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공방 "곰삭은 그녀"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우리옷(스크랩) 스크랩 파리로 간 한복쟁이-신윤복의 미인도를 만나다
水井 추천 0 조회 227 08.11.21 20: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S#1-파리로 간 한복쟁이

 

오늘 라디오 방송에서 패션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발간한 <파리로 간 한복쟁이>를 소개했다. 이영희 선생님에 대한 추억은 97년 회사입사 후, 연수원에 일일 교수로 오셔서 특강을 해주실때 뵈었던 적이 있다. 오래 전부터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온 결과를 파리 오트쿠튀르에 선보였던 디자이너.

 

내겐 이영희는 한복쟁이가 아닌 한복을 세계화시킨 디자이너다. 물론 한복을 하는 분들 사이에 은근히 알력도 있고, 이 분에 대해 언급을 피하는 사람들도 봤다. 물론 그들에게도 이유야 있겠지만, 이 나라처럼 타인의 성공에 대해 경계와 질시가 심한 사람들이 많은 곳도 없지 않나는 생각이 든 건 한두번이 아니다.

 

남이 성공하면, 권력과 야합하고, 자본의 힘에 영혼을 팔아서이고, 자신이 실패하면 세상에 썩어서라는 식의 사고를 하는 이들이 있다. 초기엔 이런 화가들, 사진작가들을 포함한 예술가들을 볼때 동조도 했고 그들의 울분에 동참은 하지 못해도, 삭혀주려고 마음을 다독였다.

 

미술 컬렉터로 15년을 넘게 살아온 지금, 난 삶의 기준이 바뀌었다. 성공한 예술가들이 하나같이 권력에 빌붙어 성공한 경우보다, 차라리 오롯하게 한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배웠고, 집요하게 테마를 변주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이들이 다수였다고 믿게 되었다.

 

디자이너 이영희의 삶을 그런 일관된 삶의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0년을 한 가지 분야에 매진하면 길이 보인다는데, 그녀는 이미 30년이 넘는 세월을 한복에 바쳤다. 전통의 색을 찾았고, 색동 저고리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관점을 바꾸었고, 한복이 한국의 기모노가 아닌 한복으로 인식되도록, 갖은 정치력도 발휘했다.

 

 

전통은 아름다운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들고, 신체를 조율하고, 거기에 합당한 패션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오방색이 그렇고 단청 무늬가 그렇고, 넉넉한 여인내의 한복이 그렇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지어낸 정신의 기준을 배워야지, 형태에만 사로잡히면 뒤떨어진다. 난 디자이너 이영희가 이러한 사고를 깨뜨려준 좋은 사례라 생각한다. 한지와 실크를 섞어 실로 만들어 짠 풍성한 실루엣의 드레스(왼쪽)을 보라. 샤넬의 체인벨트가 그저 한복을 돋보이게 하는 작은 소품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름다움의 원형은 그대로 살아있다. 기녀가 쓰던 너울을 현대화시켜 모자처럼 사용한 김영석의 작품또한 이런 전통의 창조적인 계승이다.

 

디자이너 이영희는 조선시대 신윤복의 그림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럴수밖에 없지 싶다. 여인네들의 패션을 그나마 살펴볼 수 있는 미인도는 그가 그린 그림이 거의 전부다. 나도 복식사를 연구하지만 왜 우리의 화풍은 앵그르처럼 반지 하나도 사진처럼 묘사한 작가가 없었을까. 화가 났다. 신윤복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고맙다.

 

요즘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탤런트 문근영이 분하고 있는 신윤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일년에 딱 두번 여는 간송박물관에도 사람들이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니 어찌되었든 기쁜 일이다.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서 과연 기녀가 입고 있는 복식을 보았는지는 의문이다. 그림 속 기녀는 옷고름을 풀고 있다. 아마도 사랑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나 싶다. 신윤복의 그림 속 전반에 걸쳐, 배어나오는 고졸한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는 그림이다. 이 당시 복식의 특징은 하후 상박이다. 다시 말해 치마는 풍성하게 상의는 몸에 딱 맞게 입는 것이다. 아이보리색 저고리는 배래와 길이가 몸에 딱 붙을 만큼 타이트하다. 가슴선을 여리게 처리해, 봉싯한 가슴을 강조한다.

 

곁마기와 깃, 고름은 먹물을 풀어올린 자주빛을 띤다. 여러번 돌려 맨 치마는 천연 쪽빛이 바랜듯한 푸른 기운이 도는 회색을 띤다. 풍성한 치마의 주름은 서양의 드레이프와 맞설 태세가 되어 있다. 그 주름 한폭 한폭에 배어있을 여인내의 농염한 속살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르마를 타지 않고 뒤통수에 바로 틀어올린 여인의 트레머리를 보면, 그 풍성함이 치마와 함께 시선을 모으며 시각적 균형을 만들어낸다. 절묘한 패션 코디네이션이다. 이런 한복의 아름다움에나는 찬탄한다. 예전 알고 지내던 출판사의 모 이사님은 우리내 여인들의 미에 대해 "한복이 별건가요 그저 난장이 똥자루지"라는 말을 내뱉는 걸 들었다.

 

그만큼 문근영이 연기하는 신윤복에 신경이 팔려, 정작 미인도 속 여인의 옷고름에 배인 이땅의 여인네들의 미를 알지 못한다면, 이는 반쪽자리 감상이 되리라 나는 감히 말할수 있다. 디자이너 이영희는 이런 매력을 한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도전과 노력은 프랑스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대지에 난 포도를 따 연보라빛 물을 들이고, 치자를 따 노랑색 환희의 빛을 물들이던 천연염색에 대한 관심도, 사실 이영희의 노력에 어느 정도는 빚을 지고 있다. 우리내 자연의 빛깔을 닮은 쪽빛은 먼셀 색상환의 어떤 색으로도 대치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고유의 색인 것이고, 그 색으로 만든 옷을 세상에 선보일때, 그 참신함에 세상은 놀라게 된다.

 

천연염색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처음 담글 때부터 환상적인 푸른색을 띠는 쪽물은 단계를 거듭할수록 더욱 아름답고 짙은 향기를 낸다는 걸. 우리는 이 작은 색의 반응 앞에서도 무릎 꿇을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래야 마땅하다.

 

 

짙은 녹색에서 자색까지 5벌의 한복을 겹쳐 입음으로서

서양의 버슬 스타일이 가진 풍성함을 충분히 극복했다. 우리의 한복이 계절을

탄다는 헛소리는 이제 그만 집어 치우자. 서양의 옷이 4계절을 위한 옷이라면, 이 땅의 한복은

변주의 방식에 따라 8계절을 입을 수 있도록 원천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날씬한 검정색 모닝 코트에 한복치마를 겹쳐 입으니

그 느낌이 더욱 신선하다. 마치 그리스 시대의 여신처럼, 주름의 매력이

전면에 드러난다. 블랙의 우아함과 백의 민족의 백색이 어울려 조화를 발산한다.

 

 

 오른편 모델을 보라. 이 땅의 여인네들이 결혼식때 썼던 족두리가 모자로 변모했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영희의 작품이다. 왜 족두리가 과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바꾸어보라.

과거의 시간, 우리에게 왜 상처와 아픔의 역사만을 가져다준 전통이라 생각하며, 도전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한복의 세계화, 혹은 한복이 바람의 옷이 되어 세계의상의

문법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한복만큼 질서와 조화를 꿈꾸는 옷이 없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있다. 밤 껍질을 모아 베이지색 물을 들이고

봉숭아로 다홍빛 물을 들인다. 타이트한 상의와 풍성한 치마가 조화를 이루고

음과 양이 하나가 되어 시대 속에서 조형되는 인간의 미를 가꾼다.

 

요 며칠 기운이 빠져 있었다. 복식사란 분야. 대학에서 조차도

전공자가 없고, 교수되기가 어렵다는 분야. 분명히 말하지만, 난 강단에 설 생각이 없다.

이영희의 글을 읽으며 힘을 내본다. 어차피 평생의 업으로 삼을 취미를 시작한 나다.

한국의 미가, 한국의 복식이 일본의 아류가 아닌 대한민국의 옷이 되어

세상에 바람을 일으키는 그 날까지 역사를 통해 고증하고 밝혀내고,

우리 내 여인들의 하찮은 문화라 규정된 규방문화 속 복식과 자수,매듭

장신구, 가락지, 골무, 바느질, 염색 하나하나 세계에 소개할거다.

나는 두렵지 않다......나는 코리언이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