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이지만...그동안의 문제점에 대해 조리있게 잘 써주신것 같아서...허락받고 퍼왔으니,되도록이면 이 글은 여기저기 퍼트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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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화가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때에는, 이를 소비한다는 것은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고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의 과정입니다. 그 사고 파는 - 즉 매매의 과정에서는 '돈'이 오가는 것이 보통이나, 각 재화의 성격에 따라 대가지불의 형태는 각양각색입니다. 이를테면 신문을 인터넷에서 보는 것 또한, 무료인 듯 하지만 광고를 강제적으로 보게 됨으로써 신문사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셈(그리고 신문의 컨텐츠를 소비한 셈)이지요. 이렇듯 그 방법은 여러가지이고, 이에 따르면 '대여' 또한 재화에 대한 대가지불의 한 형태로서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 '대여'를 따르는 재화는 비디오 등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대여가 어느 재화의 제작자(생산자, 원 저작자)에게 대가지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구조를 갖는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대여의 형태를 지닌 시장이 해당 재화의 규모를 고정시키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 해당되는 재화는, 대여되는 수 만큼의 수익만을 얻게 되겠지요. 그리고 대여 이상을 만들 수 없게 됩니다. …이 경우 그 재화는 대여의 형태로는 시장을 만들 수 없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요. '만화'는 물론 이를 넘어 '도서'가 그렇습니다.
도서는 그 재화 특성상 '판매'되는 것 외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비디오 대여의 경우, 그 안에 담긴 영화컨텐츠는 이미 영화시장에서 한 차례 승부를 보아 수익을 낸 다음 일종의 부수익으로 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디오 대여 그 자체가 영화 시장의 전부는 아닙니다. 영화의 시장은 비디오 대여점이 아니라 극장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여시장과 비디오방이 용인 가능한 겁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자동차의 대여인 렌트카의 경우입니다. 애시당초 전 국민이 렌트카로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설정이거니와, 차를 필요로 하는 수요층은 범국민적인 규모입니다. 또한 사서 100년 타고 다니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수요가 생기기에(하물며 사고도 잦고 수명도 있죠), 그 사이에서 렌트카 사업을 한다해서 현대나 기아가 망해버리진 않습니다. 하물며 이용빈도나 횟수를 생각할 때, 렌트카가 차를 직접 끄는 것보다 경제적이지만도 않지요. 반면에 도서는 그러한 1, 2차적인 시장이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판매'가 한 차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끝인 시장입니다.
일단 '대여점'이 문제되는 건, 이 한 차례의 '판매'로 끝인 재화를 가지고 영리 목적의 장사를 한다는 것이지요. 간단히 예를 들어, 만화가 한 권 있습니다. 3천원짜리 만화책이 있으면, 그 중 300원(정가 10%)의 인세와 출판사 몫의 얼마간이 빠지고 총판등을 통한 유통마진이 빠지고 대여점엔 20%의 할인가(2400)원으로 떨어집니다. 도서정가제의 실시로 요즘은 정가로 받습니다만…. 어쨌든, 작가와 출판사에겐 수익은 딱 저기까지입니다. 대여점은 이 구입한 책 한 권을 가지고 여러번을 빌려줍니다. 회당 300원의 대여료를 받고 10번을 반복하면 책 한 권 값이 빠지지요. 그 이후부터는 고스란히 수익이 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업주분들이 요즘 10번 나가는 것도 없을 지경으로 어렵다!하는 것은 접어두더라도) 10번이든 100번이든 1000번이든, 작가와 출판사에 돌아가는 건 오로지 저 한 권 만큼의 수익, 그 뿐입니다. 나머지는 물론 고스란히 대여점의 수익. 대가지불이 제대로 된다 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를 재화의 본질적 성격으로 인해 안고 들어가는 거지요.
더 큰 문제는 이 '대여'라는 행위에 대해서, 저작권적인 측면에서 저작권자에게 아무런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시장에서 제아무리 오류라는 측면에 있다한들 대여는 불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작권자 즉 작가는 대여에 대해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합니다. 자신이 그린 작품에 대해 대여에 관한 가부를 결정할 권리조차 없거니와, 수익에 대한 보장 또한 받지 못합니다. 매우 불합리하지요.
2.
그러나 '도서대여점'만의 문제라 볼 수는 없는 것이, '대여'라는 개념을 도서에 들이대기 시작한 시점에 그 아무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못했습니다). 원래 뭐든 시장이 그럭저럭(내지는 그냥저냥) 이어질 때엔 문제점은 커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이 문제를 4330(1997)년을 기점으로 놓고 보는데, 그 이전에도 도서대여점이 있었으나 그렇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 기점을 지나면서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큰 사건 두 개가 터지지요. 청소년보호법과 IMF라는 괴물이 나온 겁니다. 정확히는 일반 소매서점에서 만화코너가 사라지게 된 결정타가 이 청소년보호법이고, IMF로 인해 실직자가 늘면서 ('정부 장려'가 아니었어도) 자연스레 저투자 고부가가치의 부업거리로써 도서대여점이 이전에 비해 상당수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도서대여점'인데 유독 만화가 부각된 것은, 대여란 행위로 수익을 뽑기에 상당히 적합한 형태(권수도 많지, 수량 많지, 애들이 잘 찾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목만 잘 잡으면 당시로서는 상당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던 겁니다. 때문에 목 좋은 곳에서는 경쟁이 심각해서 권당 100원까지도 대여료가 내려갔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80년대 말, 90년대 초 들어선 만화 출판사들은 그나마 판매형 만화를 만들던 노선에서 이탈해 수적으로 늘어난 대여점에 '적응'하였습니다. 무리한 투자보다는 늘어난 대여점수만큼의 안정적인 판매부수에 기대는 전략을 보인거지요. 이런 노선을 걸을 경우 출판사가 선택할 길은 하나, 역시 적은 투자로 큰 수익을 노리는 겁니다. 출판사에서 큰 투자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시작해 키워야 하는 '창작물'입니다. 그에 비해 적은 돈을 들여 수익을 뽑을 수 있는 건? 일본 만화의 정식 한국어판(번역 라이센스본) 출간이지요. 일본만화가 가리지 않고 밀려들어온 게 바로 이 탓입니다. 물량공세에 가까운 일본만화의 홍수 속에, 당연하게도 물량면에서도 밀리고 제작여력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우리만화가 부각되기란 매우 힘들어졌지요. 그 이후 몇 년 사이에 "한국만화는 볼 것 없다, 일본만화가 최고다"식의 편견이 굳건해진 것이 이 탓입니다. 출판사가 이렇게 나오니, 이에 자신을 맞추어 물량공세를 통한 수익추구에 나선 작가들 또한 생겨났습니다. 뒤에 다시 말하겠는데 이를 두고 작가라 하지 않고 공장장(내지는 사장)이라 부르며, 김성모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습니다. 사실 전반적으로 작품 개개와 작가 개개인의 질적 수준이 떨어졌다 할 순 없으나, 이렇게 새로이 생겨난 공장제 만화의 출연은 확실히 질보다 양을 추구함으로써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잃어간 것이 사실입니다. (아, 물론 김성모는 그 안에서 스스로 방향을 잡고 나가 「대털」등에선 의외로 볼만한 면모를 선사해주기도 했습니다. 참 특이한 경우라 하곘습니다)
3.
문제는 더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판매형 시장이 생겨났던 건 온 만화 유통을 쥐고 흔들었던 '독재자' [합동]의 생성 이전인 50년대 잠깐, 그리고 서울문화사와 대원이 잡지를 내고 단행본을 찍었던 90년대 초반의 반짝, 사실상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정도로 반짝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상당한 성과를 보이긴 하였으나, 이어지지 못했지요. 그 나머지 기간인 50여년간 한국의 만화판을 쥐고 흔들었던 개념은 판매가 아닌 대여였습니다. 물론 80년대 이전에는 '대본소(만화방)'가 있었고, 지금의 주류는 '대여점'이지요. 둘은 대여라는 개념은 같을 지언정 형태나 성격이 상당히 다릅니다(특히 당시 대본소는 질낮은 '대본판형'의 만화만을 취급했으며 업소 안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대여점은 판매용 책으로 영업을 하죠). 대본소 이야기를 꺼내려면 시간을 5∼60년대까지 이야기를 되돌려야 하는데, 너무 복잡하니 간단하게만 정리해보지요. 당시 대본소를 쥐고 흔들었던 [합동]이 독재자란 별명을 갖는 건 유통망을 휘어잡고 대본소와 작가의 생명줄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말을 안 들으면 작가는 작품을 그릴 수 없었고 대본소는 책을 못 받아 영업을 할 수 없었지요. 보다 많은 수익을 만들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것과 같은 공장제 만화의 개념이 정립된 시기가 바로 이 때입니다. 즉,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많은 물량을 얼마나 빠른 시간에 찍어내 뿌리느냐가 관건이었던 거지요.
이 때 사용된 전가의 보도, 유통망이 바로 만화총판입니다. 일반 도서와 달리 만화만 취급하는 이 독특한 유통망을 휘어잡고 흔듦으로써 무려 20여년간 독재자로서 군림할 수 있었는데, 이 탓에 독재 하의 일사천리적인 처리에 있어선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유통망이 되긴 하였으나 반면에 생산적으로 발전할 여지는 이만큼도 없었지요. 더군다나 일반 도서 판매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굳어져버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합동 전용, '대본소용 만화' 전용의 유통망이 된 셈이지요. 그런데 [합동]이 무너지고 난 후, 총판도 같이 무너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독재자가 죽은 후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난다고 해도, 새 출판사가 새 만화판을 만든다고 해도,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는 세월동안 굳어진 걸 무시할 순 없었던 겁니다. 결국 판매형 시장이니 뭐니 해도 만화는 총판 유통을 탈 수 밖에 없었지요.
…방금 앞에서 말한 대로 총판은 이미 대본소용 만화 유통망의 성격을 간직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걸 타는 판매형 시장의 생성? 사실상 무리라고 보는 편이 맞지요. 그래서 저는 90년대 중반을 전후해 다시 '대여'의 형태를 갖춘 '(만화를 주 종목으로 하는) 도서 대여점' 시장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흐름이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그 물이 그 물인걸요. 그나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책을 찍어냈던 출판사였으나 그걸 유통시키고 있던 건 여전히 만화 총판이었고, 도서 대여점이 생기면서 총판으로서는 대본소와 다를 바 없는 판매형태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주종목이다시피 했지요.
이 상황에 청보법이 터지면서 만화판 마녀사냥 당해 작가 끌려가고 성인잡지 폐간되지, 성인물 코너를 따로 만들지 못하는 소매서점들은 만화 들여놓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 이 상황에 IMF터져…. 만화에 대한 수요가 아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살 공간 자체를 잃어버린 시점에서 교묘한 타이밍으로 도서대여점이 수익성 좋은 부업으로 알려져 창업 붐을 이루게 됩니다. 판매도 병향되는 수준이었던 것이, 수요심리가 모두 대여쪽으로 순식간에 몰려가게 된 건 이 탓입니다. 그리고 만화시장은 급속하게 도서대여점'만'의 시장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자, 유통은 총판, 사보는 수요조차 은연중에 대여수요로만 몰려가, 사실상 [합동] 시절의 만화판과 다를 바가 없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출판사까지 전략적으로 대여점에 적응해버렸지.
실제로 이 대여점 효과는 실로 강력해서, 수요를 독점함으로써 수요자의 반응창구가 된 것입니다. 대여점에서 팔리지 않는 책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됩니다. 작가는 자연스레 퇴출됩니다. 대여점 업주분들이 종종 "대여점에서도 안 팔리는 책이…"라면서 큰 소리를 내십니다만, 그건 작품이 떨어져서 안 나간다기보다는 대여점 수요층의 구미에 맞지 않은 탓이 큽니다. 대여점이 무서운게 바로 그. 사.이.에. 세.대.가. 갈.렸.다.는. 점.인데, 만화를 작품으로서 보아오고, 댕기나 보물섬 등의 잡지등을 통해 수준작들을 오랜 기간 가슴속에 간직해오고 이야기할 줄 알았던 - 책에 지갑을 열 수 있었고 열 줄 알았던 -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독자들과는 달리 대여점을 통해 만화를 처음 접한 이들은 아파트 단지 등의 '목' 답게 어린 친구들이 상당수입니다. 이들은 좋은 작품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노출도 잘 되지 않고, 그런 작품은 단기적 흥행과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또래 사이에서 인기가 있을 법한 예쁘고 쉬운 작품을 주로 고르게 되지요. 하물며 빨리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생각을 오래해야 하는 등의 복잡한 작품이나 그림이 어려운 작품은 멀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대여점의 수요자로서 몇 년간 '자랍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새로운 '아이'들이 또 들어옵니다. 세대간 비율로 보아 절대적인 수를 자랑하는 이들 아이∼학생층(성장까지 감안하자면 더욱 두터움)의 시각만이 시장의 절대다수입니다. 이거 무서운 겁니다. 작품의 질적 측면에 대한 고민은 사실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채, 이들의 구미와 수준에 맞추어지는 게 시장의 전부가 된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성인들이 볼만한 만화는 나올 구석 자체를 법이 없애버렸으니… 이 상황, 정말로 [합동]과 다를 바 없는 거죠. 더군다나 앞서 언급된 "한국만화는 볼 것 없다, 일본만화가 최고다"라는 이상한 편견이 이들에게 강하게 교육됩니다. 문제는 실제로 편견에 지나지 않는 이 발언으로 인해, '보여지지도 못한' 작품이 지나치게 많단 거지요. 한국만화가 볼 것 없다? 사실상 보지 않고 평가하는 것 만큼 웃긴 일도 없지요. (상당수의 수요자와 대여점 업주분들은 이 점을 간과한 채 자신들이 내미는 수치를 절대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점포 기준. 이런 건 '오만'에 지나지 않아요)
자아, 이런 상황에서, 도서대여점들은 서로가 경쟁을 하다 채산성이 맞지 않게 된 패배자는 폐업을 하고, 그 책 중고시장에 나가면 그거 가져다 다른 대여점 생기고, 또 경쟁하고…(그 와중에 누출된 책이 멀쩡히 제 값 주고 산 사람에게 전달되는 극악무도한 사태도 빚어지고) 잘 나가는 줄 알았던 일본만화도 사실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처음에 명작 들여오다 수작, 평작 들여오다보니 더 이상 들여올만한 이름값 되는 작품이 없어 나중엔 동인지 수준도 안 되는 것까지 마구 들여와,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수요층의 시선까지 멀어져, 경쟁은 계속돼, 비용 떨어져, 설상가상으로 만화 뿐 아니라 전반적인 도서시상 전체가 불황에 빠지는데 전국민이 책에 관심이 없어졌지, 경기 어렵지. 이러니 도서대여점도 태생적인 모순점으로 인해 스스로를 갉아먹게 됩니다. 그나마 수적 우세인 일본만화가 질적측면을 보장할 수 없자 수요층이 흥미를 잃은 건 당연하고, 쉽게 모인 만큼 쉽게 떠납니다. 더군다나 나이어린 친구들은 컴퓨터 세대 답게 돌파구를 찾아냈는데, 바로 스캔만화입니다. 만화책을 스캔해서 올려놓으면 와레즈를 통해 '공유'한다는 건데, 문제는 스캔만화가 돈 주고 책을 사서 스캔하는게 아니라 대여점에서 빌려다 스캔한다는 겁니다. 이거 개그죠. 애초에 300원의 비용으로 빌려보는 가격조차 아까워 공짜로 봐야 하고, 만화니까 그게 당연하다? 만화라는 매체를 쉽게 빌려 보고 갖다주는 것으로 인식시킨 것이 바로 대여점이고, 스캔만화는 사실상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 심지어 대여점은 스캔만화에서 원전(Source)의 공급책 역할이기까지 합니다. 어릴수록 개념을 잘못 잡으면 도둑질도 죄가 아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로서는 대여마저도 만화를 보는 데에 돈을 뺐는 방해꾼이죠. (…그런 점에서 대여접 업주들이 스캔만화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는 건 다소 어불성설입니다. 대여점의 태생적 한계에서, 흐름을 타고 나타난 어쩌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만화판이 '대여'란 체제로 돌아가버리면 - 사실상 옛날로의 회귀나 다름없는 일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결과적으로 봐도 이 모양이고, 실상 예상보다 피해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 때문에 몇몇 작가들을 비롯해 독자들이 이에 대한 우려와 함께 만화를 왜 사봐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사실상 씨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초기에는 작가의 입장에 상당히 치중해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합니다. 지금에 와서 토론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대여점 관계자분들이 하는 말이 자신들의 입장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과 매일반입니다. 여담이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전자가 논의가 없던 상태에서 끌어오는 노력을 꾸준히 가해왔다면 후자는 그걸 빤히 보면서도 전혀 참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근래 대여점 업주들의 상당수 주장은 사실상 최근의 '대여권'문제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반대여토론'에서 이미 끄집어내졌던 사안들의 재탕에 가까운 형국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상당부분이 실망스럽기 이를데 없습니다.
어쨌든 그런 점에서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맞다 그르다'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고민이 각계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으나, 그러질 못한 채 시간이 흘러 급속도로 상황이 악화되어서야 그 논의들이 지적했던 부분들에 대한 보다 생산적인 대안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요. 그 사이에, 수요자들은 독자들의 외침에 대해 단순히 '한국만화와 일본만화'의 이분법적 구도로 몰아간다든지 작가에 대한 폄훼나 작품 수준에 대한 오만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대여를 옹호하는데 급급했습니다. 고민은 커녕, 알려 들지 않는 이들에게 애시당초 '설득'은 불가능합니다. 오래전의 대본소를 통해 생존해온 작가와 대여점에 잘 적응한 작가들이 상당수인 만화가 단체는 대여점 관련해서 큰 소리를 낼 입장이 못 되었고(!), 출판사 또한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무덤파들어가는 형국에서 이를 부정하는 건 꿈도 못 꿀 지경이었지요. 대여점은 대여점대로 자신들의 태생적인 면면을 따지기보다는 드러나있는 현재의 현실만을 강조하며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입장만을 되풀이합니다. 그 사이의 수요자들은 그 사이에 스캔만화를 돌려볼 뿐인, '독자'도 아닌 단순 '수요자'에서 '만화보는 기계'로 더더욱 퇴화되어 가고, 자기 정당화에 정신 없습니다.
…고민이 필요했던 시기, 때를 놓친 결과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지금 이 현실… 이렇습니다.
이걸 과연 대여점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이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대여체제'.
"대여점과 출판, 유통 등 만화 출판에 관련되어있는 모든 체제들과 작가, 정부, 그리고 '만화를 보고 있는 이들'의 정신없는 난교(亂交)속에 탄생한 한 마리 거대 괴수가 현재 우리 만화계를 쥐흔들고 있는 '대여체제'다."
결국 만화판을 대여체제 - 대여점체제가 아닌 - 로 만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거고, 우리나라의 50여년 만화판이 갖고 온 불가항력에 가까운 현실적 한계까지 곁들여져있는 겁니다. 누구 하나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기에 더욱 괴롭죠. …뒤집어 말하자면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 와서 각자의 입장에서만 아득바득거리는 건 옳지 않습니다. 특히나 현재의 현실적 상황을 두고 결과론적으로 외치는 건 - 일례로 아래 김승남 님이 올려놓으신 4569번 글이 대표적일텐데, 이런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고민해본다면 함부로 "이건 이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분명한 건 이대로만 가면 공멸이라는 겁니다.
4.
다른 곳은 다른 곳대로 나름의 논의를 끌어가겠으나, 어쨌든 말씀하신대로 좁혀 이야기하자면 [만화인]은 이 대여체제의 생성과 과정, 그리고 그 폐해에 대해 언급해왔습니다. 단순히 대여점이 나쁘다, 가 아닙니다.
그 폐해를 고치기 위한 대안으로 이미 대여체제를 이루고 있는 각 구성원을 아우르는 법안과 유통망 개선이 따라야 한다고 언급했었고, 그 지적은 현재 - 물론 이 곳만의 발언은 아닙니다만 - '대여권'이라는 형태로 법안 상정을 위한 토의가 정부차원에서 각 구성원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진행중이며, 유통망 개선 또한 출판협회 차원에서 진행중이죠.
대여권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저작권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권리의 보장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대여점을 죽이는 식의 방향이 아니라 현실을 감안해 인정을 하되 그로 인한 폐해도 시정하기 위한 일종의 상생안건입니다. 좀 더 자세히 나가자면, 작가가 자신의 책을 대여할 수 있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소유한 이후에 대해 대여가 가능한지에 대한 부분 등이 전혀 정의되어있지가 않아, 말씀하신 부분등에 대해서도 사실상 어떠한 해석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만 사실 그 '뭘 하느냐'의 '뭘'이 '영리목적의 상행위'가 되면 재화의 성격을 고려치 않을 때 나타날 폐해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지요. 그걸 지정해두는 겁니다.
이에 따라 대여는 대여만으로, 판매는 판매만으로, 또는 대여점에서 판매도 가능하고, 대여에 따른 대가지불을 해야 한다는 등의 여러 안건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권리 보장과 함께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대여만으로 한정되는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여지가 생깁니다. 특히 판매용을 대여점에 그대로 비치함으로서 구분을 두지 않는 바람에 발생하는 폐해또한 막을 수 있게 되겠지요. 물론, 판매를 위해선 홍보의 강화 등 이어서 나올 대책이 필수이긴 하겠으나 그건 그 방향을 선택한 당사자들이 만들어갈 문제이지 여기서 걱정할 문제는 아니고, 이렇게 되면 최소한 대여점수만큼의 판매고마저 포기해야 하므로 남은 건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제가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이겁니다.
"각자는 각자의 방향을 향해 뛰어야 한다."
몇 줄 안 되는 질문에 지금 전 상당한 양의 문장을 내질렀습니다. 더군다나 사실 답은 토론 게시판에 다 있는데도…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라건대 상황을 쉽게 보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왜' 대여체제가 문제시 되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현재 문제점을 고치기 위한 논의중입니다만, 그렇다해서 결과물이 도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사실상 대여권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니라 청보법과 유통망개선이 함께 맞물려 움직여져야 할 부분이기에 4340(2007)년, 아니 그 이후에나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그 때까지는 이 상태에서 그렇게 크게 달라지진 않습니다. 변화를 기다리기만 하기 전에, 최소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조그마한 부분이나마 실천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게 이곳의 입장입니다.
(대여점의) 단순 수요자가 아닌 '독자' - 즉 도서(중에서 만화)를 하나의 문화매체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제 대가를 치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대여체제는 이 재화에 대해 제대로 된 대가지불을 할 수가 없고,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판매'외에는 길이 없다. 또한, 현재의 대여체제는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대우(평가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로지 주 이용 세대에 따른 유행이 있을 뿐이고, 그 또한 이미 한계를 드러낸지 오래다. 이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선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좋은 작품을 찾아내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작품'을 '찾아 읽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여정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적어도 만화를 하나의 문화매체로서 인정해주고, 그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것이 독자로서의 기본 입장이라고 봅니다. 대가가 지불되려면 현 위치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겠지요. 그런 다음 생각해보지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이건 졸작이니 돈 안 내는게 당연해, 내지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500원 정도면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 온당할까요? 음반을 듣고는 반 값만 내도 충분하겠다며 그 가격을 받으라 요구하는게 온당할까요? 자동차의 시승회나 음료수의 시음회 같이 일종의 공산품 또는 식품의 경우와는 달리 문화매체는 태생적, 형태적 특성상 한 차례 보거나 듣고 나면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감상의 깊이를 젖혀두자면) 전체를 받아들인 건 똑같습니다. 때문에 흥행 또는 판매를 위해 직접적으로 허용하거나 판매처에서 일부를 보여주는 시사회 또는 음반 미리듣기 정도를 넘어서 그 자체를 다 보고 그 다음 가치를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태도입니다. 게임 제작사 손노리의 이원술씨의 담화문에 이런 말이 있지요. "살 가치가 없다면 사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살 가치가 없다면 하지도 마십시오." 게임의 예이기에 이를 만화로 돌려보면, 살 가치가 없다면 보지도 말라는 겁니다. 애써서 보고, 가치없다고 내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그건 그저 핑계죠.
'판단'에 필요한 기준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는 온전히 독자의 몫입니다. 이 시점에서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건 각종 감상과 비평, 그리고 잡지입니다. 어느 하나 쉬운 거 없지요? 특히 잡지는 돈 주고 사야 합니다. 그런데 수록된 작품 수와 페이지 수는 물론이거니와 수록 작품이 책으로 나오기 전에 미리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음을 보자면 그 가격이 전혀 비싸지 않습니다. 사실, 단순 수요자들은 지나치게 편했던 거지요. 방법을 직접 찾다보면 작품을 보는 시각도 넓힐 수 있습니다. 도서대여점의 책장에 진열된 것 외의 또 다른 작품세계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지요. 조언을 구하다보면 더 재밌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물론 주변에서 찾지 말고 여러 곳을 돌아다녀보셔야 합니다.
이러한 최소한의 노력들이 담보되어야 '가치판단' '소장가치'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이 어느 정도 있어주면 정책적인 시장 개변 이전에도 어느 정도 기초체력을 남길 수 있습니다. 대여점은 현재 사실상 스스로의 체제적 모순점을 안고 자멸수순을 밟고 있으며, 대여점 수가 준다는 건 그에 매인 시장이 그만큼 줄어버린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여시장은 늘어날 수 있는 위치는 못되지요. 시장 현실이 그걸 허용치도 않습니다. 애초에 재화의 특성을 거스르는 시장이기에 지금에 와서는 아귀가 맞지 않는 구석도 있지요. 즉, 법안 이전에 궤멸상태에 빠질 가능성조차 없지 않습니다. 정말 살고자, 내지는 상생을 원한다면 그 가치를 인정하는 자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빌려보는 행동 자체를 막을 재간은 사실 없습니다. 그 점 빤히 알아요.
사서보자고는 말하지만, 그런 이들 모두를 막을 수 있는 강제력은 없습니다.
빌려볼 이들은 빌려보면 그만입니다. 단, 어긋난 점이 분명 저만치나 산적해있는 체제 속에서 한 단편만을 들어 자신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며, 뭐가 문제냐며 악을 쓰는 그 태도만큼은 정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빌려보려면 그냥 조용히 대여점을 이용하되, 이곳을 찾아 의문을 던지는 이에게는 그 문제점을 알리고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겁니다.
적어도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문제제기는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5.
사설대여와 공공대여에 대해.
사설대여는 도서대여점과 같이 한 상품을 영리를 목적으로 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공공대여는 도서관의 경우과 같이 이윤보다 공공을 위한 비영리적 '대출'의 성격을 지니지요. 공공대여는 일반 국민의 독서를 위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사실 오히려 장려되어야 합니다. 문제시되는 건 사설대여이지 공공대여가 아니랍니다.
…하지만 200원씩 주고 빌려주는 그 친구분은 자중할 필요가 있겠군요.
규모야 비할 바는 없지만 대여점과 마찬가지인걸요.
6.
마지막으로.
"만화가들이라는 사람은 자기 책을 보아주는 사람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자기도 존재의미를 갖는 사람들인거 같은데요. 만화의 주체는 "그리는 사람"과 "보아주는 사람" 모두가 주체가 아닐런지요?"
지금까지의 글을 읽으셨다면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실 수 있겠지요.
자신이 내려주는 가치판단을 작가에게 강요하는 건, 다시 말하건대 지독한 오만입니다. 비평이라면 모를까, 한 상품의 가격을 두고 넌 이것만 받아도 돼, 라고 말하는 거니까요. 이래서야, 다음과 같은 말을 작가의 면전에 대고 내뱉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 선생님 만화 너무 좋아해서 10번 빌려봤어여ㅋㅋㅋ"
참고로 열 번 빌려볼 값이면 한 권 사서 열 번을 다시 보아도 되지요. 돌려줄 필요도 없고.
그러나 그 10번이 구입이었으면 작가에겐 300원이 아닌 3000원이 돌아갑니다.
…혹여나 작가란 가난한 가운데에 작가정신을 발휘하야-같은 말이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이런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