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모두가 조금씩 잘못한 전쟁이었다고?
김광일 부국장 겸 국제부장
입력 : 2010.08.09 23:11
해리 트루먼(Truman) 대통령은 망설였다. 원폭을 투하하는 대신 일본 본토에 상륙작전을 개시하는 것이 정답 아닐까. 그러나 백악관 전쟁 참모들이 말렸다. 일본 본토를 육상으로 쳐들어갈 경우 미국 쪽 사상자 100만명, 일본 쪽 사상자 최소 200만명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됐고, 사흘 뒤 나가사키 원폭 투하 그리고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어졌다. 물론 원폭 후유증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당시 숨진 사람은 12만명이었다.
지난주 금요일(6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는 원폭 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다. 사상 처음으로 주일 미국대사 존 루스(Roos)가 이 행사에 참석했다. 해마다 미국 대사에게 초청장이 갔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루스 대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필립 크롤리(Crowley)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제2차 대전의 희생자에 대한 경의(respect)를 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폭 폭격기 조종사 폴 티베츠는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의 아들 제임스 티베츠도 루스 대사의 위령제 참석이 "무언의 사죄(an unsaid apology)"로 보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참전 군인 18만명을 대표하는 단체 AMVETS도 성명을 냈다. "루스 대사가 참석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사죄로 오인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루스 대사에게 위령제 참석을 지시한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이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있다. 1985년 5월 5일 로널드 레이건(Reagan) 대통령이 독일 비트버그에 있는 콜메쇼헤 독일군 공동묘지에 헌화했던 일이다. 레이건은 "강제 수용소 희생자들 못지않은 나치의 희생자들"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레이건은 당시 헬무트 콜(Kohl)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거나 아니면 40년이란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버그 묘역에는 SS친위대원들까지 묻혀 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미국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레이건의 헌화는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물론이고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희생자들의 명예까지 한꺼번에 유린하는 실수였던 것이다. 레이건이 나중에 이 사태를 벗어나기까지는 케데스 비알킨, 헨리 키신저 같은 이들의 변호가 컸다. 워싱턴 기념박물관관장 마이클 베렌바움(Berenbaum)은 레이건의 실수를 "순진한 미국의 낙관주의"라고 말했다.
루스 대사의 위령제 참석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머지않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날도 올 것이라는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원폭 투하를 지휘한 커티스 러메이 장군에 대해 책을 내기도 했던 워런 코작(Kozak)은 어제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글에서 '도덕적 등가성(等價性)'(moral equivalence)이란 생각을 경계했다. 요즘 일부 미디어와 대학들은 젊은 세대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참혹하긴 했지. 그렇지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했다거나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할 순 없어. 다들 조금씩 비난받을 만한 측면이 있는 거야."
한국은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가 다 문제다. '제2차 대전 희생자'란 포괄적이고도 순진한 표현 속에 일본군 전범들과 1700만 아시아 희생자들이 한데 뭉뚱그려지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더구나 '순진한 대한민국의 낙관주의'가 전성기를 맞고 있지 않은가.
[만물상] 대통령과 문인
박해현 논설위원
입력 : 2010.08.06 23:36
이승만 대통령은 1947년 미당 서정주에게 전기 집필을 맡겼다. 그러면서 미국 망명 시절에 쓴 한시(漢詩)를 읊어줬다. '一身泛泛水天間/ 萬里太洋幾往還/ 到處尋常形勝地/ 夢魂長在漢南山(하늘과 물 사이를 이 한 몸이 흘러서/ 그 끝없는 바다를 얼마나 여러 번 오갔나/ 닿는 곳곳에는 명승지도 많더라만/ 내 꿈의 보금자리는 서울 남산뿐)'. 미당은 "시를 듣자니 저절로 두 눈에서 눈물방울이 맺혀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박정희는 5·16 사흘 뒤 오랜 친구 구상 시인을 따로 만나 제안했다. "어떤 분야라도 한 몫 져주셔야지!" 구상은 "그냥 남산골 샌님으로 놔두세요"라며 사양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축시를 썼던 구상은 10·26이 나자 진혼시도 썼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설령 그가 당신 뜻에 어긋난 잘못이 있었거나/ 그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 허물이 있었더라도/ 그가 앞장서 애쓰며 흘린 땀과/ 그가 마침내 무참히 흘린 피를 굽어보사….'
▶김대중 대통령은 문학을 좋아했다. '김대중주의자'를 자처한 소설가 한승원을 비롯해 그를 지지하는 문인도 많았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됐던 고은은 지난해 김대중 추모시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바쳤다.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 …/ 아 당신은 우리들의 내일입니다. 우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정국에서 김훈 소설 '칼의 노래'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김훈은 청와대 초청을 받았지만 자신의 문학이 특정 정치인에게 얽매이는 게 싫어 응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왜 안 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작가는 "그런 연락 받은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중앙아시아 순방 때 소설가 황석영과 동행했다. 좌파 진영에선 황석영을 변절자로 비난했다. 보수 논객인 소설가 복거일은 "황석영이 아니라 이문열과 함께 갔어야 했다"며 못마땅해했다.
▶이 대통령이 휴가 중이던 지난 1일 이문열을 휴가지로 불러 1박2일을 함께 보냈다. 주로 대통령이 심경을 말했고 작가는 대통령에게 "무엇이 됐건 너무 강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다. 중용(中庸)을 주문한 셈이다. 문인과 대통령 관계도 너무 가까우면 문학이 죽고, 너무 멀면 감동 없는 정치만 남는다. 무미건조한 통계투성이 보고서만 접하는 대통령이 종종 문인을 불러 민심도 듣고 뇌를 말랑말랑하게 해서 상상력을 충전할 만하다.
[조선데스크] 애국적 기업은 없다
차학봉 산업부 차장대우
입력 : 2010.08.05
▲ 차학봉 산업부 차장대우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 본사가 있는 도요타시에는 호미단지라는 주택가가 있다. 이곳에만 수천 명의 일본계 브라질인(브라질로 이민간 일본인들의 후손)이 몰려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도요타 하청업체들의 임시직원들. 이들이야말로 도요타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도요타의 원가경쟁력은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가능했다. 하청업체들은 납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임금이 저렴한 일본계 브라질인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리먼쇼크와 리콜사태로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 납품 물량이 줄자 하청업체들은 이들부터 대량 해고했다. 결과적으로 도요타는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피와 눈물로 버틴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적 부진에 빠진 도요타 비용절감계획의 핵심은 2012년부터 생산되는 신차 부품 가격을 30% 내리는 것. 지나친 원가절감 탓에 리콜사태가 벌어졌다는 비판이 있지만, 도요타는 원가절감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닛산은 최근 소형차 마치를 기존 가격보다 10만엔 저렴한 99만9600엔에 내놓았다. 파격적 가격 인하의 비결은 임금이 저렴한 태국에서 생산, 역(逆)수입하는 데 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국내 판매용은 국내에서, 해외판매용은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일본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닛산이 이 원칙을 깬 것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닛산은 한발 더 나아가 원가절감을 위해 한국업체로부터 부품을 납품받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도요타나 닛산은 피도 눈물도 없고 비애국적일까.
기업에 애국이나 도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기에는 글로벌 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가혹하다. 전 세계를 휩쓴 '아이폰'으로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애플. 그러나 정작 아이폰을 제조하는 회사는 폭스콘이라는 대만업체이고 LCD·반도체 등 주요 부품은 삼성과 LG 등 한국업체가 공급한다. 아이폰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중국 선전 공장이다. 아이폰 가격 경쟁력을 위해서다. 그렇다고 애플을 '비애국적'이라고 하는 말은 나온 적이 없다.
LG화학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2차전지) 공장을 한국이 아닌 미국의 시골도시에 만든 것도 비애국적이어서가 아니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수요처인 미국 자동차 업체에 납품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면서도 중소업체에 대해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국내 투자도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지식경제부가 납품단가 실태조사를 벌인다. 그러나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공장을 해외에 짓고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방향으로 간다. 비애국적이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다.
국내 대기업들이 지난 2~3년간 대규모로 투자한 조선·자동차·가전 관련 공장들이 들어선 곳은 대부분 외국이다. 비애국적이거나 비도덕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임금과 땅값이 싸고 세금과 판매처 확보 등에서 유리한 해외에서 생산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있는 고부가 가치 제품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지 않으면 중소기업과 대기업 상생은 말처럼 쉽지 않다. 관건은 산업구조 고도화다.
[조선데스크] 망국 100년과 이병철의 꿈
송의달 산업부 차장대우
입력 : 2010.08.04 매년 8월이 되면 한일(韓日) 관계를 둘러싼 얘기들이 쏟아진다. 한일병합이 이뤄진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일본 기업 쪽에서 '한국을 보자'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사상 처음 일본을 앞지른 데다, 이른바 '사천왕(四天王)'으로 불리는 삼성·현대차·포스코·LG 같은 대기업들이 약진한 결과이다.
'한일 기업 역전(逆轉)' 소식이 나올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고(故)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다. '일본을 알아야 일본을 이길 수 있고 그들과 대등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견지한 그는 '일본 벤치마킹'을 통한 '일본 추월' 노력을 평생 다 했기 때문이다.
호암은 이건희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한 아들 세 명을 모두 일본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보냈다. 손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도 일본의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주변부터 철저하게 '일본 탐구 모드'로 만든 것이다. 한때 삼성그룹 임원의 70% 이상이 일본어를 구사했을 정도로 삼성은 모든 사업의 눈높이를 일본에 맞췄다.
예컨대 신라호텔 식당의 초밥과 튀김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도쿄 오쿠라(大倉)호텔 주방장에게 밥풀은 몇 개를 넣는지, 온도는 몇 도에서 끓이는지 등을 일일이 물어 적용하는 식이었다. 1959년부터 30여년 동안 매년 정월에 도쿄를 방문, 각계 전문가들의 선진 정보와 의견을 들으며 새 사업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도쿄 구상'으로 자신을 단련했다.
"후일 내가 사업에 몰두하게 된 것은 식민 지배하에 놓인 민족의 분노를 가슴깊이 새겨두게 했던 부관연락선상의 사건 때문이었는지 모른다."('호암자전')
호암은 우리의 '경제 극일(克日)전쟁'에서 첫 선봉장으로서 승전보를 남겼다. 그에 버금가는 제2, 제3의 극일 전사(戰士)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승전보는 한 번으로 끝날 것이다.
[사설] 경제 일으키려 비지땀 흘리고 고단하기만 한 노년층
입력 : 2010.08.02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서 우리나라 노인 인구 가운데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136만원)에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사는 빈곤층이 35.1%로 나타났다. 노인 가구 빈곤율은 2006년 30.0%→2007년 31.0%→2008년 32.5%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 빈곤율(전체 인구 중 소득 순위로 한가운데에 속한 사람 소득의 절반이 안 되는 비율)로 따진 노인 빈곤율은 45%로 OECD 가운데 가장 높다.
프랑스 은퇴자 10명 중 7명이 여론조사기관 소프르의 설문조사에서 "은퇴 후 더 나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답했다. 선진국 노인들 은퇴 생활의 버팀목은 연금(年金)이다. 영국 은퇴자의 경우 직장에서 받던 봉급의 평균 70%를 연금으로 받는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선 정년퇴직하는 사람을 박수로 축복해준다.
경제발전이 많이 뒤졌고, 그래서 복지 정책의 출발도 늦었던 우리 형편에 이들과 같은 복지 혜택을 바라기는 어렵다. 그렇다 해도 우리 연금 제도는 너무 부족하다. 1988년 도입한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290만명이지만 가입 기간이 짧아 월 20만원 미만을 받는 경우가 50.6%, 20만~40만원이 33.9%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활도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기초노령연금 제도가 2008년부터 시행돼 전체 노인의 69%가 혜택을 받고 있지만 월 9만원이 안 된다. 그런데다가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올해 535만명인데 2015년엔 638만명→2020년 770만명→2030년 1180만명으로 늘어난다.
지금의 노인들은 젊어서 기름땀을 흘리면서 공장 기계를 돌리고 밤잠 안 자면서 수출 전선을 뛰어다녔던 세대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 1955년 65달러였던 국민소득을 2만달러 가깝게 끌어올렸다. 그렇게 번 돈을 자식들 키우고 부모 부양하는 데 다 쏟아부어 이렇다 할 노후 대비용 재산도 만들어놓지 못했다. 그런데 사회풍토가 변해 자식 세대에 기대긴 어렵게 돼버렸고, 연금 제도 역시 엉성하다. 65~74세 인구의 10만명당 자살률은 1995년 44명이다가 2005년 137명으로 늘어 세계최고 수준에 이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빈곤과 질병을 비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무상급식보다 몇 배 시급한 것이 빈곤 노인 대책이다.
[만물상] 양동마을, 하회마을
김태익 논설위원
입력 : 2010.08.02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73번째 생일상을 한국의 선비마을 안동 하회에서 받았다. 여왕은 류성룡 종택(宗宅)인 충효당 안방으로 안내를 받고 신을 신은 채 마루에 올라섰다. 영국 왕실에선 남 앞에 맨발을 보이는 게 알몸 보이는 것과 같은 금기다. 그러나 옆에서 "한국 관습과 예절로는 방에 들 때 신을 벗는다"고 하자 여왕은 선뜻 신발을 벗었다. 공개된 자리에선 처음 드러난 '여왕의 맨발'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1981년 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백년 전 생활양식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지금의 양동마을은 조선 초 월성손씨 손소(孫昭)가 장가왔다 재산을 물려받고 눌러앉으면서 생겨났다. 그 뒤 여강이씨 이번(李蕃)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와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두 집안에서 낸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다. 그래서 외손(外孫)이 복받은 마을로 통한다.
▶마을 중심에 있는 월성손씨 종가는 '하루에 참을 인(忍) 자를 100번씩 쓴다'는 뜻에서 서백당(書百堂)이다. 이 건물 한쪽에 아기를 받는 산실(産室)이 있다. 두 집안이 자랑하는 손중돈·이언적이 태어난 곳으로 어진 인물 셋이 난다고 해 삼현지지(三賢之地)라고 불린다. 손씨 집안은 시집간 딸이 해산하러 와도 이곳은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집안에서 세 번째 인물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양동과 하회 마을이 의미 있는 것은 단지 과거 건축물이 잘 보존됐대서가 아니다. 마을을 지켜온 집안이 지금도 그곳에 살며 수백년 된 관혼상제와 세시풍속, 공동체문화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월성손씨 20대 종손 손성훈씨는 부친상 때 어른들이 "서백당 종손은 상례(喪禮)를 지켜야 한다. 3년 동안 술집이나 다방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전한다.
▶두 마을이 엊그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새로 올랐다. 1995년 석굴암·불국사 이후 우리 문화유산으로 열 번째다. 독일 엘베계곡은 유네스코 유산에 올랐다가 다리를 놓은 뒤 자연경관이 망가지고 환경오염을 불러 처음으로 등재가 취소되는 창피를 당했다. 두 마을도 이름값이 더욱 높아지면서 국내외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껏 잘 지켜온 전통문화가 행여 망가지지 않도록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설] 中東에서 '한국' '한국인' 이미지 새롭게 해야
입력 : 2010.08.01
지난 6월 중순에 발생한 리비아 정부의 한국 외교관 추방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리비아에서 협상을 벌여온 정부 대표단이 31일 귀국했다. 대표단은 리비아측에 "문제가 된 외교관의 활동은 한국 기업의 방위 산업 분야 수출에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이라며 오해를 부른 활동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한다. 정부 관계자는 "오해가 상당 정도 풀린 상태"라며 "리비아도 이번 사태의 조기 해결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는 국가정보원 출신인 한국 외교관이 리비아 군사 정보를 수집해 미국·이스라엘 등 리비아에 비우호적인 제3국에 넘겨줬다고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교관이 리비아 현지의 북한 근로자 동향을 파악하고, 리비아의 권력 승계 문제 등 리비아가 민감하게 여기는 분야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려 한 것이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리비아는 한국 외교관 추방 직후인 지난 6월 23일 우리 정부에 사전 통보도 없이 서울의 리비아 경제협력대표부 직원을 한국에서 철수시켰다. 또 지난달 리비아 정부가 체포한 한국인 선교사와 농장주의 석방 문제도 남아 있다. 앞으로 이 문제들을 풀어내야 한다. 한국·리비아 수교(修交) 30년 동안 한국 업체는 리비아에서 288건의 공사를 시공했고 수주액만 346억달러에 이른다. 지난 한 해만도 31억달러의 공사를 따냈다. 한국·리비아 관계는 더 빨리 정상화하는 게 좋다.
이제는 우리의 대(對)중동 외교 전반을 둘러보고 우리 외교를 한층 업그레이드할 때가 됐다. 전문가들은 "현지에선 한국이 중동을 건설 수주와 상품 수출 대상으로만 본다는 정서가 날이 갈수록 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일본이 중동의 핵심 국가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거나 공항과 다리 등 상징적 시설물을 무상으로 지어줘 그곳 국민에게 자신들이 경제적 이익만 좇지 않고 상대국의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온 반면 한국의 현지 사회에 대한 기여는 사실상 전무(全無)하다는 평가다. 중동 26개국에 단 한 곳의 한국문화원도 없을 정도다. 리비아는 최근 수년간 리비아를 '독재국가'로 기술한 한국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해 왔지만 그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해결이 미뤄져 왔다.
한때 세계무대에는 '보기 싫은 미국인(ugly American)' '경제동물(economic animal) 일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미국과 일본의 이런 이미지는 국가 이익에도 해(害)가 됐다. 후발(後發) 국가 한국이 그들이 넘어졌던 곳에서 늘 따라 넘어진다면 지혜로운 나라가 못 된다. 중동 지역에서 '서로 돕는 국가 한국' '좋은 이웃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 가야 한다. 외교부만이 아니라 정부 전체가 할 일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이런 일 말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삼희의 환경칼럼] 치과의사의 귀농(歸農)
◦ 한삼희 논설위원
입력 : 2010.07.30 23:12
누구나 꿈이랄까 하는 것이 있다. 꿈을 실현시키겠다고 들면 이것저것 버려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그러고도 뜻을 이룬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대다수는 꿈을 속으로만 갖지 행동으론 들어가지 못한다. 드물게는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5월 초 전화를 했더니 친구 하는 말이 "나, 저질렀다"고 했다. 올봄 경북 봉화에 사과 과수원 5000평짜리를 샀고 벌써 내려가 농사짓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는 강남에서 오래 치과의사를 했다. 그러면서 꾸준히 귀농(歸農) 연습을 해왔다. 아는 사람 땅을 몇백 평 빌려서 채소들을 키웠다. 늦은 오후 전화해보면 "지금 밭에 있어" 하곤 했다. 귀농운동본부도 드나들었다. 거길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 같았다. 한옥 짓는 법을 배운 지도 10년 가까이 된다. 토요일엔 문화재보호재단에서 하는 한옥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도편수에게 배운다고 했다. 그렇게 착착 꿈을 향한 준비를 해온 그가 드디어 행동에 들어갔다.
벼르다가 봉화로 친구를 찾아가 봤다. 서울서 3시간쯤 거리,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했다. 친구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산기슭을 끼고 자리 잡은 과수원이었다. 사과나무엔 아기 주먹만한 열매들이 달려 있었다. 절반은 양광이란 품종인데 열매마다 하나하나 봉지를 씌웠다. 그 작업량(量)이 얼마나 될지 보는 걸로만 까마득했다. 사과나무 아래론 잡풀이 무성했다. 제초제를 치지 않는 초생(草生) 재배라는 것이다. 1m쯤 날이 달린 제초기를 경운기에 달고 나무 사이를 누비고 나면 옷에서 땀을 짜낼 수 있다고 했다. 자두나무도 좀 키우고 있는데 얼마 전 농협을 통해 서울 가락동시장으로 출하도 해봤다.
친구 꿈은 자연농법으로 사과 재배를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다. 사과나무엔 벌레와 해충이 만만찮다. 일본 아오모리에 사는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라는 농민이 농약 한 방울 안 뿌리고도 사과 열매를 맺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도 그의 성공 스토리가 '기적의 사과'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졌다. 국내에 기무라식(式) 사과 재배에 도전하는 농민이 80명 있다고 한다. 작년에 처음 전남 장성의 농민이 자연농법 사과 재배에 성공했다. 그 농민은 기무라씨가 11년 걸린 일을 3년으로 단축했다.
치과의사 친구는 올가을 사과 수확이 끝나면 포클레인으로 밭을 갈아엎을 예정이다. 사람 키 높이만큼 땅을 판 후 퇴비를 섞어 넣어 토질(土質)부터 바꿔놓고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땅을 갈아엎고 2년은 콩·호밀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땅속에 질소 성분이 찬다. 그다음에야 사과나무를 새로 심고 다시 5년이 더 지나야 사과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자연농법은 땅의 힘을 갖고 하는 농사다. 농약 뿌리고 비료 대줘서 키우는 작물은 뿌리가 얕다. 사람이 영양분을 공급해주니 뿌리가 일을 안 해도 된다. 사과나무 중에는 지지대를 박아 붙들어 매둬야 하는 경우도 많다. 뿌리가 얕아 쉬 넘어져서다. 그런 나무엔 열매도 많이 달리고 알맹이도 크고 맛도 달다. 그렇지만 사과 본래의 사과다움은 잃어버린 사과다.
친구는 강남의 병원은 처분하고 1주일에 하루씩 남의 병원을 빌려서 치과 일을 본다. 앞으로 송아지도 키우고 닭장도 만들겠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해보겠다"고 했다. 과수원 한쪽엔 한옥 공방을 차릴 예정이다. 내 손으로 맞배지붕 한옥을 짓겠다고 한다. 10년을 한옥 기술 배웠는데 앞으로 또 5년, 10년 걸려 가족과 함께 살 한옥을 짓게 된다. 한옥에서 사는 것이 목표라면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농사짓고 한옥 짓는 과정 자체가 그의 목표이고 꿈이지 싶다.
[특파원칼럼] "삼성과 애플에 납품해보니"
입력 : 2010.07.29
몇 년 전 일이다. 전자업종에서 벤처기업을 하는 A 사장이 하루는 미국 의류 갭(Gap) 티셔츠를 색깔별로 세 벌을 샀다. 그는 납품 단가를 깎고, 시제품을 만들어 보라고 시킨 뒤 돈을 안 주는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 A 사장은 "나도 휴일엔 옷이라도 '갑(甲·gap의 발음을 비유한 것)'으로 입고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의 사정을 잘 안다는 MB정부가 들어섰지만 A 사장이 을(乙)로서 당하는 고통은 달라지지 않았다.
트위터에는 애플과 삼성전자에 동시에 납품을 해본 중소기업 직원의 블로그가 회자되고 있다. 애플에선 6개월치 단위로 구매예정 수량을 미리 통보하고, 설비 신규투자가 필요하면 투자비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단가를 올려도 승인해준다고 한다. 이 직원은 "하지만 국내 대기업과 거래를 해 보니 천국에서 지옥으로 온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은 울리고 마음속에서 '안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이 씨가 되었는지 어느날 갑자기 수억원어치의 재고를 남겨두고 18개월간의 지옥체험은 종료되었다"고 했다.
대기업의 횡포와 중소기업의 서러움을 단지 밥벌이의 애환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갉아먹고 미래를 가로막는 문제의 본질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노쇠한 기업의 자리를 새로운 기업이 탄생해 메우는 건강한 산업의 생태계와 관련된 문제다. 몸집이 커지고 관료화된 대기업은 과감한 투자와 모험을 하기 힘든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장을 여는 '파괴적인 혁신'은 신생 중소기업들에서 일어난다.
한국 경제는 세대교체에 실패하고 있다. 노장(老將)의 분전만 눈에 띌 뿐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글로벌 신흥 유망주는 한국 기업 대표선수 명단에 없다. 포천지의 글로벌 500대 기업 명단에 한국은 늘 같은 얼굴이다. 전체 숫자도 별 변화가 없다. 전성기를 지난 미국도 설립한 지 10년을 겨우 넘긴 구글·아마존 등을 새로운 대표선수로 밀어넣고 있고, 신흥 경제대국 중국은 해마다 7~8개의 새로운 기업을 포천의 명단에 추가하고 있다. 미래의 애플과 구글을 꿈꾸는 한국의 벤처기업인들은 이 생태계 오작동의 책임이 대기업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을 가로채고, 핵심 인력을 빼내가며, 분기마다 납품단가를 깎기 때문에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글이 직원 150명에 매출 5000만달러에 불과한 3년밖에 안 된 모바일광고회사 애드몹을 7억5000만달러에 사들이고, 애플 역시 비슷한 규모의 콰트로를 2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모습을 한국의 대기업에선 꿈꿀 수 없다.
정부는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말뿐인 투자약속을 받아내는 데 힘을 뺄 필요가 없다. 기업들은 대통령이 투자하라고 해서 투자하는 게 아니다. 돈 벌 기회가 있으면 대통령이 말려도 투자하는 게 기업의 생리다. 돈 벌 데가 없는데 대통령이 투자하라면 그럴듯한 숫자를 내놓으면서 거짓말을 한다. 어느 시대, 어떤 경우에도 기업들의 계산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시장과 기업의 논리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다. 우리 사회와 정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 풍토만 만들어지면 지금 대기업 몇개, 몇십개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다.
[만물상] 침과 뜸
김낭기 논설위원
입력 : 2010.07.29 23:27
미국샌디에이고 의대 교수를 지낸 산부인과 의사 폴 브레너는 1971년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침술 학술대회에 초청받아 갔다. 그는 거기서 중국의 침술 화면을 보고 기절초풍했다. 중국 의사들이 가정용 드릴로 환자 두개골에 구멍을 뚫으면서 마취라고 한 게 환자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은색 바늘 하나를 꽂은 게 전부였다.
대법원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침과 뜸으로 치료해온 1915년생 김남수옹도 재작년 서울시로부터 45일 동안 침사(鍼師) 자격정지를 당했다. 침사 자격만 있을 뿐 구사(灸師·뜸사) 자격이 없는데도 뜸을 떴다는 이유였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이 의료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말기암이나 불치병 환자들은 의사 면허에 상관없이 용하다고 소문난 사람에게 기대려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의료인 자격의 물꼬를 마냥 터 버릴 수도 없다. 헌재가 이번에 한의사 쪽 손을 들어줬지만 '재야의 고수(高手)'들을 어찌해야 할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았다.
[만물상] '윤필용 사건'
김태익 논설위원
입력 : 2010.07.25
권좌(權座)에 앉아있는 절대 권력자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다음은 아무개가 된다." 아랫 사람들은 정적(政敵)을 거꾸러트리려 할 때 권력자의 이런 속성을 역이용한다. "다음은 ○○가 된다고(되려고 한다) 하더라"며 발언자 이름을 들먹인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는 성리학의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젊은 사대부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믿었다. 위기를 느낀 훈구세력은 대궐 안 나뭇잎에 꿀물로 '走肖爲王(주초위왕)'이라고 쓰고 벌레가 갉아먹게 했다. '달릴 주(走)'와 '닮을 초(肖)'를 합치면 '나라 조(趙)'가 된다. "조씨 성을 가진 자가 왕이 된다"는 소리였다. 훈구파는 이 나뭇잎을 따다 임금에게 바치며 "조광조가 왕이 될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조광조에겐 사약이 내려졌고 처자식은 노비가 됐다.
▶당파싸움에선 "아무개가 큰일을 도모하고 있다"고 없던 일을 만들거나 일러바치는 일이 흔했다. 광해군은 왕에 오르고서도 형 임해군과 아우 영창대군의 존재가 껄끄러웠다. 광해군을 왕위에 올린 대북(大北) 일파는 역모 혐의를 씌워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였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던 소현세자는 9년 만에 돌아와 의문사했다. 아버지 인조와 집권 서인(西人)세력은 소현세자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정적들의 움직임을 못 참았을 것이다.
▶197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윤필용 사건'이 있었다. 군부 실세인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저녁 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각하(박정희 대통령)께서 노쇠하시기 전에 물러나시고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누군가가 대통령께 일러바쳤다.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분노해 윤씨와 그를 따르는 장교 수십명을 구속하거나 옷 벗겼다. 이후 '후계'를 거론한 것으로 돼 있는 윤필용과 이후락은 권력에서 멀어졌고, 이를 사건화했던 세력은 권력의 단맛을 조금 더 봤다.
▶그러나 6년 후 유신체제가 무너졌고 절대권력의 총애, 또는 후계를 둘러싼 모략과 암투도 끝났다. 윤씨는 당시 횡령과 뇌물수수 등으로 구속됐으나, 그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사람은 36년이 지난 작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윤필용씨가 24일 별세했다. 이로써 '윤필용 사건'의 주역들이 모두 세상을 떴다. 권력을 향한 인간 욕망은 끝이 없지만 욕망의 뒤끝은 역시 허망하다.
[조선데스크] 연금 얕보다간 땅치고 후회
김동섭 사회정책부 차장대우
입력 : 2010.07.19 고향에 계시는 70대 후반의 어머니는 큰돈은 아니지만 국민연금을 매월 27만원씩 받는다. 동네 친구분들은 "어떻게 연금을 받게 됐느냐"고 새삼 부러워한다. 당시 연금 가입 업무를 담당하던 군청 직원이 집에 찾아와 "60세가 넘어도 연금에 가입시켜주는 특별조항이 있다"며 "5년만 내면 되니까 기왕이면 최고 등급으로 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5년간 낸 돈이 모두 666만원. 5년 뒤부터 월 21만원씩 받기 시작해 지금까지 10년간 받은 돈이 2733만원으로 이미 낸 돈의 4배나 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먹고살 돈이 없는데 무슨 연금이냐"며 정부의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 친척 어른은 1998년에 60세가 돼 국민연금에 냈던 돈에 이자를 붙여 일시금으로 받았다. 연금이 고갈된다는 말에 미리 겁먹고 안전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당시는 일시금과 연금 중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시금으로 받은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매달 받는 연금을 택했다면 훨씬 이익인데…."
국민연금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나면서 연금을 타는 사람과 타지 못하는 사람들의 노후가 달라지고 있다. 한달에 100만원 이상 받는 이들이 7000명을 넘어섰다. 웬만한 직장에서 20여년을 근무하고 퇴직하는 이들은 대개 70만원 이상을 받고 있다.
매년 60세가 되는 이들 중 연금 수령자는 열 중 둘밖에 안 된다. 대부분 연금을 세금이라며 내기를 꺼리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게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알고 지금 와선 후회막심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연금 하면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10년 전엔 2033년이면 재정고갈이 된다고 했지만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연금법을 고쳐 지금은 연금 고갈이 2060년 이후로 미뤄졌다. 앞으로도 연금법을 고치면 고갈 시점은 훨씬 뒤로 늦춰지게 된다.
저소득층들도 연금이라면 꺼린다. 우리 연금의 특징인 소득재분배 효과를 모르는 탓이다. 보험료를 적게 낸 사람은 낸 돈의 4~10배를 받고, 보험료를 많이 낸 사람은 1~2배를 받는다. 부자의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가도록 연금 구조가 설계된 것이다.
정부는 이달부터 '내 연금 갖기'캠페인을 시작했다.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도 연금에 가입하라고 권하고 있다. 부부가 모두 연금을 타면 그만큼 노후가 안락해지기 때문이다. 연금을 받는 부부 중 벌써 월 203만원을 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서울에서 부부 기준으로 평균 최소 생활비인 136만원, 적정 생활비인 201만원보다 많은 액수다.
정부는 가입대상이 아닌 전업주부들의 연금 가입을 촉진하기 위해 이들이 낼 월 최저 보험료를 12만6000원에서 8만9100원으로 내렸다. 전업주부가 지금부터 매월 8만9100원씩 10년을 가입하면 60세부터 월 16만2500원을 받게 된다. 평균수명인 80세까지 탄다면 낸 돈보다 최소 4배는 더 받는다. 개인연금이나 계(契)보다 수익성이 높다. 서울에서 소득이 없어도 연금에 가입한 사람 3명 중 1명은 강남권이다. 고소득 고학력층인 강남권에서 먼저 국민연금의 효용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연금 고지서를 세금 고지서로 여겼다가는 뒤늦게 땅을 친다.
[강천석 칼럼] 대한민국,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입력 : 2010.07.01
하류가 먼저 썩어상류 오염시킨 江은 없다
상대 野心보다 이쪽 放心이 위기 불러온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온 세월의 길이만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남은 시간만큼 내다보는 것일까. 그 정답이 무엇이건 간에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을 것이 분명한 나 같은 세대는 요즘 나라의 장래와 관련한 상서롭지 못한 예감(豫感)에 몸을 뒤척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역사를 돌아봐도, 신문을 펼쳐도 이 어둠침침한 그림자가 뒤에 따라붙는 듯하다.
"올해 가장 웃기는 사건은 미국 해군이 너를 데려간 일이다. 세상에 멀쩡한 놈이 쌔고 쌨는데 어쩌자고 해군은 너 같은 놈을…." 1941년 가을 어느 하버드 법과대학원 학생은 친구가 군대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편지를 띄웠다. 사실 그 친구는 척추부터 창자까지 성한 데가 없었다. 그해 육군장교 후보생 시험, 해군장교 후보생 시험에서 잇따라 쓴맛을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친구는 억만장자 아버지에게 애절한 편지를 썼고, 아버지는 정계와 군(軍)의 인맥을 움직여 아들을 해군에 집어넣었다. 부자(父子)를 묶어준 끈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국민 대열(隊列)에서 낙오하게 되면 장래 나라의 주요 공직을 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박감이었다. 이렇게 해군에 들어가 훗날 남태평양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평생 진통제와 각성제의 힘을 번갈아 빌려가며 통증에 맞서야 했다. 케네디 대통령 이야기다.
시사 만화가들은 미국의 6·25 참전 결정을 내린 트루먼 대통령을 그릴 때면 코에 걸린 두툼한 안경부터 먼저 그려넣었다. 트루먼은 안경이 없으면 장님과 마찬가지인 지독한 근시였다. 그런 그가 1차 세계대전 당시 포병 대위로 프랑스 전선을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시력검사표를 달달 외워서 신체검사를 통과한 덕분이다. 케네디와 트루먼의 이야기는 어수룩하게 보이는 미국이 사실은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1916년 6월 영국군은 프랑스 북부 솜강(江) 지역 전투에 25개 사단을 투입했다. 돌격 명령과 함께 영국 젊은 병사들은 40㎏ 가까운 군장(軍裝)을 짊어지고 독일군 기관총 총구(銃口)를 향해 온몸을 드러낸 채 진흙탕을 달려나갔다. 소대와 분대의 앞장을 선 것은 귀족 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젊은 소위들이었다. 전투 첫날 7만여명의 영국군이 전사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50년대 차례로 영국 총리를 지낸 애트리·이든·맥밀런은 지옥과 같은 이런 전투의 생존자들이었다. 세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대학에 복학(復學)했으나 함께 전쟁에 나갔던 학우(學友)의 3분의 1은 끝내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50세 이하 영국 귀족의 20%가 1차 대전에서 전사했다. 귀족과 명문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노동자·농민보다 몇배 높았다.
2차 대전 말기 할복(割腹) 자결과 전투기와 함께 적(敵) 군함에 충돌하는 모습으로 용맹무쌍하다는 신화를 만들었던 일본 귀족과 제국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1·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귀족과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 전사자 비율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낮았다. 종전(終戰) 후 이 같은 통계숫자를 확인한 일본 역사가들은 2차 대전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고 일본은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고 실토(實吐)했다.
상대의 야심(野心) 탓만으로 존망(存亡)의 위기에 몰렸던 나라는 드물다. 이쪽의 방심(放心)이 상대의 야심에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천안함 폭침 이후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준 미달의 논란, 비상근무 중인데도 퇴근만 하면 술집으로 달려간다는 일부 군 초급 간부들에 관한 믿어지지 않는 뒷소문, 생각이 여물지 못한 일부 병사들이 '전쟁이 날지 모른다'며 울먹였다는 이야기는 나라의 밑이 꺼지고 있는 조짐이다.
대한민국은 휴전선 248㎞를 따라 김정일의 200만 군대와 대치하고 있는 나라다. 어느 누구도 그런 이 나라의 입법·사법·행정부 요인, 특히 여·야 국회의원들의 군 면제자 비율을 아랍 속의 고도(孤島) 이스라엘과 견줘 보려고도 한 적이 없다.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대학교수, 최고경영자, 정상급 연예인 등 다른 잘나가는 직종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 투사까지 제 몸에 일부러 상처를 내 병역 의무를 피해갔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하류(下流)가 먼저 썩어 오염이 상류(上流)로 번져간 사례는 역사에 없다.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다시 세우려면 이 나라의 '위'와 '아래' 어느 쪽부터 손을 대야 할지는 너무도 자명(自明)하다.
[양상훈 칼럼] 미군 주둔이 낳은 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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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6.29
제 자식이 죽었어도 천안함 괴담 휩쓸릴까
우리에게 나라 지키기는 내 일 아닌 남의 일
미군 방패막이 뒤에서 비겁함·무책임 자란다
천안함 사건으로 제일 먼저 대북 규탄 결의안을 낸 것은 미국 의회였고, 그 다음이 유럽의회였다. 한국 국회는 제 나라 군인 46명이 죽었는데 외국보다 늦게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에선 이 기막힌 일도 별일이 아니다.
야당은 대북 규탄 결의안에 반대했다. 북한 소행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야당의 누구는 "(국제합동조사단 발표는) 소설"이라더니 나중엔 "북한이 그런 나라인 줄 몰랐냐"고 했다. 또 누구는 "우리는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정부가 북한이 했다니까 북한이 했다고 치자"고 한다. 46명 주검 앞에서의 말장난이다.
야당도 뻔히 범인을 알 것이다. 지목하기 싫을 뿐이다. 북한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이명박 정권이 싫어서다. 같은 국민 46명이 떼죽음을 당한 사태 앞에서도 우리끼리 싸우느라고 범인을 제쳐놓는다. 이러는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천안함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벌써 들고 나왔을 것이다. 그들이 한 달이 지나도록 끙끙대고만 있는 것은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여론조사 결과 21%의 국민이 천안함 사태가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20대(代)는 믿는 사람 42%, 안 믿는 사람 47%다. 학력이 높을수록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한 대학 교수는 "내 주변엔 90%가 안 믿는 것 같다"고 했다. "안 믿는다"고 해야 뭔가 아는 것처럼 보이는 풍조까지 있다. 안 믿는 이유를 들어보면 전부 본질과 상관없는 지엽말단이거나, 인터넷의 황당무계한 음모론이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지금도 '자작극'이라거나 '미국 핵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해 백령도 앞바다에 빠져 있다'는 얘기를 한다. 우리는 정말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러는가.
제 자식, 제 형제가 죽었으면 절대 이러지 못할 것이다. 남의 일이기 때문에 무책임한 것이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장난처럼 함부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나라를 지키는 일'이 우리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다.
우리 외에 우리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누구든 절박해진다.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청와대가 '북한은 아닌 것 같다'는 무책임한 말부터 내뱉은 것이다.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군 미필 대통령이 이렇게 많이 선출되는 것이다. 안보 절박감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군 미필자들을 장관에 이렇게 많이, 심지어 안보 책임자로까지 임명하는 것이다. 절박하지 않으니 합참의장이 군함 침몰을 49분 만에 보고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끼리 뭘 해도 누군가 지켜줄 것으로 믿기 때문에 여(與)든 야(野)든 안보를 놓고 북풍, 역북풍 장난을 하는 것이다.
자기밖에 자기 자리를 지킬 사람이 없다는 절박한 의무감이 있다면 전쟁 날까 무서워서 엄마한테 전화 건 병사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 병사들은 '병역필'도장을 받으려고 입대했는데, 나라 지킬 일이 생기니 당황한 것이다. 일부는 주가 떨어질까봐 북한에 책임 묻는 것을 반대한다고 한다. 제 돈 지키는 것은 자기 일이지만, 나라 지키는 일은 남의 일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무슨 일을 벌여도 뒤에는 미군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의존증은 이제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뿌리를 내린 것 같다. 국방연구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유민주 체제를 지키기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다'는 질문에 38%가 '그럴 생각 없다'고 답했다. 전쟁이 나면 군인으로 싸워야 할 20대 중 '싸우겠다'고 답한 사람은 27%에 불과했다. 국민의 61%는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이 매우 혹은 대체로 낮다"고 인정했다. 다른 조사에서 국민 3명 중 1명 정도는 북한 핵이 우리 아닌 다른 나라에 위협이거나 아무에게도 위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25 책임이 김일성이 아니라 남·북에 다 있다거나, 한·미에 있다는 사람이 4명 중 1명이다. 김정일 군대를 지척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나라를 지키는 일이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남 얘기 하듯 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나라를 지켜 본 지 최소 수백년이 지났다. 집안의 가장(家長)이 제 집을 제 힘으로 지키지 못하고 남에게 안전을 의탁하면 그 가족은 병들 수밖에 없다. 정신이 썩는 병이다. 천안함 괴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한미군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군의 덕을 본 만큼, 우리 사회의 병도 깊어졌다. 전쟁을 막으려면 미군이 있어야 하지만, 이 방패막이 뒤에서 우리의 비겁함과 무책임은 도를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