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甚多니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에서 사구게만이라도 받아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이 저 복보다 매우 많으니라.”
說誼
無智慧眼하야 空然捨施하면 此非菩提正路라 反招生死苦輪이요
受持四句하야 開得慧眼하면 此眞菩提正路라 當證涅槃眞常하리니
有爲無爲가 優劣이 晈然이로다
설의
지혜의 안목이 없이 공연히 베풀기만 하면 이는 보리의 바른 길이 아니며
도리어 생사의 고통스런 윤회를 초래함이 되고,
四句를 수지하여 혜안을 뜨면 이는 참다운 보리의 바른 길이어서
마땅히 열반 眞常을 증득하리니 有爲와 無爲의 차별이 분명하도다.
六祖
世間重者가 莫過於身命이어늘 菩薩이 爲法하야
於無量劫中에 捨施身命하야 分與一切衆生하면
其福이 雖多나 亦不如受持此經四句之福이니 多劫捨身호대
不了空義하면 妄心을 不除라 元是衆生이요
一念持經하야 我人頓盡하면 妄想이 旣除라
言下成佛일새 故知多劫捨身이 不如持經四句之福이니라
육조
세간에서 중히 여기는 것은 목숨보다 더한 것이 없거늘 보살이 법을 위하여
무량겁 동안 목숨을 보시하고 베풀어 일체 중생에게 나눠주면 그 복이 비록 많으나,
이 經의 四句偈를 수지하는 福과는 또한 같지 않으나,
多劫 동안 몸을 보시하되 空의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면 망령된 마음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라, 원래 이 중생인 것이요.
한순간이라도 경을 가져서 我와 人이 다 없어지면 망상도 또한 이미 없어짐이어서
言下에 성불일세. 그러므로 알라.
오랜 세월 동안 몸을 보시함은 經의 사구게를 가지는 福만 같지 않도다.
傅大士
經中에 持四句여 應當不離身이라
愚人은 看似夢하고 智者는 見唯眞이로다
法性이 無前後하야 無中非故新이라
蘊空無實體어니 憑何見有人이리오
부대사
經 가운데 四句를 가짐이여.
응당 몸을 떠나지 않았도다.
어리석은 사람은 꿈같이 보이고
지혜있는 사람은 오직 眞만을 보도다.
법의 성품은 前後가 없고
중간도 없어서 옛이나 새것도 아니로다.
五蘊이 空하여 실체가 없으니
무엇을 의지하여 사람이 있음을 보리오.
冶父
兩彩一賽로다
說誼
優劣晈然은 卽不無나 然이나 皆未免修斷功勳이어니와
若是本分衲僧인댄 動靜에 皆行施어니 何勞捨身命이며
語黙에 皆轉經이어니 何煩讀文字리오
伊麽則持經行施를 不故兼而自兼이로다
야부
두 가지 색이 한 주사위로다(두 가지 색을 가진 주사위로다).
설의
우열이 분명한 것은 곧 없지 않으나, 그러나 다 닦고 끊는 공훈은 면치 못하거니와,
만약 本分衲僧이면 動하고 靜함이 다 보시를 행하거니와 어찌 수고로이
목숨을 버릴 것이며, 말과 침묵이 다 經을 전하는 것이거늘 어찌 번거롭게 문자를
익히리오.
그렇다면 경을 가짐과 보시를 행함은 짐짓 겸하지 않아도 저절로 겸한 것이로다.
冶父
伏手滑槌로 不換劍하니 善使之人은 皆總便이라(蓋總便은 他本에 作能穩便이라)
不用安排本現成하니 箇中에 須是英靈漢이라
囉囉哩哩囉囉여 山花笑野鳥歌로다
此時에 如得意하면 隨處薩婆訶하리라
說誼
若是本分人인댄 卽日用이 便是妙用이어니 何須更借修斷方便이리요
不用今日安排하야도 妙用이 本自現成하니 此非劣機境界라
須是過量人이라야 始得다
只如過量人境界를 作麽生道오 海晏河淸風月好하니 人人이 齊唱太平歌로다
何獨人人이 如是리오 花笑山前洩天機하고 鳥歌林外話無生이라
頭頭自有無窮意하니 得來無處不逢原이로다
야부
손에 쥔 滑槌로 칼과 바꾸지 않으니
잘 쓰는 사람은 모두 다 편리하도다.
安排를 쓰지 않아도 본래 다 이루었으니
그중에 모름지기 이 英靈한 사람이라
라라리리라라여.
산에서는 꽃이 피고 들에서는 새가 지저귀도다.
이때에 만약 뜻을 얻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살바하하리라.
설의
만약 이 本分人이라면 날마다 쓰는것이 다 妙用이어서 어찌 모름지기 닦고
끊는 방편을 빌릴 것인가.
금일의 안배를 쓰지 않아도 묘용이 본래 스스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는 하열한 근기의 경계가 아님이로다.
모름지기 過量人(뛰어난 사람)이라야 비로소 될 수 있도다.
다만 저 과량인의 경계를 어떻게 말할까.
바다는 잔잔하고 냇물은 맑아서 風月이 좋으니
사람사람이 모두 태평가를 부르도다.
어찌 홀로 사람만이 그러리오.
꽃은 산 앞에서 웃으며 천기를 누설하고
새는 숲 밖에서 지저귀며 無生을 말하도다.
낱낱이 다 스스로 무궁한 뜻이 있으며,
얻고 나면 그 근원을 만나지 못할 곳이 없으리라.
宗鏡
大覺尊의 本來不立一字하사 而直指人心이어시늘
須菩提가 無端特請標名하사 而强生枝節이로다
縱使等河沙施身命이라도 無相可求며 析世界如微塵이라도 無法可說이나
且道하라 奉持介什麽오 咄
金剛寶劍이 倚天寒하니 外道邪魔가 俱腦裂이로다
說誼
咄 不須向外謾馳求니 馳求未免作兩段하리라
종경
大覺尊(佛)께서 본래 한 글자도 세우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셨거늘,
수보리가 무단히 이름을 특별히 청하여 억지로 枝와 節을 냈도다.
비록 항하사와 같은 목숨을 보시하더라도 相은 가히 구할 게 없으며,
세계를 부수어 가는 먼지같이 할지라도 법은 가히 설할 수 없음이니 또 말하라.
(이런 경지에서) 그 무엇을 받들어 가질 것인가. 咄!
금강보검이 하늘 높이 치솟았으니
外道와 邪魔가 모두 뇌가 쪼개지도다.
설의
咄! 모름지기 밖을 향해서 부질없이 馳求하지 말것이니
치구하면 양단 지음을 면치 못하리라.(금강보검에 의하여 두 조각이 날 것이다)
宗鏡
箇裏에 本無元字脚하니 空中에 誰肯强安名가 等閑點出金剛眼하야
照破魔王八萬城이로다
說誼
此事從來로 無註脚하니 誰向空中强安名이리오
不須向外謾馳求하고 只要點出金剛眼이어다
等閑點出金剛眼하니 滿目虛空이 當撲落이로다
滿目虛空이 虛空이 旣撲落하니 魔宮이 無所寄로다
종경
그 속에 본래 元字의 다리가 없으니
空中에 누가 구태여 이름을 두었는가.
넌지시 금강안을 끄집어 내어
魔王의 팔만성을 照破하리라.
설의
이 일은 본래 註脚(설명)이 필요없으니 누가 공중을 향해 구태여 이름을 두었으리오.
모름지기 밖을 향해 부질없이 치구하지 말고 다만 금강의 눈을 점출할지어다.
넌지시 금강안을 점출하니 눈에 가득한 허공이 부서져 내리도다.
허공이 이미 부서져 내리니 마군의 궁전이 의지할 데가 없도다.
무비
모든 것이 원만하고 구족하고 수승해서 생사까지 초월하여 있는 이 도리를
무엇이라 일러야 좋은가.
언어와 문자가 붙을 수 없고 생각이 미칠 수 없는 그 자리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금강바야바라밀이라 하리라.
그러나 그 자리는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일찍이 금강반야를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저 작은 먼지도
말한 적이 큰 세계도 말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일체의 상(相)도 없고,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고, 얻을 것도,
설할 것도. 聖果도 없고, 정토장엄도 없고, 이몸마저 없다고 하시고 여기에서
금강반야바라밀을 받아 가지라 하신다.
무엇이 반야바라밀인가 .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인 것이다.
이런 대화가 있다.
어느 날 수보리가 좌선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꽃을 뿌리거늘 수보리가
"꽃을 뿌리는 자가 누구인가."
"하늘의 제석입니다."
"어찌하여 꽃을 뿌리는가."
"존자께서 반야바라밀을 잘 설하시어 존중히 꽃공양을 올립니다."
"내가 무엇을 설하였는가."
"말씀 없으심이 참다운 설법입니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법답게 받아 가지라
圭峰
捨身이 勝於寶施요 持說이 又勝捨命이니라
二는 釋勝所以라
於中에 文五니 一은 泣歎未聞深法勝이라
규봉
몸을 버리는 것이 보배를 보시하는 것보다 수승함이요
經을 가지고 說하는 것이 또한 목숨 버리는 것보다 수승함이니라.
㉷二. 수승한 이유를 해석함이라. 그 중에 五가지니
㉸一. 깊은 법을 아직 듣지 못함을 울면서 탄식함이 수승함이라.