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32
"그 아이의 피와 살을 먹으면 엄청나게 공력을 올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소림은 그 아이를 지키려하고 있고---."
"개소리! 사람이 무슨 약이 된다는 말이냐?"
"아니, 그 아이는 만년 묵은 동자삼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독불침에 천년 내공이라면 누구나 미치고 볼 것이다."
"흥, 개소리다! 아무리 좋은 영약이라도 먹으면 그만이다! 사람을 먹어서 그 약효를 볼 수 있다면 기진영약을 들이킨 사람들의 살과 피는 모두 보약이라는 말이냐?"
"후--, 그래 너처럼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너 같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천하제일의 의술을 지니고 있는 정각의 입에서 보혈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면 과연 너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진짜로 그 아이의 피로 병을 고친 사람들이 생겨났다면?"
"정말이냐?"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아이를 노렸지. 그리고 또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갔다."
"지금은?"
"그 아이는 영약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져 버렸지. 그러나---."
"그러나 뭐?"
"그 아이가 천고의 무골이라는 말이 퍼졌다. 몸속에 잠재한 막강한 내공과 화산파 제일의 고수라는 천하제일검 풍진자가 죽기 직전 아이에게 자신의 심득을 전하고, 소림사의 신비로 불리는 금강나한이 그 아이를 제자로 삼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게다가 마교에서도 그 아이를 마교로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재로 그곳에 도살자 염혼이 등장했었다."
"휘유---, 엄청나군. 그 와중에 내가 거기 있었다는 말이지?"
칠호는 휘파람을 불어내며 감탄성을 토해내었다. 막주가 자신에게 그냥 맞아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최고의 자객이라 불리는 칠호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말이었다.
그런 거대 문파 간의 기재쟁탈전이 벌어지는 곳에서 무려 사흘이나 머물다 도망쳐 나온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막주는 퍼렇게 멍든 눈가로 한 방울의 이슬을 떨구며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뱉어내었다.
자신도 모르게 칠호는 목을 쓰다듬으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은 행운이었다. 지옥의 문턱에 한발을 내디딘 것도 아니고 아예 들어갔다 나온 셈이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침묵했다.
"이제 어쩔 거냐?"
칠호는 천장만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아직도 누워 있는 막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등소군의 일은 포기해라. 이미 받은 돈의 두 배를 돌려주고 청부를 취소한 상태다."
"왠지 찜찜하군. 네 뒤늦은 연락을 받고 그냥 돌아왔다만---."
"소림과 마교가 이렇게 크게 벌이는 전쟁에 끼어 들면 살막이 멸망하는 수가 있어."
"기재 쟁탈전인가?"
"그래, 너도 알겠지만 거대문파간의 보이지 않는 기재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얼마나 살벌한 것인지---."
"알고말고, 십 년 전에는 그 화산파의 제자가 된 악종진을 차지하기 위해 구파일방 모두가 보이던 그 치열한 암투 속에 우리도 끼어 있었지."
"그래, 이번에 그 아이는 악종진 정도가 아니야. 정사마 모두가 노리고 있는 아이야. 우리는 등봉현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고."
살막의 두 사람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그들이 은신하고 있는 폐가를 향해 걸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붉은 구슬을 장난감처럼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하면서 그 폐가를 향해 다가갔다.
마교(魔敎)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부터는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마교의 제자로 불리는 자들 또한 마교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고 있지만 그 이름이 주는 공포는 수 천년의 세월 또한 계속 이어졌다. 마교의 눈과 귀는 언제나 세상 곳곳에 퍼져 있었고 마교의 교주는 마도(魔道)를 걸어가는 모든 자들의 신이었다. 절대로 마교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마도를 걸어가는 자라면----.
" 쓰레기라 해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는 법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염혼(炎魂)은 이 황량하고도 외딴 황무지에 홀로 서 있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 보이는 폐가를 쳐다보았다.
"살막이라---, 그 혼란의 와중에 모두의 눈에 들키지 않고 은신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자라면----- 흠 어떨까? 과연 그자가 이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마교의 눈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등봉현을 벗어난 자에 대한 행적이 마교의 눈에 띄게 되고 이렇게 염혼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염혼이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폐가를 향해 접근하는 동안 폐가 안에서 밀담을 나누고 있던 살막의 두 사람은 밖에서 다가오는 자의 발소리를 듣고 대화를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둘은 폐가의 땅속과 지붕의 서까래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염혼은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이곳에 살막의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폐가의 안으로 접어들면서 염혼의 얼굴에는 만족의 미소가 번졌다. 여기 그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자신으로서도 이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은잠술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그 꼬마의 입속에 사대금강과 금룡 양평의 눈을 속이고 이 마정이라 불리는 물건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나와라. 내가 누구인지 안다면----."
낮고 잔잔한 목소리가 염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살막의 막주와 칠호는 결코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싫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저항 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온 몸이 떨리는 듯한 중압갑을 느끼면서 땅속과 지붕에서 염혼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서로의 얼굴에서 공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살기를 풀풀 날리는 인간이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이다. 아니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마교의 인물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무림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의 방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공포와 잔인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염혼의 얼굴은 곱상하게 생겼지만 그의 잔인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를 가장 두렵게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금 염혼이 웃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염혼의 길고 가느다랗고 하얀 손에 달린 손가락이 살막의 막주를 향해 까닥거렸다.
막주는 비실비실 걸으며 염혼에게 다가갔다. 무림의 일류고수라 해도 무방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미 심신이 염혼에게 제압당한 상태였기에 저항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끄아악!"
막주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감히 내가 오는 줄 알면서도 영접은 하지 못 할 망정 숨어서 날 노려!"
염혼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막주는 뒤로 꺽인 두 팔을 대롱대롱 어깨에 매달고 울면서 염혼을 쳐다보았다.
"원--원 하는 게 무엇입니까?"
"흐흐, 아직 내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 일은 한 사람이면 충분하니 넌 좀 더----."
끊임없이 폐가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칠호는 고개를 뒤로 돌려버렸다. 자신의 생사지교인 막주를 전혀 도와 줄 수 없는 칠호는 그 광경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비명이 멈추자 칠호는 고개를 돌려 막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원래 꺾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꺾여진 채 공처럼 몸이 둥글게 말려 있었고, 두 눈은 눈알이 뽑혔는지 텅하니 비어진 채 끊임없이 그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제발!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저희 같은 하찮은 무리에게 마교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칠호는 소리를 치면서 물어보았다. 자객이라는 이름의 삼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마교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는 그였다.
"후후, 아주 좋은 말이다. 너는 네 자신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고는 있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손에 묻은 새빨간 피를 핥아 가는 염혼의 모습을 보면서 칠호는 치를 떨었다.
" 쓰레기라 해도 쓸 때가 생기면 사용해야겠지. 영광으로 알아라. 네가 마교의 일에 초대된 것을---."
"제가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탕이다."
"----?"
칠호는 난데없는 사탕이라는 말에 잠시동안은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죽이는 일이라면 너희 같은 쓰레기를 이용할 필요가 없지. 마교의 최하급 무사라도 너보다는 나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칠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구슬이 되어 염혼의 발 밑을 구르고 있는 막주를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발로 차며 막주를 굴릴 때마다 바닥에는 기다란 핏자국이 이어지고 있었다.
"등봉현으로 가라."
"그 꼬마입니까?"
"호, 네가 방소구라는 꼬마에 대해 알고 있는가 보구나."
"그 아이를 죽이면 되는 것입니까?"
칠호가 그렇게 묻는 순간 공이 되어 염혼의 발 밑을 구르던 막주의 몸이 칠호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염혼이 막주의 몸을 칠호를 향해 걷어찼던 것이다.
"퍽!"
소리가 나면서 둘은 땅바닥을 뒹굴었다.
칠호는 피를 토해내며 염혼을 쳐다보았다.
"너희 같은 것은 만(萬)이 모인다 해도 그 아이 하나만 못해! 이 쓰레기들아!"
"우웩!"
입으로 피를 토해내면서 염혼을 바라보는 칠호의 눈에는 이제 공포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 깊은 곳에는 분노라는 불꽃이 숨어 있었다.
" 네가 할 일은 그 아이에게 사탕을 먹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 말을 한 염혼은 다시 밖으로 몸을 날리면서 말했다.
"삼년이다. 삼년 안에 그 아이의 곁에 네가 없다면 너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염혼의 마지막 말이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칠호는 입가의 피를 소매를 딱고 멀어져 가는 염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반드시 저자를 자신의 손으로 막주와 똑같은 꼴로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가능한 장면을 털어 낸 칠호는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막주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전신의 뼈마디가 다 부러지고 두 눈은 뽑혀져 얼굴에는 두 개의 구멍이 나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칠공에서 피를 흘러내리고 있지만 아직도 막주는 살아있었다.
막주의 입에서는 혀도 잘렸는지 목소리도 안 나오고 있었지만 그 표정은 칠호에게 절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 어--어--버--버---."
혀가 잘린 입에서 튀어나온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무엇인지 칠호는 알고 있었다.
칠호는 이 폐가(廢家) 속에 엄청나게 많은 무기가 숨겨져 있고 수많은 기관
장치들 또한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막주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공포에 질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부들거리는 팔로 고통 없이 막주를 죽여줄 수 있을 지 칠호는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겪는 고통에 비하면 죽는 순간의 고통은 별 것 아닐 것이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고통은 지속되면서 아주 천천히 죽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한 염혼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죽여주는 것이 막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칠호 역시 조금 전의 타격으로 촌보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내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막주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칠호는 힘겹게 걸음을 옮겨 벽 속에 숨겨진 한 자루의 검을 꺼내들 수 있었다. 불과 반장도 안 되는 거리가 만리는 되어 보이는 칠호였다.
비틀거리며 막주의 옆으로 다가간 칠호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거꾸로 세워들었다.
"이얏!"
칠호의 입에서는 악에 받친 기합이 터져 나오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푹'
막주의 심장 위로 한 자루 검이 깊숙이 자루 부분만 남긴 채 박혀 들었고, 막주의 얼굴 위로 편안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털썩'
살막의 막주의 가슴에 검을 꽂은 직후 칠호는 옆으로 쓰러져가면서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복수할 테다! 복수할 거야!'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