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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차 탄 동기동창
[페이지] F01
이근삼 작
문고헌 연출
극단 '춘추' 58회 공연 작품
1991. 6. 1~6. 14
문예회관 소극장
[페이지] 001
-등장인물
김대부
오달
여인
(서울서 한 백리쯤 떨어진 시골. 솔나무와 떡갈나무만 무성한 야산을 등에 진 벽장의 거실. 말이
거실이지 농가를 개조한 초라한 집이다. 거실에는 낡은 소파며 티 테이블,족자,책장,벽장등이 보인다.
어떤 여름철 저녁. 김대부가 앞치마를 풀며 들어온다. 앞치마를 곱게 개서 선반위에 놓고 소파에 앉아
신문지를 든다. 잠시 후 크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다시 방 한중간에 돌아와 어색하게
체조를 한다. 이어 소파에 앉아 신문지를 접어 읽는다. 노크 소리가 난다. 대부가 놀라 일어서며
팔뚝시계를 본다)
[소리] 계십니까?
[대부] 누구요?
[소리] 계십니까?
(대부가 문을 열자 오달이 조그만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페이지] 002
[대부] 누구세요?
[오달] 야 - 오랫만이다. 이거 몇년만이야? 김대부지? 야 오랫만이다. 나 모르겠어?
(오달이 대부의 손을 덥석 쥐고 흔든다) 야 이거 몇년만이야 김대부
[대부] (손을 잡힌채) 오랫만이야
[오달] 사람 오래 살고 볼거야. 야 오랫만이다
[대부] 오랫만--- 댁은 뉘시요?
[오달] 야, 너 농담도 잘하는구나. 나 모르겠어?
[대부] 글쎄--- 잘 모르겠는데---
[오달] 나 오달이야 오달
[대부] ---잘 모르겠는데--- 혹시 잘못 찾아 온게 아닙니까?
[오달] 야 김대부! 나 몰라? 오달이라니까
[대부] 오달---글쎄---?
[오달] 나 참! 동창생이야
[대부] 동창? 무슨 동창---?
[오달] 나 참! 국민학교 동창생. 그것도 동기동창이란 말이야 너 월광국민학교 나왔지?
[대부] 월광국민학교--- 한 오십년전에---
[오달] 사십년전이야. 틀림없지?
[대부] ---그건 맞는데---
[오달] 너 줄반장했지?
[대부] ---줄반장--- 그런거 좀 했지
[페이지] 003
[오달] 졸업할때 육학년 이반 이었지?
[대부] 그렇던가?
[오달] 담임선생이 방호근이라고---
[대부] 방호근---?
[오달] 아 딸기코 말야
[대부] 아- 딸기코 선생
[오달]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너는 몸이 약하다고 늘 스토브 바로 앞에 앉았어, 그렇지?
[대부] ---그런것 같군
[오달] 이제 알겠어? 우린 동기동창생이야
[대부] ---사십년전에
[오달] 그래 역시 동기동창생은 잊을수가 없어 너 박곽섭이 알지? 우리 동창 말이야
[대부] 박곽섭
[오달] 그 새끼 이번에 차관이 됐어. 너 이성균이 알지?
[대부] 이성균---
[오달] 그 새끼는 단자회사의 사장이 됐어. 너 윤봉일이 생각나지?
[대부] 윤봉일---
[오달] 그 새낀 며칠전에 죽었어. 간암이래. 하기야 너나 나나 나이 육십이니 언제 죽을지 모르지?
너 유진규 알지?
[대부] 유진규---
[오달] 그 새끼 한달전에 이혼했어. 나이 육십에 이혼이 뭐야 너 이경동이 알지?
[대부] 가만 네 이름이 뭐라구?
[페이지] 004
[오달] 자식, 줄반장까지 한놈이 벌써 머리통이 비었니? 오달
[대부] 오달---음---좀 앉지 그래 (오달이 소파에 앉는다)
[오달] 야, 너 별로 늙지 않았구나
[대부] 그래?---우린--- 그러니까 몇년만에 만났다고?
[오달] 사십년만에, 그러니 더 반갑지 안그래? 반갑지?
[대부] ---그럼
[오달] 너 은퇴했다며?
[대부] ---좀 쉬고 있지. 몸도 약해지고 해서 너 여긴 어떻게 알고 왔니?
[오달] 응, 우린 가끔 연락이 있거든. 봉선이,근일이,동보,유삼이,광균이---
[대부] 그게 누군데?
[오달] 누구긴 누구야. 우리 동창이지. 하여간 그 친구들중의 누군가가 네 얘기를 하더라. 너 여기
혼자 산다고
[대부] 어떻게 알았을까?
[오달] 야 여기가 멀긴 멀다. 한 이십리쯤 걸었다. 동창생이 뭔지!
[대부] ---고맙다
[오달] 버스가 휴게소에서 잠깐 멎더군. 고산 휴게소 말야 그래서 슬쩍 빠져 나왔어
[대부] 무슨 버슨데?
[오달] 관광버스.거 있잖아 효도관광이라는거. 딸년이 3박 4일짜리 효도관광표를 끊어줬어
부탁한적도 없는데 (담배를 꺼내 피워문다) 내가 귀찮다는거지
[페이지] 005
[대부] 사람들이 찾겠는데?
[오달] 버스 안에 남자라곤 나하고 칠십이 넘은 영감뿐이고 전부 쭈글쭈글한 노친네들 뿐이야. 이
늙은년들이 술을 처먹고 주책없이 춤을 추고 창가를 하고---날더러 노래하라 춤추라 못살게구니---
사람이란 늙으면 죽어야 해. 그것들하고 삼박사일? 미치지! 고산휴게소에서 버스가 멎자 갑자기 네
생각이 났어 나 기억력 하나는 좋다
[대부] 그런것 같아
[오달] 그래서 내뺀거지
(담배재를 여기저기에 마구 턴다. 대부가 담뱃재에 신경을 쓴다)
[대부] ---그밑에 재털이가 있을텐데---
(오달이 재떨이를 꺼낸다. 그러나 이야기 하는동안 여전히 아무데나 재를 털어 대부를 괴롭힌다)
[오달] 버스 차장년이 지금쯤 지랄할거야
[대부] 자넨 딸네집에 있었나?
[오달] 그렇게 됐어
[대부] 아들은 없나?
[오달] 있어, 둘.
[대부] 그럼 아들집에 있을거지---?
[오달] 이민갔어. 한놈은 우루과이에 갔고---우루과이 아나?
[대부] 중남미에 있는 나라지. 거기서 뭘하는데?
[오달] 잘 모르겠어. 장남은 텍사스에 가있어. 텍사스카우보이 알지?
[대부] 거기서 뭣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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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식당에서 일한대
[대부] 그럼 미국에 건너가지 그래?
[오달] 미국? (호주머니에서 패스포드와 비행기표를 꺼내보이며) 패스포드와 비행기표는 늘 가지고,
다니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수있어
[대부] 노후 대책이 완벽하군. 그런데 ---아주머니는?
[오달] 아주머니? 아, 우리 처? 죽었어 십년전에
[대부] 안됐군.
[오달] 너의 처는 어떻게 됐니?
[대부] ---마찬가지야 5년전에
[오달] 야 우린 어쩌면 처지가 이렇게 똑같냐? 동창생에다 여편네는 다죽고
[대부] 그런가
[오달] 그것 뿐이냐. 늙어서 아들 딸의 대우를 못받는것도 똑같구
[대부] 그게 무슨 소리야?
[오달] 너 왜 여기서 혼자 사니?
[대부] 내가 좋아하니까
[오달] 너 아들 딸 있니?
[대부] 나참! 아들이 하나 있어
[오달] 하나뿐이야? 뭣하는데?
[대부]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어
[오달] 아들 미국 안갔니?
[대부] 왜?
[오달] 웬만한 놈들은 다 미국 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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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아들은 자네 아들처럼 꼭 미국에 가야 하나?
[오달] 그럴필요는 없지 (어색한 사이)
[대부] ---재떨이가 거기 있는데---
[오달] 너 미국 가봤니?
[대부] 응, 오래전이야
[오달] 이민 갔었니?
[대부] 아-니---공부하러
[오달] (놀라서) 그래? 너 공부는 잘했으니까. 돌아와뭐했니?
[대부] ---그럭저럭---대학 강사도 좀 했구---출판사도 경영 했구
[오달] 출판사? 책만드는 공장?대
[대부] ---뭐 그런거지. 자네는 국민학교 나온 다음에 뭐 했는데?
[오달] 우리 아버지가 시장에서 솜틀을 놀리지 않았니. 솜장사지 나도 아버지 밑에서 솜장사 했지.
돈좀 버는가 했더니 인조솜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건 판이라. 재봉틀 몇대 사다놓고 사람 몇 쓰면서
마구 돌렸지. 봉재업 말이야. 야 그래도 삼십년 잘지랄했더니 돈은 좀 벌었다. 시장에 나가 물어봐
오광상회라면 알아줬다. 그러니 애새끼들 대학 다 나왔지
[대부] 그럼 이젠 부러울게 없겠군. 지금도 재봉틀 굴리고 있나?
[오달] 아냐, 애새끼들 크다보니---지금은 딸년이 사위놈하고 그놈의 돈빼가지고 TV대리상을
한다는데 망쪼야
[대부] 잘하겠지 뭐
[오달] 앞길이 새깜해. 미국으로 날아간 돈이 얼만데
[대부] 쓸데없는 생각 말고 손자나 보면서 편안히 지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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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손자놈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 눈치밥 먹을 신세가 될줄이야 그러니 자꾸 너같은 동창생
생각만 나더라
[대부]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냐?
[오달] 나 딸네집에 안들어가. 아마 사위놈이 히죽거리며 좋아할걸
[대부] 그럼 어떻게 한다는거야?
[오달] 여기 있는거지뭐
[대부] 여기?
[오달] 나 그래서 이렇게 오지 않았니. 너도 혼자 살기 외로울것 같구 친구 뒀다 뭣에 써? 우린
동심으로 돌아가는거야
[대부] 나 별로 외롭지 않은데?
[오달] 그럼 나 돌아갈까?
[대부] ---뭐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고---
[오달] 괜히 해본 말이야. 자식 한마디 했더니 섭섭해서 우린 동창생 아니가!
[대부] ---동창생
[오달] (자기 가슴팍을 치며) 대부야 나 돈 있다. 나 먹을 돈은 죄다 가지고 다니니까. 참, 너 전화
있니?
[대부] 전화. 거기 왜? 딸네집에 전화 걸게?
[오달] 천만에! 혹시 딸년한테 전화오면 나 없다고 해
[대부] 너희 딸이 여기를 어떻게 알고? (전화벨이 운다)
[오달] 없다고 해!
[대부] 여보세요? 음, 나다 괜찮아. 별일없고?---그래?---언제? 그놈참! 그래 알았다. 일은 잘 되니?
무리는 마라
[페이지] 009
그래 잘있어(수화기를 놓는다)
[오달] 누구야?
[대부] 아들, 그거참!
[오달] 뭐야?
[대부] 너 공창덕이 아니?
[오달] 공창덕?
[대부] 그렇지. 넌 모르지. 나의 대학 동창생이니까. 그 친구가 미국에 가있는데---이민이지. 날
보고 싶어 돌아온대 장거리 전화가 왔네. 친구란 역시 잊을수가 없어. 둘이 미국서도 밤새워 공부
했는데.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지. 날 만나러 돌아온대. 친구란 좋은거야
[오달] 친구란 좋은거지. 먼길을 마다하고 찾아오는 나같은 친구도 있으니까. (대부가 어이없다는듯
오달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뭣하든 친군데?
[대부] 미국서 돌아와 은행에 들어갔어 머리가 좋아서 출세도 빨랐지 그렇지만 은행 상무때 독립해
나와 건축업을 시작했어 돈도 많이 벌고. 애들도 공부를 썩 잘해서 미국에 가 한놈은 하버드, 둘째는
예일을 나와 지금 거기서 살고 있어. 그런데--- 참, 그 친구 부인이 몹쓸 병 때문에 그만 돌아갔어. 그
친구 충격이 심했는지 사업체를 정리하고 미국에 갔어 떠나기 전날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 말 많이
하고, 눈물 많이 흘렸지 결국 돌아오는군.
[오달] 그 친구 돈 얼마나 벌었는데?
[대부] 돈? ---글쎄--- 이집도 그 친구가 소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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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거리가 멀지만 사두라고해서---근데 우리는 여기서 만나게 됐으니. 그 친구는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어.
[오달] 이집 몇평이나되지?
[대부] --- 한 열댓평
[오달] 방은 몇개야?
[대부] ---이 방하고,안방,부엌,변소---
[오달] 붙은 땅은 얼마야?
[대부] ---한 5,6백평쯤---
[오달] 수도는 있나?
[대부] 지하수
[오달] 전기는---응 전기도 있군. 왜 여기에 땅을 샀니?
[대부] 공창덕이 사라고 했다니까
[오달] 한평에 얼마야?
[대부] (겨우 화를 참으며) 너 이집 살테야? 뭘 그리 꼬치꼬치 묻니?
[오달] 내가 이집을? 천만에.(어색한 침묵) ---(담배를 갈아 물어) 잠은 어디서 자지? 나말이야
[대부] 나는 안방에서 자는데---난 혼자 있어야 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 (다시 강조 하려듯이) 옆에
누가 있으면 잠이 안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오달] 나는 손자를 끼고 잤지 (방을 둘러보며) 난---여기서 자지뭐. 여름인데 어때 겨울에는 적당히
침구를 구해오고
[대부] 겨울에도 여기서---?
[오달] 너 저녁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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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응---(마지못해) 너는?
[오달] ---안먹었지만 별로 생각 없어 ---오랫만인데 술이나 한잔 나누고 싶군
[대부] 술 없는데 ---재떨이가 거기 있는데---
[오달] (담배불을 끄고 일어나며) 난 있어
[대부] 있어? 뭣이?
[오달] 술 말이야. 그것도 양주야. 집을 나올때 사윗놈것을 한병 슬쩍 했지 (가방에서 양주를 꺼내
들고) 이거야. 이 술 뭔지 알아? 워카야
[대부] 워카?
[오달] 쭁. 워카말이다. 쭁 워카. 곱뿌하고---안주 있으면 가져와
[대부] 나 술을 끊었는데
[오달] 그럼 무슨 재미로 사니?
[대부] 과거에는 많이 마셨지만 심장이 약해져서 요새는 좀 삼가하지
[오달] 심장이 약하면 가끔 술을 하는게 좋아
[대부] 누가 그런말을 했어?
[오달] 어떤 의사가
[대부] 미친놈이군
[오달] 하기야 잔병이 좀 있는 사람이 오래 살더라. 몸이 아프다고 늘 엄살부리는 놈들이 장수해.
우리 옆집 미형이 애비 말이야. 반신불수가 되어 오랫동안 입원하고 있었는데---내일 죽는다 모레
죽는다 해서 친구들이 병원에 찾아가 문병을 하면서 아쉬워 했는데 그 문병갔던 친구들은 지금은 다
죽었는데 미형이 아버지는 여태껏 살고 있거든. 너도 오래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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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고맙다.
[오달] 오늘같이 기쁜날엔 한잔 해야지.(대부가 부엌쪽으로 나간다. 오달은 바지를 벗어 아무데나
내던지고 훗잠뱅이 바람으로 앉아 곽에서 술병을 꺼낸다 대부가 그라스 두개와 오징어 한마리를 들고
들어온다)
[대부] 야, 시골이라 어름은 없다
[오달] 어름? 누가 냉수를 찾았나? 야, 이 술병이 왜 이렇게 작지 (술을 권하며) 한잔 들게
[대부] 이사람아 양주를 맥주처럼 따르면 어떻게
[오달] 어차피 다 마실건데. 자, 건배
[대부] 이거---몇달만에 먹는 술인데---야, 독하군
[오달] 대부야, 나 오늘 상당히 기분 좋다. 이거 몇년만이야 자, 한잔 쭉 들어 (대부가 오징어를
찢어 오달에게 권한다) 우리 신세가 오징어같은데---오징어도 물기가 섞이면 생기가 난다구 우리도
술을 마시면 마음에 생기가 살아나는거야. 자, 이사람 동창생 한잔 더. 쭉- 그렇지! 또 한잔
[대부] 천천히---
[오달] 술을 약먹듯 먹나? 나 화나겠네
[대부] 왜?
[오달] 나를 환영할 생각이 없나? 자, 서로 환영---자 또 한잔!
[대부] 천천히---
[오달] 자, 이번에 팔을 이렇게 끼고---그렇지, 건배. 쉬면 안돼
[대부] 야, 죽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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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술이 좋다구?
[대부] ---그래
[오달] 너 그 노래 알지?
[대부] 노래? 무슨 노래?
[오달] 아, 그거---교가 교가말야. 우리 월광국민학교 교가
[대부] 그걸 내가 어떻게---
[오달] 야, 일어서. 일어서라니까 (대부가 할수없이 일어난다) 술잔을 쥐고---그렇지. 이 잔 쭉-
그렇지, 자 교가다! (오달은 용감하게 손을 흔들며 근 50년전의 교가를 부른다. 박자며 음계는
자유자재다. 그러나 대부는 한줄도 못외우고 있어 라-라---로 간신히 뒤따른다)
[노래시작]
합창 "동쪽에 우뚝 선 개봉산은 우리의 기상 우리의 꿈
전통에 빛나는 월광의 배움터
사랑과 믿음속에 자라나는 우리는 월광의 씩씩한 아들
아 월광 월광의 건아
우리는 이 나라의 기둥이다
우리는 이 나라의 기둥이다"
[노래끝]
[오달] (흥에 겨워 박수를 치며) 야, 멋있다 멋있어
[대부] ---자네 그걸 아직도 잊지 않고---놀랐다
[오달] 역시 도창생이 최고야. 야, 너도---기분 나빠 서울을 떠난줄은 알았지만---다 잊어 먹어.
이거 얼마나 좋아 자,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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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내가 기분 나빠 서울을 떠났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오달] 응? 내가 그랬어?
[대부] 됐다 됐어!
[오달] 대부야, 이 무인도 같은 곳에서 동창생이 술을 나눈다 멋있지, 안그래? 무인도에서 ---가만
저 앞---솔밭에 달랑 붙어있는 집은 뭐지? 하얀 깃발도 꽂혀 있던데
[대부] 무당이 살고있대
[오달] 무당? 여자야? 혼자 사나?
[대부] 그런 모양이야. 젊더군. 우연히 봤지만. 그 처녀무당 자가용 차를 몰고 다니더라
[오달] 그래? 자가용 차를 몰아? 자네 심심치 않겠군. 우리 초대 할까?
[대부]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야, 나 미치겠다. 너무 취했어 (암전. 참새들 지저귀는 소리,
개짖는 소리 다음날 아침- 오달이 소파에 누워 있다. 주위에 지저분하게 흩어져있는 그의 옷이며
물건들 빈술병,접시등. 잠시후 부시시 일어나 머리를 흔드는 오달. 담배를 피워문다.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골치가 아프다.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기댄다. 무엇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일어나
방한구석에 가더니 책장밑에서 큼직한 돈 지갑을 꺼내 돈을 센다. 한손을 이마에 대고 대부가
들어온다)
[대부] 아이구 골치야 (소파에 앉으며) 넌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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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머리가 아파?
[대부] 미쳤지 (빈병을 보며) 한병을 다 마시다니
[오달] 유쾌했지
[대부] 이술---혹시 가짜가 아냐? 머리가 깨질것 같아
[오달] 무슨 소리야? 이 쭁 워카 같은 고급술에 가짜가 있을려구? 아파트 수위가 준건데
[대부] 아파트 수위가?
[오달] 사위가 돈을 몇푼 빌려줬더니 고맙다고
[대부] 아파트 수위가 이런 술을---그러니 가짜지
[오달] 어제 맛있다고 할때는 언제인데 (갑자기 머리에 손을 대고) 아야
[대부] 왜?
[오달] ---응, 아무것도 아냐---이럴때는 얼큰한 국을 한사발 들이키면 속도 풀리고 머리도
깨끗해지지. 콩나물국도 좋고--- 아니, 북어국이면 더 좋구. 국좀 끓여
[대부] 나 아침밥 안먹는다. 하루 두끼만 먹어
[오달] 왜?
[대부] 오랜 습관이야. 아침은 커피 한잔 때는거야
[오달] 나는 커피 안마시는데. 야, 하루 세끼는 꼭 먹어야 해
[대부] 하루 두끼 먹어도 이렇게 사는데
[오달] 나는 어떡하지?
[대부] 글쎄(의미심장하게) 불편하지?
(대부가 일어나 방안을 치우기 시작한다. 방바닥에서 담배꽁초를 줍는다)
[대부] ---야 이옷---입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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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입안이 뿌드듯 한데, 야, 냉수나 한사발다오
[대부] 부엌에 가봐(오달이 나간다) 쟈-식 이게 자기집인줄 아나봐 이 담뱃재. 나 참! 언제 돌아갈
생각이지(대부는 툴툴거리며 청소를 한다. 부엌에서 사발 깨지는 소리가 난다) 저건 또 뭐야 어?
(오달이 들어온다)
[오달] 야! 사발 하나 깼다. 물맛이 좀 이상하군 (대부가 술병이며 컵 접시를 들고 나간다) 빌어먹을
배고파 살수 있나(양말을 신으며) 아이구 허리야 (오달은 소파에 길게 눕는다) 그 놈의 술이
가짜같은데 아이구 골치야 (대부가 커피잔을 들고 들어와 앉는다)
[대부] ---또 잘거야?
[오달] 자긴---(일어나 앉으며)커피야?
[대부] 응, 넌 안마신다며
[오달] 별로
[대부] 골치가 아프면 밖에 나가 한바퀴 돌고와. 공기 하나는 좋다
[오달] 흥
[대부] 왜?
[오달] 그말 들으니 우리딸 생각이 난다. 늘 한다는 소리가 아버지 심심하면 창식이 데리고 밖에
나가 한바꾸 돌고 오세요 한단 말이야
[대부] 좋은 딸이군. 자네 건강을 생각해서 그럴테지
[오달] 흥, 손자놈 데리고 넋빠진 거지처럼 빙빙 돌다 돌아왔는데 암만 부자를 눌러도 이것들이 문을
열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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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외출중이었던 모양이군.
[오달] 천만에, 문밖에서 십분을 기다렸다구
[대부] 흠, 눈치없게 스리. 딸이 밖에 나가라면 한시간쯤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줘야지
[오달] 왜?
[대부] 응?
[오달] 너도 내가 나갔다 돌아오면 문밖에 십분쯤 서있게 할거야?
[대부] 나 혼자 있는데?
[오달] 그래서
[대부] 됐어 됐어 꼭 밖에 나갈 필요는 없어
(오달이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본다 차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 차가 집앞에서 멎는다)
[오달] 차가 집앞에서 멎는데---소님인가?
[대부] 손님? 나한테 무슨---?
[오달] 저런---
[소리] 계세요?
[오달] 손님이야, 여자야
[대부] 누굴까?
(대부가 문을 연다. 정확한 나이는 알수 없지만 30대 안팍으로 보이는 양장 차림의 여인이 들어선다.
몸에서 짙은 색을 풍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련된 멋도 느껴지는 여자다)
[여인] 불쑥 찾아와 미안합니다. 저의 결례를 용서해 주시겠죠?
[페이지] 018
[오달] 아, 괜찮습니다
[여인] 남자 한분만 사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부] 내친구죠. 어제밤 나를 만나러---
[야인] 저는 저쪽 솔밭속의 집에서 살아요
[대부] 저쪽?
[여인] 이근처 사방 10리엔 저의집하고 선생님집밖에 없어요 저 앞에 보이는 집이---
[대부] 아, 그 하얀 깃발이 꽃힌 집 말이군요?
[여인] 네, 하얀 깃발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오달] 무당집
[대부] 그럼---아가씨---는 무당집에 세들어 삽니까?
[여인] 세 들다니요. 저의집이예요
[대부] 그럼---
[여인] 제가 무당이죠---이상합니까?
[대부] 그런게 아니라---
[오달] 야, 기가 차군!
[여인] 왜요?
[대부] 아닙니다 (오달에게)야, 들어가 옷이나 갈아 입어 숙녀앞에서 잠옷바람으로---
[오달] 응? 미안합니다. 잠옷바람으로---
[여인] 괜찮아요. 남자의 참모습을 보는것 같아 오히려 좋은데요
[대부] 오달이! (오달이 끄덕거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대부] 실례가 많습니다. 서로 흠이 없는 친구이다 보니--- 근데 어떻게 오셨죠?
[페이지] 019
[여인] 이웃이니까 인사도 나누고---또 부탁드릴 말씀도 있고해서
[대부] 잘 오셨습니다 앉으시죠.
[여인] (앉으며)---조용하네요 식구가 많으세요?
[대부] 당장은---저 혼자 삽니다
[여인] 그래요? 저도 혼자 살아요. 저하고 처지가 비슷하네요 아직 젊은신데 왜 혼자 사세요?
[대부] 젊어요?
[여인] 한참 나이신것 같아요
[대부] 음---근데 무슨 부탁을---?
[여인] 아, 이겁니다 (큼직한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 보이며) 몇시가 될지 모르지만 내일 아침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을 찾아올겁니다. 이 봉투좀 전해 주세요
[대부] 제가요?
[여인] 저는 부산으로 가야 하거든요. 서울서 이 봉투를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는데---전화를 했더니
내일 온데요 그래서 이근처에 집은 두채뿐이라 제가 선생님댁에 이걸 맡기겠다고 했죠. 전 당장 부산에
가야 하거든요. 세미나가 있어서요
[대부] 세미나?
[여인] 네, 세미나요. 제 3 분과위원회서 주제를 발표하게 됐으니 빠질수도 없고
[대부] (봉투를 받으며) 이 봉투를 주기만 하면 됩니까?
[여인] 아마 돈을 줄거예요
[대부] 돈이요?
[여인] 많지도 않아요. 백만원이에요. 여기 영수증 있으니 돈을
[페이지] 020
받으시고 영수증을 주면 돼요.
[대부] 이게 뭡니까?
[여인] ---부적이요.
[대부] 부적? 아---그거. 그거 하나에 백만원입니까?
[여인] 보통이죠. 부적이면 다 부적인가요? 누가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죠. 그럼 저는 가보겠어요.
처음 뵙는 분한테 실례가 되지나 않았는지---
[대부] 영광입니다. 그런데---글쎄---
[여인] 왜요? 제가 이상합니까?
[대부] 아니요---하기야---젊으신분인데 어떻게---
[여인] 어떻게 할일이 많은데 무당을 하는가 이 말씀이죠?
[대부] 하기야---그렇죠. 하기야---밑천이 안드는 일을 하려며---무당이---여자로서는 가장 적합
할런지 모르죠.
[여인] 밑천이 안들어요? 그건 옛날 이야기죠. 돈은 물론 시간의 투자가 엄청난것이 토속신앙의
지도자 공부예요
[대부] 토속신앙?
[여인] 무술은 토속신앙이죠. 민족의 전통적 신앙입니다 이론공부에다 민속신앙의
역사,무용화술,리더쉽---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다 요새는 외국인도 찾아오니
외국어공부도 해야 하고---뿐인가요 인접문화도 공부해야죠
[대부] 인접문화라니?
[여인] 저는 무슨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한번 꼴로 연극과 무용을 감상합니다. 따져보면 연극이나
무용도 토속신앙의 산물이 아닙니까? 연극을 한다는 웬만한 연극인 보다 제가 연극 구경을 더 많이
[페이지] 021
했을겁니다. 무당이라는 직업, 즉 토속신앙의 지도자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죠
[대부] ---많이 배웠습니다. 그럼 왜 한적한 시골에 계시죠?
[여인] 사무실은 서울 압구정동에 있어요. 안 100평 되는 사무실에 직원이 네명이고---좀 정리할
일이 있어 고향에 들렸어요 엄마 내 정신좀봐 너무 오래 있었어요 (일어나서 나가며) 선생님 커피 좋아
하시나봐요
[대부] 네
[여인] 남자의 몸에선 역시 진한 커피냄새가 나야 매력이 있어요. 그럼 잘 부탁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인 밖으로 나간다. 이어 엔진소리가 나며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 나 참! ---그거참---
(대부는 봉투를 책꽂이 사이에 끼워놓고 의자에 주저앉는다 다시 신문지를 뒤적거리지만 마음은
딴곳에 가 있다. 오달이 들어온다. 빨간 셔츠에 노란 마프라를 목에 둘렀다)
[오달] ---어디 갔어?
[대부] 뭐가? 야, 그옷은 왜 입었어? 우리 아들거야 전번에 아들이 입고 온거야
[오달] 그 무당 어디갔어?
[대부] 갔어
[오달] 어데로?
[대부] 내가 알게 뭐야
[오달] 왜 왔어?
[대부] 인사하러 서로 이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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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왜 보냈어?
[대부] 인사가 끝나면 가는거지
[오달] 너 그 무당하고 무슨 약속을 했니?
[대부] 약속?
[오달] 시끄러워. 우리 나이에 무슨 여자야
(오달이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본다 대부는 일어나 책 한권을 집어들고와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시작한다. 오달은 아쉽다는듯 돌아와 앉아 담배를 핀다 잠시 어색한 사이)
[오달] ---음---
[대부] ---음
[오달] 이집에 붙은 땅이 4,5백평쯤 된다고 했지?
[대부] 응?
[오달] 땅말이야. 왜 아까운 땅을 그대로 놀려?
[대부] 그럼?
[오달] 콩을 심던가 팥을 심지 그래
[대부] 농사 할려고 여기에 온것은 아니니까
[오달] 나같으면 저 소나무니 떡갈나무 같은걸 빼버리고 곡식을 심겠는데 이왕이면 노는땅 갈아서 돈
벌어야지
[대부] 난 기력이 없어서, 너 할래?
[오달] ---그럼 수확은 어떻게 돼? 내가 몇할을 먹을 수 있어?
[대부] 너 다 먹어라
[오달] 그럼 비료값이니 농사에 드는 비용은 누가 내?
[대부] 난 관계없어. 생각 있으면 네가 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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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저 야산이 밭으로 변하면 땅값이 뛸텐데. 그때는 어떻게 한다
[대부] 저 땅 임자는 나야 (사이)
[오달] ---자네 책 많이 읽나
[대부] 응?
[오달] 책을 많이 읽느냐구?
[대부] 별로 할일도 없고해서---
[오달] 지금 읽는게 무슨 책이야?
[대부] ---"고통으로 부터의 탈피"
[오달] 재미 있어?
[대부] 그저 그렇지. 야! 심심하면 책읽어
[오달] 테레비 없니?
[대부] 있는데 고장이 났어
[오달] 왜 안고쳐?
[대부] 고산까지 나가야 해. 귀찮고---보면 뭣해? 보기싫은 새끼들얼굴 물렸어
[오달] 누가 보기싫어?
[대부] 보기 싫은놈 많지(사이)
[오달] 음---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화요일인가? (대부는 책만 읽고 있다)---참 너 미국서 무슨
공부했니?
[대부] 응?
[오달] 미국서 무슨 공부 했냐구?
[대부] ---경영학?
[오달] 경영학. 돈버는 공부지? 너 박사니?
[페이지] 024
[대부] 아니
[오달] 왜 박사 못했니?
[대부] ---심심하면 책 보라니까 (사이)
[오달] 자네 배 안고파?
[대부] ---응
[오달] 배가 고프지 않냐구
[대부] 아니, 배고파?
[오달] ---별로
[대부] 배고프면 부엌에 나가 적당히 해먹어. 찬은 별로 없지만
[오달] 괜찮아 (사이)
[대부] (갑자기) 개수작하고 자빠졌네
[오달] 뭐야? 개수작?
[대부] 아니야 이 책 말이야. 고통을 운명인양 참고 지내라니 이새낀 가짜야
[오달] 누가 가짜야?
[대부] 이 책을 쓴놈. 요새 교수라는것들! 고통을 운명인양 참고 지내면 고통이 사라져? 그리고
행복이 와? 미친새끼 어린애 같은 수작을 하네
[오달] 너도 화 날때가 있구나. 그럼 뭣 때문에 책을 읽니 돈이나 생기면 몰라도
[대부] 이사람아 독서란 돈벌기 위해서 하는게 아냐
[오달] 그럼? 화를 낼려고 책 읽나?
[페이지] 025
[대부] 그래서 책에는 양서가 있고 악서가 있다는거야
[오달] 닌 악서 읽는게 취미냐? 화내는걸 보니---이 전화---직통이니?
[대부] 교환을 통해야 해---걸때가 있음 걸라구
[오달] 걸긴---
[대부] 딸이 걱정할텐데
[오달] 별로---걸 생각이 없지만---시골전화 한번 써보자
(대부가 일어나 책을 책장에 꽂고 밖으로 나간다 오달이 수화기를 든다)
[오달] 여보세요! 교환이요? 서울 부탁해요. 889의 8898 얼마나 걸리지? 뭐야? 잘되면 20분? 그게
무슨 전화야! 좀 더 빨리 해봐! 뭐야? 왜 반말이냐구? 야 너 몇살이야? 별꼴 다 봤다구? 야
이년아---끊어졌네(수화기를 탁 놓고) 웬 촌놈의 새끼들이!
(대부가 사과 두알을 들고 들어온다)
[대부] 하나 들어봐
[오달] 별꼴 다 보겠네
[대부] 뭐야?
[오달] 이 전화 말이야. 20분 걸린다기에 좀 빨리 부탁 한다니까 왜 반말이냐고 대들지 않아 나 참!
[대부] 왜 반말 했니?
[오달] 아니 어른이 젊은이한테 반말좀 하면 어때?
[대부] 처음 보는 젊은이한테? 그래서 어떻게 됐니?
[오달] 몰라 딱 끊어버리더군. 야 고객은 왕이 아닌가?
[대부] 닌 고객이 아니라 폭군이야 (수화기를 들며)몇번이야?
[페이지] 026
[오달] 889의 8898
[대부] 여보세요? 아 여기 25번인데--- 예 나예요. 미스오죠? 889-8898 부탁합니다. 네? 아! 아까
그사람? 우리집---일꾼이에요---그래요? 못된놈! 미안해요. 부탁합니다
[오달] ---내가 네 일꾼이야?
[대부] 폭군보다 나았지
[오달] 참! 윤동일이 아니?
[대부] 윤동일?
[오달] 우리 동창이야. 그새끼가 광화문 전화국의 계장으로 있었는데
[대부] 너 대단하다. 어떻게 동창생---그것도 40년전의 동창생 이름은 물론 뭣하는지 환히 알고있니?
[오달] 장사하면 그렇게 돼 (전화벨이 울린다)
[대부] 받아봐
[오달] 아니 일분도 안됐는데---20분 걸린다고 하더니 (수화기 들고)---여보세요?
---신호가---가는데---여보세요?---응 확실이냐? 나다 응 잘있다. 비? 거긴 비가 오니? 여긴 맑은데.
감기? 내가 감기 왜 걸려? 뭘? ---술? 양주? 쭁 워커? 나 몰라. 내가 왜 양주를 갖고 나와? 잘 찾아봐
그래 재미있다. 뭐? 재미 있다니까---이거 끊어졌는데? 재미있게 노세요 하더니 끊어버리는데
(수화기를 놓으며) 이렇다니까 나 어디 있는가 묻지도 않아 기껏 한다는 말이 양주 한병이 없어졌다는
말 뿐야
[페이지] 027
[대부] 그것 뭣때문에 훔쳐왔니
[오달] 야 내 재산을 자기돈 처럼 굴리는 놈인데 고까짓 양주 한병 어때? 가만---그러니까 그
관광회사에서는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아직 집에 연락을 안했다 이거야
[대부] 내일 모레면 다 죽을 늙은이들 하나쯤 없어지는게 무슨 큰일이라고
[오달] 나쁜놈들! 늙으면 죽는게 상책이라니까---늙은이를 이렇게 괄시할수가 있어?
[대부] 야 사과나 먹어
[오달] 아니 자기 손님이 행방불명이 됐는데 모른척 할수가 있어? 나는 그놈들이 쩔쩔매면서 나를
찾을줄 알았는데
[대부] 그래서 슬쩍 없어졌나? 누구하나 관심을 안가져 주니까 주의를 끌려고 도망쳤군 그래?
[오달] ---그말이 맞아
[대부] 무슨 말
[오달] ---우리처. 우리처가 죽기 직전에 ---당신, 앞으로 마음고생이 많을거야요 했거든
[대부] ---자네---부인을 몹시 사랑한 모양이군
[오달] 사랑? (애써 명랑하게) 다 늙은 주제에 무슨 사랑
[대부] 젊었을때 말이야
[오달] 난 그런것 모르고 살았어
[대부] 부인을 어떻게 만났니?
[오달] ---글쎄---재봉틀 몇개 사서 어린애 옷을 만들때야 그때 직공으로 들어왔어. 열여덟쯤
됐을까?
[대부] 미인이었던 모양이군
[페이지] 028
[오달] 미인? 웃기지마. 여직공이라고 셋이있었는데 제일 못생겼어 어린게 살은 통통 쪄가지고
엉덩이가 함지박만 해서 걸을대는 어기적 거렸고---힘은 되게 셋지. 눈섭은 왕거미처럼
시껌한데---눈은 가죽이 모자라 찢어진것 같이 쪼마했구. 하루종일 말이 없었어. 씩씩거리면서 일은
잘했지. 아버지가 좋아했어 부모가 딴 마음 먹지 말고 그여자하고 결혼 하라는거야 우리 아버지
무서웠다. 여자는 건강하고 일을 잘해야 한대 애들도 쑥쑥 잘 뽑아내고. 참, 같이 외출을 못했다니까
창피해서. 서로 고생은 많이 했지. 일이 잘되니까 직공수가 열명으로 늘었어. 열명이 다 우리집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했으니까 아침 여섯시에 일을 시작했어. 그러니 우리 여편네는 새벽 네시에
일어났어. 그 추운 겨울에도 밤엔 열두시가 넘어서야 잤고 그렇게 바쁜데도 애는 셋이나 낳으니. 애
셋을 낳으니 이거 완전히 늙은 식모야. 더 보기 싫어
[대부] 고생이 많았군
[오달]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든. 그러니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대부] 달라지다니?
[오달] 뻔한 일이지. 못생긴 여편네를 가진 사내, 돈이 생기면 뭣하겠니? 좀 바람을 피웠더니---그
못생긴 여편네도 달라지는거야
[대부] 어떻게?
[오달] 잔소리가 많아지는거야
[대부] 당연하지
[오달] 그뿐이야? 그 하마같은 몸에 옷을 칭칭 감고---그 떡판같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애들
학교에 번지래 드나드는거야
[페이지] 029
치마바람이 난거지. 담임선생님들을 집에 불른다. 식당에서 선생들 저녁 사준다 생일때 선물
사준다---외출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여자 같아. 그 몰골에 말야
[대부] 자녀 교육 때문인데 어때?
[오달] 애들도 완전히 여편네 편이구. 집안일은 식모 아줌마한테 맡긴채 말이야. 하도 화가 나서 나
가출을 했어
[대부] 어디로?
[오달] 신설동 하숙집으로. 난 나대로 재미를 봤지 뭐. 여편네가 왔더군 솔직하더라. 자기처럼
못생긴 것하고 사는 처지라 나를 이해 한다나? 그렇지만 애들의 눈도 있으니까 집에 돌아오라는거야
집에 같이 있으면 무슨일을 해도 괜찮데 집에 기여 들어갔지. 이건 완전히 남남이야. 밥상 차려주고,
옷내주고---서로 말 한마디 없어. 애들이 이럭저럭 학교를 마쳤어 어느날 여편네가 말하더군. 자기는
시골 집으로 내려갈테니 날더러 새색시를 얻어 잘 살라고 하잖아. 나한테 불만이 없데 화가 나더군.
두들겨 팼지---또 말없이같이 사는거야 근데 여편네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알고보니---간암이래
근삼십년을 일만 했으니가---고된 일이지. 병원에도 안 가겠대 가봤자 죽는걸 알아서 그런지 돈이
아까와서 그랬는지 하마같은 몸이 쭉쭉 빠지는데 그거 못보겠더군. 마지막 날이야 병원에 갔더니
내손을 잡더군. 이건 손이 아니라 오리발이야 손금도 없더군. 손을 잡고서---미안하다고 했고---당신
앞으로 마음고생이 많겠다며---밥은 하루 세끼 꼭 드세요---저대신 오래 살아요---빌어먹게 보통때는
말이 없더니 죽기직전에 그런말을 하니---고생해서 번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페이지] 030
(오달이 더 이상 참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소리없이 울기 시작한다.)
[대부] ---진정하게, 다 지난 일인데.
[오달] 나는 죽일 놈이야
[대부] 남자란 다 그런거지.
[오달] 다른집 보면 남자들이 먼 죽던데. 좀 봐 내 꼴을. 이게 사는거냐?
[대부] 너보다 못한 사람이 수드럭 하다. 넌 돈을 벌지 않았니. 뿐인가 언제든지 미국에 가서 바람을
쐴수도 있고.
[오달] 미국. 야, 내 아들 미국서 장인 장모를 모시고 있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 나이가 덜
쳐먹었어도 새장가나 들지 이젠 그것도 틀렸어
[대부] 한다는 말이! 죽은 색시 못잊어 줄줄 짤때는 언젠데.
[오달] 참, 아까 딸한테 이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못했어. 몇번이지?
[대부] 고산 25번, 또 걸어봐. 전화값도 좀 올리고.
[오달] 한번 거는데 얼마야?
[대부] 1500원
[오달] 내가 거는 전화값은 내가 낸다.
[대부] 내가 전화값 내라고 했나?
[오달] 그런게 아냐. 돈 계산은 정확히 해야 해. 특히 친척이나 친구들 사이의 돈 계산은
냉정해야지. 우물쭈물 하다간 돈도 친구도 잃어.
[대부] 흠, 셰익스피어도 그런 말을 했지.
[오달] 누구?
[페이지] 031
[대부] 셰익스피어. (귀찮다는 듯이) 내 친구야
[오달] 미국놈?
[대부] 그래. 야, 우리 밖에 나가서 햇빛도 쬐고 신선한 공기나 마시자(대부 나간다.)
[오달] 이거 어디 배가 고파서.
(오달이 나갈때 암전. 다시 밝아지면 저녁. 텅빈 무대. 잠시후 커피잔을 들고 대부가 들어온다. 책을
집어 소파에 앉아 독서를 시작한다. 커피를 즐긴다. 책을 덮고 팔목 시계를 본다.)
[대부] ---밤 아홉신데---이 자식이 어디가서 뒈졌나? 나 참!
(다시 일어나 라디오를 켠다. 고전 음악이 나온다. 독서를 하고 있을 때 누가 문에 녹크를 한다.)
[오달] 흠, 집이라고 찾아 오는군.
(대부가 일어나 문을 연다. 여인이 화사하게 웃으며 들어온다. 종이빽을 들고 있다.)
[여인] 안녕하세요?
[대부] 아- 들어 오세요.
[여인] 너무 늦지 않은지 모르겠네.
[대부] 괜찮습니다.
[여인] 막 돌아 왔어요. 고속도로가 얼마나 밀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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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앉으세요.
(여인 앉는다.)
[여인] 커피 냄새가 좋군요.
[대부] 한잔 하시죠.
[여인] 그럴까요? (대부가 안으로 들어가때 제 커피엔 설탕 넣지) 마세요.
[대부] 블랙 커피를 드시는군.
(대부가 들어가자 여인은 방을 둘러본다. 이어 탁상에 노인 책을 들어 본다. 잠시후 대부가 커
피잔을 들고 들어온다.)
[여인] 고맙습니다.
[대부] 참! (대부가 책장에서 봉투를 집어온다.)
[대부] 돈입니다.. 영수증은 전했고요.
[여인] 미안합니다. (돈을 받으며) 커피 맛이 좋아요.
[대부] (앉으며) 다행입니다.
[여인] 참, 선물드릴께요. (종이 빽을준다.)
[대부] 이게 뭡니까? ---야---잉어 아닙니까?
[여인] 맞아요. 부산서 선물 받은건데,저는 칼질을 못해요.
[대부] 상당히 크군 이거 몇년이나 됐을까요?
[여인] ---환갑을 지냈는지도 모르죠.
[대부] 60살? 어쩌다가 환갑나이에 걸려 들엇을까?
[여인] 그 잉어 환갑을 지냈으니 많이 살았죠. 몸에 좋다니 요리해
[페이지] 033
드세요.
[대부] 이놈의 잉어 팔자두!
[여인] 팔자가 어때서요? 사람은 죽으면 쓸모가 없지만 잉어는 죽어도 보람이 있거든요.
[대부] 보람?
[여인] 사람들 한테 기꺼이 한몸을 던져 사람을 기쁘고, 살찌게 만드니 얼마나 보람이 있어요.
[대부] ---음.
[여인] 그 잉어는 60평생을 보람있게 매듭진 거지요. 사람 보다 낳았죠.
[대부] 흥, 나하고 빗대서 말하는것 같군요.
[여인] 네?
[애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여인] 사모님은 안계세요?
[대부] ---한 5년 전에---
[여인] 쓸쓸 하시겠네요?
[대부] 아뇨. 운명 인걸요.
[여인] 운명이요? 저하고 통하는데가 있네요. 저도 운명을 믿으니까---커피 잘 마셨어요. (일어나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대부] 벌써 가실려고요?
[여인] 네, 좀 피곤해서요. 가서 뜨거운 물에 목욕이나 하고 일찍 자야 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여인이 나간다)
[대부]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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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가 물끄러미 종이 빽안을 드려다 본다.) 너도 환갑이냐? (다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든다.
잠시후-)
[소리] 야- 문열어! (대부가 라디오를 끄고 나간다.)
[소리] 혼났다. 아이구-
(두사람이 TV와 큼직한 부대를 들고 들어온다. 오달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소파에 엎드려 끙끙않는
소리를 낸다. 어이가 없다는듯 그를 바라보는 대부.)
[오달] 야 대부야. 나 이 어깨좀 주물러 줘 죽겠다.
[대부] 너 정신 나갔니? 어디 가면 간다고 사전에 말 할것이지---
[오달] 내가 어린애야?
[대부] 이 TV는 언제 갖고 나갔어?
[오달] 고쳐났다.
[대부] 누가 고치라고 했어?
[오달] 야, 사람이 병나면 병원가지? TV도 병이 났으니 고쳐야지.
[대부] 이 무거운 놈을 끌고---너 고산까지 갔었니?
[오달] 그래.
[대부] 20리를? 이 부대도 매고---(대부가 부대를 들여본다.) 아이구 무거워 이걸 끌고 20리 길을
걸었어?
[오달] 왕복 40리지.
[대부] 자네 나이 육십이야. 죽고싶어? 고산에 택시도 있잖아?
[페이지] 035
이런것 택시에 실고오면 어때?
[오달] 여기까지 오는데 오천원 내래--- 죽일놈들. 오천원이 적은돈이야?
[대부] 너 돈 많이 벌었다며?
[오달] 어떻게 번돈인데? 이 어깨하고 팔이---아이구---
[대부] 야, 시키지 않는 일을 뭣 때문에 해?
[오달] 살자고 했다.
[대부] 아침부터 야산에 삽질을 하더니 어느새 빠졌니?
[오달] 야, 그놈의 땅 가는데 정력 다 소비했다. 야산이 밭이 됐어 기쁘지?
[대부] 너 좋아 한 일이야.
[오달] 넌 책이나 읽고 허튼소리나 하는 팔자가 되서 세상을 몰라, 난 무식하지만---세상에 대해선
안다. (오달이 여인이 마시던 찻잔을 들어본다.)---야---이거 여자가 마셨구나. 이 끝이 빨개. 물이
들었어---글쎄 이상하다 했어. 방에서 요사스런 냄새가 나는 것 같더니, 누가 왔었어?---그 무당?
[대부] (씩 웃으며)마음대로 생각해
[오달] 그 빽은 뭐야? (오달이 빽 안을 들여다 본다.)---잉어야, 무지하게 크다. 그 무당이 줬니?
[대부] 마음대로 생각하라니까.
[오달] 잉어는---정력에 좋아. 무당이 너한테 정력제를 갖다준다.
[페이지] 036
잘 되가는군. 야 이거 사람 모르겠군. 네가 그런 재주가 있을줄은 대한민국에 무당하고 연애하는 놈은
너 하나 뿐이야. 그 나이에 말이야.
[대부] 시끄러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부가 오달이 갖고 온 부대를 본다.)
[대부] 이 부대는 뭐야? 미쳤지. 이 TV하고 부대를 끌고 20리길을---나 참! 야 저녁은 먹었니?
[오달] 고산서 먹었어. 순대국하고 소주 한잔. (부대를 풀어 물건을 끄내며) 나 너하고 그
처녀무당을 방해할 생각은 없어. 그래두---너 해도 너무 했다. 가장 가까운 동창생 끼린데---난
어떡하라구.
[대부] 끄네 봐.
[오달]북어---오징어---무우---파---소주여섯병---담배 한 보루---돼지고기---주간지---저녁신문-
--두부---파리채---씨앗
[대부] 씨앗?
[오달] 야, 밭을 갈았으면 종자를 심어야지.
[대부] 무슨 씨앗이야?
[오달] 똑똑히 몰라. 내가 언제 농사 해봤니? 지금쯤 심어도 괜찮은 씨앗을 달라니까 이것저것
봉투에 넣어 주더군. 재미 있을거야. 뭐가 나올지 모르거든. 내일 아침 당장 심는거야. 그럼 몇달후에
벼라별 것이 다 나올꺼야. 백화점에서 우굴대는 벼라별 사람의 종자들처럼 찬 값이 굉장히 절약
될거야. 결국 돈을 버는거야. 야, 피곤하다. 술이나 한잔 하자. (오달이 이빨로 병마개를 딴다.)
[페이지] 037
[대부] 저런 저런.
[오달] 받어. (오달이 병을 또하나 딴다.) 넌 나팔술을 모르지. 그대로 마시는 거야. 오징어도
있구---북어도 있다. 마셔.
[대부] 나 참! 야만인 같이 이게 뭐야.
[오달] 야 사람 따져보면---잘난놈. 못난놈,배운놈,못배운놈, 다 속은 야만인이야. (술을 들이키며)
야 쓰다 칵- 들어봐 이게 사는 맛이야. 미친듯이 일하구---쫙 마시구--- 누구 눈치볼 필요없구. 참!
(호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내 대부에게 주며) 정확할거야.
[대부] 이게 뭔데?
[오달] 계산서,영수증이지.
[대부] --- 수리비---만 오천원---보리 다섯돼---소주 다섯병---그래서?
[오달] 그 중에서 담배값하고 주간지 값은 빼. 그건 내꺼니까 그리구 나머지를 합해 둘로 딱 나누면
2만 4천 5백 10원이야.
[대부] 그래서?
[오달] 네가 나한테 2만 4천 5백 10원을 주면 계산은 다 끝나 싼 값이야. 내가 얼마나 깎았다구 내
노동력도 꽁자구.
[대부] 내가 널더러 TV고치라고 했니? 난 TV가 싫단 말야. 내가 널더러 소주사오라고 했어? 보리쌀
사오라고 했어? 씨앗 사오라고 했어? 내가 언제 땅을 갈라고 했나? 시키지 않는일 뭣때문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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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가 홧김에 술을 들이킨다.)
[오달] 소주맛 괜찮지? 이 오징어 뜯어봐. (대부가 오징어를 찢는다.)
[대부] 야, 너 전화값 내. 전화건 값 천 오백원이야.
[오달] (재빨리) 그럼 2천 3백 10원만 내.
[대부] 되게 빠르군.
[오달] 난 장사꾼이야. 너처럼 인테리는 아니지만.
[대부] 인테리는 또 어떻게 아나!
[오달] 줏어 들었지. 대학 나오면 인테리가 된다면서? 한국에 인테리들 되게 많지. 한두녀석 때려
잡아도 누가 없어진지 모를거야.
[대부] 아는 척 하지마. (술을 마시며)그래도 이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인테리야. 정치,사회,지식
,예술,과학,이게 다 인테리들이 하는거다.
[오달] 무당도 인테리냐? 인테리는 밥안먹고 사나? 옷만입고 사나? 장사꾼 신세를 지면서 뭘그래.
정치? 웃기지마. 예술? 웃기지마. 나 우리집 제품상표 만드는데, 거 무슨 대학이더라? 하여튼 그
대학의 예술하는 교수한테 상표를 부탁했지. 50만원 내라는 거야. 그 도안인가 뭔가 만드는데 노-했지.
20만원 이상 못낸다니까 예술가를 뭘로 생각해 하고 화를 내더군. 공기를 먹고 살면서도 콧대는 높아서
그런데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어. 20만원에 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한다는 수작이 자기는 돈때문에
하는게 아니고 내 뱃장에 호감이 생겼다나.
[페이지] 039
[대부] 하필 그런놈을 만났냐. 그놈은 교양도 없을거야.
[오달] 야, 말은 바른데로 하자구. 이세상 교양 가지고 사니? 눈치야, 눈치. 이것이 인생을 결정해.
대학입시도 눈치에 달렸다며?
[대부] 미친 수작 하고 있네. 내가 뭘 안다고. (술을 마신다.)
[오달] ---화 났니?
[대부] 내가 화를? 천만에! (어색한 사이)
[오달] ---TV켤까?
[대부] 생각없어---너 체면이라는 걸 생각한 적이 있니?
[오달] 체면? 아-니
[대부] 그래?
[오달] 체면이 있어야지. 우리같이 무식한 놈 체면 체리다간 저리 가라야. 우선 살고 봐야지 체면이
뭐야? 너도 아마 체면 때문에 손해 많이 봤을거다.
[대부] 그렇게 생각해? 흥, 당장 체면 차리다 당하고 있는꼴이니 그만 두자. 머리가 휭 한데--- 이거
오늘 신문이야? (대부가 오달이 사온 신문을 집어 본다.)
[오달] 그 신문, 장사꾼이 사왔다. 너 신문도 안보니? 인테리가.
[대부] ---진짜 인테리는---신문,레디오 또는 TV같은것에는 관심이 없단다. 더이상 인테리 인테리
하지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달] 미안하다. 말은 바른말이지 우리가 남남이라면 어디 감히 이런 말을 하겠나. 동기동창이니까
흠없이 농담도 하고 하지 않고 그래?
[대부] 그만 해두자.
[페이지] 040
[오달] 그 신문 왜 샀는지 알아? 혹시 내딸이 나를 찾는 광고를 내지나 않았을까 해서 샀어. 광고도
내지 않고 있으니 난 뭐야!
[대부] 너 가출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당연하지.
[오달] 진짜 화가나서 미국으로 뜰까봐.(대부는 귀찮다는 듯이 신문을 뒤적거린다.)
[오달] ---너 여기 온지 얼마나 되지?
[대부] ---일주일쯤---이런! 그거 참!
[오달] 왜 그래?
[대부] (혼잣말처럼) 그 친구가 죽다니.
[오달] 누가 죽어?
[대부] 선우 덕팔이, 하필 교통사고야.
[오달] 무슨 소리야?
[대부] 선우 덕팔이, 어떤 대학의 이사장인데 교통사고로 죽었어. 나 참! (술을 마시고) 세상이
자기것처럼 날뛰더니.
[오달] 밤낮 나는게 교통사고지. 너 그사람 잘 아니?
[대부] 흠---내 일생을 망친 친구지. 이 친구의 논문을 반박했더니---
[오달] 뭣을 어떻게 했다구?
[대부] 대학 설립자의 아들인지를 누가 알았나. 다된 대학 취직이 이 선우놈 때문에 개판이 되고---
인생이 달라졌으니 결국 죽었군. 세상도.
[오달] 원수가 죽었다 이거야!
[대부] 원수는 무슨 원수. 인간 쓰레기지.
[오달] 대학이 취직이 않되---출판사를 시작했나?--- 야, 무슨놈의 술을 그렇게 마셔?
[페이지] 041
(대부는 술병을 든채 일어나 서성댄다.)---너 서울서 무슨 사고를 냈다는 소문이 들린던데---
[대부] 뭐야? 누가 그따위 수작했어? 야 너 어디서 그런 소문들었니?
[오달] 그저 지나가는 소린데---
[대부] 누구한테 들었나 말야!
[오달] 어디서 들었더라? 야 화내지 마.
[대부] 똑똑히 들어. 난 법정에 나가서 증언을 했을 뿐이야. 출판 협의회 전무로 있을때 말야.
[오달] 너 전무도 했니?
[대부] 이사장네 돈을 횡령 했는데 그 진상은 나밖에 몰랐어.
[오달] 그래서?
[대부] 주위 사람들의 이사장과의 의리나 그사람 체면을 봐서 적당히 증언 하라는 거야. 나도 고민은
했다. 그러나 법정의 분위때문인지 사실대로 털어 놨어.
[오달] 잘 한 일인데.
[대부] 난 신의가 없는 놈이 됐다. 새 이사장이 오더니 사표를 내라는 거야.
[오달] 사표 냈어?
[대부] 천만에,끝까지 싸웠지. 그렇지만---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니---참을수가 있어야지. 세상이 이렇다 새 이사장이 내 뒷조사를 시작하는 거야. 치사한놈!
[오달] 그놈도 교통사고로 죽겠군.
[대부] 면전에서 욕설을 푸어 붓고 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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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고생이 많았군. 그렇다고 이런데 숨어사는 거야?
[대부] 사람의 꼴을 보기 싫어 왜? 날더러 권토중래 하라는 거야.
[오달] 뭘 한다고?
[대부] 권토중래
[오달] 권 투 중 계? 난 무슨 말인지.
[대부] 야,,술병 또 하나 따라
[오달] 조심하라구 몸도 약한데.
[대부] 병마개를 따라니까. (오달이 이빨로 병마개를 따서 대부에게 병을 준다.)
[오달] 기분은 알겠지만---너무 퍼마시지 마. 심장도 약한데.
[대부] 그럼 뭣때문에 술을 사왔어? 네가 이런걸 사오니까 마시게 되는거야.
[오달] 내가 언제 한꺼번에 처마시라고 했니?
[대부] 뭐야? 쳐마셔? 말조심해 이자식아!
[오달] 뭐야? 이자식? 흥, 인테리가 마구 천해지는군. 나 참!(홧김에 술을 마시고)야 너 나
못배웠다고 너무 괄세 마.
[대부] 말조심 하란 말야. 지금 미국에 가 있는 내 친구 공창덕이는 나이가 두살 위지만 너처럼 말을
막 하지는 않는다.
[오달] 못배워서 그렇다! 공창덕인가 하는 친구가 오면 잘살아라 왜 신경질이야?
[대부] 됐어! 됐어! 이 일은 덮어두자. (대부가 선채로 술을 마신다. 전화벨이 울린다. 오달이
수화기를 든다.)
[오달] 여보시오? 장거리 전화?--- 서울이요? (대부에게)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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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내딸일거야. 이집 전화번호 모를텐데--- 여보시오 누구요? 나요? 나 오달이요. 오달! 뭐하는
사람 이냐구? 밥먹고 사는 사람이다. 당시 누구요! 뭐? 동환이?
[대부] 야 내 아들이야 (수화기를 받고)응, 나다. 응?---아, 내 친구야. 국민학교 동창이란다. 무슨
일이야, 밤중에?---그래? 미국서 떠났다던?---확실해?---야! 그럴리가 없어 그럴수가---(수화기를
놓으며)그럴수가 없어.
[오달] ---무슨 일이야? 야 너 왜 그래?
[대부] ---공창덕이가--공창덕이가---죽었어.
[오달] 여기 온다던 친구?
[대부] 자살 자살을 했대.
[오달] 그거 참!
[대부] ---가장 성공한 친구지---가장 행복한 친구가---왜 갑자기 자살이야. 그것도 미국에 있는
아들집에서(큰소리로) 야 도대체 인생이 뭐냐 말이다! 빌어 먹을! (대부가 소파에 주저 앉는다. 오달은
술병을 들고 일어나 대부의 눈치를 본다.)
[대부] 그렇게 기다렸는데---
[오달] 좀---진정 하게나.
[대부] ---친구라곤 공창덕 하나,뿐이었는데---왜 죽어야 했을까? 나이도 불과 예순 둘 뿐인데.
[오달] 그것도 자살을 했다니.
[대부] 그친구가 늘 얘기 했는데, 사람 곱게 늙는 다는게 여간 힘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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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니 조심하자고. 아들 앞에서 추한 꼴 뵈기 싫어 죽었을까? (술을 마시며) 나 같이 이렇게
비굴한 생활을 하면서 사는 놈도 있는데.
[오달] 너 비굴한 생활하고 있니?
[대부] 시끄러워.
[오달] ---미안하다.
[대부] 그 친구 말마따나 곱게 늙어야 하는데--- 자기 생각은 그렇지만 세상이 우리처럼 늙은놈을
가만 놔두지 않아. 과거에 학벌, 경험, 교양도 늙으면 조롱거리가 돼. 늙으면 젊은 놈들의 희생이
되던가. 너처럼 철없는 어린애가 되던가---
[오달] 나 어린애야?
[대부] 너 TV좋하 한다지? TV에 노인들 내보내 재롱 부리게 하는 꼴을 보라구. 이건 노인들을 완전히
어린애로 취급하는 거야 죽일놈들---자식 죽을려면 여기와서 죽을 것이지! 미국 땅에 묻혀? 왜 죽어야
했을까? (절규하듯) 야, 늙으막에 뭐 좋은 일 없니! (잠시 어색한 사이 대부는 멍하니 앉아 술을
마신다. 오달은 그의 눈치를 보며 오징어를 찢어준다. 대부가 갑자기 신음을 하기 시작한다.)
[오달] 좀 진정하라니까. 내가 거북하다---야, 너 왜그래? 야! 대부야.
[대부] 약! 약병. (대부가 선반쪽을 가리킨다.)---흰병---흰병
[오달] 심장이야.
[대부] 빨리.
[페이지] 045
(오달이 선반위에 있는 약병을 가져온다.)
[오달] 몇알?
[대부] 두알 (대부는 오달이 주는 약을 먹는다.)
[오달] 야! 이약으로 되는거야? 좀 편히 누워, 야! 괜찮아?
[대부] 걱정마, 좀 누워 있으면 돼.
[오달] 그대로 누워 있는거야, 알았어? (오달이 뛰어 나간다. 암전. 다시 무대가 밝아진다. 쇼파에
누워 요란스럽게 코를 골고 있는 오달. 잠시후 대부가 잠옷바람으로 나온다. 한쪽 의장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오달이 잠결에 중얼거리더니 눈을 뜬다.)
[오달] ---음, (일어나 앉으며)일어났어? 몇시야?
[대부] 아홉시. (방을 돌아보며) 방이 엉망이군.
[오달] 괜찮니?
[대부] 음, 괜찮아.
[오달]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니.
[대부] 미안하다---자네 수고는 했내만 야, 뭣때문에 의사를 불러왔니?
[오달] 의사? 그럼 친구가 죽는다는데 내버려 둬?
[대부] 누가 죽어?
[오달] 살려노니까 저꼴이야!
[대부] 그래 의사가 뭐랬는데?
[오달] 술이 과했구---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는 거야.
[대부] 그걸 의사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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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내가 말했지.
[대부] 안밖으로 창피를 톡톡히 당했군---근데 의사가 어떻게 빨리 왔지. 너 전화 걸었니?
[오달] 아니. 그 무당 처녀무당, 처녀무당한테 뛰어가 부탁했지 뭐. 그래서 그 무당하고 자가용 차를
몰고 고산에 갔지 뭐.
[대부] 나 참! 그럼 무당이 이집에 왔었어?
[오달] 자네 잠들고 나서 의사를 모시고 고산에 같이 갔다 왔어. 그 무당 미인야.
[대부] 야 시키지 않는 일을 왜 해?
[오달]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대부] 너 무당하고---무슨 일 없었니?
[오달] 나를 뭘로 봐! 무당네 집에 들러서 차한잔 얻어 마시고 돌아 왔을 뿐이야.
[대부] 뭐야? 무당집에 들러? 그것도 한밤중에? 친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혼자두고.
[오달] 야, 너 곤히 잠든걸 보고 나갔어.
[대부] 그래 너 몇시에 여기 돌아왔니?
[오달] ---새벽 두시쯤에.
[대부] 몇시에 그집에 들어갔는데.
[오달] 밤 열두시쯤. 되게 꼬치꼬치 캐네.
[대부] 그럼 두시간 동안이나 그집에서---남녀단둘이서. 야 너 바람 피는건 자유다. 그렇지만 내
주위에선 그런짓 하지마. 내 체면이 뭐가 돼?
[오달] 나 참? 미국서 공부했다는 사람의 생각이 왜 그렇게---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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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우린---뭐라고 하나---그래, 우린 대화를 나누었어.
[대부] 대화? 웃기네 너같은 IQ의 말이 그 무당한테 통해? 말해 봐. 둘이서 뭐했어?
[오달] 짐을 꾸렸어.
[대부] 짐? 무슨 짐?
[오달] 짐을 꾸리는데 도와 달라고 해서---노동을 제공했다.
[대부] 그 무당이 어디 간데? 이사? 여행?
[오달] 내가 알께 뭐야. 남녀간의 그렇구 그런일은 없었어.
[대부]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어?
[오달] 너 나를 믿은 적이 있니? 여기 도착하기가 무섭게 너는 나를 도도하게 대했어. 야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니? 그건 옛날이야. 중요한건 지금이야, 지금. 지금 너와 나는 동창생일뿐이야. 똑같은
실직자구. 우린 외롭고 화만내는 동창생일뿐이야. 똑같아, 지금은. 야 의사 왕진값,주사값,약값도 내가
냈다.
[대부] 누가 의사를 불러오라고 했어? 왕진값? 주사값? 물론 내가 내지. 얼마야? 당장 낼께.
[오달] 25,000원이다.
[대부] 25,000원? 좋다. 야, 내가 너 알듯이 그렇게 돈에 약한 사람은 아니다.(대부가 나간다.)
[오달] 야, 이건 뭐주고 뺨 맞는다더니, 나참! (오달이 일어나 방안을 왔다갔다 한다. 대부가 지갑을
들고 들어와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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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이만 오천원이다. 영수증도없는데 큰 맘 먹고 낸다. 이왕 돈 얘기가 나왔으니 예태껏 쓴돈
깨끗이 계산하자.
[오달] 좋다. 그러니까---내가 너한테---3만원 내면 되니까---거기에 2만 5천원---그러니 나는
오천원 너한테 내면 된다. 그 돈 도로 넣어. 더러워서 안만진다. 여기 오천원 있다.
[오달] 오---? 내 지갑---지갑이---? 야 내지갑이 없어.
[대부] 흥, 그 처녀 무당네 집에 놓고 왔겠지.
[오달] 무슨 소리야! 분명 잠 잘때도 있었는데. 난 잠들기 전에 그리구 아침에 눈을 뜨면 돈을 세는
습관이 있단 말이야. 분명 여기에 넣고 잤어. (오달이 불이나게 쇼파를 살핀다.) 없어,없어---야,
아침에 이방에 처음 들어온건 너야, 그렇지?
[대부] 그래서?
[오달] 내 지갑 못봤니?
[대부] 뭐야?
[오달] 내 지갑 못봤냐 말이야?
[대부] 너 그럼 날더러---?
[오달] 못봤냐고 물었을 뿐이야.
[대부] 못봤다. 기르던 개새끼한테 발을 물린다더니 나참!
[오달] 뭐야? 내가 너 기르던 개새끼야? 야, 너 보자보자 하니 진짜 보잘것 없구나.
[대부] 너는 지금 나를 도둑으로 몰고 있어. 살인도 날수 있어. 내가 진짜 화를 내면.
[오달] 네가 화를---? 내가 참아야지. 또 심장에 충격이 갈라!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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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이 담배를 피워문다. 어색한 사이 오달이 벌떡 일어나더니 방 한구석으로 달려간다. 지갑을
꺼낸다.)
[오달] ---지갑---찾았어. (대부가 대꾸를 않는다.) 지갑을 찾았다니까---내말 안들려?
[대부] 그럼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해.
[오달] ---사과 못한다.
[대부] 뭐야?
[오달] 네 태도가 거만해서. 네가 사과하면 나도 사과한다.
[대부] 내가 왜?
[오달] 너는 배운척하고 나를 무시할려 했어. 그걸 여태껏 참았다.
[대부] 참기 싫으면 나가.
[오달] 나가? 야 내가 있을 때가 없어 여기 온줄아니?
[대부] 네가 왜 있을때가 없겠니? 딸네집도 있고 우루과이,텍사스의 식당---또 무당집,갈곳은 많지.
[오달] 그러니 너 하고는 달라. 넌 서울에 못돌아가. 네 말따나 보기 싫은 놈 많구---사람들이 너를
이상한 눈초리로 봐서.
[대부] 뭐야? 너 함부러 그 따위 소릴해?
[오달] 모처럼 와줬더니 고마운줄도 모르고 야, 너는 좀 다른 줄 알았다. 동창이라는 놈들, 나를
얼마나 괄시하는줄 아니? 솜장사 아들이라구 하마같은 추녀, 그 직공하고 결혼했다구. 이새끼야,
장사하자면 한두번은 창피를 당하는거야. 탈세 한번 해서 걸렸다고 나를 사기꾼으로 봐 동창생 놈들이.
왜 그게 탈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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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억울해서 신고를 안했다 뿐이지. 풍문에 너도 한번 당했고 모둔게 귀찮아 시골서 산다고
해서---혹시나---혹시나 해서 왔는데---좀 배웠다는 놈이 낳을께 없어. 뭐 유일한 친구는 미국서
자살한 그 친구 뿐이라고? 그것고 내 면전에서 야 천당간 그 친구 붙들고 잘 살아라. 더러워서.(오달이
여행빽을 챙긴다. 대부가 창가로 가 밖을 내다본다. 차소리가 난다.)
[대부] 응?
[오달] 뭐야?
[대부] 무당이야. 흥 서방님 만나러 오는 모양이다.
[오달] 서방님? 그 나이에 시기심은 많아 가지구---
[오달] 시기심? 웃기지마. 난 관심도 없다.
[소리] 계세요?
[대부] 네 각시왔다. 문 열어.
[오달] 나 참! (오달이 문을 연다. 산뜻한 양장의 여인이 들어온다.)
[여인]안녕하세요? (대부를 보고) 괜찮으세요? 술이 너무 과했어요.
[대부] 어젯밤---미안합니다.
[여인] 미안 하긴요. 제 직업이 뭔데요. 사람 살리는 일인걸요.(오달에게) 새벽까지 수고가
많았어요. 힘이 장사이셔 젊은 남자 뺨치겠어요. 기술이 보통이 아니셔.
[대부] 기술--아이구!
[여인] 네? 하여튼 짐싸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에요.
[페이지] 051
[대부] 그래요?
[여인] 덕분에 예정대로 떠나게 됐어요.
[대부] 그래요?
[여인] 네, 오늘저녁 LA로 갑니다.
[오달] 어디요?
[대부] 로스엔젤스, 세미나가 있습니까?
[여인] 아니요. 이민가요. 그쪽 한국사람들이 어찌나 독촉인지. 제가 꼭 필요하데요. 사당도
지어주고---신주 모시듯 저를 대우한다니까. 교포들이 미국문화에 물들어 민족 정신이 희박하죠.
그러니 민속신앙을 통해 교포들을 교육해야죠. 보람 있는 일이죠. 이러다간 죽을때까지 일만하게
생겼어요. 하기야 사람이란 죽을때까지 일을 할수 있는게 가장 행복하죠. 저는 휴식이 뭔지
모르겠어요. 은퇴는 뭔지 한가 하다는게 죄악이죠.
[오달] 곧 인간문화재가 되겠군.
[여인] 부탁이 있어요.
[대부] 저한테 말입니까?
[여인] 그냥, 당분간 여기 계실거죠?
[대부] 글쎄---
[여인] 경찰서장 한테도 부탁은 했지만---선생님 가끔 제집에 들러 주세요.
[대부] 아무도 없을텐데---?
[여인] 빈집이니 별 신경은 쓰지 않지만 그래도 누가 신경을 좀 써주면 좋죠. 그리고 저의집
뒷쪽으로 한 5리쯤 가면 묘지가 있어
[페이지] 052
요. 묘지라곤 하나 뿐이죠.
[대부] 누구의 묘진데요?
[여인] 저의 어머니꺼죠. 전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산책길에 가끔 그 묘지도 봐 주세요. 좀
심한 부탁인가요?
[대부] ---아뇨.
[여인] 고마워요. 아저씨들은 참 다정하셔 인정도 많으시고. 시간이 없어 전 떠나야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오래 오래 사세요. (여인이 나간다)
[대부] 날더러 빈집을 지키라구?
[오달] 넌 묘지기야, 묘지기.
[대부] 저것들 얼마전까지 숨어 다니면서 굿을 하더니 인제는---나 참! 우린 저 무당한테 홀렸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기가 막힌 무당이야---우린 뭐야? 무당 같은 것들이 세계를 누비면 서 바빠
뛰는데---묘지기로 전락되는 놈이 없나. 왜 짐을 꾸리는줄도 모르고 침을 겔겔 흘리면서 무당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일한 놈이 없나---
[오달] 너 지금 내얘기 하는거야? 새끼 무당한테 홀린 주제에---(오달이 다시 빽을 챙기기
시작한다.)
[대부] 야 너 지금 뭣 하는거야?
[오달] 보면 몰라?
[대부] 가는거야?
[오달] 무슨상관이야?
[대부] 어디로?
[오달] 당장 김포공항으로 갈수도 있고. 나 가는거 말릴 생각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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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누가 말려?
[오달] 이제가면 마지막이다. 너 심장이 약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네 장례식에도 못올거야.
[대부] 잔병 많은 몸이 더 오래 산다며?
[오달] 마음이 고와야 오래 살지. 잘 살아보게---흥, 하기야 몇년만에 마음대로 지꺼렸더니 쌓여던
체중은 풀렸다. 시원하다.
[대부] 흥 피차 마찬가지네--- 뭐 꼭 나가달라고 한말은 아니지만 구태여 붙잡을 생각은 없네.
[오달] 침도 마르기전에 허튼 수작 작작해. 자 나가볼까. 참. 네안방 족자 걸린벽에 우측에 부적하나
붙였다.
[대부] 부적이 붙어?
[오달] 무당한테 얻은거야. 네 건강을 위해서.
[대부] 누가 부적을 부탁했어?
[오달] 무당한테 2만원 주었다. 그 부적 떼건 말건 맘대로 해.혼자서 잘살아 보게. 불청객이 아니지,
기르던 개새끼 나갑니다.
(오달이 나간다. 우둑허니 서있는 대부. 이어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본다. 다시 책장에가 채를 한권
들고 소파에 앉아 코피를 마시며 독서를 시작한다. 그러나 어수선 한지 다시 일어나 서성댄다.
라디오를 켠다. 잠시후 오달이 불쑥 들어온다. 대부가 놀라서 그를 물끄러미 본다. 두사람은 할말은
잊은듯 마주본다. 오달이 지갑을 꺼내서 돈을 테이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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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진다.)
[오달] 오천원이야. 이돈 안내고 가면 두고 두고 나를 욕할게 아냐. 나 그런 욕 먹곤 못산다.
[대부] ---돈 오천원 때문에 돌아왔어?
[오달] 너 사과해. 뭐야? 내가 기르던 개새끼라고? 나 일생 살면서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이 거지
같은 새끼야.
[대부] 뭐야. 거지 새끼? 야, 너 사과해. 내가 거지 새끼야? 너 자기집 쓰고 땅 5백평 가지고 있는
거지 봤니?
[오달] 그놈의 땅! 야 그땅을 씩씩거리면서 밭으로 간사람이 누구야? 씨도 못뿌리고 가? 너 또
욕할거 아냐. 남의 땅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고. 야 이 시골서 꺼질 사람은 바로 너야.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빈둥 놀고만 있는게 누구야? 나는 땅을 갈았다. 시골 사람 보기 민망해서.
[대부] 시끄러워. 왜 빽빽소리질러!
[오달] 너는 건방져서 혼좀 나야해. 내가 나간다는데 그렇게 좋아? 개새끼라는 말 취소할대까지는
못나간다.
[대부] 못나가? 마음대로 해. 너 같은거 있나마나 나는 관심이 없어.
(대부가 책을 펴든다. 오달이 담배를 피워문다. 사이 오달이 담뱃재를 함부로 턴다. 대부가 말없이
재털이를 그 앞에 민다. 사이. 오달이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방을 기웃거리며 무엇을 찾는다.)
[오달] 어디있어?
[대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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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씨앗든 봉투 말이야.
[대부] 씨앗은 왜?
[오달] 아까워서. 너는 씨앗을 말려죽일거야. 저땅하고 씨앗이 불쌍해. 내가 손좀 봐야겠다.
[대부] 내가 무슨 농사를 안다고, 야 씨앗 뿌리기전에 홈도파고 이랑도 만들어야 해.
[오달] 너같은 인테리가 농사를 알면 얼마나 아니?
[대부] 이건 툭 하면 인테리야.
[오달] 그럼 개새끼라고 부를까?
[대부] 네가 개새끼라면서 나이 육십에 개새끼가 뭐야!
[오달] 누가먼저 개새끼라는 말을 했는데? 씨앗 내놔.(대부가 씨앗봉지를 티테이블 밑에서 꺼내
던진다.)
[대부] 마음대로 해!
[오달] (봉지를 받으며) 너 밭농사 수확의 절반은 내꺼다.
[대부] 마음대로 해.
[오달] 야 무이건 배추이건 제대로 클라면 석달은 걸린다. 이 석달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할지
생각이나 해 봤어? (오달이 나갈려고 한다.)
[대부] ---석달동안? 야 너 어제처럼 함부로 고산에 가서 물건 사왔다간---나 책임안진다.
[오달] 너 한테 허가를 받아야 돼? 네가 뭔데? 네 그따위 태도가 싫단 말이야.(밖에서 비가
쏟아진다.)---이게 무슨소리야? 비가오지 않아? 빗소리지?
[대부] 그런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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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 일하긴 다 글렀는데---
[대부] 때를 맞추어 비가 오는군. 기다렸던 비야.(오달이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대부는 책을
읽는다. 가까운 교회의 종소리가 들릴때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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