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답사기]
2024. 4. 27(토)
다락골 성지(새터, 줄무덤)
충남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길 78-6
"지극히 경애하올 신부님들께서 열절한 기도로 우리를 위하여 전능하신 하느님과 성모님께로부터 도움을 얻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포교지를 여러 신부님들의 끈질긴 염려와 지칠 줄 모르는 애덕에 거듭거듭 맡깁니다.
금년에 저의 사목 순방 도중에 중단된 성무 집행의 연말 보고를 드립니다. 1,622명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어른 203명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신자들이 어른 임종자 13명에게 대세를 주었고, 예비 신자 398명이 등록하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열아홉 번째 서한 中>
다락골 성지는 크게 새터와 줄무덤 두 부분으로 나뉜다. 새터와 그 일대는 박해시대 교우들이 삶을 영위하던 곳으로 최경환 성인이 태어나 이성례 마리아와 결혼하였고,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여섯 형제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자리다.
1827년 경 이 집안은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교우촌은 박해시대 초까지 유지되었다.
무진년(1868년) 이후 소멸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성당
▲소성당
▲새터(최경환 성인과 최양업 신부님이 태어난 곳)
▲새터 경당
▲다산 정약용의 집무실이 있던 곳(청양군 남양면 금정2리)
청양지역은 한국천주교회 창설기(1795년 이전)부터 조선 정부에서 우려를 표명할 만큼 천주교가 확산되어 있었다. 그 핵심지역이 금정일대, 즉 보령 성주산과 청양의 경계지역이다.
금정은 역참이 있던 곳으로 금정 일대 천주교 신자들에게 경계를 삼기 위해 다산 정약용을 찰방(察訪)으로 파견하였다. 1784년 입교한 정약용(사도요한)은 주문모 신부의 입국에 연루되어 금정 찰방(종6품)으로 좌천되고 6개월간 재직한 곳이다. 찰방은 역참 (驛站) 을 맡아 보던 외직이다. 다산은 부승지(정3품)에서 7품이나 강등되었다.
금정역지(청양군 화성면 용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