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陽路談
松坡區
송파둘레길
송파둘레길은 송파의 외곽을 따라 흐르는 성내천 장지천 탄천 한강을 연결하
는 21Km의 순환형 생태 도보 길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다양한 생명 그리
고 문화가 공존하는 송파둘레길을 거닐며 일상 속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성내천들레길 6.0Km
장지천둘레길 4.4Km
탄천 둘레길 7.4Km
한강 둘레길 3,2Km
송파구는 서울시 동남쪽에 위치하며 송파둘레길과 송파도보여행 길이 있고 일
부는 서울둘레길과 공유한다
평해길을 걷고 충분히 쉬고 또 다시 도보여행을 떠나려니 “이야기가 있는 송
파둘레길”은 “함께 걸어요”라고 홍보 하지만 뙤약볕에 홀로 걸었다
둘레길은 21Km인데 무리를 하면서 걸으면 한 번에 걸을 수도 있겠으나 체력
을 안배하여 욕심부리지 않고 2번으로 나누어 걷기로 하고 성내천길과 장치천
을 먼저 걸은 뒤 나머지를 걸어보기로 하였디
※ 松坡區
동쪽은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 남쪽은 경기도 성남시, 서쪽은 강남구, 북
쪽은 한강 건너 광진구와 접해 있다. 북쪽에 한강본류, 동쪽에 성내천, 서쪽에
탄천이 흐르며, 탄천과 성내천 사이에는 잠실과 그 배후지역이 연결되어 있고
그 밖에는 주택지역이 발달하였다
9호선을 여의도역에서 타고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하니 14시가 조금 지났고 1번
출구(보성충학교)로 빠져나가려니 5호선으로도 올 수 있던 것을 집 앞에서도
탈 수 있었는데 여의도역으로 가서 환승했고 한 번에 걸으면 문제가 없지만 2
회로 나누어서 걸으려면 들머리도 올림공원역보담 천호역이 편한 것을 몰랐다
올림픽공원에는 한성백제박물관도 있어서 上古史 강의를 들으려고 여러 차례
왔었고 몽촌토성도 들려 봤다 1번 출구를 빠져나와 뒤로 돌아서 성내천으로
내려서니 수국과 과꽃이 반간다
원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우선 우틀하여 올림픽프라자를 보면서 걷는데 성내천복원사업기념비와 항아리에 동요를 쓴 장독대가 나왔고 성내천 유래의 판넨
리 있다
⁕ 城內川(9.77Km)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몽촌토성을 돌아 잠실철교 부근에서 한강으로 유입
되는 준용하천으로서 한강의 제1지류이다. 풍납토성 안쪽의 “성내리”(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동)라는 마을을 관통하는 물줄기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
름이다. 성내천은 남한산성애 위치한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2km의 급경사 산
간계곡을 따라 북서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서울특별시 마천동과 거여동을 거쳐
흐른다. 성내 제4교 부근에 성내천 인근 마천역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이용하
여 물놀이장, 인공폭포와 분수대등을 설치해 놓았다
⁕ 장독대 항아리의 동요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오금3교 아래 물속에는 큼직한 잉어들이 자유롭고 한가롭다 오금1교는 갈림길
로 방이습지 0.5km 그리고 서울둘레길과 공유하고 나는 2015년4월11일 토요
일 맑은 날에 동행으로 김헌영. 원의연, 박용석의 아들과 조카와 걸었고 백
두대간 산행 동지 김 사장이 장지근린공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든5
에서 점심 공양을 쐈고 나는 양재시민숲까지 걸었다 그런데-
“똑 같은 길을 걸어도
걷는 사람에 따라 생각과 느낌. 그리고 보는 것이 다르다“
뚝방으로 올라서니 오른쪽에는 밭으로 농작물이 재배되고 농작물을 파는 간이
매대가 있고 조이풀라워가든이 나오고 송파둘래길종합안내가 있는데 지하도
천정에 LED 조명시설이 다양한 문자를 띄웠다
가로수는 벚꽃나무들이 많고 송파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주민들에게 나무를 기
증 받았는데 기증자의 이름표를 나무에 붙여놨고 반대편으로 넘나드는 징검다
리도 몇 개 있다 녹색공간이 나왔고 개롱역 0.4Km- 넓은 터가 있고 송파구의
케릭터 ”송송“이와 ”파파“로 둘이 어울려 다정스럽게 앉아 있는 모습은 귀엽
고 송파둘레길에는 Story Board가 21개 있다고 한다 재해문자정보시스템이
있고 현재 14시52분이라고 시간을 알려준다
성내천과 작별하고 장지근린공원으로 둘레길은 이어지는데 표찰목에 거여역
0.9Km 개롱역 0.92Km 되어 있고 은혜교회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우틀하
여 도로를 끼고 걸으면 벽화가 죽 있고 나태주 시인의 “외롭다고 생각할 때일
수록” 시를 읽을 수 있다
외롭다고 생각할 때 일수록
혼자이기를,
말하고 싶은 말이 많은 때 일수록
말을 삼가기를,
울고 싶은 생각이 깊을 수록
울음을 안으로 곱게 삭이기를,
꿈꾸고 꿈꾸노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빠져나와
키 큰 미루나무 옆에 서보고
혼자 고개 숙여 산길을
걷게 하소서.
송파사회복지관과 주차장 그리고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사거리를 횡단하면 장
지근린공원이고 넓은 광장에 “송파둘레길21Km 스탬프투어” 함에는 들레길 자
료가 그득하고 스탬프가 있다
⁕ 장지근린공원
장사바위부터 시작하여 송파남부의 최장길이의 산책로가 있는 공원으로 각
종운동기구와 유아숲체험장을 사용할 수 있으며 매주 토요일애눈 도심 속 캠
핑장을 이용할 수 있다
메타세퀘어이 길을 걷는다 오르막 계단이 나오고 체험장아 있는데 “콩짝콩짝-
음악” “두근두근-탐험” “알록달록-미술” “뚝딱뚝딱- 목공” “오물조물-소꼽”
라는 알림판이 있는데 세종대왕님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말과
글에는 재미있고 정감이 듬뿍든다
“인조와 서흔남”과 “장사바위” 표석을 봤는데 길은 “서울둘레길” “송파둘레
길” 송파도보여행길 중에 “책을 읽는 역사길“과 공유한다 장지근린공원을지
나고 송파산대놀이광장을 본다
⁕ 장사바위
조선 인조 임금 재위 시에 임경업 장군과 그 휘하의 병사들이 이곳을 지나
가다가 바위 아래에서 솟는 샘물을 마셨다 하여 장사약수라하고 산 능선 끝자
락에 장방형의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임경업 장군이 앉아서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 송파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는 송파 지역에 전승되던 탈놀이로,
山臺都監系統劇 중부형의 한 분파이다. 송파나루를 무대로 번창한 송파장을
무대로 연희되었다.
즉 연초가공업자와 나무장수가 많아 담배와 땔나무를 서울에 공급하였고 소
(牛)시장이 성하였으며, 마행상인들의 상업근거지로서 놀이의 경제적 여건이
갖춰졌다. 그 연원은 조선 초로 올라가나 조선 후기 송파장이 번성하면서 놀이
형태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버들어린이공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우틀하면 탄천은 1.5Km로 암행어사
이건창의 Story Board가 있다
※ 暗行御史 李建昌(1652~1898) 판넬
위치: 송파구 송파읍 113번지
조선 후기 암행어사로 활약했던 올곧은 선비요 문인이며 문장가다 고종 재
위 때 신분을 숨기고 송파장터에 들려 장사꾼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용기를 북
돋아 주며 탐관오리를 벌 하였던 일화가 전해진다 백성들은 그가 떠나고 난
뒤에야 그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송파장터 입구에
비석을 세웠다 이 비석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 됐으나 1979년 발견
되어 현재 송파근린공원에 세워져 있다
이건창은 조선시대 최연소(15세) 과거시험 합격자였으나 나이가 어리다 하여
임용을 보류하다가 18살이 되어서 발탁되었고 경기 암행어사 시절 삼형제섬에
도 들려 민원(세금문제와 부역)을 해결하여 주었기에 주민들이 스스로 영세불
망비를 세웠고 양명학의 태두인 정제두 선생의 손녀사위로 詩文도 남겼다
月夜於池上作(달밤에 못에서 짓다)- 李建昌(1852~1898)
月好不能宿: 달이 좋아 잠들 수가 없어
出門臨小塘: 문을 나서서 작은 못에 가 닿았다.
荷花寂已盡: 꽃은 쓸쓸하게도 이미 다하였으나
惟俄能聞香: 오직 나만은 향기를 들을 수 있구나.
風吹荷葉飜: 바람이 불어 연잎을 날리고
水底一星出: 물 밑에선 한 별이 난다.
我欲手探之: 내가 손으로 그걸 잡고자 하니
綠波寒浸骨: 푸른 물결 차가웁게 뼈에 스미는구나.
⁕ 장지천
경기 광주 남한산성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하남시 학암동, 성남 창곡동을 거쳐서, 송파구 끝마을 장지동을 거쳐 문정동에서, 용인 법화산에서 발원한 탄천으로 합류하는 한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하천이다
반대 방향은 위례동으로 가는 길이고 위례동에는 위례둘레길이 있다 도로를
따르다가 천변으로 내려섰고 백로가 나는 모습을 보고 장지교를 지나 버들1교
에는 숭파둘레길 글씨 조각이 붙어 있다 이어서 탄천합수부를 만나서 장지역
을 찾아가서 트레킹을 접었다
다음날
오늘은 5호선으로 올림픽공원을 찾아서 걸었는데 날씨는 폭염이다 어제의 반
대 방향으로 걸으면 오륜교가 나오고 다리 아래에는 프리테니스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한낮이건만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과꽃이 무더기로
피었고 과꽃 다음에는 원추리꽃이 모듬을 이루고 벼농사 체험장에서 징검다리
를 건너야 한다
청룡교를 통과하고 시각장애인 축구장 앞에서 스탬프를 찍고 사잇길로 빠지면
성내천 뚝방길이고 가로수는 벚나무들이고 한강은 1.35Km라는 표찰을 본다
광나루 아래 한강공원에 도착 되었다 성내천이 끝났다
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단천합수부까지 걸어야 하는데 잠실대교 밑을 통과 할
때는 유도표식이 없어서 당황하기도 하는데 장지역을 들머리로 하면 상관없다
다만 잠실대교 밑을 통과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송파관광정보센터에
전화하여 자문을 받았다
한강길은 3.2Km로 바람도 불지 않고 그늘도 없어서 땡볕이다 ”잠실 그리고
뽕나무 안내문에는 “연중행사로 정월대보름과 단오·백중·추석에 명절놀이로 놀
았으며, 1973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잠실동 석촌호수 공원 내
에 있는 서울놀이마당에 전수회관이 있다고 한다
⚈ 잠실 그리고 뽕나무
⁕ 잠실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은 양잠 장려를 위해 蠶室都會(국립양잠소)를 설치하면서부터 잠실이라 불렀다 농본사회였던 조선은 農桑이라는 말에서 전 하듯이 농사와 함께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일을 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의 하나로 여겨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고 나라에서는 親蠶禮를 거행 했으며 일반인들에게 양잠을 권장하였다
⁕ 先蠶壇에 선잠을 모시고 동잠실과 서잠실이 있었고 왕비들은 후원에 採桑壇 으로 나갔다
1930년까지 볼 수 있었고 그 후 한강공원에 1000여주의 뽕나무를 심었고 뽕나무의 유래는 열매(오디)가 소화에 좋아서 ”뽕 뽕 뽕“ 방귀가 나와서 뽕나무라 했고 양평군 양동면에는 뽕나무를 친환경농업특구로 선정하였고 대구시 중구에는 뽕나무 골목이 있고 정선군에는 나라안에서 가장 오래된 뽕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 두사충의 뽕나무 사랑
두사충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왔다가 귀화하였는데 이순신장군과 우
정이 돈독하였고 詩聖이라고 불리는 杜甫의 21대손으로 풍수전문가로 하루에
천냥 나오는 명당에 터를 잡았으나 경상감영터가 되는 바람에 대구로 옮겨 살
았고 그 골목을 뽕나무 골목이라 하고 벽화가 재미있게 그려저 있다
⁕ 이순신 장군이 杜思忠에게 쓴 시
奉呈杜僕射
北去同甘苦: 북으로 가서는 고락을 같이 했고
東來共死生: 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함께 했네
城南他夜月: 성곽 남쪽 타향의 달밤 아래에서
今日一盃情: 오늘은 한 잔 술로 정을 나누세
⁕ 뽕나무의 역사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일은 예부터 농업과 함께 農桑이라
하여 나라의 근본으로 삼았다.
중국의 魏書 東夷傳 마한 條에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서 옷을 해 입었다”라
고 한 것으로 보아 삼한시대 이전으로 짐작된다. 우리의 기록에도 고구려 동명
왕과 백제 온조왕 때 농사와 함께 누에치기의 귀중함을 강조한 대목이 있다.
신라 박혁거세 17년(BC 40)에는 임금이 직접 6부의 마을을 돌면서 누에치기를
독려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에
이르기까지 누에치기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양잠의 고장으로는 상주와 밀양이 알려젔다
⁕ 가장 오래된 뽕나무
강원도 기념물 제7호는 정선군청 바로 앞에 있다
나무의 유래에 대하여는 서울에서 벼슬 살이를 하던 제주 고씨가 관직을 버리
고 정선으로 내려오면서 옮겨다 심은 것으로 예부터 봉양리 일대를 가리켜 桑
麻十里라고 불렀다
뽕나무의 규모는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2.5m, 밑동 둘레 3.3m이고 수관
폭(가지가 뻗은 범위) 동서방향 24m, 남북방향 15m이다.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 후기 문신인 안축(1282~1348) 의 시에 "...높은 비탈길 돌고 돌아 말을
호통치고 가는데, 桑麻十里 바로 황성이구나..." 했고 오횡목(1834~?)의 '정선
총쇄록'에는 오횡목이 정선군수로 부임(1887년3월~1888년8월)한 후 “관아 부
근을 둘러볼 때 뽕나무 숲을 헤치고 길을 찾아 관사 앞에 이르렀다” 는 기록
이 있다 그리고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4월 조에-
한 잠자고 일어난 누에
하루에도 열두 밥을
밤낮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뽕 따는 아이들
아 나중에 딸 생각해서
묵은 가지 따 버리고 햇잎은 잘 골라 따소.
새싹 반란- 水晶 이구락
냇가의 수양버들 무덤가 찔레나무
뽕나무 밭둑에서 오솔길 길섶까지
새싹이 일으킨 반란 점령하는 봄봄봄
간밤에 비 그치니 천지가 파랗구나
비탈진 언덕에도 굽어진 가지에도
일제히 밀고 올라와 봄 떠밀어 쫓는다
그리고 뽕따러 가세- 라는 가요가 있다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세
칠보나 단장에 뽕따러가세
뽕따러가면 살짝 큰 가지
뒷집총각 따라오면 응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성화로구나
응 뽕따러 가세 -이하 생략-
“뽕나무 설화”가 있고 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와 劉希夷(劉庭芝))의 시 代悲白
頭翁,(노인을 대신하여 백발을 슬퍼하는 노래)〉에도 나온다.
... 전략
뽕나무 밭이 변해
푸른 바다 된다고 들었네
옛사람 자취
낙양 동쪽에 없는데
늙은이의 센머리 가련하지만
이래 봬도 옛날엔 홍안의 미소년 –전문생략-
장지역을 들머리로 했으면 별 탈 없었을 테지만 광나루 한강공원을 경유한 길
손은 잠실대교 아래에서 혼란스러웟다 진행할 방향 표식이 찾기 힘들었지만
송파관광정보셑터에 문의하여 자문을 받았다 탄천합수 지점에 이르니 물소리
가 콸콸콸 들렸고 스탬프함이 보였다
⁕ 炭川
경기도 용인시·성남시, 서울특별시 강남구·송파구를 흘러 한강에 유입되는 강.
한강의 제1지류이며, 길이는 35㎞이다. 용인시 구성면 청덕리 법화산(340m)
의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며, 성복천· 동막천· 분당천· 운중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대원천· 단대천· 세곡천을 차례로 합류한다. 서울특별
시 강남구 대치동 부근에서 양재천을 합하고 강남구와 송파구의 경계를 이루
며 흐르다가 강남구 청담동과 송파구 신천동 사이에서 한강으로 흘러 든다.
조선시대에는 “검내”라고 불렸으며, 지금도 숫내· 탄천이라고 불린다. 삼천
갑자 동방삭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가 숯을 씻었다고 하여 탄천이라 부른다는
설화가 전한다. 유역에는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을 비롯해 한국마사회경기장·
서울대공원· 국립현대미술관· 한국교육개발원· 농수산물유통공사 등이 있고 동
방삭의 판넬이 있다.
⁕ 東方朔 Story
비나리에 “命을 주시려거든 三千甲子 東方朔의 命을 주시고 福을 주시려거
든 億萬長者 石崇이의 富를 주시고...” 라고 인용되는데-
동방삭은 염라대왕의 실수와 저승사자들의 직무유기로 삼첱갑자(십팔만년)후에
나 알아 차리고 강력팀을 구성하여 잡기로하고 탄천에서 숯을 빨으면서 동박
삭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동방삭이가 지나가면서 보니 예쁜
아가씨가 숯을 빨래 하는 것을 보고 “허~어 내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숯을 빠
는 아가씨는 처음 본다” 라고 순간적인 헛점을 보이려니 저승사자들은 “옳지
네놈이 동방삭이로구나...” 하곤 쇠밧줄로 꽁공 묶었다
동방삭은 중국 한나라 때 서왕모가 심은 복숭아를 따먹고 三千甲子를 살았다
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로 중국 땅에도 동방삭 전설이 있고 炭川 지역에
홍수가 나면 이 지역에 피해가 막심하므로 “한탄의 강” 곧 탄천(嘆川)이 되었
다고도 한다
대형주차장을 지나면 새로이 조성된 탄천길은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일직선이
고 고난의 길로 지루한 길이다 그늘막이 생긴 후에나 걷기 좋으리- 둔치에 운
전면허시험장은 썰렁하고 어제 마감한 장지천 합수지점에 도착하고 장지역으
로 가서 8호선을 타고 오다다가 잠실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였다
※ 仁祖와 徐欣男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仁祖는 도성이 위태로워서 가족들을 강화로
피신 시킨후 따라가려 했으나 이미 강화도로 가는 길이 봉쇄되어 남한산성으
로 피신하게 되었다 하여 피난길에 올라서 송파강을 건너 남한산성 청량산을
오르려니 급경사로 피난 행렬이 지쳤는데 근처를 지나가던 나무꾼 서흔남이
이를 목격하고 인조가 불쌍하여 업어서 피신케 하니 인조 왈 “소원을 말하라”
하니 서흔남은 서슴없이-“덩신이 입고 있는 곤룡포를 주시우~” 라고 대답하니
주변의 높은 양반(대감)들은 사색이되어 不可라 했지만 임금은 빙그레 웃으면
서 곤룡포를 주었는데 서흔남은 가족에게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서흔남은 남한산성과 외부의 소식을 전하고 전해 받고 하는 전령이 되
었다
⁕ 인조와 서흔남의 동상은 송파도서관 앞마당에 있다
⁕ 徐欣南 墓碑
경기도 광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6호
서흔남 묘비는 남한산성 역사관 주차장 옆 지수당 연못가에 있다.
徐欣南( ?~1667)
광주에 살던 私奴로, 병자호란을 맞아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온 후 청군에
포위되자 외부와의 연락을 위해 자원하여 승려 斗淸과 함께 성 밖의 도원수
金自點, 황해병사 李碩達, 전라감사 李時昉의 장계를 성안으로 가지고 돌아왔
다. 서흔남은 적진도 정확하게 정탐하였는데, 택당 李植도 그를 통해 가족이
피난했던 지역이 청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서흔남은 공로
를 인정받아 면천되고 관직을 제수받았다. 숙종과 정조도 그의공을 기려 후손
을 등용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그의 행적은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중정남
한지”를 비롯한 각종 문집에 실려 있다.
⁕ 그 후
석천호수에 있는 송파관광정보센터를 찾아가서 “송파들레길 21Km 완주인증
서”와 가념뺏지를 받으니 인증번호가 944번으로 내 앞에 이미 943명이나 송
파둘레길을 완주했거니 이후로도 이어질 것이다
Songpa Dulle Road
서울특별시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동쪽은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
남쪽은
경기도 성남시
서쪽은
강남구
북쪽은
한강 건너 광진구와 접해 있다
성내천 6.0Km
장지천 4.4Km
탄천 7.4Km
흔겅 3,2Km- 21Km
Story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仁祖와 徐欣男 이야기
탄천의
東方朔 설화는
비나리의 모델이고
한강공원
桑田에
뽕나무 스토리는
재미있고
길손은
잠실대교
잠실나루
잠실운동장 스칠 때
성내천의
잉어는 한가롭다 2021년7월14일 수요일 맑음
잠실 나루터
광나루
한강공원에 桑田 있다
뽕나무는
삼한시대부터 天木으로
속담에
“옷을 입은 거지는
굶주리지 않는다”로
衣食住
생활에 우선순위로
農桑政策은
국가경영의 기본정책
박혁거세도
동명성왕도
뽕나무 심기를 권장하였고
세종대왕은
蠶室都會라는
국립양잠소를 설치하였다
대구시에
뽕나무 골목 있고
정선군에는
桑麻十里가 있어
600년된 뽕나무 2구루는
국내애서 가장 연세가 많고
양평군 양동면은
뽕나무를 특화작물로 장려한다
열매와
뽕잎
뿌리에 효능이 있다
2021년7월15일 목요일 맑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