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만 해도 스산한 날씨에 찌뿌둥한 하늘에서 주룩주룩 비만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구김살 하나 없이 뛰어노는 마냥 애들 얼굴입니다.
창 너머 옅푸른 하늘 아래 뭉게구름에 멈춰선 시선 끝에 잠자리 한 마리가 휙 지나가며 동선을 그려냅니다. 비도 좋지만 이렇게 비 개인날 아침은 더더구나 좋습니다. 혹시나 장맛비에 피해는 없으셨는지 걱정이 됩니다.
전에 결혼해서 막 자리를 잡은 태평동 언덕을 오를라치면 무척이나 낯선 길들 사이사이를 굽이굽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좀 힘겹게 오르락내리락하며 다녔지만, 그래도 저희 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셋방살이였답니다. 비가 오면 좀 걱정이 됐던 게 생각이 납니다. 전에 풍납동에 살면서 물난리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지낸 터라 좀 무뎌지긴 했어도 뉴스를 보면서 이번에도 전국에서 여전히 많은 분들이 고생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 남 일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아이들은 그저 비가 오면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체육을 못해서 큰일이지만 말입니다.
어제 뉴스에서 이제 무더위가 시작된 듯싶다고 하던데, 한 고개 넘었더니 또 한 고개가 나오는군요. 작년에는 무척이나 더워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에어콘을 사자, 조금만 더 견디자 하면서 지냈는데,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돌도 안 된 애가 작년에는 뱃속에 있었지만, 이제 막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서서 걸음마를 하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다들 비슷비슷한 걱정들 속에서 아이들을 키워가는 것 같습니다. 예부터 ‘자식농사’가 최고라고 한 건 그만큼 중요하고 또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성경에는 자식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했는데, 전에는 그냥 스쳐지나가던 말씀도 요즘에는 아주 피부에 와 닿는답니다. 저야 기업을 경영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기업가에게는 늘 퇴근이 없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중요한 기업보다 더 중요한 자식농사인데, 어찌 돌아보면 늘 그 아이들이 우리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있을 때가 참 많습니다. 물론 늘 그 아이들을 위해서 바쁘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언제부턴가 사회가 아이들로부터 부모를 떼어놓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저와 아내도 늘 그렇습니다. 우리들 일 때문에 아이들이 늘 뒷전이죠.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래도 애들이 이렇게 초등학교 6학년까지 자라준 걸 보면 다들 대견하시다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우리 애들을 보면서 두 살, 여섯 살 아이 둘은 언제 이렇게 커갈까 걱정하는 저를 보면서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참 위대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역시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아나봅니다.
아이들이 이제 6학년의 반을 지냈습니다. 이제 그 반만 더 지내면 중학생이 됩니다. 집에서야 어리광부리고 밖에 나가면 얘가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들 하실 수도 있겠으나 학교에서 보면 다들 하나의 인격체로 자신들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아이들에게 꽃들이 저마다 봄에 피기도, 가을에 피기도 하듯이 때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각자의 꽃을 피워가며 살아간다는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각자의 때에 자신들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저도 부모님들도 우리 아이들을 도와주도록 합시다.
방학 중에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할지 고민하시는 부모님들의 모습들을 봅니다. 아이들이 아무쪼록 새롭고 의미있는 경험들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었으면 한다고 아이들 담임으로서 부모님들께 무책임한 말을 전합니다. 지난 한 학기 부족한 저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신 데 대해 부모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05년 7월 12일 아침에
나루터 아이들의 나루지기 김훈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