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해양민족, 한겨레 (1)
무애(한국선도학회장)
- 한겨레, 인류 최초로 배(船)를 만들다
인류가 처음으로 배를 만들어 강이나 바다로 진출한 때는 언제일까? 선사시대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넘치는 탐험심으로 바다 멀리 나아갔을까? 아마도 그들은 초기엔 많은 고난을 겪었겠지만, 이내 가장 먼 바다로 진출하여 전 세계의 대양을 제패하면서 가장 먼저 바다의 왕자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흔히 해양민족 하면 바이킹 등 서양인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한겨레가 가장 먼저 배를 만들어서, 용감하게 먼 바다까지 진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배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8천년 전)가 한반도에서 발견됨으로써, 배는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의 역사학자 서량지도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배(船)와 노(櫓)'는 동이족(東夷)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증언한 바 있다.
고대의 항해술은 우리 민족이 처음 개발했음이 분명하다. 한겨레는 일찍이 배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먼 바다에까지 진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대양을 누비고 다니며 한겨레 문명을 세계에 전파한 위대한 해양민족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겨레의 영역에는 배와 관련된 유적들이 적지 않다. 산동에 있는 대장산도와 요동반도의 대련, 압록강 하구의 단동 지역에서도 5천~7천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선박 유적지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함경북도 굴포리 서포항 유적지에서는 6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래뼈로 만든 노가 발견되었다. 3천~7천 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북도 울주 반구대암각화(국보 285호)에도 배 그림이 나온다. (윤명철,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비봉리(경남 창녕) 신석기유적지에서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가 발견되었다. 이는 약 8천년 전에 제작된 통나무 목선이다. 이 배는 먼저 불로 나무를 그슬린 뒤에 날카로운 석기로 깎아서 만들었으며 어로용, 이동용 등 다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선은 길이 3.1m, 폭 0.6m, 깊이 0.2m이며, 원 길이는 4m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 2005.9.5)
하지만 놀랍게도 전문가들은 이 배의 실제 길이가 추정치보다 더 길 수 있으며, 10명까지도 탈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울주 반구대암각화에는 20여 명이 타고 있는 배도 있다. 신석기 주거지역은 주로 강이나 바닷가에 많았으므로, 신석기인들은 고기잡이를 많이 했으며, 이를 위해 돌칼, 돌도끼로 정교하게 배를 만들었을 것이다.
비봉리 목선은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 옆에서 발굴된 고선박(4,600여 년 전 제작 추정), 터키 겔리도니만 해저에서 발굴된 난파선(3,300여 년전 제작 추정)보다 제작시기가 훨씬 앞선다. 또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선박으로 알려진 도리하마(鳥浜)1호나 이키리키(伊木力) 유적 출토품보다도 2,000년 이상 앞선다. 이는 8천 년 전으로 추정하는 중국 저장성 콰후차오(跨湖橋) 유적에서 나온 나무배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이다. (한국일보 2005.9.5)
- 고래사냥과 울주 '반구대 암각화'
한겨레의 선조들은 가장 먼저 배를 만들어 바다로 진출했으므로, '고래사냥'도 역시 이들이 최초로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영국 BBC방송은 한민족이 세계 최초로 8천년 전에 고래잡이를 했다고 보도했다. 7천 년에서 3천 년 전후까지 계속 그려 온 것으로 알려진 울주 반구대암각화에는 이러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세계 최초의 포경(捕鯨; 고래사냥) 기록이기도 하다.
반구대암각화는 울산만에서 태화강을 거슬러 서북쪽 약 26km 지점인 대곡천 기슭(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에 위치하고 있다. 태화강 상류는 5천 년 전만 해도 바다였다. 사람들은 동해를 회유하던 고래가 만 깊숙이 들어오면, 작살로 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동해는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미역 산지이며, 특히 태화강 중상류는 미역이 많아서 고래들이 들어와 휴식을 취하기 좋은 최적의 '고래 조산소'였을 것이다. 옛날에 고래가 새끼를 낳은 후 미역을 먹는 것을 보고, 한겨레도 산후 조리로 미역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동해에서 고래를 잡던 서구인들이 ‘물 반, 고래 반’이라고 말할 정도로 동해는 '고래 천국'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선사시대에도 사람들은 만 깊숙이 들어온 많은 고래들을 발견하고 쉽게 포획했을 것이다.
수산업사를 연구한 박구병 선생은 반구대암각화에 등장하는 고래의 종류를 흑고래, 긴수염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솔피고래 등으로 추정한다. 특히 흑고래는 과거 동해에 풍부했던 고래이며, 귀신고래는 한국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고래이다. 그렇다면 다른 고래들은 한반도 주위에 없는 고래들인데, 도대체 왜 여기에 등장하는 것일까?
여기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는 한겨레의 엄청난 비밀과 해양역사를 푸는 아주 귀중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계속)
-출처; <인류문명은 한겨레에서 시작되었다> (무애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