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 일엽 관세음보살]
일엽관음의 일엽(一(한일)葉(일엽))은 “연꽃잎 하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엽관음도에서도 관세음보살은 하나의 연꽃잎을 타고 앉아 있습니다.
보살을 태운 분홍색 연꽃잎은 마치 조각배처럼 보입니다. 이 위태로워 보이는 조각배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잔잔한 물결 때문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힘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중국 송나라에 유학 온 도원(道(길도)元(으뜸원): 1200~1253년)스님이 일본으로 돌아 갈 때의 일입니다.
배가 남명(南(남녁남)溟(어두울명))에 다다랐을 때 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폭풍으로 큰 파도가 일어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사람들이 놀라서 당황했지만 도원 스님은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홀연히 바다위에 연꽃잎을 탄 관세음보살이 나타났습니다. 곧 바람과 파도가 멈추고 무사히 해안에 도착한 도원(도겐)스님은 자신이 본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조각한 관음상을 남명의 관음사(觀(볼관)音(소리음)寺(절사))에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삼들이 그 관음상을 일엽관음이나 연엽관음, 혹은 남명관음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겐(도원)스님은 일본 불교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겐(도원)스님은 일본 조동종의 초조(初(처음초)祖(조상조)), 즉 일본에 조동종(曹(마을조)洞(골동)宗(마루종))을 처음으로 전한 사람입니다. 조동종은 중국 선종(禪(봉선선)宗(마루종))의 한 갈래인데 초조인 동산(洞(골동)山(뫼산) : 807~869년) 선사와 그 제자인 조산(曹(마을조)山(뫼산))선사의 법호에서 앞의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이 조동종에 속한 송나라의 선사로 천동(天(하늘천)童(아이동):1163~1227년)스님이 있었습니다.
도겐(도원) 스님은 24살 때(1223년)송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는 천동선원(天(하늘천)童(아이동)禪(봉선선)苑(나라동산원))에서 천동 선사의 엄격한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참선 수행한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승인 천동 선사의 인가(認(알인)可(옳을가) : 선가에서 깨달았다고 인정받는 것)를 받은 도겐 선사는 28살 때(1227년) 일본으로 돌아가니 위의 이야기는 그때 겪은 일로 보입니다.
당시 도겐(도원) 선사가 도착한 곳은 지금 규슈의 구마모토이다. 구마모토 현의 관음사와 관련된 자료에 의하면 도겐은 배안에서 판자에다 자신들을 구해준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관음보살상은 선판관음(船(배선)板(널판지판)觀(볼관)音(소리음))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관음사의 북측 물가에 도착한 도겐 스님은 관음상의 개안(開(열개)眼(눈안): 눈을 완성해 정신을 심는 의식, 우리식으로는 점안에 해당함))의식을 하고 바로 관음사에 모셨습니다.
관음사는 구마모토 지역의 바다로 연결되는 미도리카와 라는 강을 따라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스기시마라는 섬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겐 스님이 바다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까지 들어온 것은 여기가 구마모토의 도시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도 구마모토 현의 바다에 인접한 지역과 미도리카와 주변은 대부분이 농토지만 관음사가 있는 지역의 북쪽에서부터 구마모토 시 등의 도시지역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철도 역시 관음사 옆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으로 돌출해 있는 지형도 나루터가 만들어지기 적합한 지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음사는 백제에서 온 일라(日(해일)羅(새그물라))대사가 창건한 절로 여의륜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일라상인(日(해일)羅(새그물라)上(위상)人(사람인))이라고도 불리는 이 스님은 쇼토쿠(574~622년) 태자의 스승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구마모토는 일본에서 백제나 중국을 왕래하는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일라스님은 일본에 첫발을 디딘 곳에 관음사를 세워 멀리 백제에서 바다를 건너오는 동포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도록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귀국하는 도중에 만난 풍랑에서 구해준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조각한 도겐 스님은 조동종의 선사입니다.
선종은 불보살에게 의지하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불보상이 될 것을 추구하며, 따라서 깨달음을 얻은 선사는 사실상 불보살인 것입니다. 그런데 불보살인 도겐 선사가 관세음보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내용을 알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朴(후박나무박)趾(발지)源(근원원): 1737~1805년)이 지은 『열하일기(熱河日記)』(청나라 북부지방을 여행하고 쓴 일기)를 보면 유학자인 그가 어떻게 풍랑을 극복했는지가 나옵니다. 박지원은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풍랑이 이는 강을 건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말안장에서 떨어지면 바로 물결 속으로 빠져 들었지만, 그리되면 물로서 땅, 옷, 몸, 본질로 삼겠다고 작심하자 그의 귀에서 강물소리가 그쳤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그는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위험한 강물을 건넜지만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 있는 자기 방안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평정심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학자인 박지원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스스로의 힘으로 이미 생사를 초월했다는 선사가 풍랑을 만나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관세음보살을 찾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도겐선사는 왜 관세음보살을 찾았을까요. 그 대답은 그의 수행이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4살에 천태종의 본산인 히에이산 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한 도겐스님은 자연스럽게 천태사상을 공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천태사상은 『법화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가『법화경』을 보았다면 “ 보문품”도 보았을 것이고, “만약 큰물을 만나 표류하게 되더라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낮은 곳에 다다를 것이다.”는 구절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관세음보살을 찾으면 구제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들어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도겐스님의 스승인 천동 선사 역시 선종을 배우기 전에 천태사상을 공부했다는 점이다.
사실 도겐스님이 중국에서 공부했던 천동선원 일대는 중국 천태종의 초조인 천태(天(천태종)台(별태)538~597년)대사가 머물렀던 천태산과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알려진 보타도(補(기울보)陀(비탈질타)島(섬도))와 낙가도(落(떨어질낙)迦(막을가)島(섬도))가 있습니다.
아마 이 지역의 스님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일에 익숙했을 것이라 판단이 됩니다.
적어도 당시 그 지역의 중국인 불자들뿐만 아니라 그곳을 왕래하는 일본인 불자들 역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관세음보살을 찾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도겐스님이 귀국할 때 이용한 배에 있던 사람들은 폭풍을 만나자 관세음보살을 찾았을 것이고 도겐스님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이때 도겐선가가 본래 생사가 없으니 나와 같이 참선이나 하고 있자고 했으면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랐을까요. 당시 그 배에 타고 있던 스님이라면 종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도겐스님은 관세음보살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했고 이에 응해 한 조각 연잎을 탄 관세음보살이 나타남으로서 일엽관음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중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에 의해 탄생한 일엽관음은 표류하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일엽관세음보살(一葉觀世音菩薩)
일엽홍련대해중 벽파심처현신통
작야보타관자재 금일강부도량중
대공양 예참 가운데 관세음 보살님을 찬탄하는 게송 [偈頌]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한개의 연꽃 이파리가 큰 바다에 떠 있어
푸른 파도 깊은 곳에 관음 보살이 현신하며
어제 밤에는 보타산에 관자재 보살이시더니
오늘은 도량 속으로 강림하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게송이라는 것은 대체로 게송이 지어 지기까지의 연유가 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내용이 이러 합니다.
항상 관음경을 지송하고 관세음 보살 모다라니를 쓰고 관세음 보살을 사불하여 몸에 품고 다니며, 오고 가나 앉으나 서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관음 신앙을 권하고 그 자신 역시 관세음 보살 염송을 지극히 하는 어느 고을에 현령이 있었답니다.
어느 한 날 밤에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흑풍이 일어 나며 현령의 몸을 감싸서 날아 올려 어디론가 떠밀리듯 날아 가는데 마침내 당도한 곳은 깊은 바다로 둘러 쌓인
악귀 나찰들이 우글거리는 작은 섬이었다 합니다.
연유도 모르게 섬으로 납치 되어 온 현령은 자신의 목숨은 이미 저들 손에 들어 가 있어서 살아 갈 기회는 전무에 가깝고 설령 기회를 보아 탈출을 한다 하여도 푸른 파도 넘실대는 바다 속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수도 없는 정말로 막막한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현령은 자신의 처지를 냉철하게 살피면서 자신이 살아 돌아 가는 길은 오직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력 밖에 없음을 생각하여 그 시간 이후부터는 이런 저런 걱정은 내려 놓고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을 염송하기 시작합니다
그 밤이 지나면 자신은 어찌 될지 모르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오히려 평소보다 염송이 더 잘되고 시간이 깊어 갈수록 마음은 깊은 적정에 들어 가는데 비몽 사몽간에 옥문이 열리며 한 부인이 나타나서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찌 하시는가 어서 내 치마 위에 올라 앉으시게 하고는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자 순식간에 몸을 빼어 가니 현령이 정신을 차리고 본즉 본래 자기 머물던 방입니다.
도무지 영문을 알지 못하던 현령은 자신이 관세음 보살을 염하고 있었음을 생각해 품에 모신 관음경과 관세음 보살 그림을 꺼내니 그림 속에 관세음 보살님이 어제 밤에 옥에서 본 부인의 모습이요 자세히 들여 다 보니 물에 젖은 자욱이 있는데 발목 부분까지 물에 젖어 있습니다.
그제서야 현령은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자신이 살아 돌아 왔음을 믿어 의심치 않고 더욱 더 정진하고 선정을 베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
그같은 일을 연유하여 위와 같은 게송이 지어 졌다하니 사연을 알고 게송을 본다면 그 뜻이 더욱 명확해 질것입니다.
법화경의 관세음 보살 보문품에도 삼십이응신을 나투어 자신을 찾는 사람이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처지에 들었더라도 일념으로 염불하고 구하여 주기를 바라면 반드시 원을 성취시켜 주신다는 약속을 볼수 있습니다.
어느 댁에 갓 시집와서 먼저 염불 공덕 짓고 살림을 배우겠다는 며느리의 말과 행동에 정신이 번쩍 든 시어머니는 염불을 하더라도 내가 더 해야지 너는 아직 날이 창창하니 살림이나 하여라 하고 며느리가 일러 준대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다가 이렇게 한 번에 한 부처와 한 보살을 찾다가는 어느 세월에 많은 염불을 다 채우랴 싶어 천타불 만보살 줄타불 떼보살 하고 염불하여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면서 극락왕생하더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번 염하여 천만명의 불보살을 부르고 한번 불러서 줄과 떼로 불보살을 부르니 한 소리에 팔십억겁 생사 중죄를 소멸하고 한 소리에 팔십억겁 수승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 방법을 일러 드렸으니 염불을 많이 하다 보면 노보살님처럼 그렇게 없던 지혜도 열리고 극락왕생도 하시나 봅니다.
애기가 엄마 부르면 엄마는 밥을 먹다 말고라도 아기에게 달려 가 도움을 주듯 우리가 염하는 불보살님 명호에 불보살님은 본래 자리를 여의지 않으시고 무수히 많은 자비의 화신 나투시어 팔만사천의 모다라니와 청정 보목으로 살피고 거두어 주실 것이니 그저 우리는 쉬지만 않으면 만사 형통입니다.
개인으로나 가정으로나 직장으로나 나라 안팎에 어수선하고 어렵고 힘이 들어 앞이 안보이는 경우 차분히 향하나 피우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염불 하십시요.
염불하는 마음 속에 가피가 현전하고 염불하는 마음 속에 장애가 사라지며 염불하는 마음 속에 지혜가 열립니다. 나의 힘은 열이라면 부처님의 힘에 접하면 천만억배의 힘을 내것으로 나툴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이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에 일어 나면 염불하고 출근하며 염불하며 직장이나 사업장에 들어 서면서 염불하고 업무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에도 염불하며 돌아 오는 시간과 잠 들기 전까지도 염불하는 마음이 지속되면 잠이 든 순간에도 염불하는 마음은 이어 질수 있습니다.
염념불리심 하면 처처가 안락국이라 하시니 염불하는 자리마다 극락 국토가 현전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