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장점과 역량 ]
저에게 무엇보다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열정과 끈기입니다.
무역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권유로 무역과에 진학했지만, 전공보다는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 열정으로 디자인을 공부해 회사의 디자인팀에 들어가 2년을 근무하면서 저는 기초에 대한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미술 전공자가 꼭 디자인을 잘 한다'라는 공식은 없지만 기초공사가 부실했던 저는 그러한 이유로 다른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가끔 불이익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해는 되었지만 가끔은 자존심도 상하고 또 가끔은 그들이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것이 편입! 이제 이왕 디자인의 길로 들어온 이상 기초부터 확실히 하나하나 이뤄서 정말 멋진 디자이너로 복귀할 것을 맹세한 후, 한 번의 실패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유일한 길' 이라는 생각으로 오기와 패기로 열정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토록 바라던 ㅇㅇ대학교 시각 디자인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물과 디자인 등에 대한 편식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에는 끝을 볼 때까지 매달리며 성공을 보지만, 관심이 없는 것에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이점은 어쩜 치명적으로 불리하겠지만 역으로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대인관계로 말하면 다양한 폭보다는 깊이 있게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점은 고쳐야 할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집중력과 끈기로 좀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디자인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 성장과정 ]
저는 할아버지의 권위가 하늘과 땅의 법으로 여기고 사는 엄격한 집안에서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선 3남중 장남이시고 아버진 3남매 중 역시 장남이셔서 제가 아들이기를 집안에선 너무도 바라고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는 제 동생보다 사랑 받고 자랐습니다. 저희 집안에서 첫 손주는 굉장히 귀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천재니 영재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자라온 저의 남동생 그늘에서 스스로 낮추며 지냈고, 그러한 이유로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남매가 어느 정도 엇비슷한 게 이상적이지만, 저희 남매는 동생이 저보다 많이 뛰어난 이유로 어린 시절 저는 심지어 동생을 미워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성공을 위한 전략 ]
요즘은 멀티플레이어 시대입니다. 수비를 맡은 축구선수가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 가담해 결정적 승리로 이끄는 예나 노래를 하는 가수가 노래 뿐 아니라 연기도 공부하여 영화에 출연하고 쇼 프로에 나와 끼를 발휘하는 예, 머리를 만져주는 미용실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뷔페식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구비한다든지 하는 등의 예는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예외는 아닌데, 디자이너라고 해서 디자인만 잘하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하는 사람은 마케팅이나 기술 쪽은 몰라도 된다는 식의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디자인하는데 언어를 잘 해야 쓸모가 없다는 말은 더더욱 터무니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반드시 갖춰야 하루 필수 소양이 없다고 해서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디자이너가 마케팅업무를 파악하고 영어나 일어를 잘해 해외파트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가미된다면 그건 분명 디자이너에게 시너지효과가 된다고 믿습니다.
[ 인생의 고난 시기와 극복사례 ]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호텔에서 HouseKeeper로 3개월을 일하였습니다. 고객이 체크아웃을 한 후 또 다른 고객이 체크인을 하기 전 그 공백 시간 안에 객실청소를 하는 궂은일이었습니다. 시간제 근무수당을 받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사실상 청결함과 정확함보다는 신속함이 더욱 중요한 조건이었지만 저는 그보다는 청결함을 위주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시간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 서두르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하지만, 서두르다 보면 대충 넘어가는 일들이 많아지므로 고객으로부터 불평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는 청결을 위주로 꼼꼼하게 일을 해결하였지만 속도 때문에 총책임자에게 집중 질책을 받곤 했는데 남들이 눈치껏 보이는 곳만 청소하는 요령을 익힐 동안 전 꼼꼼히 하되 속도가 붙을 수 있는 요령을 반복을 통해 터득하였습니다. 그 결과 고객으로부터 고마움의 쪽지를 받는 등의 보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사회경험을 통한 나의 특징 ]
4년 전 (주)ㅇㅇㅇ 개발팀 내 디자이너로써, 근무할 때 저는 디자인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마케팅 팀의 사원들과 잦은 트러블을 겪었습니다. 어느 곳이나 각 부서간에 가끔 서로 다른 업무과 입장의 차이점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쌓이곤 합니다. 상대방 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면에서 언쟁을 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런 점에 있어서 우리 팀이 아닌, 다른 팀과의 팀원들과 가끔 다투게 되었는데, 몇 번의 트러블 후 저는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팀의 업무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는 무리겠지만, 조금은 숙지하고 그런 후에 그들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서 최대한 이해해보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무역학과를 나와 디자인공부를 시작해 디자인 팀에 들어간 저의 입장에서는 마케팅 팀의 업무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술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 다른 팀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묵인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우리 업무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고 교감하며 설득시켜보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노력이 결국엔 언쟁의 횟수를 줄이고 업무의 효과적인 능률이나 근무환경을 한층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 새롭게 스스로 변화를 이룬 사례 ]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보다는 항상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거리를 만들려고 항상 애씁니다. (주)ㅇㅇㅇ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 임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모두 회사 근처의 식당으로 서로 각자의 가능한 시간에 맞춰 각각 다른 시각에 삼삼오오씩 짝지어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때문에 서로서로 얼굴을 부딪히며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하고 웃을 수 있는 점심시간은 무의미하며, 회식자리가 아니라면, 각각의 팀원 외에는 아침과 저녁인사만 나누는 정도로 딱딱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 이전에 다니던 소규모 회사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이 회사의 점심시간 분위기가 낯설었고, 얼마 후 회의시간 내 건의하였습니다. 가능하다면 사내 휴게실 같은 공간에서 도시락을 싸와 함께 나눠먹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처음에 음식냄새를 우려한 사람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결국 실시하게 되면서 도시락을 싸와 함께 먹는 식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팀이지만 이해관계도 좋아지게 되고 전에는 모르던 사람끼리도 얼굴을 마주치면 서로의 안부를 한번쯤 물어봐도 주게 되었습니다.
[ 지원동기 ]
제 좌우명은 “ㅇㅇㅇ답게!”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건 저다운 제 모습을 가장 좋아합니다. 자기다운 자신의 모습을 규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상황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저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 휴학을 결심하고 어렵게 어학연수의 길을 택한 저는 이 좌우명에 대한 저의 약속을 지켜 더더욱 좌우명에 대한 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흔히 외국에 나가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잠시 잃어버리다가 한국에 들어와서야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의 저 역시 저답게 타국에서 산다는 것이 힘이 들었지만, 결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저에겐 아버지가 지어주신 좌우명이 하나 있습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입니다. 가슴이 움직이지 않고 멈춘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가슴이 뛰면 때로는 숨이 차고 그러다가 심장이 터질 듯 답답하기도 하겠지만, 가슴이 뛰는 그 느낌을 항상 기억하고 즐기는, 가슴속에 열정을 가득 채우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