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겨울 11월 형재(炯齋)가 추워서 뜰 아래 작은 띳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집이 몹시 누추하여 벽에 언 얼음이 뺨을 비추고 방구둘의 그을음 때문에 눈이 시었다. 바닥은 들쭉날쭉해서 그릇을 두면 물이 반드시 엎질러졌다. 햇살이 비쳐 올라오면 쌓였던 눈이 녹아 스며들어 띠에서 누런 국물 같은 것이 뚝뚝 떨어져 손님의 도포에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손님이 크게 놀라 일어나는 바람에 내가 사과하곤 하였으나 게을러 능히 집을 수리하지는 못하였다. 어린 아우와 함께 무릇 석 달간 이곳을 지켰지만 오히려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세 차례나 큰눈을 겪었는데 매번 눈이 한차례 오면 이웃에 키 작은 늙은이가 꼭 대빗자루를 들고 새벽에 문을 두드리며 혀를 끌끌 차면서 혼자 말하곤 했다. "불쌍하구먼! 연약한 수재가 얼지는 않았는가?" 먼저 길을 내고는 그 다음엔 문 밖에 신발 묻힌 것을 찾아다가 쳐서 이를 털고 재빨리 눈을 쓸어 둥글게 세 무더기를 만들어놓고 가곤 하였다. 나는 그 사이에 하마 이불 속에서 옛글 서너 편을 벌써 외우곤 하였다.
오늘은 날씨가 자못 풀렸길래 마침내 책 묶음을 안고서 서쪽 형재에 옮기니 연연히 차마 떠나기 어려운 마음이 있어 몸을 일으켜 세 바퀴 돌고서야 나와서 형재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었다. 붓과 벼루를 정돈하고 도서를 검열한 뒤에 시험 삼아 편안히 앉아보니 또 오랜 나그네 생활 끝에 집에 돌아온 느낌이 있었다. 붓과 벼루와 도서들은 마침내 자질(子姪)들이 나와 절하는 것만 같아서 면목이 비록 조금은 생소해도 아끼어 어루만져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절로 금할 수가 없었다. 아! 이것이 인정이란 말인가? 병술년 대보름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