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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부터 하겠습니다. 이 글은 1996년 5월이라는 시간에 맞춰진 서술입니다.
따라서 이영애의 최전성기인 '이영애의 하루' 시리즈가 나왔던 2000년대 초반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이 글은 마몽드의 위력이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이영애가 화장품 모델이 아닌 연기자로써 변신을 시도하던
시점에 맞춰져 쓰여져있습니다.
무엇이 어찌하였든 '마몽드'와 '이영애'는 한 쌍으로 취급할만큼 밀착된 이미지고, 한국화장품, 피어리스와
삼파전을 이루던 태평양을 우리나라 화장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화장품 한 브
랜드 최장수 광고 모델은 이영애의 마몽드입니다.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과거 이영애의 열렬한 팬이었음을 밝혀둡니다. (친구에게 부탁해 사인도 받았
습니다. 잘 나가는 친구 덕에 사인 한 장은 구했습니다. 그 친구는 같이 사진 찍었더군요.)
마몽드 혹은 이영애론
나는 단언한다. 그녀의 시대는 갔다. 더 이상 TV에서 '산소같은 여자'라는 멘트, '마몽드'라고 길게 늘어뜨린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이석준이란 인물의 코믹한 이미지와 더부는 '라네즈'의 '영화처럼 사는 여자' 김지호가 있을 따름이다.
마몽드는 확실히 한 시대의 사건이었다. 충격이었다. 마몽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맞먹는 파장을 지닌다. 놀랍게도 검도의 활성화는 마몽드가 도출한 사회의 한 현상이다.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영애의 이미지를 차용하려고 애썼다. (나는 검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극히 일본적 감성의 무도다.)
마몽드는 기능성 화장품이 아니다. 윤정과 이응경이 나오는 링클 케어나 김혜수와 홍진희가 나오는 로제 아쿠아 에센스는 우스운 선전이다. 그렇다. 여성들이 화장을 한다는 것에는 우스운 면이 있다. 그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얼굴에 황홀해하는 나르시스는 남자였다.- 마몽드는 신화와 이미지의 화장품이다. 화장품으로 이겨내는 여성의 현실이 마몽드에는 녹아들어간다. 산소같은 여자라는 멘트로 압축되는 마몽드의 이미지는 여성에게 이영애되기를 강조했었다.
광고는 이 시대의 신화이다. 십수년 전에 전인화가 나온 화장품광고의 실루엣은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그대로 모방했다. 그러나 마몽드는 그런 신화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는다. 이영애의 이미지로 신화를 창조한다.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가 일도 잘한다'이다. 이영애의 이미지는 남성과 같은 대등성과 남성을 배제한 듯한 아름다움에 있다. 마몽드광고에 나오는 남성 어느 누구도 이영애의 아름다움에 관심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서 쥬리아 소네트광고는 이승연의 아름다움에 반하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승연은 대통령이다. 남자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예 마님 분부대로 합죠.' 벙어리 삼룡이는 그녀의 눈빛에 감지덕지 해야만한다. 계급사회는 그대로이고.- 그들은 그녀의 능력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그녀가 화장품으로 중무장하고 시청자들을 공격하는 모습이다.
마몽드 첫 광고를 상기하자. 이영애는 공항 엘리베이터를 타고 머리부터 전신이 올라오는 씬에서 등장한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그녀의 얼굴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브리핑하는 영사기에서 얼핏 얼핏 그녀의 얼굴의 모습을 보여준다. (왕가위의 영화같은)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 시간에서 우리는 그녀의 아름다움마저 포착해야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녀는 사라진다. 그리곤 '나의 삶은 나의 것이다.' 광고의 특성상 반복하여 그 짧은 시간만을 시청자에게 허용하며 그녀는 일하는 주체성의 아름다운 여자로 남는다.
남자는 없다. 그녀에게 대응하는 남자는 없다. 그녀는 그저 대학교수와 문제에 대해 의논한다. 작별인사를 한다.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검도를 한다. 유도를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남자들과 말을 타며 폴로경기를 한다. 경찰관으로 사건현장에서 설명을 듣는다. 남자의 경호를 맡는다. 총을 들고서 누군가를 쫑는다. 그녀는 남성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그리고 아름답다. 산소처럼 어느 곳에서나 필요하다. 잠시 이 이미지를 떠나 생각하자. 누가 화장품광고를 보는가. 남자 역시 본다. 그러나 화장품의 소비계층은 여자다. 이영애로부터 여자들은 자기의 능력으로서 해방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의 집중을 의미하는 아름다움의 고독이란 이미지를 제기당한다. 그녀의 이미지는 빛이란 형태와만 어울려 이동한다. 그녀는 혼자이고 만족하는 듯한 눈빛으로 화면을 향한다.
변명도 해야한다. 슈퍼래스팅립스틱이란 선전에서 그녀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남성과의 키스를 하는 이미지도 보여준다. 그때 흐르는 음악은 Steelheart의 'She's gone'이다. 남자에게 머물지 않는다. 그리곤 잘 지워지지 않는다. 마몽드는 남자에게 머물지 않음으로써 해방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제기한다. -문제는 있다. 이영애는 남자들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하는 여자다. 여성이 역사적으로 해왔던 일들에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이영애는 아마조네스다.-
공격이미지를 더 분석해보자. 총을 든다. 뒤쫓는다. 순간적으로 그녀 곁을 사라진 복면의 남성인가. 겨냥한다. 그 총구는 화면을 향한다. 그녀는 청록색 마스카라로 상대방에게 눈빛을 발사한다. 귀에는 무전기를 장치하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녀는 두리번 거린다. 누구를 찾는 것인가. 총을 든 테러리스트가 언뜻 스치고 그녀는 총을 발사한다. 긴장이 모두 지난 듯한 순간에 이영애는 오렌지26를 바른채 다시 화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 광고에서 아름다움이란 그저 그 자신의 아우라를 지닌 소리없는 발산이 아니다. 그것은 공격이다. 남성에 대한 공격이다. 그녀를 숨어서 관찰하고 있는 총잡이들을 추적한다. 그리곤 겨눈다. 그것은 그녀의 눈빛이다. 접근 그리고 회피가 불가능한 화면 안으로부터의 유혹이다.
처음말했던 것처럼 이것은 신화다. 이것은 경전이다. 이것에는 동어반복과 모순이 그득하다. 자본주의로 운동하는 세상에서 서술되는 논리에는 위배됨이 없음에 불구하고. 마몽드의 '산소같은 여자'가 말하는 강세에는 필요함과 충족됨이 공존한다. 아니 마몽드는 여자가 지니는 이미지 모두를 차용한다. '전체냐 無냐(Alles oder Nichts)' 혹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닌 모호함과 애매성의 태도를 뒤섞는다. 여성은 감춤/노출이며 유혹/거절이요, 강함/약함이다.
'미스티 퍼플'이란 제품의 광고에서 남자와 껴안는 모습이 나온다. 그 남자는 -기분나쁘게도- 이태리 남자다. 이영애는 이탈자의 이미지도 제시한다. -갑자기 이태원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베네치아의 강물과 그 흔들림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안개 속으로 흩어진다. 그녀의 이미지는 헤어짐 사라짐이다. 반대의 이미지를 생각해내자. 사막에서 '천녀유혼'의 왕조현과도 같이, 베일과 길게 늘어뜨린 천조각들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그리곤 '한 여름 불청객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그녀의 가려진 얼굴이 드러나고 사막의 열기를 기지개 한 번으로 이겨낸 듯 웃음을 비친다. 그녀는 도망자가 아니다. 싸워서 이긴 사막의 전사다.
마몽드는 모든 이미지를 채용한다. 92년 경 처음 등장할 때 그리고 그 연속성으로 이어지는 일하는 여자의 이미지는 가끔 사라지기도 한다. '밍크 브라운'이란 립스틱을 광고할 때 이영애는 이유없이 쫓긴다. 그녀는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며 그녀를 구출하는 것은 빨간 색 오픈 카를 탄 멋진 남성이다. 그녀는 밍크 브라운의 입술로 남성과 대화하다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갈색의 눈동자로 바라본다. 그녀는 '스스로 새롭게 태어난다 산소같은 여자'이다.
그녀는 이제 비밀결사를 조직한 듯 하다. 밀교다. 모두가 가려진 모습의 여자들 앞에 이영애는 마이크를 들고 시선을 고정한다. 어느새 여자들은 교주 이영애와 더불어 자신의 굴레를 벗어 '봄을 도발한다.' 마지막으로 이영애는 우스워진다. 인명구조대 '여보세요'의 김국진이 된다. 그리곤 다시 태어나는 산소같은 여자는 O2를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쓴다. 산소가 분해되어 오존이 되는 과정이다. -즈음 이영애는 헤라여신이 되어 유혹만 아름다운 여자가 되려고 한다. 내가 알기로 헤라는 질투만 남아있는 여자이다.- 마몽드는 냄새나는 오존으로 변해서 구멍난 오존층이나 채우려 하는 것 같다. 처음에 단언한 바 대로 이영애의 시대는 끝났다. 그녀는 이제 마몽드와 더불었던 신비감을 상실했다. 처음 호주의 오페라하우스를 지나는 유람선 위에서 보여주던 햇빛을 스치는 아름다움은 여기저기서 섭외되어 일정한 성격을 지닌 연기자로 탈바꿈하면서 그 힘을 잃었다. 이영애의 연기력이 향상될수록 그녀의 마몽드가 가졌던 위력은 사라져 간다.
서태지는 은퇴했다. 그의 음악은 남아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녀는 은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하여 남아있는 것은 점점 더 지워져가는 마몽드라는 상품과 그 안에서 빛나던 그녀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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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추후 보충한 내역입니다. 오래 전에 광고학과 다니는 여학생에게 윗글을 주었는데 이걸로 A+ 받았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현재 마몽드에 관한 이미지들은 거의 구할 수가 없네요.
광고할 때마다 하던 일 멈추고 보았었는데...
아모레에서 고화질로 만들어서 사이트에 올려두면 좋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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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몽드 광고를 언급하려 할 때는 무엇보다도 각각의 광고들에 대한 진술이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마몽드는 산소같은 여자로 침잠하기에는 그 의미가 지나치게 모호하기만 하다.
마몽드 광고 중 자전거가 등장하는 광고가 있다. 전체적으로 하늘 색과 하얀 색그리고 초록 빛의 나뭇잎으로 그 전체적인 색채가 어우러졌던 광고에서 이영애는 -즈음 너무도 유행하고 있는 '공주병'-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듯한 '눈감음'을 드러낸다. 폭스바겐으로 보이는 자동차를 위에서 아래로 카메라는 회전하며 이영애가 취하는 포즈를 포착한다. 그녀는 책을 늘어뜨리고 눈을 감는다. -눈감음의 의미를 추적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추정할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은 거울이 주어지지 않은 나르시스에게 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스스로의 눈감음이라는 것이다.- 그 잠시의 순간이후 그녀는 얼핏 정면을 향하여 눈길을 보낸다. 그녀는 책을 보는 척하는 것이다. 그녀가 보는 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누군가이다. 그것은 바로 남자이며, 또한 여자들이다. 앞에서 주장한 바대로 마몽드에 있어서 남자는 큰 중요성을 띠지 못한다. -이 광고에서는 장난기어린 소년이 이영애에게 물을 뿌리는 듯한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마몽드의 대부분의 실루엣은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라는 연속극에서 사용되어 그 가치가 말소된 느낌을 지니게 한다. 자전거 타기 역시 등장하였다.- 그녀를 나르시스로 규정한다면 나르시스에 반하는 것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여성이 느끼는 바를 일반화하여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남자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르시스가 남자인 경우 그것은 남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여성일 경우 나르시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끌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영애는 자전거를 타고서 앞을 보지 않고 옆을 향해 눈웃음을 보낸다.
'산호빛 봄을 창조한다.' 전체적으로 분홍빛인 -물론 산호빛인-화면배경으로 이영애는 포즈를 취한다. 그녀는 분명히 모델이다. 분장사에게서 분장을 받는 듯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분장한다. 그녀가 취하는 포즈는 스포츠카에서 머리칼을 흔들어 정리하고 두손을 깍지 끼고 앞으로 내미는 것이다. -이 자세에서 눈을 감고 숨을 내쉬면서 깍지 낀 손을 바라보면서 하늘로 향하게 뻗으면 이른바 하얀 얼굴로 만드는 미용체조가 된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평지가 아닌 언덕 그것도 어떤 절벽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선글라스를 벗음, 그리고 서있음 그것은 기다림의 정서다. 그녀는 그녀가 서있는 풍경 전체와 더불어 오버랩 된다. 그녀는 위태로운 기다림이요, 풍경의 일부다. 그것은 절벽이다. -나는 폭풍우 휘몰아 치는 바다의 파도에 흔들리며, 혹은 산 위에 서서 눈을 치켜뜨며 죽고 싶다. (로뜨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1歌 中에서)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비장미는 아니고 사라지는 그저의 아쉬움이다. 그녀는 풍경이든지, 풍경에 잠식되는 순간들이고, 풍경에서 스쳐가는 그림자이다.- 그녀는 다가설 수 없음이다.
몇몇의 광고는 강조되지 못하고 사라지곤 한다. 헬리콥터가 나오던 광고에서 이영애는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획기적이었을 일하는 여자의 이미지를 계속하여 주장한다. 그녀는 헬기 안에서 노트북(확실하지 않은 기억임)으로 업무를 보고, 전화를 하고,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업무이야기를 한다. 솔직히 느낀 바를 이야기 하자면 우스웠다. 그녀의 왜소한 몸집과 선글라스로 가려진 얼굴 그에 대비되는 건장한 서구 남성들과 그들이 압도하고 있는 이영애의 주위, 이영애는 남자를 능가하는 듯하나 결코 능가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영애는 남성들보다 키가 크지 못하며 남성들에게 설명을 들어야 하고, -마치 유산으로 많은 돈을 얻은 젊은이의 모습, 그러면 자수성가는 어디있나? 여성에게 자수성가의 이미지는 쉽지않다. 마몽드는 일하는 여성과 더불어 자수성가하는 일하는 여성을 강조하지 못했다. 아무렴 어떤가. 회사야 화장품만 많이 팔면 그만 아닌가- 남성을 압도하지도 못하며, 남자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기에는 그녀는 의존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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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영애 정말 이쁘네요.. 사실 제가 이영애랑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당시에는 청초하게 이뻤는데.. 지금 사진 보니까 정말 이쁩니다^^
허미트님,,마몽드~~글과 미인대회~글 비머님 소모임쪽으로 옮겨도 괴안으시겠죠? ^^
넵!
문제는 허미트님이 직접 옮기시는게 모양새가 좋을듯 합니다..ㅎ 글주인이 바뀔순 없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