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여수산단 내 7개 사업장 2,200여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여수지역 연대파업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석유화학․정유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여수산단은 석유화학․정유제품의 4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대표적 산업단지이기 때문이다. 또 의류, 필름,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을 가공하는 2차 산업에 미칠 영향도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조와 회사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산단 내 노조들은 공동투쟁본부를 구성, △지역사회발전기금 조성 △비정규직 정규직화 △주5일제 쟁취 등을 공동요구안으로 제출하고 있지만 회사는 주5일제 근무제 외에는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발전기금 공방
이번 파업에서 지역사회발전기금 조성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회사 쪽은 “임단협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며 “기업부담 증가도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노조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수공투본은 “산업단지가 내보내는 유해물질의 영향으로 지역의 환경 파괴와 이로 인한 질병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것은 기업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매출액의 0.01%를 기금으로 조성하고 사용처에 대해서는 노사가 공동기구를 만들어 논의하자는 안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회사 쪽은 “기업이 할 일에 대해 노조가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장학,복지사업 등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교섭 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확대, 대형사고 위험 키워”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정규직화 문제도 같은 이유로 해결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다. 회사는 경영권․인사권 침해라는 이유로 교섭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나 노조 역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노조안의 핵심은 ‘사내하도급 불법파견에 대한 정규직화’다. 공투본이 산단 내 1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사업장의 비정규직 수는 2,453명으로 정규직 대비 평균 40.9%에 이른다. 공투본은 “각종 폭발사고와 유해물질 누출 등 재난 방지조치가 필수적인 화학산업 특성상 충분히 교육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투입은 대형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각 회사들은 불법파견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며 “비정규직 고용은 경영상의 문제”라며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회사 쪽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회사가 점진적으로 해 나가고 있다”며 이 역시 단협 사항이 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주5일제
여수산단 내 노동자들의 주5일제 요구는 다른 업종에 비해 색다른 것이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이 바로 그것.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내놓은 ‘2001년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수산단에서는 한해동안 22종 1,118통의 발암성 물질을 배출했다. 일을 오래할수록 유해물질에 더욱 많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지난해 산업안전공단이 발표한 조사결과를 인용 “여수산단 전현직 노동자 1만774명 중 68명에게 암이 발생했고 여수산단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 조혈기계암 위험이 타 지역보다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여수산단 지역 유해물질 실태조사를 벌여 왔던 한인임 노동환경연구소 연구원은 “조사가 진행 중이라 정확한 결과를 낼 순 없지만 산단 내에서 벤젠, 부타디엔 등 각종 발암물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 물질의 위험성 정도와 노동자들이 이에 노출되는 시간 등이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산단 내 노조들은 올해 주40시간제의 도입에 따라 3조3교대였던 곳은 4조3교대로, 4조3교대였던 곳은 5조3교대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회사 쪽은 비용부담 증가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논의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투본은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해선 노조도 충분한 교섭을 통해 양보안을 낼 수 있지만 지역사회발전기금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핵심요구안에 대해서는 회사가 받아들여야 한다”며 “파업 돌입 전후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만큼 해결책이 마련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단 내 한 정유회사 관계자는 “임금 및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가 임단협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게 경영계의 변함 없는 원칙”이라면서도 “교섭에 들어가면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해결의 가능성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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