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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 스크랩 종교와 헤어스타일
케팔러 추천 0 조회 22 10.07.10 20: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종교와 헤어스타일

 

- 노랑머리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

 

 

이광호(Ph.D, 종교학/목사)

 

 

 

                         +----------------------------------------+
                         |  1. 서론                                                |
                         |  2. 헤어스타일의 종교성                          |
                         |  3. 전통적 사회에서 헤어스타일의 의미      |
                         |  4. 성경과 머리카락                                |
                         |  5. 결론                                                |
                         +----------------------------------------+


 

 

1. 서론

 

   인간의 머리카락과 헤어스타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동물들에게는 대개 몸에 털이 나있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도 털이 나 있다. 인간의 머리카락은 다른 동물들의 몸에 난 털과는 다르다. 다른 동물들의 털은 계속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라면 소위 털갈이를 한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털을 깎아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자란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을 적절하게 손질해 주지 않으면 산발(散髮)이 되어 보기 흉칙하게 된다. 물론 인간의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동물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인간의 특성 중 하나는 헤어스타일을 통해 미(美)를 가꾸는 것이다. 우리시대에는 노랑머리가 유행한다. 비단 노랑 머리 뿐만 아니라 각양 다양한 색깔들이 등장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머리카락을 이상야릇하게 삭발하거나 모양세를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단순한 문화로 보고 있다. 즉 그것은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서 시대의 유행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두고 악하다거나 선하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헤어스타일은 의상의 유행과는 성격이 다르다. 
  작금의 다수의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도 전반적으로 이와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 시대 기독교에서는 대개 그것을 일종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음으로 인해 교회에 가도 노랑머리들은 많이 볼 수 있으며 신학교에 가도 노랑머리들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청년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그들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지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진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필자는 이 글에서 헤어스타일의 종교적 의미를 살펴보고, 과연 기독교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논하고자 한다.      
 

 

2. 헤어스타일의 종교성


   1) 동양의 전통   
      (1) 머리카락 자체의 종교성
          주물(呪物)신앙의 대상으로서 머리카락은 민간신앙에서 보편적이다. 과거 우리 민족 가운데는 원일소발(元日燒髮)이라 하여 머리카락을 사르는 의례가 있었다. 옛날 여인들은 조석으로 머리를 빗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아 기름종이에 싸서 일년동안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밖에서 태우던 풍속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빠진 머리카락을 1년 간 모았다가 태우면 병을 물리 칠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          
 
      (2) 불교승려의 삭발
          불교의 승려들은 삭발을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을 등진 자의 의미 곧 다른 종교적 표현으로 신에게 바쳐진 몸이라는 뜻이다. 일반 신도들이 삭발한 승려를 종교적으로 특별한 대우하는 것은 그들이 머리를 깎고 입산함으로써 속세를 떠났기 때문이다.
  인도와 스리랑카에 있는 불교의 사찰 가운데서는 석가의 머리카락이라며 성물(聖物)로서 보관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주물(呪物)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유교: 우리민족과 상투, 머리 올림
          과거 우리 민족은, 남성이 미혼일 때는 묶은 머리를 하고 있다가 성인이 되거나 혼례를 치르면 상투를 틀었으며 여성들도 미혼일 때는 땋은 머리를 하고 있다고 혼례를 치르게 되면 쪽머리나 얹은머리를 하였다. 한국의 민간신앙에서는 머리카락이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상투를 틀거나 얹은머리를 하는 것은 신령 앞에서 성인이 된 것을 선포하는 의미인 것이다. 지방과 시대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상투를 틀기 위한 전 단계로 머리 중앙부분을 삭도로 밀었는데 이는 종교행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성이 혼례나 성인례를 통해 머리를 올리고 비녀를 지르는 예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과거 우리나라에 단발령이 내렸을 때 다수의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거부 했으며 그 중에는 자살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들이 단발령을 생명을 걸고 거부했던 것은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종교적 의미가 깃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곧 신령들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아무데나 버리지 않고 땅속에 묻었던 풍속을 가졌던 것이나 잘라두었던 머리카락을 죽은 사람의 자기 관속에 넣었던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4) 유아삭발례
          유아삭발은 오늘날 까지 우리에게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갓 태어난 어린 아기의 머리를 빡빡 깎는 것을 흔히 보게 되는데 그것을 '백구민다'고 한다. 지금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새까만 머리가 나도록 하기 위해서라 하지만 사실은 '신령에게 바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간신앙에서는 어린아이와 '삼신할매'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린아기가 백일이나 돌이 되면 백일상이나 돌상 등 특별한 상(床)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삼신할매와 관계있으며 주로 그 상(床)을 차리기 이전에 머리를 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 서양의 전통

      (1) 고대 기독교 전통
          동방정교회에서는 성구(聖句)를 읽는 사람을 특별히 임명하였는데 그들을 임명할 때 삭발식을 행했다. 일부 동방교회에서는 사제가 수도원 생활에 입문할 때 입회의례로서 머리를 삭발하기도 했다. 
  과거 가톨릭의 사제들은 머리의 중앙부분을 삭발(Tonsure) 했다. 사제들이 머리에 빵모자 같은 것을 쓰는 것을 보는데 그 모자 아래 부분에는 삭발했던 것이다. 지금은 삭발을 하지 않고도 그 의미를 살려 조그마하고 둥근 빵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2) 이슬람의 전통
          민속이슬람을 믿는 이들 가운데는 머리카락의 의미를 매우 중요시 하는 이들이 있다. 이슬람 사원 중에는 선지자 마호메트의 머리카락을 성물로서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다. 민속이슬람에서는 머리털과 손톱, 발톱, 이빨 등에도 혼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독실한 모슬렘들은 머리에 동그란 빵모자 같은 것을 쓰고 다니는데 이것 역시 신적인 의례와 관련이 있다.

       (3) 유대인들의 귀밑 꽁지머리와 빵모자
           독실한 유대인들은 머리에 동그란 빵모자 같은 것을 쓴다. 그리고 귀밑 꽁지머리를 길게 기른다. 그들이 귀밑머리를 기르는 것은 현대의 유행과는 전혀 무관하다. 유대인들이 귀밑 꽁지머리를 기르는 것은 머리카락을 그렇게 함으로써 신의 권위를 나타내려 하고 있는 전통인 것이다. 


   3) 머리카락에 대한 전통적 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머리카락에 관한 전통적 사고는,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의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등장하기 이전에 살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단순히 길어지면 잘라버리는 그런 의미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초기부터 가지고 있었던 어떤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 밝히지 않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특별히 의미화해서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아메리카 토속인들이나 아프리카 토속인들이 곧 그들일 것이다. 동양에 사는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나 서양의 전통에서 머리카락이 신적인 권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종교적 공통성을 갖는 것이다.
  특히 유대교, 이슬람교, 고대 기독교 전통에서 남성들이 빵모자를 씀으로써 머리를 가리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어느 정도의 흔적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이 알수 있는 것은 인간의 전통적 사고에 있어서 머리카락에는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3. 전통적 사회에서 헤어스타일의 의미

 

   1) 사회적 의미
      (1) 사회통합의 기능
          전통적 사회에 있어서 헤어스타일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통일된 사회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과거 우리 민족사 가운데 부녀자들이 머리를 얹거나 비녀를 꽂는 일, 남자들이 상투 매는 것 등이 그 예이다. 남자와 여자의 헤어스타일이 다르고 미혼과 기혼의 헤어스타일의 차이가 나고 신분에 따라 헤어스타일의 차이가 났지만 그 가운데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서양 중세 시대의 헤어스타일은 남성들이 여성들 처럼 긴 머리를 했는데 그것 역시 당시대의 일반적인 헤어스타일이었으며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통적 사회에서는 헤어스타일이 특정한 틀 안에서 변형되었으며 그 틀을 아무렇게나 깨지 못했던 것이다. 
 
       (2) 진보적인 세속문화의 침투경로
           각 시대마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있었지만 전통적 헤어스타일에 저항하거나 약간의 변형을 꾀하려는 층이 늘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 사회에서는 한꺼번에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점진적 변화들이 있어왔다. 그러한 사회에서도 그런 변형하는 헤어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문화들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시대적 틀 속에 있는 헤어스타일을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개별적 헤어스타일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한 시대를 우리는 전통적 사회라 이름 붙일 수 있다.
   
   2) 신분 표시로서의 헤어스타일
       (1) 과거 시대 남성들의 상투와 여인들의 비녀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결혼전 미성년 남성과 여성은 긴 머리를 묶거나 땋았다. 그러니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미혼인지 기혼인지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또한 궁중 여인들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으며 내시들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그의 신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또한 민가에서도 헤어스타일을 통해 기생인지 양가의 부인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헤어스타일이 변하기는 하지만 동시대 동일 사회에 있어서는 항상 공통의 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2) 시대에 따른 서양의 통일성 있는 헤어스타일
          서양에서도 시대에 따라 헤어스타일이 변해 왔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고대 헬라사회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남성들은 늘어뜨린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동시대 여성들은 주로 긴 머리를 위로 올리거나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서양에서도 헤어스타일에 따라 신분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헤어스타일이 다양한 신분에 대한 표지로서의 기능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우리 시대의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전통적 정체성 상실의 의미
       (1) 단발령과 파마
           가. 단발령과 신(新)문화의 도입
               우리 민족의 개화기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갑오경장의 일환으로 내려진 단발령이었다. 고종 32년(1895) 11월 16일 조칙에서 왕은, "국민들에 앞서 내가 먼저 단발하니 백성들은 내 뜻을 받들어 만국과 병립할 수 있는 대업을 성취케 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유림들은 강하게 반발했으며, 최익현은 "내 머리를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강하게 저항했다. 그들이 이렇게 반발했던 것은 머리카락은 부모로 부터 받은 것이어서 이를 삭발하는 것은 반인륜적이라는 생각과 머리카락에 종교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다른 반응이 일어났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머리치장과 관련해 머리카락에 어떤 영적 세계가 존재했던 것으로 믿는 것을 미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미신적인 요소를 버려야 함을 인식한 초창기 신도들이 대다수 머리를 깎기 원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 여성과 파마의 도입과 함께 한 자유의 물결
                현대의 파마는 20세기가 들어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것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936년 경이다. 1936년 4월호 월간지 <여성>의 표지에 파마를 한 신여성이 등장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서울의 화신백화점 안에 있던 '오엽주 미용실' 하나밖에 없었는데 '전기열로 머리카락을 지지고 볶는다'고 하여 전발(電髮)이라고 했다.   
  당시 파마를 하는 여성들은 소위 신여성들이었는데 그들 조차도 파마를 한 후에는 가슴이 떨릴 만큼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교차되어 해가 질때까지 기다렸다가 미용실 밖으로 나와 인력거를 타고 귀가했다.   
  오엽주가 보여준 파마 헤어스타일은 단발령 만큼이나 큰 파급효과와 함께 한국여성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키면서 한국 헤어스타일 역사에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

       (2) 1960년대 이후 동일사회에 있어서 보편적 헤어스타일의 파괴현상
           다른 문화적 변화와 함께 헤어스타일의 개성적 변화 역시 1960대에 일어났다. 1960년대의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혁명이었다. 1960년대 이전에도 파마 등의 헤어스타일이 있었지만 일부 계층에서 일어난 일이며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1960년대 이전의 헤어스타일은 back comb에 의한 hair spray로 고정시키는 헤어스타일이나
 roll brush에 의한 dryer를 통한 헤어스타일이었다. 1960년 이후가 되면 헤어컷의 변화를 통한 다양한 형태가 도입됨으로써 여성을 해방시켰다. 이는 사상적 변혁으로서의 영향뿐만 아니라 60년대 여성들의 의식까지도 해방시켰다.  
  미용학계에서는 현대 헤어스타일의 역사를 시대구분하면서 1960년대를 기준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1960년대 이전의 헤어스타일은 전반적으로 '형태이전의 모양'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이후의 헤어스타일을 '모양과 질감'을 중시하는 시대인데 이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3) 한국교회와 헤어스타일
           1995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이를 가장 잘 수용한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두발에 어떤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종교적 미신을 타파한다는 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다수의 사람들이 단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꼈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 후 1930년대 후반 한반도에 파마가 들어왔을 때도 기독교는 그것을 거부했다. 1960년 이전 까지만 해도 한국교회 안에서 자유롭게 파마를 할 수 없었다. 교회가 그것을 금지했던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와 당시 교회들에서 상당한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교회는 결국 시대의 힘에 밀려 파마를 수용하게 된다. 그렇지만 교회가 파마를 허용한 것은 과연 잘한 것인가?
  한국교회가 파마를 수용한 것에 대해 의의를 다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파마를 허용함으로써 그 이후의 모든 세속문화를 교회가 비판없이 수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좀더 깊은 신학적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4. 성경과 머리카락

   
    1) 구약성경의 교훈
       (1) 나실인과 머리카락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나실인 제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자들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께 바쳐진 자임을 민족 가운데 확인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나실인 제도는 대표성을 띤다. 즉 나실인으로 지목된 자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름으로써 나실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그 제도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민수기 6장에는 나실인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진 표'(민6:5,7; 18,19) 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무엘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한 것(삼상1:11)도 하나님께 특별히 드려진 사람이라는 표시였던 것이다. 

       (2) 삼손의 머리카락
           삼손의 머리카락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사기에는 삼손에 출생에 대해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삿 13:5) 고 말하고 있으며, 삼손 자신은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삿 16:17)고 고백하고 있다.  
  삼손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한 나실인이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이방민족과 싸우는 사사였는데, 이방민족과 싸우는 힘이 그 머리카락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삼손 자신의 힘이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의 원천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손의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방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 보다 훨씬 이전에 삼손을 나실인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3) 머리카락과 부정에 대한 회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한다.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섬기다가 범죄하고 이방의 풍속을 끌어들여 이스라엘 백성을 부정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정결하게 될 수 있는 규례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곧 머리털을 밀고 회개하는 규례이다.
  레위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정하게 되었을 때는, '칠일만에 그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 다 밀고..... 그리하면 정하리라'(레14:9)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민수기에서도 정결하게 하는 의례에서,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라'(민 6:9)고 요구하고 있다.
  욥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놓으며 머리털을 밀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욥1:20) 라고 하는 말씀을 통해 그가 머리를 밀고 자신을 자복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4) 저주와 맹세의 표시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관용한 분이 아니다. 의로움에 대해서는 인정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을 떠난 행위에 대해서는 한없이 엄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엄격한 의사를 알리실 때 자주 머리카락을 언급하신다. 그것은 각 개인에 있어서도 그렇고, 이스라엘 전체 민족에 대한 상징적 선언을 하실 때도 그러하다.   
  구약성경에서는, 여인에 대해 머리카락을 통한 저주와 맹세의 표시를 행하도록 요구했다. 민수기에서, '제사장은 ......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 머리를 풀게 하고......'(민 5:18)라는 규례를 주고 있다.
  민족적 저주에 대해서도 동일한 언급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사7:20; 15:2. 참조)고 하셨으며, 선지자 예레미야에게도 '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버리고 자산( 山) 위에서 호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버리시리라'(렘7:29)고 경고하고 계신다.  

       (5) 이방여인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받아들일 때
           여성이 자기 머리를 민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며 심히 창피한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 남자가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온 여인 가운데 아내로 삼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그 여성의 머리를 우선 밀어야 했다. 이는 이방과 관련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자포로를 아내로 삼고자 할 때 우선 그 머리를 밀 것이요 그 후에 아내로 받아들일 것이다'(신 21:10-14. 참조)

       (6) 하나님의 사람의 표시
           하나님의 사람은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라 순종할 따름이다. 특히 제사장은 자기 머리카락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이것 역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대표성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제사장들은 머리를 빡빡 깎아서도 안되었으며 머리를 풀지도 말아야 했다(레21:5,10). 그리고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머리가를 둥글게 깎지 말아야 했다(레19:27). 이는 이방인들이 하는 헤어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헤어스타일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이방인들과는 다른 모양이었던 것이다. 
 
      (7) 이방문화의 침투경로
         성경에서 이방문화가 침투할 때 여인의 머리카락을 통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세벨의 헤어스타일을 통한 미혹이다. 열왕기하에는 예후를 유혹하기 위해 머리를 꾸민 음녀 이세벨이 소개된다(열왕기하 9:30이하 참조)  
 
       (8) 이방인의 표지: "머리를 모지게 깎는 자들"(those who cut the corners of their hair)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리 모양은 이방인들과 달랐으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그들의 유행을 따르는 것을 금지했다. 성경은 이방인들의 두발 형태를 지칭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과는 다른 표지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른 이방인들의 헤어스타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렘 9:25,26)는 말씀과 '그들의 약대들은 노략되겠고 그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각방(各方)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49:32) 라는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른 이방인들의 헤어타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 신약성경의 교훈
      (1) 예수님의 산상보훈에서 얻는 교훈
         예수님께서 산상보훈 가운데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5:34-36)고 하셨다. 여기에서,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하신 머리는 곧 머리카락을 포함한 머리이다. 그에 대한 증거가 그 뒤에 따라오는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는 말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 '땅' '예루살렘' '머리털을 포함한 머리'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데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전체적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마리아(누가복음 7:36-50, 요한복음 11:2,3)
          마리아가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것은 단순한 겸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처녀 마리아가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면서 자존심 여부나 창피함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표였던 것이다.
  여인의 머리카락이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시일진대 그 머리카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씻었던 것이다. 이는 향유로써 발을 씻기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인의 머리카락'과 '향유'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씻는 행위는 그의 메시야성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3) 서원과 머리깎음(행 18:18; 21:23,24)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서원을 하여 '겐그리아' 지방에서 머리를 깍은 적이 있다. 그것은 서원에 대한 실행의 시작이었다. 구약성경의 평생나실인들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서원을 하고 머리를 깍은 것은 초대교회 당시 율법과의 관계에서 인정이 되던 어느정도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도 서원한 네 사람의 머리를 깎음으로서 신앙을 확증한 적이 있다. 바울이 신앙을 의심받을 형편에 놓였을 때,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이 그것을 요구했고 바울은 그에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왜 구약의 규례를 신약시대가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가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물론 1세기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사도교회의 특별한 상황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바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서원의 도구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4) 남자의 머리카락과 여자의 머리카락(고린도전서 11:1-15)
         머리카락은 하나님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이 언급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곧 긴 머리와 연관지어 설명되는 것이다. 
  긴 머리를 하는 것은 남자에게 욕이 된다고 바울이 말한다. 이것은 시대에 따른 단순한 문화가 아니다. 스파르타를 비롯한 고대 헬라 세계에서 철학자들이 머리를 길렀고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남자들이 머리를 길렀지만 그것은 원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여자의 긴 머리는 창조질서와 관련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11:15에서는 여자의 긴 머리가 올바른 태도임으로 자신에게 영광이 된다고 확증했으며, 고린도 교회의 여성들에게 머리수건을 쓰도록 명령한 것은 긴머리와 관련이 있다. 곧 긴 머리는 일상에 있어서 머리에 쓰는 것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5) '땋은 머리'(braided hair)에 대한 경계
           성경은 땋은머리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주어진 목적이 땋은머리를 하여 자기 취향으로 즐기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가 그렇게 함으로써 이방의 경향을 교회 가운데 도입하게 되거나, 그렇게 됨으로써 어린 성도들이 교회와 이방 사이의 구분에 혼선을 가져올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사실 땋은 머리는 유대 여인들이 즐기던 헤어스타일이었다. 바울은 여성들이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하려는 경향을 금지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바울 당시에 일반 여성들이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것을 보며 교회에 속한 성도들도 그렇게 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의 그러한 풍조를 받지 말도록 철저히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 또한 머리를 꾸미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것은 여성, 특히 아내된 자가 취할 몸가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 역시 그것이 시대에 따른 단순한 문화적 요구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특히 베드로전서 3:5,6에서, 여성의 단정한 헤어스타일이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그와같이 했음"을 언급하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예로 들고 있다.

  3) 기독교와 머리카락의 의미
     우리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하나님의 영광'의 표지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헤어스타일을 자기의 욕망에 따라 모양새를 내어서는 안된다. 머리카락이 인간의 어떤 욕망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머리카락 장식에 지나친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정하게 하는 것과 다른 문제이다. 성경은 머리카락의 의미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여성의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가 여성의 긴머리와 연관이 있다면, 긴머리와 땋은 머리에 관한 교훈이 단순한 문화적 충고였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떤 신학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듯이 그것은 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시대에는 그것이 문화적인 것 처럼 되어버렸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바울과 베드로 등을 통해 그것이 단순한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5. 결론

   과거 전통적 사회에 있어서도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회 통합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각 개인이 자기 개성에 따라 자유롭게 헤어스타일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전체적인 헤어스타일의 틀 가운데서 약간씩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가 지나면서 헤어스타일은 서서히 사회 통합성을 상실해 가기 시작한다. 물론 군인이나 학생들 등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제약을 받았지만 그것은 단지 특수사회에 속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시대에는 두발의 사회 통합적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결과이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머리카락 자체를 신성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머리카락이 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특별한 표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카락이 인간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초창기 기독교인들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가르침과 자세에 대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먼저 성경에 나타난 교훈에서 머리카락의 의미가 자기 취향에 따라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국의 초기 기독교에서도 그러한 교훈을 그대로 배울 수 있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렸을 때 그들은 머리카락과 헤어스타일의 의미를 알았으며, 1930년대 파마가 들어왔을 때도 기독교는 그 의미를 알았다. 이것은 단순히 보수적, 혹은 진보적 성향으로 설명할 일은 아니다.
  우리시대는 어떤가? 세상의 흐름에 그대로 따르는 것은 기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고백하듯이 한국의 초기 교회는 매우 건전했다. 그래서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며, 한국의 초창기 기독교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할것인가? 노랑머리를 포기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자세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러하다면 그것 하나 버리는 것은 별 것 아니다. 성경이 어떤 교훈을 주던지 자기의 욕망대로 하겠다는 것은 불신에서 오는 마음이다. 세속문화는 많은 경우 머리카락을 통해서 침투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염색의 경우도 미(美)에 대한 적극적 욕망이 아니라, 추함에 대한 가리움일 때 용납될 따름이다. 이는 자연스러움이나 원형보존을 위한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인간의 머리카락의 의미에 대한 중요성을 잘 설명해야 한다. 사탄은 대개 하나님의 권위의 표지로 주신 인간의 머리카락을 통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 함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세속화의 출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친 머리치장이나 이상한 형태로 꾸미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우리는, 벵겔(Bebgel)이 지적한 것처럼, 현재의 헤어스타일이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필자가, "교회내에서 노랑머리 염색을 금지하자" 라든지, "한국기독교가 총회를 통해 이를 법제화 하자"고 제안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우리 시대의 교회는 이러한 말이 도리어 이상하게 들릴 정도로 이미 세속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렸을 때 한국의 초창기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잘 대응했다. 1936년 한반도에 파마가 들어오고 그것이 서서히 사회적으로 번져갈 때 건전한 교회들이 파마를 거부했던 것도 올바른 처신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교회가 신학적 해석없이 파마를 허용한 것은 잘못이었다. 그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조류에 휩쓸린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결국 사상적 세속화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한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 노랑머리가 급속히 유행하고 교회 내에 침투하는데도 신학과 교회가 침묵하는 것은 결정적인 잘못이다. 만일 지금이라도 신학이 이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교회의 세속화는 고삐를 놓치게 되어 엄청나게 가속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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