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다의 메아리 527 ♣♣ 쓰촨성[四川省] / 09. 7. 중순
⑦ 무상과 마조의 행적을 찾아
【 무상은 티벳에 최초로 선을 전하다. 】-- 사천성 성도가는 길녘에서....
이번 여행에서 성가신 일이 많다. 바로 호텔 구하는 문제이다. 사천성이 티벳과 인접 지역이라서 그런지, 이전 남방 여행할 때는 이런 일이 드물었는데 여권에 승려 사진을 보면 호텔직원이 단번에 퇴짜를 놓는다. 아무튼 사천성 여행에서는 한번 만에 호텔을 구한 적이 없고, 2~3번을 옮겨 다닌 연후에야 겨우 호텔을 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사천성은 중국 내륙지방에 비해 이국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찰 당우도 티벳과 중국식이 곁들여져 있으며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스님들의 모습에서도 티벳식으로 기도하는 분들을 간간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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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라싸의 포탈라궁내에 있는 당우
티벳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때는 송첸감포왕(581~649)때이다. 이 왕이 티벳을 통일하고 중앙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한 뒤, 당나라 문성공주를 부인으로 받아들였는데, 문성공주가 시집올 때 경전과 불상을 가지고 감으로서 불교가 티벳에 전래되었다.
이후 선이 전래되었는데, 티벳에 전해진 최초의 선사상은 무상無相대사의 선이었다. 불교사에서는 ‘치손데첸왕 때에 북종선北宗禪의 마하연摩訶衍 선사가 781년 티벳 수도 라사에 들어감으로써 티벳에 선을 전한 최초의 선사’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티벳 외교문서와 『바세』의 기록, 돈황 출토 자료가 발견됨으로써 티벳에 최초로 선을 전한 사람은 무상대사로 재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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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첸감포 출생지 입구
당시 티벳의 치덱첸왕(704~754)이 산시[Sangshi]라고 하는 티벳의 사신을 중국에 보내 불법을 구하러 왔을 때, 무상대사가 산시를 지도했다는 기록이다. 치덱첸왕은 왕자 치손데첸(742~797)을 위해 불교를 들여오려고 산시 등 4인을 중국에 사신으로 보냈다. 산시는 중국황제를 알현하고 1000권의 경전을 가지고 돌아가는 도중에 무상대사를 만났다. 무상은 티벳의 사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지금 네 나라의 부왕은 이미 죽었고, 불교를 배척하는 대신들에 의해 파불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먼 훗날에 왕자가 왕이 되어 불교 교리에 대해 물을 때, 그 새로운 왕에게 부처님의 경전을 해설해주면, 왕은 신심이 일어날 것이다”
무상대사는 산시 일행에게 불법을 가르치고 3경[십선경十善經․금강경金剛經․도간경滔竿經]을 주었다. 산시 일행은 2달 동안 무상의 도량에 머물며 가르침을 받다가 티벳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귀국해보니, 나라의 실정이 무상의 예언대로였다. 산시는 가지고 간 경전을 보호하기 위해 땅에 파묻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왕자가 치손데첸왕이 되어 불법을 물을 때, 산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의 조상들께서는 노자경에 따랐으나 나라에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며 산시는 오래전에 땅에 파묻었던 경전을 꺼내어 차례로 읽어 주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티벳의 고사서古史書인 『바세(sBa bzhad)』에 전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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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궁에서 바라본 라싸 시가지 전경
무상대사가 활약하던 시기는 중국 선종이 기초를 다지는 무렵인데, 무상의 선사상이 중국 초기 선종사 및 티벳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상기할 때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영국사 도량에서 나와 시골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무상대사와 티벳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버스 타는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비구니 스님 두분을 만났다. 사천성에 머무는 동안 사찰 도량이 아니면 스님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스님들을 만났다. 그들의 승복 차림새를 보니, 꽤나 더워 보이는 두툼한 옷감에 썩 깨끗한 차림이 아니었다. 몇 년전 여행에서도 중국 스님들의 승복을 보았던 터라 괜히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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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승려들의 승복차림
티벳이나 미얀마에서 만난 승려들의 옷차림새도 한국 승려에 비하면 정말 두타행을 하는 모습이다. 국가 경제가 부유한 탓이라고 치부하고 승려가 비단옷을 걸치고 좋은 신발을 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승려들이 사치스러움이 있다는 점은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솔직히 중국 승려들이 입는 옷은 한국 승복의 십분의 일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중국 스님들은 계율면에서 엄격한 편이다. 중국 여행내내 비단 모시옷을 입은 스님을 본적이 없었고, 신발도 천으로 된 것이 아니면 신지 않았다. 음식점에서도 승려가 공양하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었다. 20세기 초, 쇠잔해 가던 중국의 선풍을 다시 일으킨 거목 허운虛雲화상(1860~1959)은 계율지상주의자였다. 그 큰 어른도 스스로 철저하게 계율을 지켰고, 제자들에게나 재가 수행자들에게도 계율을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예전에 중국 국내 여행을 할때도 장거리는 CA 비행기를 많이 이용했다. 중국 국내도 보통 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기내 식사가 제공된다.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인데, 스튜어디스들이 내게는 음식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가며 ‘왜 내게 식사를 주지 않느냐?’고 했더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나중에 보니 승복 차림인 내게 채식으로 된 음식을 별도로 준비해 가져다 주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었다. 어쨌든 중국인들에게 ‘승려는 채식을 한다’는 관념이 박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반들이 중국 여행을 간다고 하면, 식당이나 비행기내에서 ‘음식 먹는 조심을 해야 한다’는 말을 꼭 일러준다.
여러 면에서 한번쯤 한국 불교계 승려들은 재고해볼 문제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중국이 사회주의를 오랫동안 고수했던 터라 중국의 승가가 한국 승가만큼은 완비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내가 본 좁은 안목이요, 소견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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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비구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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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사미니스님들(실은 티벳에는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
한국 돌아갈 시간이 느긋하다보니, 마음에서 템포를 잃어간다. 무상대사가 활동했던 사찰을 다닌다고 하지만, 한국을 떠나와 지내다보니 승려로서의 내 면모, 한국승가의 일면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살던 둥지를 떠나보아야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터전을 객관적으로 보는가 보다.
길에서 만난 비구니스님들은 아미산에 있는 비구니 강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영국사에 머물고 있는 노스님을 친견하러 간다는 것이다. 스님들과 헤어지면서 손을 흔들며 뒤돌아보니, 멀리 영국사 도량이 아련히 보인다. 나온지 채 10여분도 안되었는데, 무언지 모를 그리움이 내 가슴에 피어 오른다. 지금 현재의 나는 ‘인생에서 단 한번뿐인 무상대사와의 인연터, 단 한번뿐인 이 순간에 현재를 얼마나 긍정하고, 나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지?’를 내게 되물어 본다.
주)
* 보현보살 아미산에는 강원이 두곳 있다. 비구니 강원으로는 복호사伏虎寺, 비구 강원으로는 중봉사中峰寺가 있다. 정규과정 교육기간은 3년으로 [사천성 불학원]으로 명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