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바랜 순례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진지한 성찰의 여정을 시작하며 주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40년6개월 광야를 지나 정년퇴임을 하고, 자유인으로 제3인생을 시작하면서 동유럽 성지순례와 문화체험의 기회를 가졌던 사진들을 공유해 봅니다. 다녀오신 분들에게는 회상을 통한 자신의 복음화에 도움이 되고, 다녀오시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참고 자료가 되면 좋겠습니다.
★ 동유럽 성지순례와 자연과 문화 체험 개관
동유럽은 독일남부,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지역을 일컫는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제국의 면모답게 세련되고 화려한 성당들과 문화유산들이 알프스 자락의 풍경과 어울려서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 체코는 건축박물관이라 부를만큼 중세유럽의 느낌을 물씬 받으며, 헝가리는 1000년전에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천년의 세월동안 풍파를 신앙과 더불어 이겨낸 긍지를 느낄 수 있다. 폴란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조국이기도 하지만, 시골 어느 마을을 가든 폴란드 사람들의 순수한 신앙이 순례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일구워 준다.
■ 동유럽 순례여정 1. 독일 비스와 퓌센, 에탈 지역 성지 순례와 문화 체험
1. 비스(Wies) 대 성당 / 알프스 협곡의 아름다운 자연에 놀라울 정도로 원형이 잘 보존된 순례 성당
☞ 바이에른의 슈타인가텐 근처에 있는 비스((Wies)마을은 '초원'이라는 뜻이란다. 초원의 마을을 지나서 비스성당으로 가고 있다.
☞ 비스 대성당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건축가 도미니쿠스 침머만의 작품으로 바바리안로코크 양식의 걸작품이다. 「채찍을 맞은 예수님에게 바쳐진 비스의 순례 성당」은 바이에른 시골 마을의 목가적인 풍경에 동화되어 있다. 화려한 내부와는 대조적으로 외관은 소박한 성당이다. 연간 150만명 이상믜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단다.
☞ 비스의 작은 마을에서는 1738년에 기적이 일어났단다. 여기에는 목각 예수상이 있었는데 프레몽트레수도회 수사들은 이를 더는 경배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원형 받침대 위에 있던 소박한 목각 예수상이 1738년 6월14일 농부인 로리 부부에 의해 피눈물이 흐르는 기적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 그리하여 수도원은 예수상을 안치할 경당을 짓기 시작해 1740년 완공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 독일,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이탈리아 등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크게 늘어나자 수도원에서는 새로 대성당을 지어 봉헌하기로 하였다는데......
☞ 1745년에 유명한 건축가 도미니쿠스 치머만의 지휘 아래 비스 순례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단다. 도미니쿠스 치머만은 알프스 산기슭의 목가적인 배경에 가장 세련된 바이에른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을 세웠다. 성가대석은 1749년에 봉헌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1754년에 완공되었단다. 그 해에 도미니쿠스 치머만은 거주하던 란츠베르크 시를 떠나와서 자신의 걸작품 성당이 가까이 있는 비스에 정착해 살다가 176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비스 순례 성당은 타원형으로 설계되어 있고, 서쪽 앞부분에는 반원형 현관 홀이 있다. 내부는 두 기둥을 벽 앞에 배치해 불규칙하게 마름질한 처마 돌림띠와 목조 아치형 천장에 편편한 윤곽을 지지하고 있다. 이 윤곽은 창문과 둥근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직간접적으로 교묘하게 흩어지는 두 번째 용적을 분명히 나타낸다. 동쪽으로는 길고 깊은 성가대석이 상·하단 갤러리로 둘러싸여 있다.
☞ 놀라운 치장 벽토 장식은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스 에마뉴엘의 화가이자 도미니쿠스 치머만의 형인 요한 밥티스트 치머만이 1720년부터 도미니쿠스 치머만을 도와서 작업한 작품이라고 한다. 생동감 있는 색채는 조각된 세부 양식을 돋보이게 한다. 상단에는 프레스코화와 치장 벽토 세공이 완전히 스며서 전례 없는 풍요로움과 세련미를 지닌 밝고 생기 있는 실내 장식을 만들어낸다.
☞ 풍부한 주제와 인물, 선의 유려함, 외관의 능숙한 개방, ‘그리고 빛’은 보는 이에게 끊임없이 신선한 놀라움을 준다. 진짜처럼 그린 천장은 천사들이 가로질러 날아가는 무지갯빛으로 영롱한 하늘로 열린 듯 보이는데, 이 또한 전체 공간을 밝히는 데 이바지한다. 로코코 양식의 백미로 알려진 비스성당은 예술가들로부터 "이 시대의 비참한 세상에서 하늘나라의 일부분을 보게 해준다."는 찬사를 받을만큼 아름답다.
☞ 천장에 그려진 그림은 '구원 신학'을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천장화는 열려진 성막으로 구약시대에는 성막 뒤에 지성소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무지개 위에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상' 그림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과 부활로 인한 화해의 죄사함,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영광과 축복을 드러내며 다시 오시는 구세주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 그림 아랫쪽 부분의 비워진 의자는 인간들을 위해서 비워둔 의자란다.
◆ 「채찍을 맞은 예수님에게 바쳐진 비스의 순례 성당」
☞ 제대 위의 '쇠사슬에 묶이신 예수상'은 1732년부터 성 도미니코회 슈타인가든 수도원에서 성 금요일 '십자가의 길 행렬 예식' 때 사용하던 성상이라고 한다.
☞ 우리 순례단을 지도를 해주신 호인수신부님(인천교구 은퇴사제)과 기념으로 남겼다.
☞ 알프스 협곡의 아름다운 자연에 놀라울 정도로 원형이 잘 보존된 「비스 순례 성당」.
비스 순례성당은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왔다. 색채가 모두 생생하며, 성가대석의 인상적인 비대칭 철제 부품, 신실한 이들을 위해 조각한 목조 신자석, 제대단, 건축물에 있는 우아하고 정교하게 만든 조각들을 포함한 교회 전체가 로코코 양식을 보여준다.
2.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백조의 성)
☞ 퓌센으로 가는 길
퓌센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지대 인근의 알게우알프스산맥 동쪽 끝 레히강 연안에 있다. 뮌헨에서 100km 떨어져 있으며, 옛로마제국의 국경초소가 있었던 자역이다. 628년에 세워진 베네딕도회 마그누스수도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고 한다.
☞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백조의 성)으로 가는 길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백조의 성)은 퓌센에서 4km 떨어진 슈반가우라는 마을에 있으며 이 성을 관람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퓌센을 찾고 있다.
☞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4대 국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가 전쟁에서 패한 뒤, 동화 속 환상의 세계를 실현하는 데 여생과 재산을 쏟아부은 곳이 노이슈반슈타인이라고 한다. 비록 백조의 성이 완성되기 전에 루트비히 2세가 세상을 떠나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독특하고도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성이다. 백조의 성 주변에 알프스 산자락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노이슈반슈타인은 월드디즈니가 디즈니랜드 판타지랜드 성을 지을 때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 옛 백조성
☞ 노이슈반슈타인(새로운 백조성)
노이(새로운)슈반(백조)슈타인(돌덩어리).......
새로운 백조의 성으로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은 바그너의 음악 영감으로 연간 1,300만 명이 방문한다는 미완성의 성이다.
☞ 마리아의 다리 / 계곡을 연결하는 이 다리에 서면 새 백조성이 바로 보인다.
노이슈반슈타인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은 마리엔 다리(Marienbrucke)위에서 보는 것이 숲속에 있는 성 전체를 볼 수 있다. 마리엔 다리까지는 오르막길로 걸어서 가면 20분이면 갈수 있다. 걸어서 가는 것이 힘들면 마차도 있고 버스로 갈 수도 있다, 마리엔 다리 위에는 백조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 한 장찍기도 힘들다.
* 마리엔 다리(Marienbrucke)위에서 보이는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백조성)
☞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백조의 성)은 바이에른 왕가의 루트비히 2세가 1869~1886년에 연회색 화강암으로 쌓아올려서 바이에른의 숲에 한 마리의 백조가 우아하게 내려앉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 루트비히 2세는 오페라(로엔그린)에 나오는 아름다운 성을 짓고 싶어했고,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전 재산을 투입하여 오직 성을 짓는데만 몰두하여 ‘미친 왕’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 노이슈반슈타인(백조의 성)은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백조의 전설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성 곳곳에 백조의 조형물이 많다, 그래서 백조의 성 이라고 부른단다,
☞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성에서 루트비히 2세가 머무른 시간은 172일 6개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백조의 성'이 완공되기 전에 뭰헨에 있는 슈탈른베르그 호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 나라의 재정은 돌보지 않고 성을 짓는 데만 빠져서 '미친 왕‘이라는 누명을 얻었지만, 그의 광기 덕분에 그의 후손들은 관광 수입만으로도 지금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단다,
☞ 백조의 성 내부 사진은 촬영 금지였다. 그래서 내부 촬영은 못했지만, 성안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외부 풍경을 몇 장 촬영했다.
☞ 성안에서 계곡 쪽으로 보면 계곡사이를 연결하는 우리가 서 있었던 '마리아의 다리'도 보인다.
3. 에탈 수도원
☞ 에탈 수도원 가는 길
뭰헨에서 남서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가르미슈파텐키르헨 가기 전에 에탈 수도원이 알프스 산록 해발 900m 지점 암머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원으로 가는 '로만틱 가도' 주변. 도나우강과 마인강 지류들이 흐르는 계곡과 알프스 흰봉우리들이 하늘과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에탈(Ettal)은 '맹세의 계곡, 약속의 계곡'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이에른 황제 루드비히(1314~1347)가 성모님께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맹세한 후, 그 약속대로 1330년 4월 28일에 이곳에 수도원 설립을 시작해서 '에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1327년 바이에른 황제 루드비히는 왕위를 확고히 하려고 로마로 갔으나 왕위를 확고히 하기는 커녕 궁핍과 빈곤에 빠져 절망 가운데 기도로 위안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타난 사람이 반백의 수도사였단다. 수도사는 그가 돌아가서 하느님과 성모님의 영광을 위하여 암페랑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서원하면 도와주겠다고 제의하였다고 한다. 황제가 쾌히 수락하니, 수도사는 그에게 성모 마리아상을 건네주었단다.
☞ 황제는 밀라노의 백작 구엘프로부터 5,000길더의 재정지원도 받았다고 한다. 암페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는 수도사로부터 받았던 성모상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사냥꾼 펜트에게 암페랑이라는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사냥꾼이 로이자계곡을 거쳐 암머강의 원류인 높은 계곡으로 안내했던 그곳이 오늘날 린더호프와 오버암머가우 사이에 위치한 에탈의 경계지점이란다. 오버암머가우는 뭰헨에서 남서쪽으로 67km 거리에 있다.
☞ 이 계곡으로 들어서서 황제가 탔던 말이 어떤 전나무 앞에 이르자 세 번이나 무릎을 꿇으면서 더 나아가지 않으려 하였다고 헌다. 황제는 이곳이 서원했던 수도원을 지으라고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은 장소라고 생각하였단다. 그리하여 그는 이 전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의 솦을 벌채하는데, 그날이 1330년 4월 28일 성인 비탈리스 축일이었다. 이날 황제는 에탈 성당과 수도원의 초석을 놓았으며 , 이탈리아에서 받아온 카라라 대리석으로 제작한 성모 마리아상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 1370년 봉헌된 성당은 이웃 로덴부호에서 가져온 거대한 사암 블록으로 직경 25m의12면으로 된 건물이다. 다각형 건물의 중앙에 야자나무 비슷한 거대한 기둥이 커다란 아치형 천장을 떠받들고 있으며, 그 밑에 감실과 하얀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제대가 있다. 제대 안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는 모습의 대형 벽화가 있다. 루드비히 황제가 생전에 이탈리아 피사에서 직접 가져온 '에탈의 마돈나'로 불리는 이 성모상은 아기 예수가 성모 마리아 무릎에 서서 마리아와 사랑스런 눈빛을 마주하면서 성모 왼빰을 손으로 비비는 모습을 하고 있다.
☞ 1744년 6월에 화재로 수도원 성당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이후 1762년 고딕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새성당이 완공돼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단다. 이 수도원 성당 역시 비스성당처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침공 영향으로 유럽의 다른 수도원들과 마찬가지로 1803년에 수도회가 해체되었고, 전 재산이 정부 소유로 압류되는 불행을 겪었다고 한다.
☞ 이후 100여년 가까이 방치됐던 에탈수도원을 1900년 성베네딕도 수도회 샤이에른(Scheyern) 수도원이 매입해 그해 8월 다시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성당 내부는 흰 대리석과 금도금 장식, 그리고 천장화로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 1769년에 제작된 천장 프레스코화는 성 베네딕토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던 400여명 성인 성녀와 남녀 수도자들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프레스코화 중심에는 창조주 성부와 십자가의 승리를 표상하고 있는 성자, 비둘기 형상의 성령이 천사들 호위를 받으며 자리하고, 그 주위로 천사들과 성인 성녀들,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우러러보며 찬미하고 있다.
* 천장 돔의 프레스코화 둘레에 설치된 11개 장미창은 성당 내부 구석구석으로 밝은 햇빛을 내려보내고 있다.
☞ 수도원 소성당에서 우리 순례단의 미사 봉헌이 있었다.
☞ 수도원에서는 '기도하며 일하라'는 성 베네딕토의 가르침에 따라 고등학교인 '김나지움'과 출판사, 인쇄소, 농장, 빵집, 맥주와 약주 공장, 호텔 등을 운영하고 있단다. 특히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김나지움은 독일에서도 유명한 사립고등학교로 알려져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한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고등학교 김나지움 건물이다.
☞ 에탈수도원은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성인 성녀들이, 땅에서는 수도자들이 시편을 노래하며 매일매일 하느님을 찬미하는 거룩한 장소였다. 그곳에 우리 순례단은 한참 동안 기도하고 묵상하며 머물렀다.
☞ 다음에는 「동유럽 순례여정 2. 독일 뮌헨 지역 성지 순례와 문화 체험」이 이어집니다.
첫댓글 오 감사합니다. 안방에서 동유럽관광도 하고. 비스성당 상상으로 해보는 하늘나라를 눈으로 보게되는군요. 백조의 성은 저도 가보았습니다만 이런 사진은 못 찍었는데 멋집니다.
고맙습니다. 흘러간 순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하느님의 창조에 감사드리며, 제 자신의 파괴된 창조 질서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해봅니다.
이제 성지순례는 끝난 것 같습니다. 그곳으로 푹 빠져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늘 처음처럼........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