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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석불 스크랩 우리나라에서 2점뿐인 순금불상-황복사지 삼층석탑 금제입불상과 아미타불좌상
청산에살리 추천 0 조회 70 15.03.12 13: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나라에서 2점뿐인 순금불상
황복사 터 삼층석탑 출토 금제 불입상과 아미타불좌상

신라의 불상

 

 

지금까지 경주에서는 수많은 신라불상들이 출토되었다. 황룡사지를 비롯하여 사천왕사지, 인용사지, 분황사 등 절터에서 30cm이내의 소형불상들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안압지에서 엄청난 양의 금동불상들이 출토되었다.

이렇게 출토된 불상은 대부분이 금동불상이다. 금동불상이란 구리로 외형을 주조한 뒤 그 표면에 금으로 도금한 불상을 말한다.

 

불상 표면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으로 도금을 하는 까닭은 불상에 대한 장엄의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불교의 교리적인 요소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불교 경전에는 '32상 80종호'라 하여 부처의 몸은 32가지의 현저한 특징과 80가지의 세부적인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신금색상(身金色相-신체의 색깔이 황금과 같다)' '상광일장상(常光一丈相-몸으로 부터 사방 1장 길이의 빛을 발한다)' 등의 표현으로 인하여 불상의 몸을 금빛으로 나타나게 하였을 것이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1942년 경주 구황동 낭산의 동편, 황복사터(皇福寺址)로 전해오는 절터의 삼층석탑을 해체ㆍ복원하였다.

이 때 2층 지붕돌 상부의 사리공에서 2점의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특이하게 이 2점의 불상은 도금을 한 금동불이 아니고 순수한 금으로 만든 순금불상으로서 지금까지 삼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발견된 것이었다.

 

불상은 금동으로 만든 사리외합 안에 들어있었는데,  사리외함의 뚜껑 안쪽에는 해서체로 1행에 20자씩 총 18행의 명문과 99기의 작은 탑들이 새겨져 있었다.

명문에 따르면 '천수(天授) 3년(692) 신문왕(神文王)이 세상을 떠나자 신목태후(神穆太后)가 왕위를 이은 아들 효소왕(孝昭王)과 함께 종묘의 신성한 영령을 위해 선원가람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성력(聖曆) 3년(700) 신목태후가 세상을 떠나고 대족(大足) 2년(702) 효소왕이 승하하자 뒤를 이은 성덕왕(聖德王)이 신룡(神龍) 2년(706)에 불사리 4과(顆)와 6촌(寸) 크기의 순금제 아미타상 1구, 그리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1권을 석탑 2층에 안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사리합의 위치

 

사리함

 

사리함의 유물

 

사리외함의 뚜껑 안쪽의 명문

 

 

당시 사리함 속에서는  2점의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입상(立像)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좌상(坐像)이나 명문에는 불상의 자세가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불상의 제작 연대나 안치 순서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두 불상의 양식이나 형식을 살펴보면 입불상이 좌상보다는 더 고식(古式)이었으므로 입상은 692년 석탑 건립시기에 봉안된 것이며, 좌상은 706년에 성덕왕이 봉안한 아마타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순금제 불상

 

 

 

이 두 불상은 크기가 약 10cm 정도에 불과하지만 구리가 아닌 순금으로 만들어진 점, 광배에 정교한 조각기술이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신라왕실에서 매우 중요한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제여래입상-국보 80호 

 

금제 불입상, 경북 경주시 구황동 삼층석탑 출토, 통일신라,692년 경, 금, 높이 14.0 cm, 국보 80호

 

두툼한 법의에 가려 신체가 드러나지 않게 표현된것은 고(古) 삼국시대 불상 양식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입불상은 692년 석탑을 세울 당시에 안치된 불상일 가능성이 높다.

 

 

높이가 14cm인 이 입불상은 민머리에 큼직한 육계를 가졌으며 갸늠한 얼굴에 양감이 있고 자비스러운 모습이다. 콧날은 날타롭고 입가에는 얇은 미소가 흐르며 목에 삼도는 없다.

어깨를 덮은 법의를 왼쪽 등 뒤로 넘겼고, 두터운 옷주름은 U자형을 이루며 층층이 흘러내려 온다. 불입상의 U자형 주름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는 옷주름의 선구적인 형태로서 치마가 발목 부분에서 약간 옆으로 퍼진 모양을 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커다란 손은 사실적인 표현과는 약간 거리가 멀며,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들어 올려 시무외인을 취하였고, 왼손에는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다. 옷자락을 쥔 형식은 인도의 마투라 불상이나 간다라 불상, 또는 중국의 6세기 불상에서도 발견되는 고식적인 요소이다.

대좌는 연꽃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연육부와 그 아래의 원형과 12각형의 받침 두 부분이 따로 만들어져 결합되었다.

광배에는 문양과 크기가 다른 동심원과 타오르는 불꽃 문양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뚫을새김(透彫)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보주형(寶珠形)를 하고 있다, 머리 중앙부분에는 연꽃모양을 뚫어새긴 별도의 금속판이 결합되어 있다.

이 불상은 얼굴 모습, 옷매무새와 옷주름, 대좌 및 광배 표현 등에서 함께 출토된 금제아미타불좌상보다 고식을 따르고 있어 692년에 넣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에는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흔적도 남아있어 흥미로운데, 머리와 가슴에는 불상의 원형과 거푸집을 고정하는 틀 고정용 못(鑄型支持材 또는 型持)을 제거하고 마감한 흔적이 있다.

또한 등에는 완성 후 흙으로 만들었던 원형을 파냈던 구멍이 남아있다. 이 불상은 광배와 불상, 불상과 연화대좌는 별도로 주조하여 만든 후 고정하였다.

 
금제 아미타 좌불상-국보 79호

금제 불좌상, 경북 경주시 구황동 삼층석탑 출토, 통일신라,706년 경, 금, 높이 12.0 cm, 국보 79호

 

한쪽 손은 올리고 다른 한손은 무릎에 얹는 등 7세기에 유행했던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을 갖추었고 중국 당(唐)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706년에 안치된 아미타상으로 추정된다.

 

 

3단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이 불좌상은 크기가 12.2cm로서 함께 발견된 불입상에 비해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하고 얼굴 이목구비의 윤곽선이 뚜렷하며, 위엄과 권위가 있는 근엄한 모습이 특징이다.

민머리에 육계가 큼직하게 솟았으며 둥근 얼굴은 원만하다. 눈, 코, 입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균형이 잡혀 있으며 어깨는 넓고 당당하다

양쪽 어깨를 감싸는 통견식의 법의자락은 아래로 흘러내려 대좌를 덮고 있으며 법의는 훨씬 얇아져서 신체에 밀착되어 몸체의 굴곡과 풍만한 인체를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삼도(三道)를 표현한 목의 가로 주름선이 뚜렷해지고 실제 손처럼 손금까지 표현할 정도로 신체 세부도 정밀하게 표현하였다.

연화대좌 아래로 흘러내린 법의의 표현은 중국 당나라 불상과 대좌 표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형식이며. 특히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시무외인을 하고 있고, 왼손은 항마촉지인처럼 무릎에 내려놓은 이와 같은 손 모양 역시 7세기 초 중국에서 유행했던 아미타불상의 손모양과 유사하다.

 

 

 

 

불좌상은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을 수용하면서도 육감적이거나 관능적인 과장된 입체감을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중국 불상과 차이를 보인다.

불상의 몸체와 대좌, 광배는 따로 주물하여 결합하였는데, 몸체만 순금이고, 대좌와 광배는 금동으로 제작하였다.

 

 

불상의 앞 뒤

 

광배는 머리 주위의 빛을 형상화한 두광(頭光)과 신체 주위의 빛을 형상화한 신광(身光)이 하나의 광배로 표현되었는데. 두광 부분에는 연꽃잎이 덧대어 있고 신광 중앙에는 넝쿨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이들 주변에는 넝쿨 문양과 화염문이 정교하게 맞새김되어 있다. 대좌는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형이라는 점 역시 독특하다.

적절한 신체 비례와 정교한 세부 표현 등에서 당(唐) 불상 양식을 수용한 통일신라 초기의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불상은 706년에 넣은 아미타상으로 추정된다.

 

 

 

 

2 점의 불상은 신라왕실에서 조성한 순금제 불상으로 조성 연대의 추정이 가능하고 , 광배와 대좌가 온전히 보존된 드문 예이며 특히 사리장엄구로 불상을 봉안한 사례로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왜 순금으로 만든 불상이 귀할까?

 

1996년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나원리 5층석탑(국보 제39호)을 해체 보수 공사 중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바깥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는  사각형 모양의 금동사리함이었다. 15과의 사리와 함께 3층 공양탑 1기, 9층 공양탑 3기, 다수의 나무 공양탑 편(片), 구슬 4점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한지에 먹으로 쓴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부분들도 수습되었다.

 

높이 약 12cm 금동제삼층소탑의 기단 내부에 높이 4.1cm의 불상이 놓여 있었는데 이 때 발견된 불상이 순금으로 만들어진 불상이라하여 전국을 떠들석하게 하였으나 확인 결과 금동불로 판명이 나서 순금불상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황복사지 출토 불상 2점 밖에 없는 실정이다

 

나원리5층석탑 사리함출토 금동불

 

 

그럼 순금으로 만들어진 불상이 왜 이렇게 귀할까?

 

그것은 금이 귀해서 만들지않은 것이 아니고, 그보다는 순금의 녹는 점이 청동보다 높아 순금으로 불상을 조각하기란 매우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순금은 두드리면 펴지고 휘면 굽어지는 성질이 있는 반면 불에는 아주 강하다. 그래서 다른 금속처럼 주물(鑄物)로는 형상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

 

순금으로 불상을 만들려면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鍛彫)를 해야만 된다. 단조란 얇은 금판을 두드려서 만들거나 불에 달구어 가면서 두들겨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돋을 새김(부조)은 좀 쉬운 편이나, 두리 새김(환조)은 안쪽에서 밖으로 두드릴 수가 없어 제작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얼굴 표정, 옷 주름 등을 의도대로 나타내기에는 아주 곤란하고 부적합하여 순금 불상을 쉽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만들기가 쉬운 주조식 방법으로 금동 불상을 만들어 금도금을 하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순금불상은 자체가 순금이므로 금도금을 할 필요가 없으나 금동불상은 몸체가 청동이므로 금도금을 해야 금빛으로 빛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금동불 제작하는 주물식 방법은 대개 2가지이다.  

 

1. 통주식주조법

 

이 방법은 금동불 제작에 있어서 가장 초보적인 수법으로 완성된 불상의 내부에 내형으로 생긴 공동(空洞)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1). 밀랍 덩어리 자체를 조각하여 원형(原型)으로 삼는다.
2). 밀랍으로 조각된 원형 표면(탈납구 포함)에 흙으로 겉을 싸서 외형(外形)을 만든다. 

    흙으로 싼 외형을 가열해서 밀랍을 빼내버리면 겉 모양만 남는다. 이것을 거푸집이라 한다

3). 거푸집 속에 구리와 주석, 아연을 섞어 녹인 합금인 청동액(놋쇳물)을 부어넣는다.

4). 놋쇳물이 식어 굳으면 외형을 제거한 후 결함부분의 보수, 세부 선각, 별주부분의 결합, 각명, 도금

     등의 마무리작업을 거쳐 불상을 조성한다.
5). 완성된 외형에 도금을 하여, 불상을 완성한다.

 

 

2. 중공식 주조법

중공식 주조법은 통주식에 비해 몇 가지 단계를 더 거치는 보다 발전된 주조기법이다.

 

 

1). 흙으로 받침대를 만들고 그곳에다가 철심을 세운다. 이 철심에 흙을 입힌 다음 대체적인 윤곽을 잡는다.
2). 내형을 충분히 건조시킨 다음, 표면에 밀랍을 바르고 불상 세부를 조각한다.

     이때 밀랍의 두께는 곧 불상의 두께가 되며 밀랍에 조각한 불상의 모습은 바로 주조된 불상의 모습이

     되므로, 불상의 제작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3). 밀랍으로 조각한 원형(原型)에 흙으로 겉을 싸서 외형(外形)을 만들게 되는데, 그 전에 이 외형과 원형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밀랍을 관통하여 몇 개의 틀잡이(형지型持)를 박는다. 이렇게 만든 원형 표면에 흙을

     씌워 외형을 만든다. 이 외형은 미리 만든 형지와 연결되어 내형과 고정된다.

4). 전체를 불에 구워 흙으로 된 외형을 굳히는 동시에, 속에 있는 밀랍을 녹여서 완전히 흘러나오게 한다.
5). 밀랍이 흘러나간 구멍을 막고 쇳물을 붓게 되는데, 소형 금동불의 경우는 상(像)을 뒤집어서 대좌 바닥의

     구멍에서 머리 쪽을 향하도록 하여 주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6). 놋쇳물이 굳으면 외형을 제거한 다음 형지로 해서 생긴 구멍을 메우거나 밖으로 나온 철심을 제거한다.

     그리고 결함부분의 보수, 세부 선각, 따로 만든 부분의 결합, 도금 등의 마무리작업을 거쳐 불상을

     조성한다.
7). 주물이 완성된 외형에 도금을 하여, 불상을 완성한다.

 

 

 

  금박지를 문질러 도금을 하고 있는 불상의 손(칠박도금법)                           도금된 불상

 

 

불상에 금으로 도금을 하는 방법은 수은을 이용한 아말감도금법과, 칠을 하거나 아교등으로 금박지를 눌러 바르는 칠박도금법 등이 있다,

 

칠박도금법은 작업이 편하고 금의 피막이 전체적으로 균일한 두께를 가지며 인체에 해가 없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아말감도금법은

   1. 먼저 금덩어리를 갈아 금 가루를 만든다.

   2. 만들어진 금가루에 수은을 섞는다.

   3. 금가루가 섞인 수은덩어리를 잘 갈아준 다음 한지에 싸서 꼭 짜면 수은 성분만 빠져나온다.

   4. 이렇게 만들어진 덩어리를 손으로 금속 표면에 골고루 바른다

   5. 금가루가 발린 불상을 가열 하면 수은은 증발하고 금만 남아 금속 표면에 강하게 고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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