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락피싱클럽 김태홍 씨가 여수 안도 자갈밭 포인트에서 60㎝급 농어를 걸어낸 뒤 포즈를 취했다. 김 씨는 선상 루어낚시에서 주로 쓰이는 마리아 사의 24g짜리 아미고 바이브 루어를 사용해 입질을 받았다.
세상에는 많은 유혹이 있다. 하지만 낚시꾼에게 '고기가 많이 나오니 한번 가 보자'는 말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유혹이 아닐까? 남해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여수에는 달포 전부터 농어의 거친 입질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밤에는 굵은 볼락도 줄줄이 올라온다고 했다.
낚시라는 것이 매번 조황이 같을 리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고기 가뭄' 탓에 솔깃해졌다. 새벽 낚시를 위해 전날 저녁에 출발하는 강행군을 했다.
■밤바다를 조용히 가르다
여수 돌산도 군내항에 자정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낮 동안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인지 밤바다는 무척 시원했다. 어둠 속에서 막 잠을 깬 나이스 호가 다가왔다. 승선 명부를 작성하고 박정현 선장이 출항신고를 하러 간 사이에 짐을 서둘러 실었다.
그런데 선장이 경찰관과 함께 돌아왔다. 어선출입항신고소에서 나온 해양경찰은 명부와 사람을 호명하며 일일이 확인하고 구명장구를 살폈다. 혹 명부를 작성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배 내부까지 들렀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어요. 아마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의식이 강화됐나 봅니다." 모두들 숙연해졌다.
배는 군내항을 빠져 나와 화태도와 돌산도 사이 해협을 지났다. 돌산도는 돌산대교와 육지로 연결돼 있고, 돌산도에서 화태도는 연도교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공사는 더뎠다. 예산이 찔끔찔끔 나와 공사도 진척이 없단다. "낚시인 입장에서는 다리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여수락피싱클럽 김상현 매니저가 말했다. 다리가 생기면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의외여서 왜냐고 물었다.
"지금 금오도는 비렁길 때문에 난리도 아니에요. 물가가 갑절로 오르고 방값도 부르는게 금이에요. 인심이 팍팍해졌지라." 잃어버리는 무언가에 대해 간절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동이 트기까지는 볼락을 노려보기로 했다. 금오도 서쪽 연안에 닻을 내리고 해초밭을 노렸으나 반응이 없었다. 중삼도로 이동했다.
■거센 조류에 볼락은 빈작
물살이 제법 셌다. 중삼도 섬과 섬 사이 돌출여가 있는 곳의 가운데에 배를 대고 낚시를 시작했다. 채비를 넣자마자 휭~하니 멀리 흘러갔다. 모두들 고전했다. 농어만 노리고 온다고 생각해서 볼락 채비 준비를 소홀히 했다. 도구함을 살펴보니 볼락용 웜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무게가 나가는 지그헤드를 달아야 하는데, 갖고 있는 것은 전부 가벼운 바늘뿐이었다.
할 수 없이 붕어용 도래봉돌을 달고 캐롤라이너리그 식 채비를 했다. 배스 채비 방법으로 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출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이 채비가 이날 효과를 좀 봤다. 첫 볼락을 걸어낸 것이다. 세차게 흐르는 조류에 채비를 맡기고 흘리니 결국 바닥에 닿는다. 수심은 7~8m 정도 될까. 채비를 살짝 들어 올리니 또 조류에 흘러가는 느낌이 왔다.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어느 순간. 전화벨이 울리듯 어신이 왔다.
'파르르~ 파르르~.' 볼락 특유의 입질이었다. 조류까지 받으며 고기를 끌어 올리려니 낚싯대가 요동을 쳤다. 25㎝ 정도의 볼락이었다. 선장이 귀한 볼락이라며 살려 놓자고 했다. 그런데 살림통은 지름이 1m가 훨씬 넘는 고무대야였다. 대야의 가장자리에는 물이 넘치지 않고 빠질 수 있도록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놓았다. 볼락은 그 넓은 살림통이 바다인 줄 착각하며 유영했다.
하지만 좀체 볼락은 입을 열지 않았다. 쏨뱅이 몇 마리와 볼락 서너 마리로 볼락 낚시는 접어야 했다.
다시 배는 안도 백금만으로 이동했다. 배 뒷전에서 묵묵히 낚시에만 열중하던 생활체육부산낚시연합회 이창우 회장도 조황이 신통찮자 아쉬워했다. 백금만에서 동틀 때를 노려 본다고 했다. 입질이 없자 모두 선실로 들어가 쪽잠을 잤다. 오직 성과물에 목이 탄 기자와 박 선장 만이 하염없이 해안을 향해 루어를 날렸다.
■동트는 새벽에 대물 농어
이미 희부옇게 동쪽 하늘이 밝아왔다. 이러다가 밤을 새우는 게 아닌가 싶어 잠이라도 좀 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낚시대를 접어 잘 갈무리하고 선실로 들어가려는데 선장이 입질을 받았다.
40㎝ 정도의 농어였다. 잠이 확 달아났다. 다시 낚싯대를 들고 열심히 캐스팅을 했다. 모두들 고기가 나왔다는 소리에 선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또 선장이 입질을 받았다. 웬만한 크기의 농어는 '들어뽕'(낚시인들의 은어로 작은 물고기를 뜰채를 대지 않고 들어올리는 것)을 하는 선장이 큰 소리로 "뜰채!"를 외쳤다.
그런데 거칠게 루어를 받아 삼킨 녀석은 해초 밭에 몸을 숨겼는지 30초 정도 꼼짝도 않았다. 한국조구경영자협회 김선관 회장이 "이럴 땐 줄을 살짝 늦추어주면 올라온다"고 조언했다. 다행히 고기가 움직였다.
박 선장이 릴을 다시 감기 시작했다. 뱃전까지 달려온 농어는 다시 드랙을 풀고 달아났다. 서너 차례 반복한 끝에 뜰채맨의 뜰채 안으로 80㎝ 대물 농어가 빨려 들어왔다. 모두들 흥분했다. 대야에 담긴 농어는 컸다. 30㎝ 볼락이 금붕어처럼 보였다.
동이 트자 모두들 본격적으로 농어루어낚시를 시작했다. 선상에서 하는 농어루어낚시의 요령은 얼마나 멀리, 정확하게 갯바위 쪽으로 채비를 던지냐는 것이다. 갯바위 위에 루어가 떨어져도 좋다고 했다.
농어는 갯바위 쪽으로 멸치를 몰아 어쩔 수 없이 돌아나오는 놈을 받아 먹는 습성이 있단다.
꼬리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신형 루어 플라팬을 사용했다. 천천히 감아도 액션이 확연하게 드러나서 그런지 농어가 팍팍 물어주었다. 여수락피싱클럽 김 매니저는 "미노 종류가 히트 확률이 높고 바이브는 바늘이 벗겨지기도 한다"고 했다.
여수락피싱클럽 김태홍 씨가 자갈밭 포인트에서 62㎝ 농어를 연거푸 걸어냈다. 몰이 자란 수중여를 노려 연속 히트한 것이다. 여수에서 학원을 경영하는 김 씨는 능숙한 솜씨로 농어를 뽑아냈다. 대야 물간에 농어가 그득했다. 기자의 35㎝급 새끼 농어 2마리를 보태 두 자릿수 농어 어획고를 올렸다. 역시 여수에는 고기가 많았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TIP
·물고기 집게
농어는 입이 크다. 80㎝ 농어의 입은 성인 남자의 주먹도 쉽게 들어갈 정도다. 물간에 담긴 농어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멸치를 여러 마리 뱉어냈다.
이런 농어를 잡기 위해 80~15㎜ 크기의 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피라미나 멸치를 닮은 미노이든, 작은 물고기를 닮은 바이브 루어이든 루어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있다. 주로 갈고리처럼 생긴 세 갈래 바늘(트레블 훅)이다.
그런데 이 바늘은 거친 농어의 주둥이뿐 아니라 사람을 노리기도 한다. 농어를 낚기 전에 사람을 먼저 거는 수가 있으니 루어낚시를 할 때는 주변을 항상 살피고 난 이후 캐스팅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즐거워야 할 낚시가 불행한 사고로 급전락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농어를 걸었을 때다. 반가운 마음에 루어를 손으로 덥석 잡았다가는 농어의 바늘털이에 농어와 함께 루어에 걸리는 동반자가 되고 만다. 보통 루어에는 두 개의 바늘이 달려 있는데 주둥이를 심하게 터는 농어의 습성 때문에 손이 바늘에 박히기 십상이라는 것. 그래서 전문 루어꾼들의 필수 장비로 물고기 집게가 있다.
물고기 집게(피싱 그립)는 권총형, 주사기형 등 다양한 형태가 시중에 나와 있다. 길이가 보통 15~30㎝ 정도이기 때문에 농어가 바늘털이를 하더라도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나 뜰채가 없을 때 랜딩 장비로도 훌륭하다. 물고기 집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루어 걸린 농어를 이어주는 도구다. 아무리 친하고 반가워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