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에게 줄려고 집에 많은 마스크 10장, 코로나 자가 검사 키드 1통, 치약 3통, 지갑, 차 선물세트를
베낭에 넣고, 반찬 2가지와 감자탕 2팩을 사서 베낭에 넣었더니 끈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메는 것을 포기하고 들고 가는데 땀이 났다. 최근 분당사는 절친이 보내 준 티셔츠 2벌 중 남색말고 회색을
입고는 아차산역에서 오금역가 환승해, 수서역에서 13시 55분 부산역발 str를 탑승했다.
탑승시간은 전날 예약하였더니 이른 시간에는 모두 매진되어 가장 빠른 시간을 그나마 잡은 것이다. 강릉
같은 관광지는 매진되도 수시로 해약으로 이른 시간을 잡을수 있지만 대전은 그렇지 않았다.
전철을 경로우대 받기 전에는 버스타고 가락시장역에서 전철을 탑승을 했다면 어젠 전철만 이용했고
대전까지 일반석 20,100원인데 평일에만 경로 할인 30%가 되어서 13,900 원으로 예약하였다.
Stt 탑승하자 땀이 나서 잠바와 티셔츠를 벗어야 했고 14시 44분 대전역에 정시에 도착하니 대전사는 친구
(앞으로 '대친'으로 칭함)가 대전역 대합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반가웠고 주차장으로 갔다.
대친은 초교는 1년 선배지만 중학교는 동기로 1970년대말 서울에서 살때 자주 만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장남으로 군 제대하고 1983년 탄광에서 6개월 근무하던 중, 갱속에 3일만에 구출됬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7만원도 안될때 정선을 중심으로 광산 지역은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닐
정도 호시절로 광부인 대친은 70여만원 받았고 고학 명문대생들이 방학때 알바를 선호했던 곳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대친은 서울에서 인쇄계통 일을 했고 1986년 내 청첩장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대친이
4월 27일 결혼날짜를 잡자 나는 일주일 먼저 결혼을 했고 2년 뒤, 대친이 고민을 꺼냈다.
하남사는 절친(당시 노원구 거주. 앞으로 '하친'으로 칭함)과 나와 셋이 광장 시장의 좌판에서 부치기에
소주 한잔하던 중 대친이 라벨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에너지관리공단 기술직 제안이 온 것이다.
나와 하친은 에너지관리공단 근무를 권하자 대친은 따라 줬고, 다음해(1989년) 하친이 빌린 봉고차로
대친이 운전해 3가족이 여름 휴가로 설악산과 동해안 갔을때, 대친의 딸은 첫돌도 안 지나었다.
다행히 여행을 즐겁게 마쳤고 총각때 4인중 절친인 교육부 공무원부부가 이후 합류하여 4가족이 매년
연말이면 집에 초대하여 새해를 맞이 했는데 만두 빚어 먹고 팔당댐부근의 추억들이 남아 있다.
대친은 1996년 대전열병합발전소로 발령나자 이후 대전사람이 됬고 2005년 아내가 파킨슨으로 지고지순
으로 병간호중인데 내 아내가 24년째 투병중이지만 오히려 대친이 병간호가 더 힘들어 보인다.
7년 전, 만 58세 정년퇴직한 대친은 공기좋은 옥천에서 50평 텃밭을 가꾸며 살다가 올 5월 다시 대전으로
이사를 온 것은 외출할 때 잠깐이라도 아내를 대전에 사는 자녀에게 맡길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친이 운전하여 간 곳은 '뿌리공원'으로 민과관이 협조로 조성된 전국 유일 '효' 테마공원이다. 자신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성씨 별 조형물과 사신도와 12가지를 형상화한 뿌 리 깊은 샘물이 있다.
각종행사를 할 수 있는 수변무대, 잔디광장과 공원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 팔각정자 뿐만 아니라
삼림욕장, 자연관찰원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진 체험학습의 산교육장으로 힐링이 됬다.
남양홍씨 조형물이 두 곳(시조인 '천하'와 '선행')이 있는데 먼저 만들어진 시조인 홍천하 조형물에 가니
'남양홍씨종탑'이 있었고 유래를 읽어본후 고향 남양홍씨 종친회 총무인 9촌조카에게 폰했다.
정선읍내에서 맛집인 '산마실'을 하는 조카는 나보다 한살 많지만 동문은 아니지만 학년은 같아 편안한
관계로 '홍천하' 조상이 맞다고 했고 정선의 남양홍씨의 뿌리는 항골이지만 이후는 '동막'이다.
이어 '보문산 도시공원'을 산책한후 대친 집에 들려서 대친 아내와 해후하고 수자원 공사에서 정년퇴직한 후
협력업체에서 5년간 전무로 근무중인 친구가 콜이 와서 60년 전통 '대선칼국수'로 갔다.
두 친구가 술을 거의 안해서 내가 원하는 안주집을 잘 몰라서 사학연금 공단 근무하다가 대전에서 예식장을
운영했던 고교친구에게 6곳을 추천받아 선택한 안주는 '오삼두루치기'로 내 스타일이었다.
맵기에 구운 두부를 시켰는데 이 또한 별미고 국물 서비스도 기가 막혔으며 사리인 국수 2인분을 두루치기 국물에 말았더니 입에서 녹았고 칼국수 2인분까지 시켰고 소주 '이제 우린'도 마실만 했다.
종업원의 앞치마에는 70년 전통으로 봐서 60년은 오래된 간판 때문인 것 같고 대형 음식점이 만석으로
씨끌러운 것 이 흠이 였으며 차 한잔했는데 전무인 친구가 현역이라면서 1~2차 계산을 했다.
전무인 친구는 1991년부터 대전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세 종시에 산다. 출퇴근하는 거리는 20km 조금
]넘는다고 하며 차가 막혀서 7시 출근하며 두 아들 결혼식에 내가 대전와서 모두 축하해 줬다.
다음달 3째주 토요일 재경중고 동기 송년회때 보기로 하고 헤어지고 대전시청역에서 전철을 탔더니 경로
우대가 안돼 1,250원 카드 결재하고 용문역에서 내려 유등천을 걸어 대친의 아파트로 갔다.
오후 9시30분 도착해 18,729보 걸었다. 대전 중심인 둔산동에서 밤을 보냈고 오랜만에 강물따라 걷고
돌다리도 건너 봤고 대친이 월 2만원 내고, 매일 다니는 체육관(배드민턴, 헬스 등)도 들렸다.
'골때리는 그녀들'을 시청하면서 내가 갖고 온 허파볶음과 돼지껍데기 볶음 그리고 대친이 내 놓은 알타리에
프라스틱 소주를 마셨는데 전무인 친구는 운전하고, 대친은 붓기로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 덕분에 과음하지 않았고 대친의 아내도 같이 먹었다. 대 친의 현재 집에 오래 전에 자고 갔고 옥천살때
일산사는 절친과 한번 자고 간 적이 있었고 이후에 나 혼자 옥천에서 자고 가서 4번째로 잤다.
대친은 주식투자의 대가다. 12년 전 주식투자로 고급차로 바꾸었고 현재 안 좋은 장에서 보유한 주식이
많이 올랐다. 나름대로 기준과 원칙이 있었고 내가 잘려고 하는데 경제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대친이 내 생일인 줄 알고 미역국을 해 놓아, 조식을 안 먹는 대신 아내와 같이 먹었으며 점심때 사학연금
출신 고교친구와 점심하고 저녁엔 종근당 근무중인 고인이 된 동생의 아들과 한잔할 것 같다.
점심하고 종근당이 있는 천안으로 간다. 오후 5시 이후, 대 우출신으로 목동에서 최근 천안으로 이사 간
고교 친구가 시간이 난다고 하는데 나는 셋이 보면 좋겠는데 친구가 응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제 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코로나19 확진자 2만5498명 으로 전날 동시간대보다 3839명 줄었으며 1주일
전보다는 2181명, 2주일 전 보다는 4592명 감소함으로서 완만한 감소세가 유지되고 있다.
원문 글이 길어서 오늘 뉴스는 짧게 썼으며 오늘도 전국적으로 청명한 가을하늘이 함께 하겠고 아침과 낮
기온 모두 어제보다 높겠고(서울 낮 기온 23도) 목청 높이는 신나는 목요일을 보내세요.
https://youtu.be/u3U_5UVFw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