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6일 주일예배
안디옥 교회
말씀/행11:19-12:25
요절/행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오늘 말씀에는 여러 사건들이 얽혀 있습니다.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바나바가 안디옥교회로 와서 성도들을 격려하고 다소에 머물던 사울과 함께 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를 통해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어 흉년이 발생하자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역으로 파송했습니다. 그때 헤롯 왕이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를 해치고 베드로마저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했고 헤롯 왕은 주의 사자에게 맞아 벌레에 먹혀 죽게 되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 하나님의 때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개인과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기를 기도합니다.
I. 안디옥 교회 (11:19-30)
19절을 보십시오.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예루살렘 교회에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유대를 벗어나 여러지역에 흩어졌습니다. 이때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480km 북쪽에 위치한 인구 50만의 큰 무역도시였습니다(터키 안타키아 : 기원전 4세기 그리스계 셀레우코스 왕조 중심도시, BC 64년 로마 편입, 동로마 제국시기에도 번성). 동서 문화가 혼합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로마의 아폴론과 잡다한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지성을 자랑하고 다른 민족에 대해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변방지역 이스라엘의 신생종교를 믿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흩어진 성도들은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은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습니다(20절). 그러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21절)”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혀 믿을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이 주의 손에 이끌려 주께 돌아왔습니다. 이를 통해 안디옥교회의 기초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때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던 ‘고구마 전도’와 비슷합니다. 전혀 안 들을 것 같았지만 안디옥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익은 고구마였습니다. 살짝 찔러보았는데 줄줄이 교회로 나왔습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진주UBF도 안디옥교회처럼 부흥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주변 사람들과 학생들을 잘 찔러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안디옥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가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을 통해 이방선교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고 즉시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파송된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를 굳게 세웁니다.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행 4:36,37절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가 사도들로부터 권위자, 위로자(encourager) 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사람을 격려하고 세우는데 뛰어난 은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자기 밭을 팔아 헌금할 정도로 하나님 역사에 헌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4절에는 그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위로자인 그는 양들의 목자가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위로자는 착한 마음과 함께 사람을 끝까지 도울 단단한 마음도 함께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도울 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지만 올바른 관계를 맺고 돕기 위해서는 단호한 훈육자의 모습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양들을 올바로 위로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나바는 어떻게 안디옥교회를 섬겼습니까?
첫째, 모든 사람들을 권하여 굳게 세웠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안디옥은 문화의 유혹이 심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어린 양들이 알아서 예수님을 잘 믿고 싸워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혹과 핍박이 공존하는 공간(사회문화적 압력)은 어떤 신앙인도 견디기 힘듭니다. 이를 잘 아는 바나바는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이 구절에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이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개인의 의지와 주님의 능력이 잘 조화되어야 합니다. 유혹과 핍박을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붙어있겠다는 굳센 마음이 세상을 이기는 성령의 능력을 가져옵니다. 이렇게 바나바가 섬기기 시작하자 큰 무리들이 주께 더하여졌습니다(24절). 위로의 목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목자가 있는 곳에 양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둘째, 사울을 동역자로 세웠습니다. 바나바는 양들이 근본적으로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많았고 혼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 인연이 있었던 사울을 찾아 다소에 갔습니다(25절). 사울은 대학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율법사요 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학문적 체계를 가지고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헬라어를 쓰는 다소에서 태어나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문화를 잘 이해했습니다. 당시 사울은 고향인 다소에서 8년간 복음역사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다소와 안디옥은 도시 규모는 다르지만 같은 시리아 문화권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안디옥교회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바울 연대기 : AD 33년(28세) – 회심, 아라비아에서 3년간 머무름(갈1:17), AD 37년 예루살렘 방문, 15일 체류(행9장), 고향 다소 8년간 거주, AD 45년 안디옥교회 합류(40세), AD 46-48년 – 글라우디오 때 흉년, AD 47-48년 1차 전도여행, AD 50-52년 2차 전도여행, AD 53-57년 3차 전도여행, AD 61-63년 로마 1차 투옥, AD 67년 로마 2차 투옥 및 순교).
여기서 사울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은 28세에 회심하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들의 살해협박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쓰임 받기까지는 1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사울은 확실한 부르심이 있었고 열정도 넘쳤는데 왜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기초는 상당 부분 사울의 서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12년간 성경을 연구하며 유대교 신학을 기독교 신학으로 변화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은 바나바를 통해 사울을 안디옥으로 부르셨고 이때부터 사울을 통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역사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때에 성령께서 이루신 역사입니다. 신앙인들은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고 그동안 쓰임 받을 기반을 잘 닦아야 합니다.
이렇게 확실한 성경선생이 세워지자 안디옥 교회는 큰 무리를 가르칠 체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26a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여기서 일 년간은 영어로 ‘for a whole yea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일 년간 교회에 머물면서 교회를 말씀의 기초위에 견고히 세웠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때에 온 힘을 다해 양무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여기 '그리스도인'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것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들이 '유대인'과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인 성도들을 가르친 바나바와 바울은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연히 유대인으로서 삶의 방식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울은 가말리엘 문하에 배운 바리새인으로서 철저한 유대인으로서 살았고 그 방식이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르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즉 유대인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배웠습니다. 아마도 안디옥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말을 하든 항상 그리스도를 말하고 자랑하고 찬양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경멸적인 의미를 지닌 호칭이었지만 (‘예수쟁이’) 성도들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a man in Christ’의 준말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호칭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 이름에 합당한 순결하고 경건한 삶을 산다면 존경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개독’과 같은 경멸을 받게 됩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박해와 수모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심지어 생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 이름 때문에 받는 손해를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지역을 제외하면 박해와 수모를 겪을 일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의 삶의 방식은 세상과 어울리지 않고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손해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는 바나바의 권면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비록 세상과는 화합하지 못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자녀로서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27, 28절을 보십시오. 안디옥교회가 크게 성장하는 시기에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 황제 :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정치적 배경) 때에 성취되었습니다. 이때 유대에 사는 형제들이 흉년으로 힘든 상황에 몰렸습니다. 안디옥교회 제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각각 그 힘대로 돈을 모아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내었습니다. 사실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의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웃사랑, 형제 구제를 실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안디옥교회를 크게 축복하셔서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II. 헤롯과 하나님의 말씀 (12장)
안디옥교회가 굳게 선 반면 예루살렘 교회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12:1절을 보십시오. 여기 등장하는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그는 요한의 형제이자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야고보를 죽였고(2절) 베드로마저 옥에 가두었습니다(5절). 교회는 정말 간절히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고 주의 사자인 천사가 그를 옥에서 꺼내어 무사히 교회의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천사가 나타났을 때 베드로도 환상으로 생각했고(9절), 교회 사람들도 그의 무사귀환을 믿지 못하고 놀랐습니다(16절). 당시 베드로는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6절)”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탈출은 꿈에서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지만 이렇게 즉각적인 기도응답이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일부 성도들은 베드로가 구차하게 배교하지 않고 순교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간절한 기도에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응답하셨고 성도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의 구원을 증언하고 다른 곳으로 피했습니다(17절).
19절을 보십시오. 이에 헤롯은 베드로의 탈출에 화를 내고 가이사랴로 내려왔습니다. 거기서 두로와 시돈 백성들에게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헤롯은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려다가 주의 징벌을 받아 벌레에 먹혀 죽게 되었습니다(23절). 외경인 마카비 2서에는(9:9) 배에서 벌레가 나오고 악취가 날만큼 몸이 썩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But the word of God continued to increase and spread)(24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해가 있었고 사도의 순교도 있었지만 베드로의 기적적인 귀환과 기도응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전파에 힘을 더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려다 죽은 헤롯(23절)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흥왕해진 하나님의 말씀(24절)을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롯은 당시 로마 황제인 글라우디오의 비호를 받아 왕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로마는 안정적인 황제정을 구축하고 영토를 넓혀가고 있던, 흔히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로 불리던 시기였습니다. 뒷배경이 확실하고 탄탄했던 헤롯은 순은으로 만들어진, 빛을 반사하는 화려한 옷을 입고 연설을 하며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도취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주의 사자가 그를 쳤고 극심한 복통과 함께 사망했습니다. 반면 핍박을 받아 꺼질 것 같았던 하나님의 말씀은 더 커지고 더 멀리 전파되었습니다.
24절 말씀은 예루살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 부조를 하러 왔다가 베드로의 기적적인 귀환을 목격했고 헤롯의 죽음에 대한 소식도 들었습니다. 부조를 마치고 안디옥교회로 돌아간(25절) 이들은 사도행전 13장에서 이어질 1차 전도여행을 감당할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넓은 세계에 전파하는 사도들로 쓰임 받았습니다.
결론 : 사도행전은 제목 그대로 사도들의 역사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박해를 받아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파송된 바나바가 12년간 충분히 숙성된 사울과 함께 안디옥교회의 기초를 닦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흉년과 핍박, 사도가 순교하는 고난을 겪었지만 놀랍도록 확실하게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흥왕하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바나바와 사울의 1차 전도여행으로 완전히 꽃피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건만 보면 우연과 기적이 겹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박해-이주-복음전파-이방교회 설립-예루살렘 교회 흉년과 핍박-기도응답-헤롯 사망–전도 여행). 우리 삶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우리 삶과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굳센 마음으로 의지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놀라운 방식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믿음과 확신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