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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2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중국 식당 가스폭발로 31명 사망
2023년 프랑스서 5만7천년 이전 네안데르탈인 최고 동굴 조각 발견
2022년 아프가니스탄 남동부 국경 지역 규모 5.9의 강진 발생 1000명 이상이 사망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낙후한 산악·접경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진원이 깊지 않아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 등의 정보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1시24분 아프간 남동부 파키스탄 국경 인근인 파크티카주에서 규모 5.9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 깊이가 10㎞에 불과한 이 지진은 수도 카불은 물론 인접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펀자브 등 수백㎞ 떨어진 곳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될 정도로 위력이 컸다.
2019년 김태선 KBO 기록위원, 역대 2번째 3000경기 출장
KBO 김태선 기록위원이 리그 역대 2번째로 3000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김태선 위원은 2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 출장해 대기록을 세웠다.
김 위원은 1992년 8월 25일 잠실에서 열린 태평양 돌핀스와 OB 베어스의 경기에서 KBO 리그 공식 기록위원으로 데뷔해 올해로 28년째를 맞이한 베테랑 기록원이다.
2003년 6월 14일 대구시민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 1000경기에 출장한 김 기록위원은 2011년 5월 17일 문학 롯데 자이언츠와 SK 와이번스 경기에서 20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2015년 6월 23일 대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와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2500경기 출장 고지를 밟았다.
2016년 북한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무수단(BM-25)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2발 발사
2016년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 총기규제법이 상원에서 부결되자 하원의사당 26시간동안 점거농성
2014년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009년 대(對)잠수함 어뢰 '홍상어' 개발
2009년 6월 22일 하늘로 날아가 20여㎞ 떨어져 있는 적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대잠(對潛)무기 '홍상어'가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홍상어는 기존 함정이나 항공기에서 발사되는 경(輕)어뢰에 비해 사정거리가 길고 정확도도 훨씬 뛰어난 무기로, 잠수함 잡는 미사일로 불린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는 22일 "9년간 1000여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홍상어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미국 외에 유럽, 러시아 등이 대잠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직으로 발사돼 적 잠수함을 잡는 미사일은 홍상어가 미국의 VLA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라고 ADD는 밝혔다.
홍상어는 길이 5.7m, 직경 0.38m, 무게 820㎏이며 1발당 가격은 약 20억원이다. 5000t급 한국형 구축함(KDX-Ⅱ)과 세종대왕급 이지스함(KDX-Ⅲ)의 한국형 수직발사기(KVLS)에 장착될 예정이다.
2009년 미국 워싱턴DC 지하철 추돌사고
2009년 6월 2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오후 5시쯤(현지시각) 워싱턴 D.C.와 메릴랜드를 연결하는 레드라인 노선의 타코마 역과 포트 토튼 역 사이 지상 구간에서 지하철 열차가 추돌했다. 워싱턴 지하철 33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이날 사고로 9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쳤다. 이번 사고는 포트토튼역에 진입하려고 정차해 있던 열차를 후속 열차가 추돌하면서 발생했다.
2005년 전남 진도군 남도석성에서 옛 조선소 발견
2005년 세계정교회 수장인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방한
2006년 대법원 트랜스젠더의 호적상 성별 정정 허가 판결
2004년 가나무역 김선일씨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살
2004년 6월 22일 김선일씨가 “제발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는 장면이 알자지라 방송에 나온 뒤 이틀도 지나지 않아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방향 35km 떨어진 지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알자지라 방송이 김씨 피랍 테이프를 처음 방송한 시각은 한국 시간으로 21일 오전5시였다. 이 테이프에서 이라크 저항단체는 “24시간내에 한국군이 철군하지 않으면 인질을 참수하겠다”고 위협했다.
김선일씨는 17일(현지 시각) 바그다드에서 200여km 떨어진 미군 리브지 캠프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던 중 이같은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시간이나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우리 정부는 21일 오전8시 정부 국가안보회의를 개최해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평화와 재건을 위한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하고, 즉각 각종 루트를 총동원해 김씨 무사 석방을 위한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22일 밤10시 20분(현지시각 오후 5시 20분),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바그다드 부근에서 발견됐다는 미군 당국의 연락이 왔고, 이내 김씨 시신임을 확인됐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우리 측과 진행한 석방 교섭에서 우리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파병 철회와 관련한 요구를 전달했다가 이것이 수용되지 않자 김씨를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미국 13세 천재소년시인 스테파넥 요절
세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미국의 천재 소년 시인 매튜 J T 스테파넥(13)군이 선천성 근육병과 싸우다 2004년 6월 22일 끝내 숨져 미국을 슬픔에 빠뜨렸다.
매튜군은 태어날 때부터 ‘자율신경 기능장애 근육병증’을 앓아왔으며 이 병은 모든 신체기능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귀성 유전병으로 알려져 있다. 매튜군은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와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해야 했고, 1주일에 한 번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지난 2001년부터 ‘하트송(Heartsong)’이라는 제목 아래 다섯 권의 시집 시리즈를 출간해 일약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뛰어올랐다. 그의 감수성 물씬한 시들은 똑같은 병을 앓았던 세 형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며 나온 것이었다.
그는 투병생활 중에도 ‘오프라 윈프리 쇼’나 ‘래리킹 라이브’ 등 유명 TV쇼에 출연해 천사 같은 미소와 발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티’란 애칭으로 불리던 이 인기 시인은 희귀근육병협회의 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해 투병 환자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후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4년 900년 전 목판인쇄한 대각국사 의천의 ‘교장(敎藏)’ 공개
900년 전 목판 인쇄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의 ‘교장’(敎藏·속장경) 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상국(朴相國) 예능민속연구실장은 “최근 일본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에 소장된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 40권의 실물을 열람하고 사진을 촬영했다”고 22일 밝혔다. 의천이 편찬한 원본이 사진으로나마 공개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도다이지가 이 서적을 소장하게 된 것은 1095~1101년 사이 의천이 일본 승려의 요청으로 두루마리 40권을 보낸 데서 기인한다. 박 실장은 “‘교장’은 ‘대장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인데 그동안 ‘속장경’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원각본(원래 목판으로 인쇄한 서적) ‘교장’이 전란에 소실돼 남아있지 않다.
2003년 이승엽 국내 최초로 300·301호 연타석 홈런 최연소 세계신기록
22일 대구 SK전에서 세계 최연소(26년 10개월 4일) 300홈런을 달성한데 이어 내친 김에 301호 홈런까지 날린 이승엽은 남은 시즌 동안 가능한 홈런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300홈런은 초구를 때린 것이었고, 301홈런은 만루홈런이었다.
힘이 아닌 타이밍으로 홈런을 만들어내는 이승엽은 투수가 던질 공의 구질과 코스를 예측해 홈런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런 가운데 이승엽은 이날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통산 8개의 그랜드 슬램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중 최다. SK의 김기태, 기아 신동주와 동률이다.
이승엽은 또 1사 후 솔로 홈런을 가장 많이 쳤다. 1사 후에 친 홈런은 전체의 38.2%이며, 솔로 홈런은 160개로 53.2%에 달했다.
또 대구구장에서 181개의 홈런을 쳐 절반 이상의 홈런을 홈구장에서 때려냈으며, 왼손 타자답게 우월(우중월 포함) 홈런이 162개나 됐다. 구질별로는 빠른 볼을 때려 담장을 넘긴 게 187개로 변화구(114개)보다 훨씬 많았다. 결국 이승엽에겐 1사 후 초구에 빠른 볼을 던지면 홈런을 얻어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게 통계적으로 나와 있다. 통산 300호 홈런도 1사 후 SK 김원형의 초구 몸쪽 높은 빠른 볼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겼다.
2002년 한국, 아시아 첫 `4강 신화` 달성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23명 태극전사의 땀과 투지,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 4700만 국민적 열망이 함께 어우러진 `아시아의 힘`이었다. 한국이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랭킹 8위인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120분 연장사투 끝에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아시아 첫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은 전반부터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웠던 빠른 측면돌파가 촘촘히 망을 친 스페인의 수비에 힘을 잃었다. 오히려 제공권을 빼앗기며 여러 차례 실점위기를 내줬다. 그러나 그때마다 수문장 이운재의 선방이 빛났다. 모리엔테스, 데페드로, 이에로, 호아킨 등의 날카로운 슈팅을 정확한 위치선정과 순발력으로 막아냈다. 후반 15분 유상철 대신 이천수를 투입하며 공격의 활로를 튼 한국은 박지성과 이천수의 슛 등으로 맞서며 연장까지 0―0 공방전을 펼쳤다.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이 모두 골을 넣고, 이운재가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의 슛을 막아냈다. 마지막으로 주장 홍명보가 침착하게 찬 볼은 오른쪽 네트에 시원하게 꽂혔다. 한국의 `파워사커`가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뒤흔드는 순간이었다.
2001년 성악가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 국내 첫 합동 공연
1999년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 JD 샐린저가 27년전 쓴 연애편지 1억9천만원에 경매
1998년 북한 잠수정 동해안에서 어선 그물에 걸려 좌초
1998년 6월 22일 오후 4시 33분쯤 강원도 속초 동쪽 11.5마일 해상에서 북한 잠수정 1척이 대남공작 임무를 마치고 귀환중 우리 어선의 꽁치잡이 그물에 걸려 우리 군에 예인됐다. 잠수정은 속초 앞바다에서 조업중이던 동일호 선장 김인용씨가 처음 발견해 우리 군에 신고했다.
잠수정의 내부 해치를 특수장비로 절단하고 수색한 결과 잠수정에는 승조원과 공작원 등 9명이 총상을 입고 집단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이밖에 잠수정안에서 PG-7 대전차로켓포 2정, 7.65mm 체코제 기관권총 4정, AK소총 3정, 수류탄 4발 등의 무기도 발견됐다.
잠수정안에서 발견된 항해메모에 의하면 잠수정은 20일 오후 6시30분 북한 공작원을 태우고 대남 침투기지인 원산 황토성의 훈련장을 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1일 오후 7시 하선지 부근에 도착해 10시경 안내조가 육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들이 대남공작 임무를 마치고 잠수정으로 귀환해 하선지를 벗어나 북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22일 오전 0시38분이었다. 잠수정에서 발견된 시체9구는 7월3일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송환됐다.
1994년 러시아-나토, 군사 정치적 관계 정립을 위한 `평화동반관계`에 서명
1992년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사망
게오르규는 억압적 체제, 획일주의, 물질만능사상 하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탐구해온 전후 문학의 주춧돌 같은 존재로 꼽힌다. ‘25시’ ‘제2의 찬스’ ‘키랄레사의 학살’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세계는 소외 당하고 천대받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돌아보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16년 루마니아의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4세 때인 1940년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왕국 시인상을 받으며 필명을 날렸으나 루마니아가 소련에 의해 적화되자 1946년 파리로 망명했다. 1949년 파리에서 출간된 ‘25시’ 는 모든 구원이 차단된 절망과 불안의 시간을 상징함으로써 서구문명의 삭막함과 인간상실의 황폐함을 경고하고 있다. 1963년 루마니아 정교회 파리교회 사제가 된 그는 작품 못지 않게 사제로서도 조국의 독재체제에 맞서 투쟁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루마니아여 깨어나라’는 라디오방송 연설로 조국 루마니아 사람들을 깨우치기도 했다. 공산치하에 시달리던 조국의 현실을 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된 그는 특히 한국의 분단현실을 깊이 이해해준 친한국파이기도 했다. 1974년 첫 방한이래 모두 5차례나 한국을 찾았으며, 한국을 ‘새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애정을 가져 ‘한국찬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1985년 스포츠서울 창간
1984년 영락교회 박조준 목사 부부. 20여만달러 밀반출 기도 혐의로 영장
1982년 IBM산업스파이 사건 발생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 개원
1981년 이란 호메이니, 바니 사드르 대통령 해임
이란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가 1981년 6월 22일 바니 사드르 이란 대통령을 해임했다. 호메이니의 해임선언은 정치적 매장과 신변불안을 함께 의미했다. 사드르는 결국 7월 29일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호메이니의 전폭적인 신뢰로 지난 1980년 1월 이란 대통령에 당선된 온건파 바니 사드르가 해임되고 망명해야 했던 이유는 강경파인 회교혁명평의회(IRP)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했기 때문이었다.
양측의 대립이 본격화된 것은 온건파 사드르를 제거키로 결정한 IRP가 1981년 3월 5일 사드르 연설장에서 소란을 피우자 사드르 지지파와 이들간에 충돌사건이 발생,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부터였다. 이 사건후 강경파가 장악하고 있는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가 총동원돼 사드르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사드르는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 은신에 들어갔다. 6월 20일 혁명검찰부는 체포령을 내렸고 호메이니는 이날 그를 대통령직에서 해임했다.
1978년 한일대륙붕협정 비준서 교환
1974년에 체결된 한일대륙붕협정 비준서가 1978년 6월 22일 교환됐다. 협정 체결로부터 4년 5개월이나 늦어진 것은 일본 의회가 협정발효에 필요한 비준을 지연시켰기 때문이었다. 체결목적은 제주도 동남방 약 8만4천 평방km의 대륙붕을 공동개발하기 위해서였다. 한일 양국은 협정이 규정한 바에 따라 실무 협의체인 한일대륙붕 공동위원회를 구성, 1978년 11월부터 1차회의를 열어 실무적인 절차를 협의하고 1979년 10월 2차회의에서 탐사작업에 들어가기로 합의함으로써 1979년 10월 30일부터 제5, 7광구에 대한 음파탐지에 착수했다.
1977년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 미 의회 증언
5․16쿠데타의 주체세력,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 부장을 7년이나 지내며 막강한 권력과 힘을 자랑했던 남산 돈까스 김형욱.
불가능해 보였던 3선 개헌을 성공시켜 유신정권의 막을 여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그는 돌연 중앙정보부 부장에서 해임되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1977년 6월 22일 김형욱은 미국 의회의 증언대에 섰다.
김형욱은 거침이 없었다.
공산당과 빨갱이 잡기에 일생을 받쳤다는 김형욱은 이제 미국의 여론 광장을 통하여 한국의 유신 독재자인 박정희 사냥에 나섰다. 박 정권에서는 그가 미국 의회에서 반 한 반 박정희 증언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끈질긴 회유와 협박을 가했으나, 이미 김형욱은 그런 일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반 박정희 의회 증언은 소위 ''회고록 집필 작업''으로 이어졌다. 박사월이라는 필명의 청년이 그를 도왔다.
27 개월에 걸쳐 제1부 5.16 비사와 제2부 박정희 왕조의 비화가 1979년 9월 말에 탈고되었다.
1979년 10월 7일, 김형욱은 파리에서 실종된다.
세계 경찰 사상 정확한 탐문과 수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국립 경찰도 ''We don‘t Know''가 김형욱 파리 실종 사건에 대한 공식 최후 발표문이다.
1973년 첫 유인우주실험실 스카이랩 귀환, 우주인 3명이 최장 28일간 우주체재 기록
1973년 우리나라 첫 현수교 남해대교 개통
우리나라 3번째 큰 섬인 남해와 경남 하동군 금남면을 잇는 남해대교가 1973년 6월 22일 오전 11시 개통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테이프를 끊은 이 남해대교 개통식에는 건설부장관 등 정부고위층과 건설공사관계자 및 현지주민들이 참석했다. 길이 660m, 폭 12m의 새 남해대교는 우리나라 첫 현수교(서스펜션 브리지= 적당히 늘어지게 친 케이블이 본체를 구성하는 다리)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케 됐다. 지난 1968년 5월에 착공, 만 5년 만에 준공된 이 다리는 18억7천만원을 들여 세웠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14만명의 인구를 가진 남해섬의 화방사, 용문사, 상주해수욕장 등 관광지가 크게 각광을 받게 됐다
1970년 국립현충원 현충문 폭파사건 발생
북한 간첩이 국립묘지 참배요인을 살해하기 위해 현충문에 폭발물을 장치하다가 실수로 간첩 1명은 폭사하였고, 잔당은 도주.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조인
1965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이에 부속하는 4개 협정 및 25개 문서를 총칭하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어 같은 해 12월 18일 성립․발효되었다.
제1차 한일회담은 1952년 2월 15일부터 시작되었으나, 대일 민간청구권 문제와 어업문제에 관한 의견대립으로 4월 21일 중단되었다. 이후 5차회담까지 결렬과 중단을 거듭하다가 1962년 11월 12일 도쿄[東京]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외상이 비밀회담을 가지고 기존의 쟁점이었던 대일청구권 문제와 평화선, 재일동포 법적지위 문제에 대한 타협점을 찾으면서 회담은 급진전되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학생시위가 일어나고 한일회담 반대운동이 극심해지자 6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6․3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965년 6월22일, 일본 수상 관저에서 일본측 대표인 시나 외상과 한국측 대표인 이동원 외무장관이 조인식을 가짐으로써 지난 14년간 줄다리기를 해온 두 나라 사이의 국교 정상화 문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63년 온 나라에 큰비 사망 77명 이재민 38,000명
1962년 프랑스항공 보잉707 서인도제도 파돌루프 섬 추락 사망 113명
1961년 공보부 신설
1960년 국회의원선거법 국회통과
1957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 총회 시작, 말렌코프,몰로토프,카가노비치,세피로르 추방
1950년 북한, 전투명령 제1호 하달
1948년 우리나라 첫올림픽선수단 런던으로 출발
1948년 6월 22일 부산항을 출발한 올림픽 선수단은 일본 후쿠오카를 거쳐 요코하마에서 3만 t 급 대형 여객선 제너럴 맥스로 갈아타고 7월 2일에야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에서 방콕(태국), 카라치(파키스탄), 카이로(이집트), 암스테르담(네덜란드)에서 착륙과 이륙을 반복한 뒤에야 프로펠러 비행기는 런던에 내렸다.
총 19박 20일, 서울역에서 부산을 향해 열차로 이동한 일정을 더하면 20박 21일에 달하는 문자 그대로 장도(長途)였다.
최초로 한국 국명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하계올림픽의 세계무대에 발을 내디뎠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이었지만 서울시 산하의 올림픽후원회는 공채(公債)격인 올림픽선수 후원권 140만 장을 발매해 참가 경비를 조달했고, 제헌국회는 선수들에게 보내는 격려 메시지를 채택했다.
애초에 큰 기대를 건 분야는 마라톤이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을 2시간 25분 39초의 기록으로 제패한 서윤복(徐潤福)을 비롯해 세계 상위권에 랭크된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의 쾌거를 재현해 주기를 기대했지만, 홍종오와 서윤복이 각각 25, 27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낭보는 기대하지 않았던 역도에서 김성집(金晟集) 선수가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거머쥔 것이다.
복싱에서도 플라이급의 한수안(韓水安)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최종 성적은 동메달 2개. 아시아권에서는 금메달 한 개를 기록한 인도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었다.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내기 위해 이상백(李相佰) 당시 조선체육회 이사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브런디지 부위원장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그 결과 브런디지 부위원장은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맥아더 사령관은 하지 한국주둔군 사령관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마침내 신생 한국이 세계 스포츠 무대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47년 미국 미조리 주에서 1시간에 비 305mm 내림
1946년 광복군 환국
1943년 미국 디트로이트서 인종폭동
1941년 독일, 소련에 선전포고
1941년 6월 22일 오전 5시30분 독일 선전장관 괴벨스가 라디오를 통해 히틀러의 대소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이에앞선 오전 3시, 약 300만명의 독일군이 이미 전차 등을 동원, 대진격을 개시했다. 육전사상 최대규모였다. 히틀러는 129년 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그 날을 선택했다. 나폴레옹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해내겠다는 히틀러의 야심찬 도전이었다.
초기에는 히틀러의 뜻대로 되는 듯 했다. 독일군은 곳곳에서 소련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새벽 무렵에 이미 전차부대가 소련 영내 80km 지점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이유는 소련을 포함한 동부유럽의 광대한 지역이 전쟁을 위한 자원공급지로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스탈린은 히틀러의 침입을 예측하지 못했다.
역사상 최강전력의 공격에 소련군은 혼란에 빠졌다. 오후 0시15분경 비로소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이 라디오로 독일군의 침공사실을 소련 국민에게 알렸다. 소련군은 독일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6개월 동안 4백만명 이상이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전통적으로 동계를 이용하는 소련군 작전에 말려들었다. 독일군은 소련의 주코프 대장이 이끄는 1백개 사단 병력의 대반격에 개전이래 처음으로 큰 패배를 맛보았고, 이때부터 히틀러는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40년 독일-프랑스 휴전협정 조인
1940년 독일의 기상학자 쾨펜 사망
1939년 국민당군, 신4군공격 (평강사건)
1937년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21년 코민테른 제3차 세계대회 모스크바서 개최
1920년 그리스. 터키 전쟁 발발
1904년 원산~인천 간 전화 개통
1898년 독일의 소설가 레마르크 출생 - `서부전선 이상없다`(1929)
1891년 북로전신선(한성·원산간) 준공
1881년 주전을 중지하고 각종 도고 행위를 금지
1767년 독일의 언어학자··교육개혁가 훔볼트 출생
1752년 번개 실험
미국의 프랭클린은 1659년에 『번갯불은 전기 현상으로 생기는 것이다.』라고 발표했으나, 당시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자, 그는 이를 실험하기로 결심, 비오는 날이었던 1752년 오늘 그의 아들과 더불어 하늘에 연을 날려 연줄을 통해 흐르는 전류를 초인종에 연결하여 초인종이 울리도록 했다.
이 실험의 결과를 보고 나서 당시 세계 사람들은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믿게 되었다.
오늘날의 피뢰침은 이 실험 결과 발명된 것이다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동설 철회
1527년 이탈리아 문예부흥기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 세상 떠남
1486년 조선, 여외정병(旅外正兵)을 혁파하여 보인(保人)으로 함.(음력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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