 머리 떠오른 거야? 그런 거는 물리법칙을 위배한 거라서 지구상에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다니까!]
“그래, 그건 아는데. 그냥 쇠구슬만 다는 게 아니고, 영구자석을 함께 이용한 발전장치 같은 게 있는가 해서 말이야. 밑에 있는 쇠구슬을 끌어올리는데, 자석의 자력으로 약간만 도와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잖아?”
[중력과 자력은 에너지가 아니고 힘이라서 퍼텐셜 에너지 관점에서 따져봐야 돼. 에너지가 얼마나 투입되고 어떻게 회복되느냐를 봐야 한다고. 그런 장치가 있으면 사이클을 세부 단계로 나눠서 관찰하면 되겠지만, 보나 마나 퍼텐셜 에너지를 사용한 만큼 다시 원래 위치 에너지로 되돌리는 부분이 어딘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래서 모순이 생겨서 안 된다니까! ]
“그래, 알았어. 알았는데, 혹시 특허출원 들어온 게 있는지 좀 알아나 봐주라.”
[요즘은 특허청에서도 무슨 무한동력나, 영구기관이라고 하는 제목이 들어가면 아예 접수도 안 해준다! 전에 네가 졸라서 검색해본 것들은 전부 엉터리고, 몇몇 사람들은 가산 다 탕진하고 거지 신세 됐다고 하더라. 어떤 사람은 투자 유치하다가 사기죄로 몰려서 도망 다니고 있대.]
“그때 왜, 일본에서는 제법 큰 발전기가 실용화된 게 있다고 사진도 나오고 그러지 않았어?”
[일본에서 나온 게 있는데, 그거는 기존 발전기에 영구자석을 사용해서 효율을 조금 높인 수준밖에 안 되는 물건들이야. 외부 에너지 없이 제 혼자서 무한하게 돌아가는 영구기관은 제작 불가능하니까 이젠 좀 접으세요, 심통도사 나으리! 사람도 밥을 먹어야 일하는데, 기계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키키.]
*** ***
“그래, 어쩐 일로 한 달도 안 돼서 또 내려왔냐? 회사에는 무슨 일은 없고?”
저녁 식사를 하며 정훈의 부친 이재성이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금년 매출 목표가 작년의 두 배라는 드론 제조업체 ㈜뉴젠을 운영하는 아들이 한창 바쁠 시기에, 다녀간 지 3주 만에 또 내려와서는 악양루 뒷산에 올라가 오후 내내 시간을 보내고 오니까 은근히 걱정된다.
이재성도 예전에 무선중계기 제조업체인 ㈜태성을 운영할 때 자금난에 쪼들려 머리가 아플 때는 인근의 야산에 올라가서 별별 생각을 다 했던 적이 있어서, 혹시 아들 정훈이 그런 말 못 할 곤경에 빠져있지나 않은지 염려가 된다.
“예, 아무 일 없어요. 드론 신제품 성능 시험하느라 고요. 산악지대 비행 연습을 해야 하는데 회사 근처 야산에는 등산객이 많아서 한적한 곳이 없어서요. 요, 뒷산이 바위들도 많고 인적이 없어서 드론 띄워 날리기에 아주 딱 좋습니다. 하하.”
“하모! 미륵 절 올라가는 길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데, 요 악양루 뒷산은 길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어서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도 안 할 거고 마는. 그렇재?”
정훈의 어머니는 아들 회사야 어찌 되는지 말든지 이렇게 자주 볼 수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아예 내려와서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뿐이다.
“그럼요. 개미 새끼는 없어도 도마뱀 새끼는 더러 있는 것 같던데요. 하하.”
“도마뱀이 거기도 있던 가베? 미륵 절 강선암 뒷산에는 엄청나게 많더마는. 호호.”
“이번 토요일이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해서 저도 강선암에 가서 부처님께 봉축이나 할까 해요.”
지난번에 미륵보살님께 큰절 올리고 나서 울프-1061c에서 온 백발도인을 만났으니 부처님 은덕에 감사를 드려야겠다 싶다.
“그래, 잘 생각했다. 이번 석탄절에는 네가 직접 네 이름 써서 봉축 연등 달고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게 해달라고 빌어라. 호호.”
강선암은 정훈의 할아버지가 악양 국민학교 교장 재임 시에 늦둥이 외아들 이재성을 위해 정훈의 할머니가 신도로 다니던 절이라, 정훈 부모님은 매년 부처님 오신 날에 봉축 연등을 달고 있다.
음력 4월 8일을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해서 대부분 석가모니 탄신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실은 입멸(입적: 수도승이 죽음) 하신 날이다.
아명이 싯다르타인 부처님은 기원전 BC624년에 네팔 카필라 왕국 태자로 탄생해서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29살에 출가했다.
수많은 고행을 하다가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붓다)가 되었다.
이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돌며 교화에 힘썼고 쿠시나가라에서 BC544년에 80세로 입멸하였다.
그래서 불기는 BC544년 부처님 입멸을 기준으로 하므로, 올해는 불기 2560년이 되는 해이다.
금년이 예수님이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하는 서력기원, 서기 2016 (AD2016) 년이다.
그러니까 BC624년에 탄생하신 부처님은 예수님보다 624년 먼저, 지금으로부터 2,640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해를 기준으로 하는 단군 기원은 올해가 단기 4349년이 된다.
따라서 이 땅에 고조선이 개국된 날인 개천절은 단기에서 서기를 빼면, 예수님이 태어나기 2,333년 전인 BC 2333년이 되고, 부처님이 태어나신 BC 624년보다 1,709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단군 선조님 덕분에 아주 오래전부터 이 한반도에 뿌리박고 조상 대대로 홍익인간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하고 축복받은 일인가?
“이 참게장은 엄마가 직접 담근 거에요?”
비린내 나는 음식은 별로라서 손이 안 가던 참게장을 어머니가 속살을 발라내어 밥숟갈에 얹어주자 정훈이 마지못해 우물거려 먹으며 한마디 한다.
“하모. 여그 옆에 계곡 또랑에서 작년 가을에 알이 밴 놈 몇 마리 잡아서 내가 담갔다. 함 묵어봐라. 내가 담가도 잘 담가서 맛이 제법 있을 끼다. 호호.”
참게 몸통이 아기 주먹만 해서 반쪽으로 낸 갑각에서 속살을 발라내 봤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안 되는 살점이지만, 엄마의 정성이 담겨서 그런지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입맛을 돋우어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이제는 엄마도 시골사람 다 됐네요. 하하.”
섬진강 유역의 참게는 우리나라 토종인 동남참게로 양쪽의 크고 억센 집게다리에 털이 수북이 나 있어서 금세 구분이 된다.
알이 밴 참게는 11~12월에 염분이 있는 강의 하류로 내려가서 산란하고 이듬해 1~4월 초에 유생이 부화해서 다시 민물로 올라와서 자란다.
“어? 저거 기차 맞아요?”
정훈이 밥을 씹다 말고 티브이 화면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시속 1천2백 킬로미터로 달리게 될 꿈의 음속 열차가 첫 주행시험에 성공했습니다. 머지않아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 열차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분 만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라는 앵커의 설명에 이어서 화면에는, 선로 위에 정지해 있던 기차처럼 생긴 조그만 물체가 출발하자마자 급가속이 되더니 금세 흙먼지를 하늘 높이 날리며 정지하고 멈춰서는 장면이 나왔었다.
“-썰매 형태로 된 3미터 길이의 열차가 시속 187km로 선로를 이동합니다. 브레이크가 개발되지 않은 열차는 모래 더미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춥니다. 이동 시간은 2초.”
물체가 달리는 화면과 함께 앵커의 설명이 들려왔었다.
이어서 근접해서 찍은 선로의 모양이 나오고 구경하는 사람들 모습도 보이면서 앵커의 설명은 계속된다.
“꿈의 음속 열차인 `하이퍼루프`를 현실화하기 위한 첫 주행 시험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화면에는 이 시험 관계자로 보이는 미국인이 인터뷰하는 모습과 번역된 자막이 나온다.
이번에는 추진 시스템을 시연한 것으로 이 부품을 기반으로 연말에 전체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어서 다른 확대된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앵커의 해설이 계속된다.
“이 음속 열차 개발회사는 일단 2초 안에 시속 644km의 속도를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화물을 캡슐 형태의 차량에 실어 음속에 맞먹는 시속 1천2백km로 이동시킨다는 구상입니다.”
정지된 시험 열차의 모습과 확대된 구조를 자세히 보이면서 앵커의 해설은 계속된다.
“결국 이 미래 열차를 이용하면 약 600km 거리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단 30분 만에 갈 수 있고, 약 400km인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16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됩니다.”
화면의 한반도 지도 위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화살표가 지시되면서, 원통의 터널 속을 달려가는 열차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음속 열차 개발회사는 2021년엔 승객을 태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DTN 뉴스, 000입니다.”
하는 앵커의 마지막 해설에 이어서, 처음 2초간의 음속 열차 주행 모습이 재방송되었다.
“우와, 음속이면 초속 340m 아닙니까? 천천히 열둘까지 헤아리면 4km, 10리나 달려가네요. 하하.”
정훈이 놀래서 부모님을 번갈아 보며 혀를 내두른다.
“시방 저거 타모 서울서 부산까지 얼매 걸린다 캤노?”
정훈의 어머니도 눈이 동그래져서 묻는다.
“16분이면 간답니다, 엄마. 호부 16분이요! 데게 빠르지요?”
“그라모 니는 고마 여그 내려와서 살고, 저거 타고 출퇴근해도 되겄네? 호호.”
환갑 넘은 정훈이 엄마는 맨날 아들과 함께 사는 생각뿐인가 보다.
“저거는 미국에서 인자 시험하는 거라는 구만. 그러고 여그서 부산까지는 3백 리가 넘는데 어찌 갈라고? 허허.”
정훈의 아버지 이재성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부인을 바라본다.
“어찌 가기는요. 정훈이 니가 만드는 그 드론 타고 가면 안 되나?”
“예, 엄마!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저딴 거 안타도, 아예 드론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날이 올 거예요. 하하.”
정훈도 그러는 엄마가 안돼 보여서 우스갯소리로 위로해준다.
“저 하이프루프는 지름 3.5m 터널 뚫어서 그 속을 공기저항 없애려고 진공상태로 만들고 자기부상열차로 가는 건데, 시험시설 하는 데만 7조 원이 든단다. 지금 우리 KTX도 서울 부산 간 선로만 직선으로 만들면, 시속 500km로 달려서 1시간 이내로 주파할 수 있는데 뭐 하러 음속 열차 운행하냐? 역까지 가고 오는 시간이 더 걸리는데! 허허.”
“아, 저 음속 열차도 자기 부상 열차예요?”
“그렇지. 자력으로 열차와 선로 레일 간격을 8mm로 유지하면서, 열차와 레일의 자극을 N과 S가 서로 교차되도록 해서 진행하는 거야. N은 S를 당기고, 서로 같은 극 N과 N, S와 S는 밀어주니까 앞에서는 당기고 뒤에서는 밀어주면서 달리는 거지. 원리는 간단해.”
이재성이 음속 열차 하이퍼루프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 ……. 아버지! 자석으로 당기고 밀어요? 그러면, 선로를 원형으로 만들면 열차가 계속해서 돌겠네요? 외부에서 따로 에너지를 공급 안 해 줘도 되고요! 그죠?”
부친의 설명을 듣고는, 물끄러미 초점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정훈이 갑자기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며 큰 소리로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